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중순 국내 론칭한 ‘소녀전선’은 마치 그 제목처럼 당시 미소녀 수집형 RPG 유행 최전선에 섰던 작품이다. 지금이야 이 장르가 유행을 넘어 주류가 되면서 경쟁작이 늘고 존재감이 예전 같진 않지만, 무사히 서비스 5주년을 맞은 것만으로도 여전한 저력을 느낄 수 있다. 개발사 선본 네트워크 테크놀로지로서도 ‘소녀전선’이 자사의 간판이자 거의 유일한 IP인 만큼, 다양한 미디어믹스는 물론 여러 장르로 속편을 선보이는 중이다. 정식 넘버링 타이틀 ‘소녀전선 2: 추방’, 프리퀄에 해당하는 ‘역붕괴: 베이커리 작전’, 외전 ‘소녀전선: 글리치 랜드’와 ‘소녀전선: 뉴럴 클라우드’. 이 가운데 ‘소녀전선: 뉴럴 클라우드’가 국내 론칭을 앞두고 19일부터 CBT를 진행 중이다.

'소녀전선' IP를 활용한 외전 '소녀전선: 뉴럴 클라우드'가 국내 론칭에 앞서 CBT를 진행한다.

미소녀 인형들, 이번에는 클라우드 서버다

‘뉴럴 클라우드’라는 부제에서 보듯 본작의 핵심 소재는 클라우드 컴퓨팅이다. 작중 시점은 ‘소녀전선’과 엇비슷하고 주인공도 전술지휘관 본인이나, 게임이 전개되는 주요 무대는 현실이 아니라 서버 속 디지털 월드라는 것. ‘소녀전선’을 해봤다면 익히 알다시피 주인공 부대를 구성하는 인형들은 AI로 작동하는 로봇이다. 이들의 AI 마인드맵을 클라우드 서버에 업로드하는 프로젝트가 이른바 뉴럴 클라우드인데, 그 와중에 모종의 사고로 실험을 보조하던 인형들이 마인드맵 채로 서버에 갇히고 만다. 이에 전술지휘관이 실험 책임자였던 교수의 ID를 사용하여 인형들을 구하고자 슈퍼 클라우드 서버 마그라세아로 뛰어든다는 것이 도입부서 소개되는 전후 사정이다.

클라우드 서버 속 세상이라니 독특하지만 어디까지나 배경 설정이 그렇다는 것이고, 게임 자체는 선본의 장기라 할만한 미소녀 수집형 RPG의 큰 틀을 충실히 따른다. 기본적으로 메인 시나리오를 따라 여러 스테이지를 차례로 공략하는 탐색, 일종의 자원 던전인 파편 수색/자원 채집/알고리즘 채집, 이상지능체(마그라세아에서 살아가는 이들을 지능체라 하고, 어떠한 이유이건 이상지능체로 판정되면 백신 프로그램인 정화자에게 공격 받는다)들의 안식처를 건설하고 관리하는 오아시스, 동료 지능체의 일상을 엿볼 수 있는 숙소, 온갖 물품을 생산하는 가공장까지가 현재 존재하는 콘텐츠다. 처음부터 모든 콘텐츠가 열려 있진 않고 메인 시나리오에 따라 차례로 해금된다.

메인 시나리오는 클라우드 서버에 갇힌 지능체들과, 그들을 지휘하는 어떤 교수의 이야기다.

오아시는 정화자에게 이상지능체로 찍힌 이들의 안식처로, 게임 내에서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

