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GS] VR이 찰떡궁합? ‘절체절명도시 4+’와 ‘스페이스 채널 5’
근 몇 년간 국제게임쇼 이곳저곳을 다니며 가장 체감되는 변화 중 하나는, 2015년을 기점으로 VR(Virtual Reality, 가상 현실) 관련 부스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가 이후 해마다 감소하고 있다는 것이다.
플레이어의 시각과 청각을 장악하고 현실과 전혀 다른 세계로 인도한다는 점에서 VR은 분명 게임의 궁극적 모델이라 할만하다. 그러나 아직 비싼 가격과 거추장스러운 하드웨어, 현실감을 느끼기에 떨어지는 해상도와 조작감, 무엇보다 기대 이하의 타이틀 라인업으로 잠재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PS VR을 론칭한 SIE가 매 행사마다 플레이스테이션 부스 한 켠에 VR 시연대를 마련하고 적게나마 신작 출시를 이어가고 모습이다. PS VR은 바이브나 오큘러스 같은 하이엔드급 VR 기기에 비하면 여러모로 부족하지만, 이러한 SIE의 지원과 저렴한 가격 덕분에 점차 일반 가정에 가장 어울리는 VR 기기로 입지를 굳혀가는 추세.
이에 기자는 도쿄게임쇼 2018을 기하여 뭇 게이머의 기대를 모으는 PS VR 신작 2종을 시연해보았다. 바로 자연재해로 붕괴해가는 도시를 탈출하는 ‘절체절명도시 4+’와 과거 드림캐스트로 큰 사랑을 받았던 댄스 게임 ‘스페이스 채널 5’다.
2000년대 중반 ‘절체절명도시’가 처음 출시될 당시만해도 이 작품의 핵심은 현실적인 상황 묘사였다.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재해가 닥쳤을 때 실제로 있을 법한 장면을 연출함으로써, 지진에 익숙한 일본 게이머들의 몰입을 이끌어낸 것이다. 그런 면에서 플레이어가 정말로 게임 속으로 들어가는 VR 모드는 당초 ‘절체절명도시’가 목표한 궁극의 형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상적으로 보면 그렇다는 것이고, 기자가 직접 만져본 ‘절체절명도시 4+’ VR 모드는 그에 훨씬 못 미쳤다. 확실히 눈 앞에서 땅이 흔들리거나 건물이 무너져 내릴 때 한순간 압도되는 느낌은 있었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지루하고 긴장감이라곤 없다.
비단 이 작품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일단 그래픽이 너무 시대에 뒤떨어지며, 멀미를 걱정해선지 움직임이 지나치게 느리다. 거기다 정해진 방향으로만 움직일 수 있고 그나마도 다음 구간으로 넘어갈 땐 포인트 클릭 텔레포트 방식을 썼다. 자유 이동을 제대로 구현하던가 전부 텔레포트로 하던가 하지 이런 식으로 불편하게 섞어 쓰는 경우는 처음 봤다.
시연 자체는 느릿한 걸음걸이에도 불구하고 빠르면 15분 내외로 주파할 수 있는 짧은 내용이었다. 본편과 마찬가지로 재난 상황에서 두 개 이상의 선택지가 주어지기 때문에 시연자마다 조금씩 전개가 다른 모습도 보여줬다. 다만 기본적인 플레이가 재미없기 때문인지 대부분 뭘 고를지 고민하는 열의는 없었다. 분명 ‘절체절명도시 4+’는 독특한 게임성을 지닌 작품이지만 적어도 VR 모드는 구색 맞추기로 억지로 넣은 듯 서툴고 어색하다.
다음으로 ‘스페이스 채널 5’는 모로성인이라는 귀엽게 생긴 외계인들에 맞서 신나는 춤을 춰 격퇴하는 살짝 이상한(…) 댄스 게임이다. 7080 감성의 디자인과 디스코 뮤직, 우주방송국 리포터가 춤을 추며 외계인과 싸운다는 가볍고 유쾌한 분위기가 일품. 댄스 게임이라고 해도 손 들어, 내려, 앞으로, 몸을 좌로, 우로, 앉아 수준의 간단한 동작이 주를 이루고, 외계인이 한번 보여준 동작을 청기백기 하듯 따라하기 때문에 난이도는 무척 쉬운 편이다.
이 게임 역시 그래픽이 가히 좋지 못한데, 애초에 최신 기술이랑 담쌓은 시리즈이긴 하지만 VR 버전조차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그래도 최대한 현실적으로 보여야 하는데 여력이 못 미치는 ‘절체절명도시 4+’보다는 애초에 만화적인 디자인을 앞세운 ‘스페이스 채널 5’가 훨씬 나은 편. 그래픽이 좋다고는 절대 못하지만 그냥 깔끔해서 게임을 즐기는데 거슬리지 않는다.
기자가 느낀 ‘스페이스 채널 5’의 진짜 문제점은 남성 게이머에 대한 배려가 없다는 것. 여기서는 스페이스 채널 5의 신입 리포터가 되어 울랄라와 함께 출동하는데, 아바타 즉 플레이어 캐릭터가 여성으로 고정이다. 아저씨 기자가 졸지에 호리호리한 미모의 여성 리포터가 되어버린 상황. 그야 게임을 하다 보면 반대 성별을 조종하는 일도 왕왕 생기지만 VR이니까 기분이 묘하달까, 새로운 세계에 눈을 떠버릴 듯한 그런 순간이었다.
그나마 아바타가 여성인 것까진 참을만했다. 그런데 울랄라가 가르쳐주는 동작이 하나같이 너무 귀엽다. 디스코 가락에 맞춰 요염하게 허리를 흔들고 라잇~ 레푸토~ 호이잇~ 뀽! 같은 소리를 내며 춤을 추는데, 도저히 제정신으로 따라하기가 힘들었다. 사실 기자가 방에 혼자 있었다면 한껏 교태를 부리며 열정적으로 쿰척거릴 자신이 있지만 여기는 수많은 이들이 운집한 도쿄게임쇼 플레이스테이션 부스 아닌가. 그래서 역으로 구매욕구가 상승하는 묘한 게임이었다. 나만의 공간에서 누구의 눈치도 안 보고 오롯이 춤추는 여성 리포터가 되고 싶… 아니, 아니다.
| 김영훈 기자 grazzy@ruliweb.com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