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게임 시장에 한 획을 그은 MSX가 세상에 나오게 된 배경을 알아보려면 먼저 그 시대의 일본 PC 시장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일본 PC 시장에서 MSX가 태동하게 된 계기 및 성장과 몰락에 대해 알아보고, 이 시기에 겪었던 나름대로의 에피소드 한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일본 시장에 MSX가 등장한 배경 1980년대 초의 일본은 아직 가정용 PC가 많이 보급되지 못한 상황이었다. 1979년에 NEC에서 발매한 PC-8001이 168,000엔, 샤프전자에서 발매한 MZ-80C이 268,000엔. 당시 일본의 대졸 초임 임금이 100,000엔 미만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PC 자체가 일반인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고가였기 때문에 가정에서 장만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CPU나 각종 IC 회로에 대한 기술력이 아직 많이 부족한 시기였기 때문에 가정용 컴퓨터라 할지라도 산업용 컴퓨터의 칩을 쓸 수밖에 없었고 그만큼 본체의 가격이 상승해 버리고 만 것이다. 하지만, 신규격으로 발표된 MSX에서는 CPU를 (주1)자일로그사의 Z80A, (주2)VDP에는 (주3)TMS9918이라는 전반적으로 싼 칩을 대거 채용하여 가격을 100,000엔대 이하로 대폭 낮출 수 있었다. 최초의 MSX로 기록 되어 있는 내쇼날 전자의 CF-2000이 54,800엔이라는 저가였으니 가격적인 면에서 시장에 센세이션 하게 비쳤음은 당연한 이야기. MSX 최초의 기종인 CF-2000이 발매된 1983년 이후, 누계 출하대수 100만대를 돌파하기까지 발매된 전체 MSX기종이 63종류에 이를 정도로 적극적인 메이커들의 참여가 있었고 “세계 통일 규격”이라는 미명하에 대기업에서 군소 메이커에 이르기까지 많은 게임 개발사들이 게임 소프트 라인업에 동참하였다.
발매로부터 2년이 지난 1985년 말, 누계 출하대수 100만대 돌파와 함께 MSX2가 시장에 새롭게 등장한다. MSX2는 MSX1에 비해 비약적인 그래픽 향상이 있었는데, 스펙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MSX1에서 구동 되는 소프트웨어를 모두 소화할 수 있도록 호환성에 만전을 기해 놓고 있었다. 이로써 “세계 통일 규격” MSX의 마크를 달고 있는 PC에서 모든 소프트 호환이라는 업계의 약속은 지켜 질 수 있었고 유저들로부터의 신뢰도 더욱 두터워지게 된 것이었다. MSX1에서 꾸준히 지적되었던 미약한 그래픽 성능을 개선하기 위해 VDP로 (주4)V9938이라는 칩을 새로 채용했으며 이로 인해 MSX1에서 V-RAM이 16색, 16K바이트였던 것이 MSX2에 와서 512색, 128K바이트까지 향상되었다.
MSX의 새로운 문제 그래픽 성능을 대폭 보강한 MSX2에서 새로운 문제가 발생한다. 그래픽 성능의 향상과 함께 그래픽 성능을 살린 소프트웨어를 구동하기 위해 더 많은 데이터 양을 소화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된 것이었다. 당시 일반적으로 사용되던 롬 카트리지의 최대 용량은 32K바이트. 하지만, MSX2에서 V-RAM으로 설정된 128K바이트의 용량을 충분히 이용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한 장에 720K바이트 정도의 용량을 갖고 있는 플로피 디스크를 사용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당시는 지금과 달리 디스크 드라이브도, 디스크 드라이브에 들어가는 디스켓 매체도 몹시 비쌌던 시대. 디스크 드라이브 하나만 보더라도, 드라이브가 없는 MSX의 경우 5만엔 전후에서 구입할 수 있었지만 디스크 드라이브 내장형을 선택하게 되면 두 배 가까이 가격이 뛰어 버리게 되었으니, MSX의 매력 중 하나인 저가 메리트를 포기하는 결과가 되고 마는 것이었다. 메이커 입장에서는 디스크 드라이브 하나만 장착시켜도 가격이 NEC 계열의 PC98 시리즈와 비슷하게 되어 버리니 경쟁 기종이었던 PC98 시리즈와의 차별화를 위해 TV 연결 기능, 비디오 편집 기능 등 부가 기능을 추가시킨 업그레이드 스펙으로 많은 모델을 내어놓게 되었다. 이 시기에 이상하리만치 고가의 MSX가 많이 등장한 것은 이 때문이다. 이런 일본 메이커들의 성향은 대우전자에도 그대로 이어져 한국 가정용 PC 최초로 비디오 편집 기능을 탑재한 X-2 모델이 개발되는데 일조하기도 한다. 역대 MSX 기종 중 가장 비싼 것은 1985년 발매된 내쇼날 전자의 FS-5500F2로 무려 228,000엔에 이르는 고가였다(16비트 MSX인 터보-R보다 비싼 가격)
메가롬의 등장 이처럼 가격 문제로 인해 디스크 드라이브의 보급이 더디자 게임 개발사들로서는 디스크 드라이브 외에 MSX2의 그래픽 기능을 사용한 고용량의 게임을 저장할 수 있는 매체가 필요해졌다. 그러던 중 아스키에서 “메가롬”이라는 새로운 규격의 롬을 개발한다.
롬의 용량을 일거에 메가급으로 올린 이 카트리지는 기존의 32K바이트 롬 카트리지에 비해 128K바이트라는 용량으로 4배 정도의 데이터를 보존할 수 있었다. 이로써 게임 개발사들은 MSX2의 그래픽 성능을 한층 적극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디스크 게임의 시대 가격 문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메가롬이라는 매체를 사용하게 된 게임 개발사들이었지만 예상 외로 이런 트렌드는 오래가지 않았다. 1987년에 접어들어 새로이 발매된 파나소닉의 FS-A1F, 소니의 HB-F1XD 두 기종은 디스크 드라이브를 내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54,800엔이라는 혁신적인 저가격을 실현한 것이다. 이것은 기존에 디스크 드라이브를 장착한 모델이 십만엔 이상이었던 것과 비교해 가격 혁명이라고 불릴 만한 사건이었다. 이로써 게임 개발사들은 메가롬에 비해 수배~수십 배에 달하는 용량을 가진 게임들을 제작 배포할 수 있게 되었다. 디스크 게임의 시대에 접어들어 MSX 에는 장대한 스토리를 가진 롤플레잉 게임이 많이 등장하게 된다. 그 중 리버힐 소프트의 (주5)[부라이]라는 롤플레잉 게임은 무려 2DD 디스켓 15장의 용량을 자랑하기도 하였다.
MSX2+의 등장 1988년에 등장한 MSX2+는 원래 MSX3 정도로 기획 된 것이었지만 VDP를 야마하의 (주6)V9958로 교체함으로써 동시발색수가 256색에서 19,268색으로 증가한 점을 제외하면 그다지 변화 점이 보이지 않는 하드웨어였다. 이 무렵, 변화되는 시장을 내다보지 못하고 CPU의 처리 속도 면에서 개선점이 주어지지 않은 것은 이후 MSX가 단순한 게임기로 머물러 버리게 되는 결과를 낳는데 일조하게 된다. MSX2+를 MSX2의 마이너 체인지라고 평가하는 시각이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MSX2+에서 가장 큰 변화 점으로 지적되는 동시발색수의 증가 부분도, MSX1에서 MSX2로 바뀌었을 때의 그래픽적인 충격에 비해 미미한 편이었다. 결과적으로 MSX2+전용 게임은 (주7)[레이독 2] 와 (주8)[F1-Sprit 3D Special], 두 개 게임에 국한되어 버리고 MSX2+의 발매로 인해 MSX 게임이 하드웨어의 스펙을 등에 업고 진화하는 효과는 없었던 것이다.
