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교육열, 하지만 아이들에겐…… 일본에서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PC 게임 시장의 황금기가 열리고 패미컴이라는 걸출한 가정용 게임기가 등장하여 본격적인 게임 시장의 역사가 시작된 것과는 대조적으로 한국에서는 1980년대 후반 무렵까지도 게임 시장이 제대로 자리 잡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당시의 시장이란 것은 대부분 음성적으로 유통된 일본의 가정용 게임기용 소프트 및 일부 부유층 자제들이나 갖고 노는 것으로 인식된 8비트 PC의 게임들을 한정된 인원들이 카피해서 주고받는 개념이 다였던 것. 그러다가 갑자기 컴퓨터 교육 과정을 정식으로 학교 수업에 넣는다는 정부의 발표가 나오게 된다. 당시는 1970년대의 눈부신 경제 성장을 기초로 국민들 사이에 (주1)치맛바람이라고 불릴 정도의 엄청난 교육 열기가 몰아칠 때였으니, 컴퓨터라고 하는 새로운 기계를 국민학교부터 중학교에 걸쳐서 정식으로 수업 과목으로 채택한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한 결과, 학부모들의 관심이 쏠리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었다. 전국적으로 수백 개의 컴퓨터 학원이 우후죽순 격으로 생겨났고 아직 정식으로 채택될지 어떨지도 모르는 컴퓨터 과정이었지만, 남들보다 뒤처지면 안 된다는 학부모들의 극성에 의해 많은 어린이들이 컴퓨터 학원으로 내몰리게 되었다. 거기에 삼성, 대우 등의 대기업들이 적극적으로 펼친 홍보전도 한몫해서 “이제부터는 컴퓨터의 시대! 당신의 자녀도 조기 교육이 필요합니다” 라는 캐치 프레이즈가 그대로 적중했다. 교육용 컴퓨터 바람이 불어 닥친지 얼마 안 돼 각 가정에는 MSX나 애플과 같은 8비트 PC들이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이었다.
물론, 그 PC들은 엄연히 교육용 PC였기 때문에 소프트웨어는 모두 국민학교의 산수, 국어 과정을 가르치는 내용들이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하게 된다. 이런 교육용 컴퓨터 바람이 불기 이전에도 오락실이란 것이 존재해서 아이들 사이에서는 게임을 즐기는 문화가 존재했다. 그런데 오락실이란 것은 학부모 입장에서 보기에 아무리 생각해도 공부에 일절 도움이 안 되는 것으로 사회 통념상 아이들에게 유해한 공간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던 것. 그런 사회적 통념 탓에 게임이라는 콘텐츠가 어린이들, 특히 한창 공부할 나이의 학생들에게 위험한 장난감으로 치부되던 세상에서 아이들이 내몰린 컴퓨터 학원이라는 곳은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배우는 과정 이외에 서로의 정보를 공유하고 게임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 되어준 것이다. 당시의 베이직이라는 것은 지금의 (주3)비주얼 베이직 같은 것과 비교할 때는 상당한 차이가 있어서 베이직 과정만 마스터해서는 게임을 만들기가 쉽지 않았다. 컴퓨터 학원에 모인 아이들은 선생님이 가르쳐준 간단한 명령문을 쳐넣어 모니터에 불꽃놀이 효과를 구현해보는 것보다는 주말마다 모여서 서로의 게임팩을 교환해보고 다른 아이들의 화려한 게임 플레이를 따라 하면서 순수하게 게임 플레이 하는 시간이 더 많았다.
당시 나는 (주4)MSX-베이직을 힘겹게 끝내고 (주5)어셈블리어 과정에 들어가는 단계에 있었다. 당장 배워서 게임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일본의 게임팩으로 했던 게임들을 스스로 만들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어셈블리어 공부를 시작했던 것으로 기억을 한다. 그러나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포기하고 말았다. MSX-베이직에서는 명령문 개념으로 10행, 20행, 30행…… 형태의 주관적으로 풀어가는 언어였던데 반해 어셈블리어 과정이란 것은 결국 객관적으로 하드웨어에 접근하는 방식의 언어였기 때문에 국민학생인 내게는 너무 어려웠던 것이다. 당시 MSX-베이직 과정을 끝내고 블록 깨기 같은 게임도 무난히 만들어 냈던 학생들 대부분이 포기하던 장면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내가 게임 개발자로서 꿈을 한 수 접게 되는 첫 번째 계기였던 시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게임 자체에 대한 열정은 더욱 커져서, 주말이면 항상 친구들과 학원에 모여 여러 가지 게임들을 플레이하며 이건 이렇게…… 저건 저렇게…… 하는 식으로 게임 내용에 대한 토론을 하기도 하였다. 전국적으로 이러한 환경을 경험한 많은 개발자 지망생이 있었던 시대. 그런 시대로 기억하고 있다
훗날 한국 게임 시장의 코드를 결정한 양대 플랫폼 1980년대 후반의 컴퓨터 학원 부흥기는 한국 게임 시장의 트렌드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게임 시장의 직접적인 사용층이 되는 유년기의 아이들이 이 시기를 통해 게임에 대한 인식을 달리했고 훗날 게임이란 콘텐츠를 제대로 이해하고 즐기며 구입해주는 유저층으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그 중에 유난히도 게임에 대한 애착이 강하고 열정으로 넘친 아이들이 훗날 게임 개발자, 게임 관련 업종의 종사자 등으로 발전하게 된다. 답답한 모노크롬 화면과 단순한 RGB 화면에서 움직이는 스프라이트가 이들의 유년기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장래 한국 게임 시장의 초석을 다지는데 일등 공신으로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 왠지 드라마틱하지 않은가? 물론, 그들 중 일부는 성공하고 자신들의 꿈을 이루어 오늘에 이르렀지만 일부는 실패하고 애초의 열정이 변질 되어 자신의 뜻과는 거리가 먼 분야에서 단지 먹고살기 위해 일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이 시기를 거치지 않은 세대가 훗날 돈과 경제적 논리에 의해 시장을 개척하게 되는 트렌드도 분명히 존재했다. 이 점은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기로 한다. 당시 컴퓨터 학원에 있던 8비트 PC는 MSX와 APPLE 두 종류가 있었다. MSX는 앞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일본풍의 PC로, 256컬러까지 지원되는 화려한 색감에 PSG 3중 화음으로 출력되는 강력한 사운드. 다양한 타이틀…… 역시나 일본 게임이라는 것은 화려하고 아기자기한 내용이 모토가 되기 때문에 아이들의 시선을 뺏기는 더할 나위 없는 것이었다. 충격적인 것은 당시 MSX에서 성인용 소프트웨어도 많이 돌아다녔다는 점.
