[MULTI] 삼국지 조조전 온라인 : 고전에 새 옷을 입히다

나는 삼국지 영걸전 삼부작을 잊지 못한다. 탄탄한 전투 시스템과 아기자기한 캐릭터 디자인이 좋았고 톡톡 튀는 대사와 깨알 같은 이벤트도 인상적이었다. 특히 조조전을 처음 접했을 때의 충격은 대단했다. 선택에 따라 방향이 완전히 달라지는 스토리, 더욱 다양해진 병과와 독특한 아이템으로 깊이를 더한 전투, 흐름을 한순간에 바꿔 놓을 수 있는 대규모 책략까지. 정말 입이 딱 벌어질 만한 게임이었고 그 대단함이 후속작까지 오래오래 이어질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조조전은 시리즈의 마지막이 되고 말았다.
봤던 엔딩을 또 보고 난세간옹전 같은 팬 메이드 게임도 찾으며 허망하게 막을 내린 시리즈의 끝자락을 붙잡고 있었지만 20년에 가까운 세월의 무게를 견디진 못했다. 결국, 조조전도 대항해시대 2 같은 여러 고전 게임과 함께 추억의 한편에 묻어두고 말았다. 그렇게 기억으로만 간직하고 살던 어느 날, 조조전이 모바일로 다시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솔직히 기대보단 우려가 앞섰다. 추억은 추억 속에 남겨둘 때 가장 아름답다고 하지 않던가. 지금 와서 모바일의 과금 체계를 뒤집어쓴 조조전을 다시 만나도 후회만 할 것 같았다. 그러나 손은 이미 게임을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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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치 중엔 친절하게 게임을 안내해준다. 언제나 재밌는 원사운드님의 만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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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하면서 귀여웠던 일러스트가 이렇게 변했다. 뭔가 힘세고 강해 보이는 순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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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많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걱정과는 달리 원작의 뼈대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모습이다. 연의 모드를 통해 조조전을 원작에 가깝게 재현했다. 심각한 고민에 빠뜨리는 절묘한 선택지는 물론이고 전투 중에 벌어지는 소소한 이벤트와 맵 디자인까지 그대로다. 캐릭터 일러스트와 인터페이스 같은 시각적인 부분이 달라져서 처음엔 조금 낯설지만, 도트로 만든 캐릭터 조형과 지금 들어도 여전히 아름다운 배경 음악 덕분에 전체적으로는 익숙한 느낌을 준다.
이렇게 기본적인 바탕을 유지하면서도 조금씩 변화를 준 점이 인상적이다. 일단 진행 방식 면에서 차이가 있다. 원작은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스테이지를 순차적으로 진행하는 방식이었는데 이젠 지나간 스테이지를 다시 플레이할 수 있게 되었다. 언뜻 사소한 변화로 보이지만, 이런 방식을 통해 잘못 고른 선택지를 되돌리거나 놓친 아이템을 다시 얻을 수도 있고 처음엔 피해 가기 힘든 사망 이벤트도 나중에 레벨을 올린 뒤에 다시 도전할 수 있어서 여러모로 편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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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오르라 주작이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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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선택지부터 사소한 대사까지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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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도 조금씩 바뀐 부분이 있다. 예전엔 궁병이 레벨을 높여 노병으로 승급하는 방식이었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처음부터 궁병과 노병이 다른 병과로 구별된다. 경기병과 중기병도 마찬가지. 그런데 이런 변화가 크게 체감되지는 않는 편이다. 궁병과 노병의 타격 영역이 달라 활용법에서 차이를 보이긴 해도, 기본적으로 노병의 리치가 더 길어서 거의 모든 상황에서 더욱 안전하게 타격할 수 있으니 동등한 별개 병과라는 느낌을 받기 힘든 것이다. 중기병은 경기병에 비해 험로에서 패널티를 더 받긴 해도 중기병의 방어력 보너스는 그런 단점을 상쇄할 정도로 우수해서 직접 상대해보면 그냥 중기병이 상위 병과라는 느낌이다.