MSX의 몰락 지속적인 성능 향상 및 수많은 게임 개발사들의 참여에도 불구하고 MSX는 1989년을 기점으로 일본 시장에서 서서히 쇠락의 길을 걷게 된다. MSX 터보-R의 등장으로 CPU의 처리 속도가 빨라져 겨우 NEC의 PC98 시리즈와 대등한 경쟁을 펼칠 수 있게 된 점은 좋았지만, 그래픽 면에서의 스펙 향상은 이루어지지 못했던 점이 크게 작용한 것이었다. 당초, CPU는 아스키의 (주9)R800을 채용하고 VDP로 야마하의 (주10)V9990을 채용하여 완벽한 MSX3로의 출발을 예정하고 있었지만 VDP의 개발이 늦어지게 되다 보니 CPU만을 먼저 채용하여 터보-R로 출발하자는 아스키와 파나소닉의 암묵적인 합의가 있었다. 이 결정은 결국 MSX 전체 시장을 죽이는 결과를 낳게 된다.
MSX 터보-R의 출현 시점과 맞물려 일본의 국민 기종으로 자리 잡은 NEC의 PC98 시리즈도 가격을 점차 인하하고, CPU의 처리속도, 그래픽 성능 면에서 MSX를 훨씬 뛰어 넘는 후지쯔의 FM-TOWNS, 샤프전자의 X68000의 등장과 함께 16비트 AT 기종도 시장에 점차 파고들기 시작하자, 애초에 MSX의 강점으로 지적 되었던 호환성, 저가 메리트, 비약적인 그래픽 성능 등은 의미가 퇴색되게 되었다. 1990년에는 기존의 패밀리에서 그래픽 성능을 대폭 향상시킨 닌텐도의 수퍼패미컴까지 발매 되기에 이르러 MSX는 게임기로서의 가치도 점차 빛이 바래지게 된다.
하지만 16비트 CPU를 채용한 MSX 최초의 머신인 파나소닉의 MSX 터보-R FS-A1ST는 1991년 말에 완전히 재고가 소진될 정도로 유저들한테 인기를 끌었는데 역시 CPU의 처리속도 향상이 많은 어필을 한 때문이었다. 그러나, 역동적으로 변하는 시장의 트렌드를 따라잡기 위해서는 채용하지 못한 VDP의 그래픽 표현 능력이 너무나 절실했고 MSX 시장 전체의 하락 추세는 멈추지 않았다. 그러던 와중, 1991년에 등장한 최후의 MSX 머신인 파나소닉 FS-A1GT는 메인 메모리가 512K바이트에 미디 단자까지 채용하고 가격은 99,800엔으로 일본 시장에서 마지막 반격을 시도한다. 마치 2차 세계 대전 당시의 (주11)발지 전투를 보는 듯한 이 출시는 시장의 다른 모든 PC와의 경쟁을 염두에 둔 도전이었다.
16비트 대응의 처리속도에 메모리까지 증가시켜 국민 기종인 NEC의 PC98 시리즈 등과 견주려 했고, 미디 기능을 강조해서 후지쯔의 FM-TOWNS나 샤프전자의 X68000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고 자부하는 모델이었다(그러나 여전히 새로운 VDP의 채용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확실히 미디 탑재는 신선한 충격이었지만 이 시기에 아직 미디 규격이 통일되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였고 A1GT와 연동하기 위한 미디 음원 자체의 가격도 너무 높았다. 결국, 이렇게 돈을 쓸 바에는 차라리 고가이지만 기능면에서 뛰어난 FM-TOWNS나 X68000쪽으로 흘러가는 유저가 더 많았던 것이다. 결국, 이 도전은 실패로 끝났고 3년 후인 1994년 파나소닉이 MSX 본체의 완전 생산 중지를 선언함에 따라 MSX의 시장은 공식적으로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전 분야에 걸친 상업적인 생산 활동이 끝난다. 이어, 1995년 8월 더 이상 어떤 하드웨어도, 소프트웨어도 나오지 않는 시장에서 꿋꿋하게 편집 활동을 이어 갔던 (주12)토쿠마쇼텐의 (주13)MSX-FAN이 휴간을 선언한다.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 시장에서 오직 MSX-FAN을 매개로 아마추어 게임을 발표하고, 서로 커뮤니티를 공유하며 MSX의 부활을 꿈꾸던 MSX 골수 유저들로서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을 것이다.
전부터 휴간 될지도 모른다는 소문은 흉흉했지만 유저들의 격려 엽서는 편집부에 쇄도했고 MSX-FAN의 편집부도 “우리는 끝나지 않습니다” 라는 기고로 화답을 했던 분위기. 정작 휴간을 발표하면서도 MSX-FAN의 편집부 모두가 눈물바다였다고 하는, 쓰고 싶지만 더 이상 쓸 수 없었던 그들의 심정은 여러 에피소드를 통해 지금도 MSX 동인회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다.
MSX가 한국에서 맞아야 했던 운명 MSX가 국내 시장에 처음 등장한 것은 1984년. 그전까지 애플 단독으로 차지하고 있던 가정용 컴퓨터 시장은 상대적으로 접근이 쉽고 풍부한 게임 소프트가 뒷받침된 MSX에 의해 서서히 잠식되어 가기 시작한다. 1986년에는 MSX2의 등장과 함께 국민학교 정식 교육 과정으로 채택되어, MSX의 황금시대가 열리는 듯하였다. 그러나 1989년, (주14)국가 전산망 조정위원회에서 국민학교 과정의 교육용 PC를 8비트에서 16비트로 번복 결정하는 바람에 MSX는 시장 일선에서 서서히 물러나는 운명에 처하게 된다. 불법복제로나마 공급 되던 소프트웨어도 쉽게 구할 수 없게 되어 버렸고 전국 각지의 컴퓨터 대리점 들은 8비트 컴퓨터를 모두 치우고 발 빠르게 XT/AT급 이상의 16비트 머신을 전시하기 시작했다. 그나마 국민학교만이라도 채택되었다면 MSX는 한국에서 좀 더 긴 시간 동안 유저들과 같이 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교육용 대상에서 밀려나 버렸기 때문에 학부모가 보기에도 이제는 컴퓨터가 아닌 게임기로 밖에 인식되지 않는 애물단지로 전락한 것이었다. 공부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게임기라면 집에 둘 필요가 없다는 것이 당시 학부모들의 일관적인 생각이었고 각 가정에서 MSX는 빠르게 사라져 갔다. MSX 관련 잡지사들의 행보도 빨라져서 당시 한국 최대 발매 부수를 자랑하던 컴퓨터학습은 반 정도를 할애해서 다루던 MSX 코너를 아예 없애버리고 잡지명도 ‘마이컴’으로 개명하여 재창간에 나선다는 정책을 발표했다.
물론 전국의 MSX 유저들이 이런 처사에 분개했음은 당연한 일. 일부 MSX 골수 매니아 들을 중심으로 본사에 항의 서신을 보내거나 전화를 걸어 자신들의 의견을 알리려 하는 등 많은 복간 운동을 전개했다. 거기에는 나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급기야 지방에서 올라온 MSX 유저들과 함께 마이컴 본사를 항의 방문하고 촛불 시위를 계획하는 등, MSX에 대한 열정…… (사실 정확히 말하면 MSX를 기반으로 나온 수많은 게임들에 대한) 하나만으로 MSX를 다시 부흥시켜 보려 했었다. 하지만 소수의 의견은 한계가 있는 법. 게다가 당시 시장 구조는 어디까지나 정부가 주도하는 구조였고 애당초 가전 3사가 MSX를 만들게 된 이유도 MSX의 스펙이 매력적이기 때문이라거나 소프트웨어의 질이 좋다거나 하는 것들하고는 거리가 있었다. 정부에서 MSX를 교육용으로 지정하고 각 학교에 일정 분량을 납품하기로 했으니까 시장에서의 이윤을 생각하고 만든 것이었기 때문에 일단, 교육용에서 배제된 이상 이제 판매 대상으로서의 가치는 없어진 것이다.