(주6)핑크삭스, (주7)가루이자와 유괴안내 같은 18禁 대상의 소프트웨어가 소프트웨어 판매점, 학원가 등을 통해 무제한으로 청소년들에게 유포되었다. 이 성인용 소프트웨어를 하기 위해서 PC를 접하고 게임 세계에 발을 들여 놓게 된 아이들도 많이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반면, APPLE은 철저히 서양 스타일의 PC라고 할 수 있다. 물리적인 연산을 이용해 상대의 포 진지를 공격하는 스카치를 비롯해 영어로 나오기 때문에 이해하기는 힘들지만 독특한 설정과 테마가 돋보이는 카멘샌디에고의 모험과 같은 어드벤처 및 RPG 게임이 주종을 이루었다. 보급의 한계로 인해 컬러는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고 사운드는 그저 삑삑거리는 비프 음이 다였던 PC. 컴퓨터 학원은 주로 MSX와 APPLE로 반을 나누어서 가르쳤는데 대부분의 학생들은 화려한 게임으로 무장한 MSX를 만지기 위해 MSX 반에 지원하는 경우가 많았다. 소수이지만 APPLE을 선호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이들은 주로 뭔가 생각하거나 직접 풀어가는 것을 좋아하는 부류였는데 게임에서 영어로 나오는 대화 내용을 대부분 사전 찾아가며 노트 필기할 정도로 여념이 없던 열성 RPG 팬들이었다. 차후 이 두 플랫폼에서 갈렸던 유저 성향이 그대로 한국 게임 시장의 성향을 결정하게 된다. MSX를 좋아했던 사람들은 16비트 PC 시장으로 바뀐 이후에도 일본풍에 대한 향수를 잊지 못하고 콘솔 게임 쪽으로 전향하는 경우가 많았고 반대로, APPLE을 선호했던 유저들은 주저 없이 16비트 PC의 게임 환경에 적응하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그리고, 이들 중에는 (주8)TRPG라고 하는 정통파 RPG 보드게임의 마니아들도 많았는데 이 들 중 일부는 천리안, 하이텔 등의 피시 통신을 이용해서 서비스하는 쥐라기 공원, 단군의 땅 같은 머드 게임의 개발자가 되었고 (주9)머드 게임을 거쳐 세계 최초의 머그 게임으로 불리는 바람의 나라를 개발하는데 일조하기도 한다.
주1: 1960년대 중반 이후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불기 시작한 교육 열풍. ‘내 아이가 남의 아이보다 잘 나야 한다’는 이기심에서 출발한 이런 열풍은 고액과외, 야간보충수업, 촌지사건 등의 폐단을 낳았다 주2: 1980년 앨범 “裸足の季節”(맨발의 계절)로 데뷔해 일본 전역에 아이돌 신드롬을 탄생시킨 가수 주3: 마이크로 소프트에서 개발한 윈도 응용 프로그램 개발 언어. 기존의 BASIC 언어가 갖는 편집기, 컴파일러, 디버깅 기능 외에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 기능을 추가한 통합 개발 환경이다 주4: 1983년 마이크로 소프트사가 개발한 MSX 전용 개발 언어 및 운영 체제, 하드웨어의 ROM 메모리에 탑재 되어 있어 직접 OS로 사용된 것이 특징이다 주5: 기계어의 2진 코드를 사람들이 기억하고 알아 보기 쉽도록 부호화시킨 개발 언어 주6: 1990년 웬디 매거진에서 발매한 성인용 디스크 잡지. 256컬러로 그려진 미소녀 캐릭터가 등장하는 미니 드라마가 옴니버스 식으로 수록되어 있다 주7: 에닉스에서 MSX1용의 1메가 롬팩으로 1986년에 발매한 성인용 어드벤처 게임. 국제적 휴양지로 잘 알려진 가루이자와의 별장 안에서 벌어지는 살인 사건을 두고 여러 명의 미소녀(?)와 문답식으로 범인을 찾아내는 스토리 주8: 테이블 토크 롤플레잉 게임의 약자. 테이블에서 사람들이 모여서 역할을 분담하여 대화하면서 하는 게임으로 유럽에서 도래되었다고 한다. 현재 RPG의 모체가 되는 게임 주9: MUD(Multiple User Dialogue), 멀티플 유저 다이얼로그 게임의 약자. 텍스트 기반의 환경에서 즐길 수 있고 1990년대 중반 주로 PC 통신을 통하여 서비스되었다 |
아 신기하네요 1등-_-
TRPG는 미국에서 도래했지요.