협공 시스템이 생긴 점도 눈여겨 볼 만하다. 아직 행동하지 않은 아군 유닛이 공격 대상에 인접하고 있으면 같이 공격하게 되어 상황 판단에 더욱 신중을 기해야 한다. 공격할 때는 협공하기 좋은 순서로 유닛을 움직여야 하고 방어할 때는 적에게 둘러싸이지 않게 위치를 잘 잡아야 하는 것이다. 또한, 협공에 참가하는 유닛도 함께 반격을 당하기 때문에 체력이 낮은 아군이 협공에 참가하는 걸 방지하기 위해 이리저리 생각해보는 과정도 흥미롭다. 규칙은 단순하지만 활용하는 방법에 따라 효과의 차이가 커서 전략에 깊이를 더한다.
모바일 플랫폼에 맞게 자동 전투 기능을 추가해 편의성에 신경을 쓴 모습이다. 전체 전투를 끝까지 자동에 맡기는 것도 가능하고 한 턴만 위임할 수도 있는데, 한 턴 위임은 자원을 소모하지 않고 총 위임도 자원을 많이 소모하지 않아 부담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다만, 자동 전투의 A.I.는 조금 부족한 편이라 용도가 제한적인 점을 감안해야 한다. 상성은 비교적 잘 고려하는 편이지만 아군과 진형을 유지하며 이동하거나 적과 거리를 벌리며 교전하는 부분은 잘 이루어지지 않는 편이다. 그래서 초반 전투 개시 때 이동할 때 한 턴 정도만 맡기거나 전력이 압도적으로 차이 날 때 총 위임하는 방식으로 사용하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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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 투구의 전설 조홍. 좌절감이 사나이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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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스테이지를 선택해서 다시 도전할 수 있다. 재시도 끝에 관뚜껑을 열고 나온 전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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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편 외에도 여러 콘텐츠를 추가한 점도 특징이다. 몇 가지 조건을 갖추면 장각전과 하후연전 등의 시나리오가 해금되어 다른 이야기를 감상할 수 있다. 물론 본편에 비해 분량이나 깊이가 부족하긴 하지만 보너스 콘텐츠라 생각하고 가볍게 즐기기엔 나쁘지 않다. 그리고 각각 보병, 궁병, 기병을 상징하는 강보, 유궁, 만기라는 인물을 통해 병과의 특성을 간략하게 안내해주는 북부위전은 본편 이전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튜토리얼 성격도 겸하고 있어서, 장르에 익숙하지 않거나 원작을 해보지 않은 사람에게 의미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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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토는 스타일이 많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보는 재미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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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와 동작으로만 표현했던 이벤트에 일러스트가 추가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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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의 모드와 더불어 게임의 한 축을 차지하는 건 전략 모드다. 중국 영토를 배경으로 하는 전략 지도 위에서 시작해서 다른 플레이어가 통치하는 성을 점령하고 자원을 모아서 공격과 수비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마치 코에이 본가 삼국지에 조조전과 공성전 게임을 잘 버무려 놓은 모습이다. 실시간으로 땅을 뺏고 빼앗기며 조금씩 세력을 불려서 강력한 부대와 시설로 무장해 나가는 과정이 흥미롭게 흘러간다.
전투는 조조전 스타일의 공성전을 핵심으로 한다. 제한된 코스트 내에서 출진할 장수를 선택하고 다른 플레이어가 배치한 장수와 부대를 공격하는 방식이다. 코스트가 한정되어 있으므로 전투를 시작하기 전에 정찰을 통해서 상대의 병과 구성을 파악하고 어떤 장수를 출전시킬 것인지 신중하게 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보병/궁병/기병의 상성 관계는 전략 모드에서도 마찬가지라서 부대 구성 방향에 따라서 승패가 크게 좌우되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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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를 진행하면서 얻는 방식에서 계보를 통해 등용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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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 능력에 특수 효과가 추가되어서 생각할 거리가 늘어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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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령한 도시에서 모은 자원은 여러 곳에 사용하게 된다. 도시 시설을 강화해서 시간당 자원 획득량이나 보관량을 강화할 수도 있고, 연구 트리에 투자해서 배치할 수 있는 병과를 늘리거나 이미 배치된 부대의 레벨을 올려 수비를 강화할 수도 있다. 그 밖에도 장수가 착용하고 있는 장비를 강화하고 소모성 아이템을 구입하는 등 플레이어가 개입할 수 있는 부분이 상당히 많다. 신경 쓸 곳이 많아서 약간 번잡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조금씩 모이는 자원을 어느 곳에 사용하는 것이 효율적인지 전략적으로 생각해보는 과정이 나쁘지 않다.