MSX 대표 주자 격이었던 대우전자는 MSX의 개발을 완전 중단한다는 짤막한 기사를 내고 (하지만 재믹스의 생산은 1993년까지도 계속 되었다) 전자 부서 내의 가정용 컴퓨터 개발 인력들을 재배치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개발 인력 대부분이 대우통신 부문으로 이전하고 16비트 개발에 주력한다는 내부 정책이 세워졌다. 그 시절 나는 대우전자의 MSX 최고급 기종인 X-2 CPC-400을 가지고 있었다. CPC-400은 기본적으로 MSX2 규격이지만 특이하게 키보드 일체형이 아닌, 분리 형태를 택하고 있었고 옵션만 추가하면 디지타이저 등의 비디오 편집 기능을 이용할 수 있었다. 그런 와중에 MSX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대우 전자 본사를 방문한 것이 1991년 여름의 일이었다.
꼭 만나고 싶었던 사람, 하고 싶었던 이야기 사실, 처음부터 대우전자에 찾아가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MSX가 이대로 사라지는 것은 억울한데,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하던 차에 이전부터 가지고 있던 CPC-400을 MSX가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CPC-400S으로 업그레이드한다는 핑계로 대우전자에 전화를 했다가 “그러시면 직접 와보시죠” 라는 고객 상담원의 말을 듣고 찾아가게 된 것이었다. 이게 벌써 15년 전의 이야기기 때문에 확실하게 소재지를 기억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아마 당시 서울역 치안본부 옆의 대우 본사 빌딩이었다고 생각이 된다. 어린 나이에 CPC-400은 그렇게 용이하게 들고 다닐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지만 버스를 타고 낑낑거리며 껴안고 갔던 기억이 난다. 당시만 해도 가정용 컴퓨터라는 게 열 집에 한집 정도 있는 신기한 물건인데다가 CPC-400은 당시로서는 유일하게 블랙 컬러에 데스크 탑 방식을 취하고 있었다. (엄청난 뽀대!) 거리에서 모든 사람들이 이상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우여곡절 끝에 대우 빌딩에 도착하여 직원의 도움을 받아 6층으로 올라가니 넓은 개발실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미로 같은 개발실 내부의 데스크를 굽이굽이 뒤져 찾아간 곳은 꿈에도 그리던 대우전자의 MSX 개발부라는 부서 표가 달랑 달려 있는…… 허나 직원은 거의 없고 책상은 두 개뿐이었다. 책상에 앉아서 납땜을 하느라 정신이 없는 엔지니어를 향해 용기를 내서 물어보았다. “저…… CPC-400에 디지타이저 카드를 달려고 온 학생인데요” “아, 거기 놓고 나가서 기다려요…… 30분 정도 걸리니까……” 엔지니어는 납땜을 계속하며 곁눈질로 옆 탁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일단 시키는 대로 본체를 올려놓고, 나가기 전에 이런저런 궁금한 것들을 조금이라도 더 보아 두기 위해 두리번거리며 주위를 살펴 보기 시작했다. 직원은 이 사람 하나뿐인지…… 주위에 해체된 컴퓨터 부품이 잔뜩 널려 있고 부서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굳이 표현을 하자면 혼자만의 개발실 정도? 그런 느낌이었다. “뭐 말할 게 있나? 여기 그렇게 서 있으면 안 되는데” 그 엔지니어는 내가 빤히 쳐다보기만 하고 나가질 않자 신경이 쓰이는지 하던 납땜 용구를 놓고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실은 물어 볼 게 있어요” “뭔데?” “MSX가 이제 생산 중지된다는데 그걸 좀……” “응......?” 일단 말문이 열리고 나자 주저 없이 MSX에 대한 내 생각을 그에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학생 신분에서 잘 설명 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하지만, 나이 어린 소년이 컴퓨터를 들고 와서 단지 고치는 문제가 아니라 생산이니…… 우수한 기종이니…… 하는 이야기를 늘어 놓자 그도 흥미가 있었는지, 내 이야기를 지긋이 듣더니 의자를 돌려 앉아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러니까, 네 이야기는 MSX가 16비트에 비해 떨어질 것이 없으니 계속 나왔으면 좋겠다는 거구나?” “예, 나름대로 좋은 컴퓨터니까 계속 생산해주고 소프트웨어도 수입해주셨으면 해서…… 게임…… 뭐 게임도 좋지만 그 외에도……” 사실, 고백하자면 MSX로는 게임만 했기 때문에 당연히 게임으로 이야기가 모일 수밖에 없었지만 당시 사회 분위기가 게임을 터부시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사실 MSX가 교육용에서 빠지게 된 데는 게임기로서의 기능이 너무 강했기 때문이라는 루머도 있었다) 뭔가 어물거리며 말하게 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빙긋이 웃으며 손을 턱에 대고 뭔가 생각하는 듯하더니 책상 옆의 서랍장을 열었다. 그러자 거기에는 생전 처음 보는 화이트 컬러의 키보드 일체형 컴퓨터가 있었는데, 이제까지 전혀 본적이 없는 것이었기 때문에 (사실 난 얼리어댑터에 속했기 때문에 MSX 뿐 아니라 애플, 아미가, IBM 계열 등 여러 기종을 알고 있었는데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는 것이었다. “이게 바로 (주15)MSX3다 내가 개발했지” 순간적으로 귀를 의심 할 수 밖에 없었다. 이제 막 MSX 터보-R의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MSX 3라니 그것도 대우전자에서……
그는 으쓱해 하면서 컴퓨터의 스펙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CPU의 클럭 주파수 면에서는 당시의 IBM-AT급에 필적하는 것으로 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또 자체 한글, 일어롬을 모두 채용하고 있어서 한자롬을 사용하는 게임을 구동시켜도 더 이상 폰트가 깨지는 일은 없을 거라고 했다. 그래픽 성능은 기존의 스펙을 그대로 따랐지만 3.5인치 드라이브도 내장 장착에 디자인도 괜찮고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상당히 센세이션 한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그는 한참 동안 MSX에 대한 이야기를 하더니 약간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이야기했다. “뭐 그렇지만 말이다…… 이놈은 출시 할 수 없게 되었지” “왜요?” 그는 멋쩍게 웃으면서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키는 시늉을 해 보였다. “위에서……말이지……” 의아해하는 나에게 그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이야기 했다. “뭐, 그런 거란다. 아직 어려서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시장이란 게 그래, 어느샌가 MSX에 관해 일하고 있는 사람은 나만 남게 되어 버렸지. 나도 곧 16비트 부서로 옮기게 될 것 같구나” 뭔가 가슴속에서부터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어 더 이야기하려고 했지만 그는 이내 내가 가져간 X-2를 뜯어서 분해하기 시작했다. “8비트는 어차피 이제 아무도 봐주지 않을 거다. 너도 16비트를 사는 게 좋을 거야 국가가 결정한 일이니까……” 숙련된 솜씨로 납땜을 하고 조립을 하는 데는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그는 X-2 본체를 닫고 나에게 내밀며 이야기했다. “집이 어디지? 들고 오는데 꽤 무거웠을 텐데…… 그래도 너 같은 학생이 아직 남아 있다니 반가웠다” 그는 다시 자리에 앉아 하던 일을 계속 했다. 그렇게 잠깐이지만, 대우에서도 국산 MSX의 후계를 잇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사람이 있었다는 걸 확인하곤 들떠서 집에 돌아왔던 기억이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그분이 대우전자 개발실의 (주16)강병균씨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이름을 물어보거나 할 겨를도 없었고 당시에는 강병균씨의 존재를 잘 몰랐기 때문에 정확하진 않지만, 어쨌든 MSX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 찼던 사람. MSX가 더 이상 계속 될 수 없다고 하는 사실을 듣고 실망도 했지만 열심히 MSX에 대해서 설명하는 그의 눈빛에서 단순한 엔지니어라기보다는 크리에이터로서의 열정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그 후에도 MSX는 빠르게 자취를 감추어 갔고 가정마다 16비트가 들어서게 되었다. 그리고 PC 게임 시장에 돌풍을 불어 일으킨 전설적인 게임 (주17)[어스토니시아 스토리]가 나온 것이 1994년. MSX라는 기종은 지금도 많은 30대의 게이머, 개발자, 크리에이터들의 가슴 속에 남아 있다. 그리고 지금 돌아 보면 역시 시장의 법칙이란 것. 자본주의 규칙이란 것이 게임 시장도 예외 없이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이 다시 한번 뼈저리게 느껴지는 것이다.