세이코다^^
16색만을 이용해 본격 18禁 미소녀 게임을 지향했던 괴작 “가루이자와 유괴안내". - 신기합니다..;;;;
같은 16색이라도 어찌 이리도 하급생과 다를 수 있단 말인가. -~-) 혹시 하급생은 256인가? '_')?
전 APPLE반이였죠~ 국민학교(현초등학교) 6학년시절 학교에서 컴퓨터실에 있던 컴퓨터를 교체하면서 그전에 사용하던 수십대의 MSX들을 마구 버리던장면이 생각나네요..
동급생이랑 하급생은 256인데..
물론, 그들 중 일부는 성공하고 자신들의 꿈을 이루어 오늘에 이르렀지만 일부는 실패하고 애초의 열정이 변질 되어 자신의 뜻과는 거리가 먼 분야에서 단지 먹고살기 위해 일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기도 하다. ... 라는 부분은 해당되는 분들이 보면 얼마나 씁쓸하실까요... 우리나라같은 환경에서는 잘 해내신 분들이 용한 거 같은데.
쿠우우.... 초록색 모니터가 새록새록 기역나는군요... 추후 TX를 거쳐 AT.... ATX 까지 오긴했지만은...
16색은 도스때는 거의다 16색이었던걸로 기억납니다 윈도우 95정도나 98때나온 게임들이 256색을 써서 화려하다! 라는 문구가 나온걸로 기억하니 대충 위에글 보면 대충저랑 비슷하게 시대를 겪어오신듯 ^^; 햄번호 임력해서 방구차 같은 게임만드는게 고작이고... 테이프 시스템은 죽도록 느리고 그때당시에는 1메가! 라는게 초고용량 게임으로 되어 있었으니 ^^ (메가팩이라고 자랑하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 그리고 핑삭은 그때당시의 엄청난 게임 ^^ 하급생은 우선 훨~씬 뒤에 나온게임이니 거진 5년정도의 차이가 있는걸로 기억이... 기술의 차이가 ^^;;..오랜만에 옛날생각나는 글이라서 주저리 한번 적어보네요
그건 그렇고 msx의 모니터는 지금도 게임용으로 (RGB) 잘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만큼의 명품모니터가 어디있을까?!! ^^;
좋은 글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주6)에 오류가 있음을 지적드립니다. 핑크삭스는 가루이자 유괴안내와 마찬가지로 16컬러를 사용한 게임입니다.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MSX, MSX2(+) 게임들은 대부분 16컬러 모드를 사용했고, 256컬러 모드를 풀로 활용한 게임은 드뭅니다. 알레스터 오프닝이나 스타쉽(^^) H모드, 립스틱 어드벤쳐, 핑키퐁키, 그 외의 몇몇 H게임(의 자연화 모드, 혹은 스틸컷)이 256모드를 사용했고, 대부분의 게임은 16컬러입니다. 단지 팔레트 구성을 좀더 극적(?)으로 배치해서 핑크삭스가 좀더 화려해 보이는 것입죠. ^^
여~이때이후 청개구리 고스톱, 야한게임...^^;;;
애플에 관련된 글에서 잘 못 된 점이 좀 보이는군요... 애플도 컬러가 있었습니다... 애플II+에는 칙칙한 16색이긴 했지만 컬러 표현이 가능했습니다... 당시 세운상가 등지에는 컬러모니터를 연결한 애플을 전시해 놓은 매장이 종종 있었습니다... 그리고 88년즈음 애플II에서 사운드와 그래픽이 강화된 애플IIe가 미래교역에서 국내에서 발매되었을 때 본격적으로 애플에도 컬러 붐이 일었었습니다... 그리고, 애플이 비프음만 나오긴 했지만 당시 머킹보드라는 사운드카드를 이용해서 msx 부럽지 않던 사운드를 즐길 수 있었습니다. 특히 최초로 머킹보드를 지원하던 EOA(EA의 전신)에서 발매되었던 skyfox의 박력은 대단했었지요... 물론 일부 유저들만 즐긴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아예없었던 것은 아니었으니까요...
대우 아이큐2000...옛날에 집에 있었던 그것이군 -.-;
아 그때 그시절~
저도 apple][+ 사용자였는데.. 모자란 색이지만 '컬러'에 추가로 '프로머킹보드'장착해서 사용했었네요. 컬러가 안되고 비프음뿐이라니 그건 아닌듯. MSX도 FM어쩌고팩을 꼽고 했었는데.. 기억도 가물가물하고.
마츠다세이코다-ㅁ-;;;!!! 세이코짜앙~♡
세이코쨩이네요 ㅎㅎ... 나츠노 토비라 ~_~
오호호호호~!
댓글 다신 분들은 대부분 30대?? 으흐;; ㅡ.ㅡ?
-0-;;; 국민학교때 어셈블리를 시도하시다니...나 인자 비베 하는데;;; c++ 아.~ 꿀린다...
저도 초딩때(80년대) 베이직 조금배우다가 학원에 패밀리(그때 더블드래곤)를 설치하는 바람에 애덜이 컴터는 안하고 다 그거할려고 줄섯던 기억이 ㅡ.ㅡ,.; 아 86년이구나 .ㅡ,.ㅡ;
내가 가지고 있던 아이큐 2000
세코쨩!!