그런데 이렇게 점령지를 늘려가는 과정에서 한 번씩 정체기가 찾아온다는 점은 아쉽다. 장수의 레벨이 올라가서 출전할 때 필요한 코스트는 점점 올라가는데, 코스트 상한선을 올려주는 군주 레벨은 더디게 올라서 상대적으로 약한 장수들로 부대를 구성하거나 참전 장수를 줄여야 하고, 결과적으로 난이도가 높은 지역 진출에 걸림돌이 되는 것이다. 군주 레벨을 연의를 통해 올리려고 하면 장수의 레벨이 더 올라서 상황이 나빠질 뿐이고 전략 모드에서는 약한 부대 구성으로 어려운 지역을 건드리기 힘들어 결국 반복 퀘스트인 '사건'을 해결하는 방법만 남는데, 거기서 거기인 퀘스트를 한참 반복해야 해서 금방 단조로움이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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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령과 세력 강화가 중점이 되는 전략 모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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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턱대고 쳐들어가서 도발을 시전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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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 모드의 근본적인 문제는 따로 있다. 이런 턴제 전투에서는 다양성과 변수가 중요한데 이 둘을 모두 놓치고 있는 것이다. 원작 조조전의 전투를 떠올려 보자. 한 전투에 보병, 궁병, 기병 뿐만 아니라 수많은 종류의 병과가 등장하고 이들 사이에 상성이 복잡하게 얽히며 한 번의 선택이 복잡한 변화를 이끌어낸다. 그리고 이벤트라는 변수를 넣어 플레이어가 예측하지 못한 극적인 상황을 만든다. 압도적인 병력 차로 쉽게 끝나리라 생각한 스테이지가 살아남기만 해도 다행인 스테이지로 급변한다. 조조전 뿐만 아니라 전투가 괜찮다고 정평이 난 타일 방식의 턴제 게임은 대부분 변화의 폭이 큰 편이다. 엑스컴 리메이크만 해도 한 턴에 무슨 일이 일어날 지 예상하기 힘드니 말이다.
그런데 조조전 온라인의 전략 모드는 모든 전투가 비슷하다. 준비된 병과는 다양하지만 전투에 참가하는 병과는 한정적이다. 플레이 타임이 훌쩍 늘어나면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시작하고 한참 동안은 보병, 궁병, 기병 타입만 상대하게 되고 그에 맞는 부대를 구성하고 나면 따로 다양성이나 변수라 부를 만한 요소가 없다. 점령 장소에 따른 맵 특성도 부족한 데다 같은 장소를 뺏고 빼앗기는 걸 반복하게 되니 긴장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앞에서 말한 싱글 플레이 게임과 온라인 게임에 적용되는 디자인이 같을 수는 없겠지만 어떤 방법이건 턴제 전투의 긴장감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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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찰을 해서 상대 진영을 살펴본 뒤에… |
상성에 맞는 병과를 구성하는 방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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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어를 위한 부대 배치도 중요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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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살펴봤듯이 조조전 온라인은 연의와 전략이라는 두 가지 콘텐츠를 핵심으로 하는데, 이 두 모드를 따로 구별하지 않고 서로 촘촘하게 연결한 것이 특징이다. 전략 모드에서 올린 장수 레벨이 연의에서 그대로 적용되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점령을 통해 모은 군량은 연의에서 출전할 때 소비되며 은전으로 회복 아이템을 살 수 있다. 그 밖에 공적이나 장수 등용 시스템까지 다양한 장치를 활용해서 두 모드를 하나의 게임으로 묶은 디자인에서 세심함이 느껴진다.