주1: 인텔에서 세계 최초의 마이크로 프로세서 Intel 4004를 개발한 시마 마사토시씨가 Intel 8080 CPU 개발 스탭과 함께 자일로그사로 이직하여 개발한 CPU. MSX에 채용된 Z80A는 3.58 클럭의 속도를 가지고 있었다. 주2: Video Display Prossecer의 약자로 현재의 그래픽 카드에 해당하는 칩이다. 주3: 4개의 스크린 모드를 가지고 한 화면 내에 32개의 스프라이트를 표시 할 수 있었던 VDP. 초대 해상도가 256*192로 최대 동시발색수는 16색이었다. 패턴 그래픽 표현만 가능하다는 단점이 있었다. 주4: 8개의 스크린 모드를 가지고 512색 중 16색을 사용할 수 있었다. TMS9918에 비해 스프라이트 표시 가능 수는 32개로 동일 했으나 세로 방향의 스크롤을 하드웨어적으로 지원했으며 프로그래밍에서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VDP커맨드를 탑재하고 있었다. 국산 기종에서는 한글 표시를 위해 스크린9 모드가 추가 되어 있었다. 주5: 팔옥의 용사들이 각각의 모험을 거쳐 최후에 56억 7천만의 적과 대적하게 된다는 장대한 스케일의 RPG. 디스크 15장으로 이루어진 이 게임은 30분이 넘는 애니메이션 오프닝과 살인적인 용량으로 유저들의 관심을 끌었다. 한자롬의 문제 때문에 국산 기종에서는 문자가 깨져서 보이는 경우가 있었다. 주6: 스크린 모드가 총 11개로 증가하였으며, 동시발색수가 19,268색까지 향상되었다. 하드웨어적으로 가로 스크롤도 지원. 주7: T&E 소프트에서 MSX2+ 전용으로 출시한 슈팅게임. 가로, 세로, 대각선의 부드러운 스크롤과 함께 자연화 모드의 타이틀 그래픽, 미려한 샘플링 사운드 등이 특색이었다. 주8: 코나미에서 MSX2+ 전용으로 출시한 레이싱 게임. 기존의 MSX판 F1-Sprit을 1인칭 시점으로 변환하여 2D를 3D처럼 느낄 수 있게 제작한 것이었다. F1-Sprit에 비해 유저들의 반응은 별로였다고. 주9: MSX 터보-R부터 장착되기 시작한 본격적인 16비트 CPU. Z80A와 비교하여 8배가량 빠른 28.63클럭으로 연산처리를 할 수 있다. 주10: MSX3에 장착이 예정되어 있던 VDP. 한 화면에 표시 가능한 스프라이트가 무려 125개에 달하고, 최대 해상도 640*480, 자연화 모드에서 3만 컬러 이상의 출력이 가능하다는 정도만 알려져 있다. 주11: 1944년 12월 독일의 패색이 짙어졌을 때 서부 전선에서 히틀러가 마지막으로 시도한 도박. 동부전선과 국내 각지에 흩어진 병력과 공군 전력, 기갑부대를 모두 모아서 알덴느 삼림 지대에 기습을 가하고 앤트워프까지 진격하여 연합군의 보급로를 끊는다는 계획하에 벌어진 이 전투는 결국 독일의 패퇴로 끝난다. 불리한 상황이나마 있는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여 불시에 기습을 가한다는 전술적인 판단이 돋보이는 작전이었다. 주12: 德間書店。아동용 도서와SF, 애니메이션 관련 서적을 전문으로 출판하는 회사로 원래 요미우리 신문기자였던 토쿠마 야스요시씨가 아사히 예능신문사의 경영을 물려받은 것이 시초. 1977년 애니메이션 전문 잡지 아니메쥬를 창간하고 니혼애니메이션사에서 뛰쳐나온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과 손잡고 모노노케히메, 고양이의 보은 등 많은 극장용 애니메이션 작품을 제작하였다. 주13: 1987년 3월에 창간, 1995년 7월 휴간. 월간지 형태로 매월 8일 발간하였으며 라이벌로는 MSX매거진이 있다. 염가판 MSX인 파나소닉의 A1 시리즈, 소니의 F1 시리즈 발매 후 창간한 잡지로 창간호에 특집으로 다루었던 게임으로 팰콤의 로맨시아, 제나두 등이 있었다. MSX 전문지 중에서는 후발 주자로 여러 색다른 시도가 돋보였던 잡지. 주14: 국가의 정보 통신 분야 및 전산화 분야에 대한 정책을 수립하던 대통령 직속 기관 주15: 당연히 공식적인 MSX3는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주16: 대우전자에서 MSX 라인의 모든 제품을 기획하고 제작한 인물. 단순한 엔지니어로 묻혀 있었으나 1992년 월간지 헬로우PC의 “컴퓨터박물관”이라는 코너에 소개되면서 비로소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주17: 1994년, 손노리에서 소프트라이의 투자를 받아 제작한 RPG 게임. 어스토니시아 스토리의 흥행은 한국 PC 게임 시장의 쉐어를 한 단계 확대시켰을 뿐만 아니라, 동시기에 게임 제작을 추진 중이던 소프트맥스, 판타그램 등의 창립멤버들에게도 큰 힘이 되었다. |
[컬럼] [컬 럼] 한국 게임 시장의 흥망사(5)-悲運의 MS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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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혹시 다음 컬럼이 계획되어 있다면 제목이라도?)
프레이 부라이.. 정말 재미있게 했던 기억이.. msx는 거의 게임용이었죠 저한테는..^^
중학교때 친구놈 집이 잘살았는데 fx있었죠. 당시에는 대단한기계....무서운겜 있었는데..뭐더라 세글자인데..무??
햐 15년 전 일인데도 생생히 기억하시네요 ^^
..감동의 눈물이 흐릅니다. 어차피 저야 msx 같은 녀석이 아닌 패미컴으로 게임계에 입문 했지만.. 허어.. 그래도 그때의 기억이 어렴풋이 새록새록 나네요
예전이나 오늘날이나 씁쓸하네요
마성전설2가 하고 싶으다... 알레스터도 하고 싶으다...
아.....웬지 안습이네요. 제가 게임입문한 시대(음..제가 유치원때쯤)에는 한창 16비트가 나오기 시작하고 시장에는 삼성겜보이(세가마스터시스템)이 나오기 시작했을때인데. 나중에 메가드라이브나 슈패에서 차세대(새턴,플스)넘어가는게 조금은 씁슬하더군요....후후. 웬지 횡설수설이다...
지금의 게임이 있기까지 정말 여러가지 일이 있었군요. 하지만 허무하게 사라진게 아쉽기만 하군요. 재믹스라... 제가 아기였을 때 구입해서 가족들이 그동안 재미있게 했었던 게임기 였는데... 고장나서 결국 폐기처분당했죠.