동급생1은 16칼라죠..ㅡㅁㅡ;; 2와 하급생이 256칼라였고...(이사쿠도..) MSX시리즈와 PC-8801까지 16칼라 게임이 즐비했었죠... 80년대라...옛날 생각이 간절하군요...ㅠㅠ;; 컴터 학원서 도트프린터로 뽑은 미소녀게임의 H씬이라던지..ㅡㅁㅡ;;
ㅋ 옛날 생각 나네요^^ 아마 글쓰신 분 시절 컴터 학원 다닌 분들은 저처럼 20대 중반에서 30대 초반 분들일 겁니다.. 제가 학원에서 어린 축에 속했으니까요.. 그리고 그 때 지따블류베이식이나 어셈블리어 코볼 따위 가르치던 컴터 학원들 어느 샌가 문닫고 말았죠;;
● 16칼라로도 왠만한것 다 표현가능(좀 싼티나지만), MSX... 말로만 듣던 것이 저것?! |jC|
MSX를 직접 사용해본 세대로서 위의 글에 한가지 의문점이 있는데... 위의 예를 든 게임중에 "가루이자와 유괴안내" 이 게임 자체는 그당시 국내에 제대로 퍼지지 못했고 한글롬 문제로 국내 MSX로는 즐기기 힘든 게임으로 알고 있습니다. 단 그 당시에 나왔던, 일본 모 단행본을 번역한 MSX게임 공략집에서 저 게임의 공략 내용이 국내에 나온적이 있지만 그 공략을 보고 게임을 제대로 했던 국내 MSX 유저가 몇명 있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인데요... 그래서 이 게임이 무제한으로 한국 청소년들한테 유포되었다는 이야기는 수긍하기 힘듭니다. 그 당시 한국 시장을 생각한다면 저 자리에 들어가야 할 게임은 "미소녀 사진관" 이 아닐까 생각되는데요...
아.. 생각납니다. 아이큐 2000 ^^; 지금의 저를 프로그래머의 길로 이끌게한..(게임 프로그래머는 아닙니다.. ^^) 지금도 서랍에 무슨 게임인지는 기억도 안나는 게임 팩 하나 굴러다니는데.. 그때는 뭐가 그리 재미있었는지.. 디스크 드라이브 없어서 프로그램 짜놓고도 끄기 아까워 했던 기억.. 쩝.. 옛날 생각 나네요..
저 스샷의 할아버지.. 이사쿠삘나네;
테이프방식의 늑대인간 타이틀이 얼마전까지 방꾸석에서 돌아 다닌듯했는데.. 역시 로딩은 카트지리 방식에 비해서.....(플레이후 되감기의 압박..) 하지만 나중에 디스크방식으로 다 바뀌어 버리고... 애플은 살았지만 나중에 XT/AT(X) 기종으로 .... 파스콤이 당시에 유행이였죠.... 초록색 모니터의... 인터페이스 생각만해도 눈물나는군요...... 스카시 방식이 역시 고가였지만 좋다는이유가...(애플잡설)
저는 관인대한컴퓨터학원에서 베이직,포트란,코볼을 배웠습니다. 왜 배워야 되는지도 모르고 그냥 학원가니까 가르처 줬습니다.
최초 가 아니라 최고인듯 ; 세이코
본문에 언급했던 시대 쯤에 저도 컴퓨터학원이란 곳에서 처음으로 컴퓨터를 배웠습니다. 아마도 그 때 만났던 것을 계기로 지금 프로그래머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 MSX 는 게임기에 맞먹는 다양한 기능들을 베이직에서도 대부분 쓸 수 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실제로 상업용 게임에서도 베이직을 많이 썼구요 (컴파일의 란다의 모험2 하다가 중간에 에러 때문에 베이직 상태로 튕겨나온 걸 봤을 때에는 무지 황당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집에서 구입한 건 IBM-PC/XT 라서 난감했던 기억이 납니다 -_-. 제가 컴퓨터 구매했던 당시의 IBM-PC/XT 는 허큘리스보드(720x384에 2색) 탑재가 대부분이어서 컬러 표현을 하기 위해 병치혼합 같은 것을 썼던 게 기억납니다. IBM 초창기 그래픽 보드인 CGA (320x240 에 16색중 최대4색, 640x240 에서 2색) 게임을 돌리기 위해 실행시켰던 SIMCGA 나 MODE 같은 프로그램이 좋은 예였죠... 동아시아권은 320x240 해상도로는 글씨 표현하기가 힘들어 대부분 CGA 대신 해상도 높은 허큘리스를 탑재했다고 들은 기억이 있습니다.
흠... 간만에 재밌는 글 읽고 갑니다. ㅎㅎ
흠..솔직히 msx .. 기기는 없었으나 개량된(?) 기기 .. 대우전자에서 본격적으로 보급한 재믹스 를 동내 대우대리점에서 9만9천원에 졸라서 사가지고 집에서 했던기억이 ..
마성전설2는 영원한 명작...히라가나를 몰라서 그려가며 저장했던 추억도 있고...
어셈블러....--;;; 저도 배우다포기한 언어군요..쩝....
전 컴퓨터로 제일 첨 했던 오락이 친구집에서 가라데(한때 태권도라고 알고있었음..) ㅡㅡ' 재밌네요.
음.. 가루이자와는 첨 보는 거네요.. 90년 전후였던가.. 스타쉽때문에 당시 중1학생들 난리가 났었죠^^. 몇 살 어린 조카한테 베이직으로 짜 놓은 자작겜을 시켜준 기억도 나네욤... 그 때의 인연(?)으로 지금도 임베디드 프로그래밍으로 직장에 다니고 있지만.. 옛 추억이... ㅎㅎㅎ. 핑크삭스는 상당히 나중에 꺼였고,, 스타쉽과 음... 무슨 기숙사 같은 데서 해메던 겜이 기억이 나는데.... 음.. 어쨌든 옛 추억이 ㅎㅎㅎ
그 때 MSX 14인치 RGB모니터... 상당한 화질이었습니다. 플스1과 플스2 초기 까지 잘 써먹은 기억이 나네요... 어떻게 10년이상 된 모니터가 잘 나오는지.. 뭐 지금은 사이즈가 작고 볼록해서 더이상 쓰지는 않지만. 19인치 정도 슬림 평면에 HD지원되는 모니터가 나오면. 겜기용으로 당장 사겠는데.. 엘시디는 겜하기엔 화질이 구리네요. 고정해상도만 화질이 좋으니.. 쩝..
