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주인이 될 것이다]: 표트르 대제에서 푸틴까지 러시아 동진의 역사
저자 - 크리스 밀러
역자 - 김남섭
출판사 - 너머북스
쪽수 - 616쪽
가격 - 34,000원 (정가)
러시아의 동아시아 진출과 그 실패의 연대기
차르시대 러시아는 캄차카반도를 넘어 알래스카로 진출했고, 놀랍게도 캘리포니아, 하와이를 식민지화했다. 시베리아 횡단철도는 모스크바와 블라디보스토크를 연결했고, 볼셰비키 혁명 후 스탈린은 아시아를 공산주의 확산에 유리한 영향권으로 바라보며 패권을 추구했다. 1881년 도스토옙스키는 “사람들이 이제 막 깨닫기 시작하기만 하면, 우리의 돌파구, 우리의 부, 우리의 대양이 미래의 아시아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유럽에서 우리는 들러리이자 노예였지만, 아시아에서 우리는 주인이 될 것이다.”라 선언했다. 동아시아와 태평양은 러시아에게 영토, 시장, 안보, 영광을 약속하는 무대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팽창주의적 꿈은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우리는 주인이 될 것이다』에서 크리스 밀러는 러시아의 야망이 반복적으로 국가적 역량을 초과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며, 러시아의 동진이 지속적인 전략에 따른 “포괄적인 비전”인지, 낙관주의가 빚어낸 무도한 시도인지 의문을 던지며 그 이유를 탐구한다. 전문가뿐만 아니라 일반 독자도 읽기 쉽도록 흥미로운 일화와 사실들을 엮어 유려하게 서술된 이 책은 과거의 역사를 들려주는데 그치지 않고, 오늘날 푸틴의 ‘신동방 정책’과 시진핑 중국과의 밀착, 그리고 우리에게도 큰 관심사인 북극항로 개발의 역사적 뿌리를 추적하며 오늘날 급변하는 유라시아 지정학을 바라보는 냉철한 통찰력을 제공한다.
러시아는 유럽인가? 아시아인가? 분명 러시아는 서구를 통해 자신들을 강대국으로 인식하는 정체성을 형성해왔다. 그러나 19세기 초, 나폴레옹과의 전쟁, 제2차 세계대전 중 히틀러와의 싸움까지 유럽의 전선이 된 파괴적인 전쟁에 연루된 통치자들 누구도 - 표트르 대제도, 알렉산드르 1세도, 스탈린도 - 자신들의 대외정책을 오로지 유럽적 렌즈를 통해서만 바라보지 않았다. 아시아는 유럽만큼이나 러시아의 관심을 사로잡았다. 러시아는 유럽과 아시아라는 인력(引力)의 양극 사이에서 진자처럼 끊임없이 왔다 갔다 하며 주기적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하지만 이러한 진자의 이미지에 대해 크리스 밀러는 러시아가 아시아에 집중했던 시기 - 예를 들어 러일전쟁을 치렀을 때, 공산주의를 중국에 전파했을 때, 혹은 한국전쟁을 부추겼을 때 - 조차도 서방 열강과의 관계가 행동의 동기로 작용했으며, 아시아에서 영향력을 미치려는 투쟁은 종종 유럽에서 러시아의 협상력을 강화하려는 시도였다고 파악한다.
표트르 대제 시대부터 현재의 푸틴 시대에 이르기까지 러시아의 아시아 진출 노력을 탐구하는 『우리는 주인이 될 것이다』에서 저자가 역설하고자 하는 바는 분명하다. 한마디로 말하면 러시아의 아시아로의 전환은 대부분 반쪽짜리이고 일시적이었다는 것이다. 독자들은 낙관주의의 고조로 촉발되었다가, 물류의 현실, 국내의 이견, 군사적 패배 등으로 인해 희망의 거품들이 꺼지면서 소멸해버렸던 여러 차례의 “진자의 흔들림”을 따라가게 될 것이다.
러시아의 태평양 제국, 알래스카, 캘리포니아, 하와이를 식민지화하다
“나는 북극해를 통해 중국과 인도로 가는 항로를 개척하는 방안을 깊이 고려해왔습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건설하고 이 도시를 러시아의 ‘서구로 난 창’으로 삼으며 유럽과 전쟁을 치른 표트르 대제는 1724년, 생의 마지막을 맞이한 순간에도 평생 질시하며 동경하던 서구가 아닌 아시아를 응시하고 있었다. 바이칼호반의 이르쿠츠크부터, 러시아 극동북부 레나강 유역의 야쿠츠크, 그리고 북태평양의 오호츠크에 이르기까지 시베리아 전역에 일련의 정착지들을 건설했고, 중앙아시아에서 몽골의 초원, 아무르강 하구까지 중국과 충돌하며 남하했다. 러시아가 동아시아와 태평양을 영토 확장, 상업적 진출, 지정학적 경쟁의 공간으로 본격적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은 알렉산드르 1세 시대(1801-1825)에 이르러서였다. 다양한 지도를 포함하여 학술적 깊이와 가독성을 동시에 갖춘 것으로 호평받는 이 책은, 러시아 최동단 변경인 캄차카반도 해안의 아나디르스크 요새를 출발점으로 하여 러시아의 태평양 제국 건설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흥미로운 대목은 ‘러시아령 아메리카’다.