그러나 이렇게 상반된 장르를 하나로 묶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잘려나가거나 훼손되는 부분이 발생한다. 대표적인 예로 밸러스 문제를 들 수 있다. 전략 모드에서 주력이 되는 장수들은 자연스럽게 레벨이 높아지고 이들을 데리고 연의를 플레이하면 게임이 쉬워질 수밖에 없다. 반대로 전략 모드에서 잘 활용하지 않는 장수들은 상대적으로 레벨이 낮은 편이라 연의에서 활용하기가 매우 불편하다. 게다가 연의 모드에서는 강제 출전 장수가 자주 등장하는 편이고 이들이 슬롯을 차지하면 사실상 전력에 공백이 생기는 것이나 다름없다. 아니, 오히려 약한 장수를 보호하기 위해 신경 쓰는 과정에서 전력에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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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모바일스러운 시스템이 많은데, 승패에 큰 영향을 주진 않는 것 같다. 아직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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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전을 사용할 일이 별로 없고 은전으로 대체 가능한 경우가 많아서 과금 부담은 크지 않은 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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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 업 속도가 느린 점은 밸런스 문제를 더욱 악화시킨다. 원작에서는 새로 등장하는 장수의 레벨이 기존 장수의 평균 레벨 정도에 맞춰졌다면, 조조전 온라인에서는 계보 시스템을 통해 등용하는 장수의 레벨이 3으로 고정되어 있다. 그리고 원작에서는 레벨 차이가 크게 나는 적을 처치하면 막대한 경험치를 얻어 레벨을 빨리 올릴 수 있었던 반면, 이번 작품에서는 그런 경험치 보너스가 낮아서 이 방식이 통하지 않는다. 이미 클리어한 스테이지나 반복 퀘스트를 되풀이하거나 공적을 소모해서 인위적으로 레벨을 올리는 방법이 있지만, 뒤로 갈수록 막대한 양의 공적이 필요해서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또 한 가지 문제는 아이템 습득 방식에 있다. 아이템은 원작에서 핵심적인 부분이었다. 방천화극, 사모, 청룡언월도 등 장비하는 아이템마다 독특한 특성이 붙어서 어떤 장수에게 어떤 아이템을 주느냐에 따라 전투를 풀어가는 방식이 달라졌고, 입수에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런데 조조전 온라인에서는 일부 아이템의 입수 방법을 바꿔서 아이템이 부족한 상태에서 연의 모드를 진행하게 되니 전략적인 면이 줄어든다. 물론 아이템의 오버 밸런스를 염두에 둘 수도 있겠지만, 연의 모드는 지금도 밸런스가 완전히 무너진 상태고 전략 모드에서는 다른 사람들도 공평하게 가질 수 있다면 밸런스는 문제될 일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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얻는 양에 비해 필요한 양이 훨씬 큰 공적. 100개 정도는 쉽게 소모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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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량과 은전 소모도 뒤로 갈수록 많아지니 점령지 관리를 잘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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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의 모드는 원작의 뼈대를 그대로 갖추고 있지만 살을 붙이고 빼는 과정에서 몇 가지 문제가 생긴 점이 아쉽다. 전략 모드는 지나친 반복으로 턴제 전투의 긴장감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점이 눈에 들어온다. 그러나 공략집을 보지 않아도 원하는 루트로 스토리를 진행할 수 있고 살리고 싶은 장수도 쉽게 살릴 수 있는 편의성 면에서는 긍정적인 면이 많다. 전략 모드는 성장하고 관리할 부분이 다양해서 시간을 두고 천천히 기반을 다져 나가는 맛이 있고 과금의 압박이 심하지 않다는 점도 만족스럽다. 조조전이 입고 나온 새 옷은 약간 어색하고 맞지 않는 부분이 있지만, 앞으로 매무새를 다듬고 길을 들여간다면 분명 보기 좋아지리라 생각한다. 새 옷은 새 옷만의 매력이 있으니까.
편집 이상원 기자 petlabor@ruliweb.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