켄신R // 기숙사라고 하면... 하이스쿨스토리가 아닐까 추측해봅니다... 어드벤쳐로 유작과 맞먹는 상당한 서스펜스를 자랑했었지요... 그래픽은 참담하지만...
MSX1의 16색 칼라는 4KB라는 VRAM의 한계로 가로 8도트내에 2가지 이상의 색을 표현하지 못하는 제약이 있었습니다. '가루이자와 유괴안내'의 화면은 그 이유로 핑크 삭스(MSX2)의 16색 CG와는 차이가 있죠..
돌숙 // 좋은 지적입니다. 사실 그 두 게임은 플랫폼 자체가 MSX1/MSX2로 갈리고, 패턴맵이냐 비트맵이냐의 차이에 의해서 가로 8도트의 사용 가능 색상도 2컬러와 8컬러로 차이가 있고, 팔레트 사용 가능 여부도 서로 다른데다, 근본적으로 해상도도 256 x 192, 512 x 212로 달라서 두 게임이 16컬러를 사용하더라도 질적으로 다른 화면이 나올 수 밖에 없지요. 물론 핑크 삭스의 그래픽 디자이너가 역량이 뛰어난 점도 있지만요. ^^
ㅋㅋㅋ 하이스쿨 스토리를 아직도 기억하시는 분이 계시네요.. 예전에 그 게임 때문에 디스크 드라이브를 샀던 기억이.. 하이스쿨 스토리 말고도 몇개 기억나는건 소프랜드 스토리, 스타쉽, 수참관(약간 야했던 기억이 나네요..),드래곤 나이트,피치업 등등.. 오래되서 기억이 가물 가물하네요..특히 스타쉽은 동내 갑부집 아들내미 집에있던 일제 수입판 MSX 2+로 보면 총천연(?) 칼라로 보였었죠..
글을 쓰고 난후 잠시후 하이스쿨스토리였군.. 하고 생각났는데..ㅎㅎㅎ. 스타쉽은 원래 뭔가 돌아다니면서 아이템 모아서 하던 겜이었는데. F1+F3+F5누를때 마다 아이템이 꽉 차는 비기가 있었던게 기억이나네요..^^. 후에 스타쉽은 H씬 만 1장짜리로 나왔었지요.. 뭐.. 그외에 부라이 상권의 40분짜리 오프닝.. 일판 MSX가 아닌 관계로. 이상한 깨진 글씨로 나와서 좌절한 기억이 나네요. 그림 몇장과 텍스트로만 40분 오프닝을 하다니.. 뭐 그걸 다보고 앉아있던 나도 가상하지만... 자낙 엑설런트를 할려고, 테이프 레코더에 20분을 걸어놓고 놀다왔는데.. 리딩에러 나면 -.- 좌절...
무지하게 떼를 써서 그 비싼 X2샀었는데.. 쩝. 일본에 아는 사람만 있었어도, 그리고 좀더 정보만 알았어도.. 하여튼 부모님 고생시켰네요..
저도 국딩때 베이직을 배웠는데요. 왜배웠나싶네요 ㅡㅡ;
핑크삭스 오랜만이군요... 시리즈로 재미있게(?) 했었는데 ^^
MSX시리즈 하면 전 자낙이나 베이직언어 정도만 생각했습니다만. 역시 과거로 갈수록 아기자기한 것들이 많이 있군요.^^ 즐거운 일입니다. 자낙 시리즈는 엑설런트의 그 훌륭한 메인화면이 기억에 남습니다. 자낙 엑설런트 카트릿지를 갖고 있었는데 그 카트릿지를 형들에게 강탈당했던 기억이 나는군요. 교환으로 받은 카트릿지가 일반 ZANAC 이었다는. 나중에라도 만나게 되면 배로 갚아줄 셈입니다.
ㅡ.ㅡa
하이스쿨 스토리..극악의 난이도 였다고 생각하네요..버그였는지 잘 모르겠지만 옆방의 SM누님이라던가 그당시엔 두근거리며 했는데..그리고 CAL씨리즈도 빼놓을수 없겠네요..그림은 별로 안이뻤지만 말입니다.^^;
저희 컴터 학원은 베이직 3년 배웠답니다. 책 2권으로... input문 배울려면 (맨 처음 배우는 print문 다음인데..) 3달 걸리죠.. 그걸 우려내고 우려내서 3년 배우는데 참.. 전 2년만에 뗐더니 천재라고 그러더군요.. ㅡ,.ㅡ; 물론 베이직 실력은 엄청 늘었지만 쓸모가 없네요.. ㅠㅠ; 기본적인 컴터 알고리즘 보는 실력은 길렀다 하지만 중학교, 고등학교 6년을 쉬어버리니.. 그것도 영....
초등학생이 어셈블리를...ㅡ,.ㅡ....
돌컴이면 우진인가?
MSX하면 삼성의 SPC도 떠오름
헐~~저는 87년도에 대우 아이큐1000을 소유했습니다..그당시 저도 베이직을 배웠는데...거진 1년동안 베이직을 다 배운듯합니다...사실 베이직을 지금도 왜 배운지 모르고있고....단지 게임기로는 최고였다는거...ㅎㅎㅎㅎ..지금의 대부분의 게임들이 MSX게임이 모체였다는걸 생각하면 대단했었다는게...