ㅇ\휴~~~
아.... msx 가 나오던시절에는 가난해서 친구들 하는거 시켜달라고 햇엇죠 어깨너머로,.,.,, 지금은 그때 추억이 잇네요 제가 본격적으로 게임을 한건 슈패시절때 부터 추천찍어드립니다 좋은글 또 올려주세요
꽤 자세히 알고 계시네요. 놀랐습니다~ 그런데 대우전자의 IQ1000 (DPC-200) 이 우리집에 있었는데 그때가 아마 1983년으로 기억하는데 제 기억이 잘못된건지.. 그리고 1984년에 나온 퀵 디스크에 대한 이야기가 빠져있군요. 이건 정식 MSX주변기기 라인업이 아니었나요? 그래도 5.25인치 보다는 가격적으로 메리트가 있어서 많이들 구입햇던것으로 아는데요..
아 완전 슬픔 게이머와 엔지니어의 로망..그리고 현실이 담겨있는 글이네요..
MSX-fan표지로 나온 게임 소서리안인가요???
좋은기사 잘봤습니다.
오~ 새로 업데이트된 글을 당일 읽어보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 또한 그때의 MSX에 대한 추억들을 나열하자면 한이 없을 정도군요.. 글쓴분과는 정말 참 많은 동질감이 느껴지네요. MSX, 메가롬, MSX2, MSX-fan .. 허.. 한가지 좀 우스은 얘길 하자면.. 메가롬이 처음나왔을 당시, 단위가 1Mbit가 아니라, 1Mbyte인줄로 착각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도 그럴듯이 잡지사에서 너무나 대단한 광고를 해댔고, 처음 봤던 마성전설2나 꿈의대륙, 악마성, 불새같은 게임이 너무나 화려하고 대단해 보였기 때문이죠. 즉, 기존 32k 게임의 4배가 아니라, 무려 32배인줄 알았다는.. 화려한 게임연출과 광고덕에 그당시엔 무지막지한 상상의 나래를 편거죠. 게임 하나하나가 아트였고 소중했던 시절.. 아직까지도 게임 하나하나에 그런 기분을 가질 수 있는 것도 그 덕분인가 싶네요 과유불급의 시대에 살고있어 게임불감증이다 뭐다하며 소중한것을 잘 모르는 요즘 애들은 아마도 이런 기분을 느껴보긴 어려울것 같습니다..
저두 X-2를 소지했었죠..이스시리즈와 사크 시리즈..정말 명작들이었죠 ^^ 정말 예전 기억 많이 나네요 ^^
글 잘읽었습니다 msx1시절 마성전설2 매가테이프로 30분 걸려서 겜했던 기억이 나네요 세운상가 참 많이 다녔는데... 지금 생각해봐도 참 그때 당시의 게임들이 재미있었고 순수했죠 다른 게임과 비교할필요 없었고 엔딩 보기위해 주말밤은 그야말로 엄마와의 전쟁이었죠 대사 한마디 모르고 공략집들이 없었어도 엔딩 프롤로그 장면에서 가슴 웅클했던 그때의 게임들... 세상이 발전해 게임들이 이젠 실사화 단계까지 왔건만 그때 만큼의 여운은 남질않네요 어떻게 없어진지 모르는 아이큐2000 못잊어 지금은 msx2+ 소장중이구요 그때의 세운상가 계단 그때의 공기마시며 한번 걷고싶네요
학교 끝나면 동내애들 모여서 삼국지2랑 슈퍼대전략을 즐겼었습니다. 턴재 였기 때문에 여럿이서 함께 할 수 있었던 거지요.. 온라인은 아니고..오프라인 게임이라고 해야 하나 ㅎㅎ 참 질리지도 않고 열씸히 했었는데... 그때로 다시 돌아가고 싶네요.
아.. ㄳ 합니다 잘읽었어요
어라... 1991년인가 그 조금 전에 FM-TOWNS가 등장했을 때의 가격은 터보-R과는 차원이 틀렸던 것으로 기억합니다만... 당시 아키하바라 어느 곳에선가 애프터 버너를 FM타운즈로 돌리고 있어서 구경했었죠. 라곤 하지만 그당시 일본의 개인 PC시장이란 것이... 없는 거랑 마찬가지 였으니... MSX의 포지션이란 것은... MSX는 뭐랄까... 게임기도 아닌 것이 PC도 아닌 식이어서...T_T; 94년은... 32비트의 시대였기에 어스토에 16비트는 뭔가 안어울리는 군요.
덱스터... 아아... 지금의 게임아츠의 위치는...T_T;
초딩때 재믹스랑 패밀리 가진애들은 참 부러움의 대상이었죠. 저도 어머니한테 때써서 재믹스 샀던 기억이 납니다. 후후... 향수어린 글 잘 봤습니다.
잘봤습니다. 근데 본문중에... 1989년에는 기존의 패밀리에서 그래픽 성능을 대폭 향상시킨 닌텐도의 수퍼패미컴까지 발매 되기에 이르러... 요부분이 좀 이상한것 같아 찾아봤더니 SFC가 일본에서 최초로 발매된 날이 1990년 11월 21일이네요.
메가롬.... 옛날에 표시되던 "메가"가 "1메가 비트"였다는 사실을 깨닫고 허무했던 기억이 나네요 ^^ 8배 뻥튀기
MSX 유년시절 정말 많은 감동과 재미를 주었었죠... 사실 요즘 Xbox360이니 PSP,PS3 나오는 시점에도, 그 때 느꼈었던 감흥은 일어나질 않습니다. 많은 MSX 유저분들도 그러시겠죠?? 지금도 기억나는 게임들로는 역시 XANADU,Dragon Slayer, YS, XZR ... 다들 너무 재밌게 몇일밤을 부모님 몰래 컴퓨터 켜가며 토끼눈으로 했던 게임들입니다. 소중한 추억을 갖게 해준 MSX ... 지금 생각해도 너무 고맙네요... 참고로 저두 X2 소유했었습니다. 지금생각해보니, 당시 엄청난 거금임에도 사주신 부모님이 너무 고맙네요... 어려운 형편이었었는데도... 결국 저희 형은 어렸을 적 영향인지 지금은 컴퓨터관련 업종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질문하나 올립니다. 이제 30살.. 인생을 살만큼 살았으면 살았다고 생각하는 놈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같이 일하는 31살 놈이 8088 AT가 있었다고 합니다. 80286을 통칭 AT로 생각하고 있던 나로서는 무슨 헛 소리냐?? 라고 반분을 했습니다. 근대 끝까지 우기는 겁니다. 듣다보니 8088 CPU를 체택한 AT도 있는갑다 라는 쇠뇌가 되어.. 지금 머리속이 혼란스럽습니다. ㅠㅠ 도대체 8088 CPU를 사용한 AT기종이 뭐가 있었죠?? AT == 80286 아닌가?? AT = 8088 ?? 해답을 주신분을 컴퓨터업계 만물박사로 명합니다. ㅡ,.ㅡ;;;
8088 은 AT 가 아니라 XT 라고 AT가 나오기 전에 나왔던 16비트 PC 입니다.. MSX,SPC,APPLE2 등의 8비트 PC ↓ XT,AT의 16비트 286 PC ↓ 386..486..팬티엄.. 머 이런식으로 발전했죠..