시베리아의 모피 거상 그리고리 셀리호프와 러시아령 아메리카의 초대 총독 알렉산드르 바라노프, 셀리호프의 상업제국을 물려받은 니콜라이 레자노프 등 일군의 탐험가, 사업가, 외교관들은 태평양 연안의 쿠릴열도를 넘어 태평양 제국이라는 장대한 계획을 구상했고, 캄차카를 거쳐 알류샨 열도를 따라 코디액을 장악하면서 알래스카를 손에 넣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 중에는 러시아령 아메리카가 알래스카에 그치지 않았다는 것이 있다. 19세기 초기, 지구적 전쟁의 시대에 스페인은 태평양에서 쇠퇴하였고, 나폴레옹 전쟁으로 태평양이 유럽 열강의 관심에서 멀어지는 순간 러시아는 기회를 맞았다. 북아메리카 해안을 따라 남하하여 현재 캐나다의 노보-아르한겔스크를 거점으로 밴쿠버를 식민지화했고, 지금의 샌프란시스코 인근에 정착지 포트 로스를 세운 것이다.
처음에는 모피 무역으로 수익을 올리는 것이었지만 점차 그 상업적 목표는 태평양 제국 건설이라는 충동과 서로 얽혔다. 중국과 일본 및 태평양 시장을 겨낭하며 광저우로 가는 길을 찾던 러시아의 눈에 하와이가 들어왔다. 카메하메아와 하와이 통일왕조를 다투던 카우아이섬의 왕을 러시아 황제의 보호 아래 두고, 보루를 건설하며 하와이제도 전체를 러시아의 식민지화하려는 대담한 싸움을 펼쳤으나 끝내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했고, 영국과 미국의 견제로 실패했다. 이 무렵 미국인들은 태평양 연안으로 쏟아져 왔고, 결국 러시아는 미국의 우위를 인정하며 캘리포니아의 포트 로스를 매각했고, 30년 후 러시아는 알래스카까지 팔았다. 이제 태평양 제국의 본부는 상트페테르부르크가 아니라 워싱턴DC가 된 것이다. 러시아는 본토와 격리된 북미 대륙을 접고, 동아시아, 즉 쿠릴열도, 사할린, 아무르강 유역, 그리고 결국 중국과 한반도, 일본을 향해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조선의 운명과 함께 한 세르게이 비테의 시베리아 횡단철도
19세기 중반, 니콜라이 무라비요프의 아무르 유역 정복과 같은 세기 후반 세르게이 비테가 추진한 시베리아 횡단철도 건설은 아시아에서 상업적 이익을 확대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 아무르강과 그 유역의 확보 및 철도망의 확대에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아무르강은 “러시아의 미시시피”였다. 제2차 아편전쟁으로 청 제국이 흔들리는 틈을 타 러시아는 아무르와 우수리 유역의 영토를 제국에 편입시켰다. 그러나 크림전쟁 패배 후 차르의 관심이 이내 유럽과 흑해 방향으로 돌아서면서 이 거대한 영토는 “오랫동안 군영처럼 살아갈 운명”이란 러시아의 해군 장교 겐나디 네벨스코이의 말처럼 방치되고 말았다.
미국에서 1862년 대륙횡단 철도 건설이 승인되었고 5년 뒤 캐나다도 뒤를 따랐다. 러시아는 시베리아 횡단철도가 놓여지면 유럽과 아시아의 모든 무역로를 장악하여 러시아가 세계 경제의 중심이 될 것이라 낙관하며 다시 움직였다. 러시아는 1891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시베리아 횡단철도 건설을 시작했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에 이은 청일전쟁 후, 막대한 비용을 투자하고 청의 이홍장을 압박하여 아무르강 노선보다 훨씬 짧은 직선 노선이자 만주를 관통하는 동청철도과 함께 뤼순항 기착의 남만주철도까지 완공했다. 고종이‘아관파천’등을 통해 일본을 견제했던 시기는 러시아가 자신의 역량을 과신하며 무리하게 남진하던 때와 겹친다. 하지만 이 거대한 사업은 척박한 시베리아 환경, 그로 인한 막대한 유지 비용으로 인해 경제적 부흥은 고사하고 오히려 일본과의 갈등을 고조시켜 러일전쟁의 도화선이 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다시 극동은 러시아의 야망을 펼칠 출구가 아니라, 위험하기만 하고 쓸모없는 공간으로 돌아갔다.