세로스크롤만 지원하고 가로스크롤은 소프트적으로 구현해야만 했던 MSX... 지금이야 좌에서 우로 스르륵 지나가는 배경들이 아무렇지도 않지만 당시에는 탁탁탁 끊기며 넘어가는 좌우스크롤을 당연히 여기던 시대.. 그 때 등장하여 지금 게임과 같은 수준으로 방향 상관없이 부드럽게 스크롤되던 사이코월드 를 처음 접했을 때 충격이란..
나 어릴적..... 야시끄무리한 게임은 손도 못대봤다.. 그런 게임은 상상도 못했었고... 형님만 나 재워놓고 몰래 했었다는..... -.-...... 그래도 재밌는 게임 많았죠.. 고에몽이나 아쉬귀네, 메탈기어..등등 ㅎㅎㅎㅎ 무슨 확장 팩으로 패미컴도 할수 있었습니다
이우진기자 맞죵~~ ^^
아이큐 2000 ㅋㅋ
APPLE에서 컬러 쓸려면 RF 모듈레이터라는 주변기기가 필요했습니다. 교육방송 처음 나올때 수신하던 UHF안테나 접속부위에 저 모듈레이터를 연결하면 컬러가 나왔었죠. 물론 이건 TV에 연결할때의 이야기구요 전용 컬러 모니터를 쓰면 한방에 나왔었죠. 필자님 카멘센디에고를 기억하시다니...흐. 저도 옛날에 저거 정말 많이 했었는데... 범인 많이 잡으면 명예의 전당에 등록되어서 은퇴했죠. 울티마 바즈테일 캡틴굿나잇 태양의 가면 선독.. 등등... 정말 명작게임이었는데
MSX부터 게임을 해온 사람으로서 이 시절 게임이 가장 재미있었습니다. 특히 코나미의 1메가 롬팩들은 거의 대부분이 명작들이죠...지금까지 그 시리즈가 이어져오고 있는 것들도 많구요... 마성전설2, 우샤스, 불새, 그라디우스,메탈기어 ,악마성, F1스피리트, 고에몽... 참 재미있었던 시절이었습니다.
오~msx 추억의 컴 베이직도 배우고,88년도에 저는 구입했었습니다만 1989년도에 국민용컴퓨터가 XT인가로 바뀌였져 일명 8088로 그때 피눈물흘렸습니다.그때 msx가격이 399000원이였던걸로 생각나고요.국민용컴퓨터가 최저가격이 390000원이였던걸로 생각납니다.그때 패미컴에 있던 게임들이 msx로 나오기도 했져...아무튼그때가 그립네요..^^ 지금의 초등,중등,고등학생분들이 더 부럽네요...저는 이제 막 30살이지만...그때 정발이되었더라면..근데 팩가격은 8000원정도 했으니깐 1메가팩이 20000원정도...아무튼간에 많은 발전이지요 정품사용을 생활화합시다. 중고게임,불법게임 남용말고 정품사용 생활화하자...
제가 알기론 애플이 먼전데...최초의 FDD시스템...최초의 업무용컴퓨터(CP/M)...최초로 가정용으로 성공한 8비트컴퓨터(앞섰더가 망한 코모도어 같은 것 빼고)...그리고, 잊을 수 없는 명작 울티마시리즈(이건 PC용, 게임기로 컨버젼), 지금도 계속나오는 브로더번드사의 페르시아의 왕자...지금은 애물레이터로 하고 있다.
아~~참! 애플을 가정용으로 굳힌 로드런너게임을 잊었습니다. 이것 역시 브로더번드사의 작품으로 약3년간 최고의 히트상품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아쉽게도 다른 기종에서는 큰 성공을 보지 못했죠! 단, MSX와 게임기에서는 이름 그대로 로드런너로 해서 나오긴 했는데 수작정도로 그쳤죠! 그 이유는 애플에서는 한화면에 모두 표현하였는데 이걸 게임기와 MSX에서는 2화면으로 표현하는 바람에 한눈에 안들어와서 그랬었죠? 아마....