hanjin // 저와 나이가 비슷하시군요. 제 짧은 기억으로나마 말씀드리면 제가 당시 처음 구입했던 XT 급 PC 가 금성에서 나온 PC 였습니다. 그때 당시 8086 XT PC 가 8MHz - 10Mhz 속도 였는데 당시 제가 구입한 금성에서 나온 PC 는 8088 이라고 해서 10Mhz CPU 였으며 NEC 에서 나온 CPU 를 달고 있던 놈이었습니다. 글쎄요. 당시에도 이런 논란이 있었던걸로 기억합니다만 통상적으로 8088 까지는 즉 10Mhz 급까지는 전부 XT PC 로 불렀고 16Mhz 가 나오기 시작한 80286 부터 AT 라고 불렀다고 기억합니다. 다만 8088이 Input 은 16비트 output 은 8비트로 처리한 것이라서 더 느린 spec 이라고 친구들이 놀린 기억이 납니다만 여하튼 80386 SX 와 DX 처럼 input 은 32비트 output 도 32비트나 16비트 차이냐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참 그리고 글쓴이 이돌컴님. 정말 간만에 추억에 푹 빠져서 읽었고 그리고 정말 몰랐던 내용도 알아서 유익한 내용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중학교 시절 부모님이 사주신 대우 X-2는 친구들에게 큰 자랑이었습니다.. 분리형 본체와 블랙으로 통일된 모습 친구들은 항상 저희집에 놀러오곤 했었습니다.. 이제 나이 30이 넘어 결혼까지한 지금. 돈의 소중함을 알게된 지금.. 그다지 넉넉하지도 않았던 형편에, 게임만 할걸 뻔히 아셨으면서, 그 비싼걸 사준신 부모님에게 고개가 숙여지네요.. 지금 저에게 대우X-2는 가슴저린 추억의 장난감으로 새겨져있습니다..ㅎㅎ
좋은 글 잘 봤습니다. 저에게도 추억이 많은 기종이네요. 개발자로서의 저를 있게 한 ... 그런데 ... VDP는 Video Display Processor의 약자로 알고 있습니다만 ... ㅡ.ㅡa
MSX 저와함게 유년시절을 함께했던 최고의 컴이었죠. 지금도 X2소장하고 있습니다. 단지..드라이브 고장..키보드고장이 있어서 키더라두 제대로 사용할수가 없답니다. 모니터야 뭐 S단자 지원되는 티비에다가 연결하면 되니 모니터 문제느 없습니다만..예전에 쓰던 RGB모니터가 그립네요..ㅋㅋ 게임을 주로 많이 했지만..당시 잡지 컴퓨터 학습뒷부분에 있던 커퓨터 프로그램들을 보면서 그대로 두드렸던 생각이 나네요..실제로 게임도 제작이 되더군요..신기했습니다..^^* 세월이 지난지금 더더욱 그리워지긴 합니다만..추억이기땜에 그립기땜에 MSX가 더욱 사랑 스럽지않나 생각합니다..^^*
마지막에 대우 본사에 찾아간부분은 드라마틱하군요 ㅎㅎ
초등학교때 MAD80으로 즐겁게 놀았던 기억이 세록세록합니다. 스프라이트를 이용해서 화면을 움직이고, 그에 빠른 피드백을 만들어가는 과정도 즐거웠습니다. 한때, 게임 개발자의 꿈을 키우며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도 하였지만. 지금은 다른 일을 하고 있군요. 간만에 옛날 일들이 생각나서 기분 묘했습니다. 저의 마지막 MSX는 MSX2+ FA-A1GT였습니다.
저랑 비슷한 세대를 사신 분이시군요. 국민학교때 짜장면 값이 500원했던 시절. 전 X-II를 친구에게 중고를 10만원에 샀던 기억이 있습니다. 물론 나온지 꽤 되었던.. 그만큼 가지고 싶었던 MSX.. 디자인도 멋있었고, 롬팩을 끼우는 느낌도 상당히 뭐랄까.. 기계적인 느낌이라 신선함? .. 아무튼, 즐거웠던 유년기의 추억을 되짚게 되네요.. ^^ 예전이 더 좋았던듯 싶습니다.
아 나도 저거 있었는데 검정색.. msx2 라는것만 알고. 그때 당시 울 도시..(지방)에서 울 집이 거의 탑으로 잘살았고.. 게다가 독자였던 내가 아빠를 꼬셔셔... 엄마 몰래 둘이가서 사왔는데. 근데 68마넌이라니.. 그때 내 기억으로 110정도 줫는데. -- 참.. 왕 사기 당했군..... 젠장. 지금은 쫄딱 망해서 허거덩... ^^ 그당시 100마넌 넘으면. 장난 아니였는데. 학원비 2-3마넌 이였는데.
친구따라 컨퓨터 학원에서 MSX로 베이직을 배울때 전 국민학교 5학년이었습니다. 당시 MSX에 매료되서 (솔찍히 게임에 메료됐다는게 정확하겠군요) 부모님을 졸라서 당시 엉청 비쌌던 X-2를 구입하게 되었죠. 아마도 그래서 지금까지 게임을 좋아하나 봅니다. 지금은 본체는 버리고 없고, metal gear 2 롬팩만 남아 있네요. 처음으로 절 게임계에 입문시킨, 매우 설레이는 기종입니다. MSX는...
국민학교때가 생각나네요
재밌게 잘 봤습니다 ^^
ㅎㅎ 마지막 대우본사 찾아가신 일화는 MSX뿐만아니라 기계에대해 추억이 있는 사람의 혼에 불을 지르는 이야기군요
제가 학교 다닐때 국민학교에서 초딩학교로 개명되기전 그러니까 국민학교 저학년에(199?) 학교 등하교 길에서 가게도 없이 60만원에 컴퓨터를 팔고있는걸 봤었는데 제가 그땐 그게 MSX인지는 모르고 자기들은 이걸로 공부도 할수있고 게임도 할수있다는 걸 강조하면서 팔고있더군요. 뭐 당시에도 60만원이란 돈은 어마어마 하였고 게임에는 별로 흥미도 없었기에 그냥 무시했던 기억이 있네요..
왠지 그시절에는 태어나지도 않았던 저이지만. 게임을하고 컴퓨터를 만지는 사람이기에 뭔가 커다란게 느껴지는군요.
잘읽었습니다. 추억을 자극하는 글... 프레이 저 게임도 참으로 간만에 보는군요.
손노리라..... 악튜러스 만든 회사죠? 재미있게 했었는데.... 우와... 옛날 컴이 저랬군요... 저 때에는 태어 나지도 않았지만 웬지 뭉클해 지네요... 제가 본 컴 중에 제일 오래된 것이 16비트 였는데.... 8비트 라니...
예전에 애플이나 삼성 컴퓨터 (카셋트 테이프 일체형) 가지고 있었으면 거의 선망의 대상이었죠. 조르다 조르다 비싸다며 안 사주신 부모님 원망을 엄청 했었는데.....
읽다보니까 조낸 안습밀려오네 ㅠ_ㅠ 국민학교때 MSX 베이직으로 게임도 직접만들면서 게임프로그래머의 꿈을 가졌었는데 ㅠ_ㅠ
8088 AT에 대한 질문이었는데.. 질문의 뜻이 잘못 전달 된것 같군요.. ㅡ,.ㅡ;; 제가 의문인 것은 8088 CPU를 탑제하고 AT라고 선전하 PC가 우리나라에 있었는가 하는겁니다. 일명 "급"이죠~ 8088달면서 AT급이라고 선전한 사기꾼 PC가 있었는가? 하는 겁니다... 그 인간도 자기가 선전에서 봐서 확실하다고 하던데... 흠... 뭐~ 옜날 486 DX의 처리 속도가 299Mhz 199Mhz(맞나? 이 비슷한 숫자였는데..)라고 속이던 대표적인 회사 세진컴퓨터가 기억 나네요~ ㅋ 다시 한번 질문 드립니다. "8088 AT 컴퓨터가 있습니까??"
간혹 지방에서 조립PC를 선전하면서 AT급이라고 한적이 있는 기억이 나네요. 한참 PC에 관심을 가지던 나이라 업그레이드에 미친 적이 있었죠. 그때 여기저기 부품상을 돌아다니면서 기웃거리고 했었는데.. AT급이라고 하면서 가격은 XT보다 약간 더 비싼... 그래서 '우와~~ 저런 가격의 AT도 있구나...' 했었는데 자세한 사양을 보면 CPU는 8088을 쓰면서 그래픽 카드나 저장매체가 그당시 AT에 장착되던 사양으로 꾸미고 AT급이라고 광고한 기억이 얼핏 나네요. 뭐.. 지금으로 비유하자면 P3-1GHz에 120GB의 하드를 장착해서 P4급이라 선전하는거라고 하면 될까요?? ^^;;
오랬동안 아꼈던 물건이였죠
이야 맥스에 대해 많이 알게 됐네요. 좋은 리뷰입니당.....`~
대우제 msx.저는 국민학교 2학년때 아버지께 선물받았는데, 잠을 못잘만큼 설레게 했던 기억이 나는군요. 집안 창고 어딘가에 잠자고 있을건데.. 오늘은 한번 햇빛을 보게 해야겠네요.