중국공산당엔 “고사포 6문과 기관총 120정” 지원뿐
러시아혁명 이후 스탈린 시대의 대아시아 정책은 초기에는 볼세비키 혁명을 아시아로 확산시키고자 하는 이념적 욕망이, 냉전 시대에는 아시아에서 국가 안보를 확보하기 위한 지정학적 요인이 주도했다. 스탈린은 중국을 공산주의 확산의 핵심 기지로 삼아 엄청난 인력과 군비를 지원했는데, 의외로 그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중국 공산당이 아닌 장제스의 국민당 정부를 밀었다. 마오쩌둥과 중국 공산주의자들을 신뢰할 수 없었고, 그들이 내전에서 승리할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소련이 중국 공산당에게 제공한 무기는 고작 “고사포 6문과 기관총 120정”뿐이었다고 전한다. 크리스 밀러는 스탈린이 마오쩌둥을 어떻게 자신의 통제하에 두려 했는지, 그리고 두 지도자 사이의 불신이 어떻게 훗날 중소 분쟁으로 이어지며 러시아의 아시아 정책을 곤경에 빠뜨렸는지에 대해 상세히 다룬다. 또한 스탈린 격하에 앞장섰던 흐루쇼프의 경우에는 평화공존이라는 새로운 대외정책 교리를 통해 “소프트파워 사회주의”를 행사함으로써 전임자가 추구했던 목표를 달성하려 했던, 역설적인 노력이 두드러졌던 시기로 정리할 수 있다. 고르바초프의 소련-인도-중국의 “아시아 내 삼각 협력체”도 이해관계의 충돌과 소련의 해체로 인해 성과를 남기지 못했다.
푸틴의 아시아 전환은 과연 성공할 것인가?
『우리는 주인이 될 것이다』는 마지막‘결어’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정부의 ‘신동방정책’과 그 미래를 논의한다. 오늘날 크렘린은 시진핑 중국과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 중요성을 강조하며, 유라시아 전역에서의 러시아 활동을 부각하려 애쓰고 있다. 이전과 달리 중국의 부상이 유럽과 아시아 사이를 오가는 러시아의 향로에 어떤 영향을 줄까? 푸틴의 아시아 전환은 과연 성공할 것인가?
지난 300년 동안 단속적으로 이어져왔던 러시아의 아시아 진출과 개발 노력을 살펴본 이 책은 유감스럽게도 지금의 시도 또한 실패로 돌아갈 가능성이 큼을 시사한다. 북극항로가 경제적 잠재력은 크지만, 여전히 막대한 인프라 비용과 환경적 위험이라는 ‘과거의 실패 패턴’을 반복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국가의 핵심이 수천 마일 떨어진 유럽 변방에 집중된 러시아는 항상 아시아로 확장하려 시도하지만 엘리트와 대중의 관심을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어왔다. 아무리 아시아의 중요성이 강조되더라도 러시아인들에게는 그 아시아가 유럽처럼 항구적인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주인이 될 것이다』는 지리적 한계와 과도한 낙관주의가 빚어낸 러시아의 역사적 실패 사례들을 통해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의 역학 관계를 보다 객관적이고 장기적인 안목에서 바라보게 해준다.
- 서언 “얼마 안 떨어져 있는 거리일 뿐”
러시아의 태평양 연안 도착
1장 알래스카의 영주
차르 알렉산드르 1세의 태평양 제국
2장 “러시아의 지배는 영원히 보장될 것이다”
니콜라이 무라비요프와 태평양 연안의 정복
3장 “우리는 여전히 코르테스처럼 위대한 업적을 세울 수 있다”
중국 중앙아시아 변경 지역에서의 팽창과 후퇴
4장 “우리 사이의 유대를 강화하고”
세르게이 비테와 시베리아 횡단철도
5장 “동방의 새로운 메카”
중국에서의 볼셰비키 혁명
6장 “우리는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
스탈린의 동아시아 패권 추구
7장 “인류의 위대한 희망”
아시아에서의 소프트파워 사회주의
8장 페레스트로이카와 태평양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아시아 개방
결어 “칭기즈칸 제국의 상속자”
블라디미르 푸틴의 아시아로의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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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주인이 될 것이다]: 표트르 대제에서 푸틴까지 러시아 동진의 역사_1.jpg](https://i2.ruliweb.com/img/25/12/27/19b5db90aa238908.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