게임챔프 기자님이셨던?...^^;
보통 당시 컴퓨터 학원에 다니는 국민학생들은 GW-BASIC이나 Q-BASIC을 배운 후 다음 언어로 넘어가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95%가 넘는 아이들이 포기하게 되지요. 어셈블리는 좀 특이한 케이스네요? 보통은 C로 넘어가게 되고, 일부는 FORTRAN이나 COBOL로 넘어가는것이 정석인데 말입니다. 한가지 잘못된 점이 눈에 띄네요. 베이직은 인터프리터 언어이기 때문에 컴파일러가 없습니다. 기계어로 완전히 빌드된 상태로 실행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인터프리터가 소스를 읽어가면서 실행시키는것입니다. 그리고 당연한 말이지만 언어 자체는 에디터나 디버거, 컴파일러를 포함하지 않습니다. 부가적인 프로그램으로 이를 해결하는 것이구요. Visual Basic은 이러한 툴의 이름이자 언어 이름입니다. BASIC이 진보하여 VB 세대로 넘어오면서, 윈도 프로그램의 뼈대를 만들고 그 뼈대의 동작을 BASIC언어로 코딩하도록 바뀌었구요. 이때 약간의 컴파일을 하도록 변경되긴 했습니다만, 완전히 C 처럼 변화한것은 아닙니다. VB는 간단한 프로그램 만들기엔 매우 유리하기에 종종 쓰였지만, 현재 객채지향 웹기반 언어의 강세로 다 쓸려버린 추세입니다. (물론 VB만 썰린게 아니라 모든 언어가 썰려버렸죠)
Ti.Radical님 GW베이직이나 퀵베이직 배울 시절은 이미 16bit XT/AT 시절이고 기사 쓰신분이 말하시는 MSX베이직이나 apple베이직 배울 시기는 8bit 시절입니다. 그땐 C언어가 널리 보급된 상황이 아니었기에 아예 교육기관 자체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도 포트란, 코볼등은 존재했고 실제로 가르쳤던 기억이 납니다. 반면에 어셈블리언어는 지금에 비해 비교적 접하기 쉬웠습니다. 서적이나 정보는 부족했을지 몰라도, MSX의 경우 MAD-88 등 몇가지의 어셈블리 툴(?)이 나와있어주었기 때문에 아주 간단하게 접하긴 할 수 있었죠. 카피샵이나 학원 어디에나 다 있엇습니다. 학원에서 C를 가르치기 시작한건 아마 AT에서 386 넘어갈 무렵, 터보C가 나오고 어느정도 시간이 흐른 시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땐 포트란, 코볼 보다는 C와 파스칼이 주류였고, 출판되는 프로그래밍 서적 대부분은 이 두 언어를 다루었습니다. 베이젝에 관해서도 말씀드리겠습니다. 애초 인터프리터 방식으로 출발했지만 16비트로 넘어와서 두가지로 갈리게 됩니다. GW 베이직과 퀵베이직(나중에 MS가 인수해서 도스에 Q베이직이라는 이름으로 넣어버립니다.)이 양분해버렸죠. GW베이직은 말그대로 과거 베이직을 도스에서 돌아가게끔 바꾼것에서 출발합니다. 당연히 인터프리터 방식이었고 그것때문에 속도나 배포면에서 다른 언어에 비해 상당한 불편함을 안고있었죠. 그런 불편함을 보완해서 컴파일러 기반으로 나온것이 퀵베이직입니다. 실제로 속도나 배포성면에서 GW베이직에 비해 월등했으며 에디터, 디버거, 컴파일러가 일체화된 모습을 보여줍니다. 지금의 비쥬얼 베이직은 그 퀵베이직을 모태로 GUI 환경에 맞게 리소스를 관리하며, 일부 객체지향 개념이 들어가 있습니다. 당연히 컴파일러 방식입니다. 그리고, 지금 비록 C++ 기반의 언어가 거의 장악하고 있지만 아직 중소규모 ERP 시장에선 생선성과 비용 면에서 파스칼 기반의 델파이가 건제합니다. 어셈블리쪽은 거의 쓰지 않고, 쓸 필요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로 고급언어가 발달한 상황이지만 3D게임쪽이나 기타 고속의 수치계산을 요하는 프로그래밍시 C기반이라 할지라도 인라인 어셈블리 코드를 작성하고 있씁니다.
기사를 읽고 정말 옛 추억이 많이 떠오르네요. 당시 apple II+를 가지고 있는 친구와 친해서 자주 놀러갔었는데 그때 카라데카를 처음 접했습니다. 나중에 16bit XT 기반에서 돌아가는 페르시아의 왕자의 모태가 된 게임, 정말 재미있게 플레이햇떤 기억이 납니다. 그 후 MSX2를 구입해서 처음으로 돌린 게임이 '알레스터' 라는 명작 슈팅게임이었죠. 나중에 FM-PAC 구입하고 처음 돌린 YS-2의 그 아름다운 멜로디...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용산 전자상가 17동이었나 18동이었나 '만트라' 라는 가게가 있었씁니다. 용산에서 제일 큰 MSX 전문 가게였고, 직수입 정품 밀봉 팩 or 디스크를 판매했었죠. 복제품은 일절 취급하지 않는 거의 국내에선 유일하다시피한 곳이었고, 잡지광고는 물론 회지까지 발간하는 등 꽤 괜찮았던 가게였습니다. 사장님 얼굴도 아직 기억이 어렴풋이 나고 일하는 형도 기억이 나는데... 훗날 YS2를 한글화해 이스2 스패셜 이라는 이름으로 PC용을 제작했고 Ys 이터널을 한글화해 유통했다가 복제때문에 망한 소식을 접했는데 지금은 어디에서 뭐하시는지... ㅜ.ㅜ; 이젠 다 추억이 되었지만 그때로 다시 돌아가고 싶네요.ㅜ.ㅜ;
사실 근래에 들어서 컴파일러의 발달로 컴파일러가 사람이 직접 어셈블리어로 작성하는것 보다 더 높은 효율을 내기에 이르렀습니다. 실질적으로 어셈블리어는 메인 저수준 언어의 지위를 잃었습니다. 그 자리를 C 가 차지하고 있죠. 다만 극히 일부, 고도로 반복되는 루프문에서는 아직까지 직접 어셈블리로 작성하는게 더 효율적이기 때문에 그때 쓰이기는 합니다만 결국 시간이 해결해 주겠죠.
도대체 어느나라 이야기인지.. 예나 지금이나 복사되는 기기를 선호해서 애플이 다수고 MSX 가 소수였는데..
그 때 컴퓨터 학습 좀 다시 찾아보세요 게임분석이 어느게 많았는지..