재믹스.. 아직도 저희집에 있는 기기입니다 지금은 수명을다했지만 아.. 재믹스하면 마성전설!!
컬럼 잘 읽고 있습니다 ^^ 감사합니다~
MSX3 의 존재에 대해서는 처음 들었습니다. 그런 배경이 있었군요. 저도 Turbo R 까지는 MSX유저였는데 X2 에서 Turbo R로 넘어가는 순간에도 MSX3에 대한건 몰랐습니다. 말씀을 듣고보니 참 흥미로운 배경이야기가 있었군요. 모처럼 오랜만에 정들었던 이름을 들었으니, 오늘 밤은 혼자서 브랜디나 한잔 해야 겠습니다. 옛날 기억을 안주삼아서 말이죠.
[덱스터] 그당시 그래픽에 감동한 게임중 하나였습니다. ^^;
전 지금도 Turbo-R을 가져보는 게 꿈입니다. 지금은 맛이 가 버린 대우 IQ-2000하고 전용 RGB모니터를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창고에 쌓아두고 있죠. 하아...
아흑.. 초딩때 컴터에 최초로 입문한게 IQ-2000(MSX)에 모노크롬 모니터였는데.. 넉넉하지 못했던 살림에 몇년을 졸라서 샀던... 아직도 MSX를 보면 감회가 새롭습니다.. 흑흑..
덱스터...그당시에는 보조기억장치로 테잎이 있었죠.. 그 엄청난 로딩은 지금의 그 어떤 게임도 명함조차 내밀지 못할겁니다 테잎을 제대로 읽고나서 시작된 덱스터...4시간정도였나요? 그당시 컴퓨터학원에서 정신없이 플레이를 하고나니 저녁이었다는... 게임을 접었을때..그때가 가장 아쉬웠습니다..
아 모처럼 좋은 칼럼 잘읽었습니다. 그런 뒷배경이 있었군요. ^^
이제는 16비트로 이어지겠군요.
그냥 왠지 어디한구석이 짠해지는 그런 이상한 기분이 드네요..비슷한 시기에 같은것을 공유했던분의 글이라서 그런건지..아니면 대우전자 의 그 엔지니어 님 사연 때문인지...그런것도 모르고 대우전자 욕만 하고 그랫던 제 어린시절이 기억나네요^^;(x-2나중엔 마이컴 뒷부분 흑백 광고에 다시 나왔습니다. 그당시 기억으론 35~40만원 대로 아이들을 위한 게임과 베이직 연습용PC..이런식으로 간단하게광고하던데..)
음... 근데 메가롬은 MSX1(MSX2가 아닌 MSX)부터 돌아갔던 것 같은데요... 대표적으로 그라디우스시리즈, 마성전설2, 몽대륙 어드벤처 등...
아~ 저는 그냥 시장흐름에 따라 16비트로 전환했는데 어렸을때 저런생각들을 하셨다니 대단하십니다^^;; 가슴찡하게 잘 읽고 갑니다..
MSX1으로 컴퓨터에 입문해 CPC-400S를 사용했던 유저로서 아련한 추억이 느껴집니다. 덕분에 어린시절 아름답고 안타까웠던 추억을 되짚어 보게 됐습니다.
좋은글 잘읽었습니다 얼마전 360 도아를 봤는데 불과 15년 사이에 엄청나게 달라졌다는것을 가끔느낍니다 친구집에 가서 MSX로 YS2를 했던기억이 생생한데 말이죠 ^^
이야~재믹스 진짜 옛날초딩때 생각나네..친구네 집에 게임기 샀다고 자랑하길레 가봤더니 재믹스였지..짜식 얼마나 재던지" 한판만 나한판만~~너 집에가! 그소리에 청천벽락같은 ㅋㅋ그때가 벌써 초딩2학년인가4학년인가 가물가물하네..
저 시대에 같이 MSX와 같이 호흡했던 세대로서 감개무량한 글이군요.. 그러고보니 글 쓰신분도 낯이 익네요.. StonePC 아이디 쓰시던 이우진님이셨던가? (아니시라면 낭패 --;)
8088사용한 AT이야기 나오는 걸 보니, 386DX2라고 광고하던 뉴x 컴퓨터 회사가 생각나네요.^^ 당시 유저들이 지금처럼 컴터 구조나 사양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했던 점을 이용한 사기 행각이었죠. 뭐 마케팅의 승리라고나 할까요~ 암튼 IQ2000살려구 했는데 더 좋다고 하면서 아버지가 사오셨던게 XT였죠.(1989년이었나) 삼보 컴퓨터 트라이젬 시리즈. 첨엔 겜도 별로 없고 갖고있던 MSX팩이 하나도 안되서 싫어했다는...나중에야 겜머신이 되어버렸지만요 ^^
아! MSX... 두근두근....저는 그때 apple ][e 컴을 가지고 있었죠..친구놈은 필자분께서 가지고 계시던 X2-컬러모니터를 가지고 있었고..ㅎㅎ..정말 좋았는데..basic으로 움직이는 그래픽 만들어 보겠다고 ㅎㅎ
저는 초딩때 친구네 놀러갔다가 희안한게임기가 있길래 (제 나이 올해 스무살; 당시 저희동네는 패미컴이 인기만빵이었습니다) 컴퓨터 키보드같이 생겼는데 이게 뭐냐니까 MSX라고 했던게 생각나서 MSX하면 좀 특이한 게임기라고 생각했는데... 그동안 써주신 MSX에 대한 글들을 보니 이제 좀 속이 시원해지네요 그 친구놈꺼 실행해보니 비주얼베이직(맞나-_-;;;) 화면이 뜨더군요 배경색만 하늘색이고;; 그당시 컴퓨터학원을 잠깐 다녀서 비주얼베이직을 찔끔 배워놨던터라 공식도 써보고 했던기억이 -_-;; 근데 잘 먹혔던가...??; 희안하게 패미컴 팩끼는곳도 있어서 팩끼고서 명령어 RUN이던가?? 뭘써놓으면 실행되는것도 신기해했었던 기억이 나네요
패미컴 팩도 낄수있고 패미컴 컨트롤러까지 있었으니 "특이한 패미컴 게임기"다 라고 생각했었던게 참... -_-;; 쿨럭쿨럭
어린나이에도 불구하고 대우까지 찾아가시다니, 대단하시네요 ^<.^;;
비베가 아니라 GW-BASIC이었겠지요;
주16: 모든 제품을 기획하고 제작한 장본인이라고 하셨는데 장본인이 아니라 주인공이라고 말씀하셔야 맞습니다. 장본인이라는 말은 나쁜일을 한 사람들에게 붙이는 것이죠. 이번 사기 사건을 일으킨 장본인은 바로 누구다. 이런식으로요.
저 역시 70년대에 태어난게 자랑스럽(?)다고 생각하게 해준 MSX였습니다. X-2나 재믹스 하나면 부러울것이 없던시절이였죠...이제 처음 게임을 접하고 한창 즐기는 초중생들은 불법복제, 게임의 외관(그래픽만 치중한)만을 지향하는 다수의 게임들에 의해 게임의 본질을 모르는거 같아 씁쓸하기만 합니다. 물론 몰라도 아무 지장 없겠지만 게임을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써 아쉽습니다.