MSX 도 디스크 시스템이 있고, 복사가 됩니다. 애플이나 MSX 나 디스크 시스템은 모두 별도였고, 따라서 디스크를 구동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를 구매해야 했죠. 그런 상황에서 복사가 잘된다고 애플을 구입했다는 것은, 당시 컴퓨터 구매권을 가진 부모들에게 있어서는 별로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만... 게다가 MSX 는 TV 연결이 가능해 컬러 출력이 용이하다는 점 (애플은 전용 모니터를 사용하기 때문에 별도로 컬러모니터를 구입해야 합니다) 카트리지 인터페이스를 겸용하기 때문에 교육용이든 게임용이든 한국에서는 이모저모로 메리트가 굉장히 많았습니다. 실제로 제 친구들만 하더라도 애플 유저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애플 유저를 처음 만난 것은 고등학교나 들어와서였죠. 게다가 말씀하신 컴퓨터학습의 경우도 80년대 후반에는 MSX 기종의 분석이 더 많아졌습니다.
그리고 퀵 베이직은 원래 마이크로소프트 제품군이 맞습니다. 당시 도스용 개발 도구는 볼랜드 제품군과 MS 제품군으로 나뉘어 있었죠. 파스칼이나 C 의 경우는 볼랜드 제품군이 훨씬 유용해서 MS 계열의 저작도구가 천대받았습니다만, 베이직의 경우에는 경쟁상대가 없었고, 편집기와 컴파일러 구동이 워낙 편한 데다 (위에서 다른 분이 말씀하신 대로 비주얼 베이직은 거의 퀵 베이직이 뼈대라고 보시면 됩니다) 기존 베이직과 완벽하게 호환이 되어 굉장히 잘 사용되었죠. Q 베이직은 퀵 베이직과 동일한 것은 아니며, 컴파일러와 링커가 빠진 버전으로, 도스에서 간단한 작업들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마이크로소프트가 추가해 둔 것입니다. 이 부분은 현재 윈도의 VBS 와 비슷한 맥락이라 보시면 됩니다. 더불어, 퀵 베이직은 개발시에는 인터프리터로 동작하며, 오직 컴파일을 한 후에만 다른 언어와 마찬가지로 기계어로 구동됩니다. 다른 언어와는 달리 퀵 베이직은 개발 단계에서는 컴파일을 수행하지 않고, 편집기가 직접 인터프리트를 하기 때문에, 컴파일 후의 속도와 개발시의 속도가 다르고, 편집기가 직접 인터프리트를 하므로 추적 디버깅이 가능하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스텝 단위의 진행이나 블로킹 지정, 변수 모니터링 등, 흡사 현재 비주얼 스튜디오의 디버그 시스템과 마찬가지로 말이죠. 이 때문에 디버깅 면에서는 다른 어떤 개발도구보다도 강점이 있었고, 이 시스템은 비주얼 스튜디오로 거의 그대로 이식됩니다. (단축키도 거의 같죠)
옛날의 지나간 역사를 이런 기획으로 인해 하나씩 알아가게 되는군요. 그나저나.. 옛날 gmm에서 뵈었던 썰렁황제님을 여기서 보게 될 줄이야.. ^^
허헉, yser 님이시군요 *.* 정말 이런 곳에서 다시 뵙게 되다니요... ^.^ 벌써 gmm 시절이 10년이 다 되어 가는군요... 세월이 참 빠른 것 같습니다 :)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
제가 85년도(국교 6학년)에 MSX기종을 구입했습니다. 그때 당시 PC의 개념=값비싼 오락기로 통했죠. 하긴.. 지금도 마찬가진가요?^^ 제가 중,고교에 올라가서도 한반(60명)에 PC를 보유한 사람은 5명이 채 안되었던걸로 기억합니다. 그때는 PC를 소유했다 하면 소문이 퍼져서, 방과후 몰려오는 애들땜에 좀 극성이었죠. (즉, 누가 어떤 PC를 보유했나, 어떤 게임을 할 수 있나등의 정보는 쉽게 얻을 수 있었죠) 적은 보유율에서도 MSX가 대다수였고 애플과 SPC기종은 소수였던걸로 기억하네요. 약 7:3비율정도.. 그때 당시 오락실문화가 자리잡아서 비교적 오락실환경과 유사한 게임을 즐길 수 있었던 MSX에 많은 사람들이 몰렸고, 애플과 SPC 유저는 한사코 자신의 PC가 교육용이라고 부르짖던 (그러면서 거의 사용도 안하고 우리집에 놀러오던..)생각이 나네요. 그리고, MSX는 카피잭하나면 복사는 끝이었습니다. 방구석에 수백개의 복사테잎이 굴러다니던 시절이었죠.
썰렁황제님....애플도 TV에서 출력가능합니다 ^^; 그 시절에 전용모니터 가진사람이 몇명이나 됐겠습니까 ㅎㅎ;; 제 보유컴은 msx1, msx2, apple II,apple IIe 가지고 있었습니다 tv출력으로 겜했었구요 ^^
애플 티비로 가능했죠 IIe 같은경우는 꽤 칼라다운 칼라를 보여줬습니다. 돗드 그래픽을 이해하는 계기도 저에게 줬고요. 사운드는 사운드 카드를 슬롯에 장착하면 멋지게 나왔습니다. MSX보다 좋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머킹보드..만 설치하면 지원프로그램에서 충분히 지원을 받았죠. 여튼 당시의 학원 풍경은 컴퓨터 활용이 아닌 프로그래머를 키우는 상황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이없는 것이지만... 덕분에 프로그램을 이해하는 사람이 늘어난건 어쩌면 긍정적이라고 생각해야 할까요?
핑크삭스, 피치업, 지금도 플레이할수 있다는게 기쁠따름입니다. 단지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가 실물이 아니라는게 ㅜ.ㅜ
뭐냐 저 헤어스타일...그리고 가격 덜덜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