이런 기사 볼때마다, 옛날 기억이 많이 납니다. 그때는 게임팩 하나 사거나, 친구한테 빌려오면 가슴이 두근두근.. 게임가게를 지날 때마다 느껴지는 팩들의 냄새들..(진짜 특이한 냄새가 있었음 ^^) 이제는 직장인이라 게임하나 더 사는건 일도 아니지만, 예전만큼 가슴뛰는 게임은 만나기 어렵네요~
추억이 새록새록.... 사실 저도 올해 24살이라 msx에서 패미컴으로 넘어가는 시대에 게임을 시작했죠... 하지만 msx는 한동한 인기가 있었죠.. 흠...... 아케이드의 인기게임들이 패미컴으로 이식되다보니.. 패미컴의 인기가 하늘 높은줄 모르고 올라갔죠.. 하여튼 재미있게 봤습니다. msx.. 어쨌든 한시대를 풍미한 위대한 콘솔인건 확실한 사실~!
뭐라고할까요.. 루리웹에 같은 동시대를 공유할 수 있는 분들이 이리도 많다는 것에 묘한 유대감이 형성되는 듯 합니다.. 저도 MSX 롬 베이직을 통해서 처음 퍼스날컴퓨터를 접해본 유저 중의 하나 입니다.. 당시에는 게임이라는 것을 즐긴다는 것이 왠지 부모님께 죄스럽게 느껴왔던지라, 그저 직접 라인수를 입력해가며 단순 코딩을 하는 재미만도 나름대로 뿌듯했던 듯 합니다. 컴퓨터학습.. 마이컴.. 추억속의 이름들을 다시 들으니.. 흘러간 시간을 절감하게 됩니다..
꺄~저에 게임에 시작은 재믹스로 부터 시작됐어용!!
정말 예전 생각이 나는 컬럼이네요. 요즘 느끼는 차세대기의 출시때와는 달랐던 당시의 감동과 환희...DD 구락부였나..그걸로 그림그렸던 스틸애니메이션 그렸던 생각도 나고...720KB 디스크 스와핑하며 YS2 게임 중 특정영역을 지나갔던 기억도 나고...세이브 파일 수정해서 HP/EXP/MONEY 무한으로 해놓고 즐겼던 "간다라"라는 게임 생각도 나고..아무튼 감동이네요 ㅜㅡ
과연 학습용이었을까?
갑자기 눈물이 앞을 가리네요. 저 역시 msx와 함께 10대로 들어섰기에 더더욱 느끼는 감동이 큽니다. ㅠㅠ
F-1졸라 잼있어서요....ㅜ.ㅜ;;;난 점점더 좋은걸로 달렸어요... 마성전설...아직도 최종보스를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ㅠ,ㅠ;;;
결국 게임기형식으로라도 MSX 안접해 본 사람은 없는거군요...;;; 패밀리로 알고 있는 오락기가 결국 MSX 기반이니...
안구에 습기가~ 전 애플 유저였는데 정말 갖고 싶었던 기종이 x-1이었습니다. 친구집에 기생(?)하며 하루종일 이스2를 붙들고 있던 기억이 새록새록~ 애플유저로서 256컬러는 정말 부러웠습니다. 머 애플도 명작이 많았지요. 울티마, 마이트 앤드 매직, 바즈테일..ㅜㅜ 개인적 게임 라이프의 시작이자 황금기였죠. 요즘은 예전의 감동을 느낄수가 없네요.. 나이가 들어서인지..쩝
전 동네 컴퓨터학원을 통해 MSX와 게임에 입문하게 됐었죠. 컴퓨터학원이라 하는데, 어떤 수업을 하는 게 아니라 그냥 가서 IQ-2000에 팩 꼽아서 하고 그랬던 기억입니다. 그래서 어쩌다보니 부모님께서 IQ-2000과 그린 모니터라는 흑백 모니터를 사용하게 됐었죠. 당시에 빨간 재믹스 가진 녀석들에겐 선망의 대상이었죠. 메가롬팩을 쓸 수 있었으니까요. 위에서 말씀하신 '메가롬팩의 묵직한 손맛' 저도 생생합니다. ^^ 근데 어디선가 구했던 일본판 메가롬팩은 가벼워서 실망하기도... 알파로이드(?)라는 게임 테입을 거의 30분 로딩시켜서 게임을 시작했던 기억이 나는군요. 지금도 코나미는 잘나가지만, 당시의 코나미는 대단했습니다. 영어를 읽지 못하던 어린 나이에 '물결무늬' 회사의 게임은 재밌다 라는게 당시의 고정관념이었으니까요. 특히 몽대륙은 지금 생각해도 설레이는 게임..
내 진짜 저재믹스산건 내 겜인생의 최고의불찰인듯 이름과는 달리 전혀재미없는 재믻 ㅋㅋ 돈아까비
아직도 잊을수가 없다....몽대륙의 마지막보스와 죽어버린 공주펭귄....랜덤으로 해피엔딩도 있다는데 못보고 기억에서 지워버렸다....테이프레코더로 하루종일 업로드해서 겜했던 기억나네 - -;; 한시간내내 업로드했는데 겜안될때의 그 허무감...
게임으로 느끼는 전율이란걸 생애최초로 느끼게 해준게임이 바로 아이큐2000 메가롬팩으로 출시됬던 메탈기어 였다는...당시 초딩4학년이었는데 그 충격이 대단했음..
저도 그린모니터 아직 기억하긴 하는데. 키보드에 팩꼽아했었고.... 재믹스도 있었고. 흑 그러나 실제 게임에서는 한두개정도밖에 기억이 안남..
아 뭔가 감동적이다 눈물이 나려고 하네 흑흑...
안구 쓰나미가...ㅠ.ㅠ
중학교1학년때인가? 아빠한테 엄청 졸라서산 cpc400s.. 가격은 90만원대였던가.. 내가 미쳤지 ㅠ.ㅠ 암튼 게임은 재미있게했던기억이 있네요 그당시 최고의 게임 메이커였던 마이크로케빈.. 지금은 모하는지 ㅋㅋ
마이크로캐빈의 작품이. XAK였나요. 프레이도 같은 회사였던것 같은데... 아직도 귓가에 XAK의 BGM이 들리는 것 같습니다. 음. 근데, 그나저나 요즘 어린 분들은 복돌이니 뭐니 참 많이 싸우네요.. 나이들면, 정품이든 복사든 할 시간도 없는데.... 부지런히 겜을 즐기는게 중요함다. 정품유저가 되는건 나중에 자기 스스로 돈 번 이후에 해도 되는데...
어려운 형편에 cpc400을 70만원 주고, 사주신 부모님께 정말 미안한 마음이.......
에프에이 소프트.. 재미나.. msx시대에 국내서 잘나가던 게임회사들이었는데... 서점에서 데이터레코더 게임 사던 기억들도 아직도 생생하군요.. 테이프 하나에 게임 4개씩 들어있었고.. fa소프트에서 나온 메가팩 필요없는 1메가 테이프겜도 있었고.. 정말로 저 때가 그립네.... 딜럭스박스는 왜 그리 툭하면 맛이 가던지..
간만의 추억을 살려주는 기사..... 아직 msx2+ 및 갖가지게임 그대루 보관중입니다... 브라이는 정말 다 아시는 만트라에 속아서 안되는겜 복사했던 격두 있구... 자크나 프레이 그리구 펠콤 겜들 다 추억이네염..... 개인적으로 코나미의 야구게임 칭구들과 정말 잼있게했었는데...
아~~ 감동의 물결이...ㅜ.ㅜ 정말 MSX시절 감동이었죠...아직까지도 이스2 만큼 저에게 임팩트 있던 게임은 없습니다..그 감동이란..^^ 위 댓글 다신 분들 다들 저랑 같은 시대에 같은 생각을 지니고 계셨던 분들일 듯 ^^
아..완전 드라마틱 스토리...ㅜ.ㅜ msx라면 저도 초등학교때 학원에서 만지던 IQ-2000하고, 제가 하도 오락실을 가니까 부모님께서 사주셨던 재믹스 생각 나네요.. 저희집 재믹스는 검은 색이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