로그라이트, 최선의 경로로 최대의 보상을

이렇게만 보면 굳이 ‘소녀전선’ 같은 게임을 또 하나 만든 것 같지만, ‘소녀전선: 뉴럴 클라우드’에서 가장 차별화되고 완성도 높은 지점은 스테이지 구성과 전투다. 이 게임 플레이 메커니즘을 장르로 규정하자면 로그라이트 + 오토배틀러에 가까운데, 스테이지 진행은 로그라이크처럼 하고 전투 자체는 오토배틀러와 비슷한 방식이기 때문. 여느 모바일 RPG에선 스테이지 진입 시 한 번 또는 여러 번의 전투가 자동으로 연이어 발생하지만, 본작의 경우 그 경로를 게이머가 직접 선택한다. 출발점에서 여러 갈래 길 중 하나를 고르고, 거기서 또 뻗은 길 중 하나를 고르는 식으로 마지막 보스전까지 경로를 이어가는 것. 물론 어디로 가는지에 따라 득과 실이 크게 좌우된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충돌구역에선 전투를 치른다. 초급/중급/고급으로 갈수록 난이도와 보상 수준이 높아진다. 여기서 보상은 일종의 액티브/패시브 스킬인 함수다. 함수는 부대의 능력치를 직접적으로 올려주거나 속성 공격 효과를 주기도 하고 피해반사 등 여러 유용한 효과가 많다. 대부분 패시브지만 간혹 액티브 함수도 존재하는데, 이 경우 전투에서 강력한 한 방으로 쓸 수 있다. 함수창고는 문자 그대로 함수를 공짜로 얻는 곳, 회복구역은 부대를 치료하거나 함수를 강화하는 곳, 거래구역은 함수를 사거나 파는 곳, 이상구역에선 부대를 약화시키는 대신 보상이 커지는 식으로 특별한 조건을 걸 수 있다. 함수는 중복 획득을 통해서도 강화하는 게 가능하다.

시나리오에 따라 이벤트신 감상 후 전투를 치르는 구성은 여느 RPG와 같다. 자원 던전도 존재.

스테이지에 진입한 다음이 중요한데, 자신이 직접 경로를 선택하고 그에 따른 득실을 얻는 구조다.

일견 충돌구역을 최대한 피해야 전력 소모가 적을 듯하나 어차피 마지막 보스전은 치를 수밖에 없으므로 가능한 함수를 모으자. 전투 난이도가 함수의 존재를 전제로 맞춰졌기 때문에 만반의 준비를 갖추지 않으면 고배를 마시기 십상이다. 다만 너무 동선이 길어져도 경계 레벨이 올라가 적 체력/공격력/연산력이 모두 상승하니 포기할 건 포기하는 지혜도 필요하다. 여기서 부대는 자신이 소유한 지능체를 그대로 쓰지만 그 외에 함수, 코인이란 재화, 이상구역에서 걸어둔 조건은 해당 스테이지에서만 유효하다. 그래서 로그라이트라는 것. 다만 로그라이트라도 수집형 RPG임은 변하지 않으므로 성급, 강화 정도, 레벨 같은 지능체 본연의 스펙이 당연히 더 중요하다.

스테이지 진행 방식이 이렇다 보니 자연스레 분량이 풍성해지는 효과가 있다. 흔히 모바일 RPG서 메인 시나리오는 캐릭터간 대화나 상황 묘사를 보고, 한 번 또는 두세 번의 연이은 전투를 치르고, 다시 이벤트신이 나오는 순서로 반복된다. 전투는 길어야 2~3분을 넘지 않으므로 다음 내용을 볼 수 없도록 막는 건 시간이 아니라 전투 난이도나 행동력이기 마련이다. 반면 ‘소녀전선: 뉴럴 클라우드’는 매 스테이지가 로그라이트 구성이고 심지어 뒤로 갈수록 경로가 점점 더 길어진다. 그만큼 스테이지 하나를 공략하는데 시간이 꽤 걸리고, 경로 설정과 함수 조합 등을 고민하며 몰입하게 된다. 바로 그 점이 매력이긴 하지만 가볍게 즐기기에 다소 부담스러울 순 있다.

함수는 해당 스테이지에서만 효과를 발휘하는 일종의 버프로, 이것을 잘 모으는 게 핵심이다.

단순히 싸워서 보상을 얻는 충돌구역 외에도 함수를 얻을 방법은 많다. 부대 체력도 고려하자.

오토배틀러, 배치와 기동 모두 전략적 판단

‘소녀전선: 뉴럴 클라우드’서 전투를 치르는 일개 부대는 총 8인으로 본대 다섯과 예비대 셋으로 구성된다. 예비대는 본대가 쓰러졌을 때 빈자리를 채워주는 역할이므로 기본적으로 5인으로 전투를 치르는 셈. 직업군은 수위, 사수, 전사, 해결사, 치료사의 5종인데 여느 RPG 용어로는 탱커, 원거리 딜러, 근접 딜러, 서포터, 힐러에 해당한다. 모든 지능체는 패시브, 액티브, 궁극 스킬을 하나씩 가지고 있으며 궁극기는 3성이 되어야만 해금된다(즉 태생 3성은 그냥 쓴다). 획득은 평범하게 가챠(ガチャ, 뽑기) 돌리는 식이고 최대 레벨 도달 후 특수 재화로 돌파, 중복 획득 시 파편화하여 성급을 올리는데 쓰이는 등 익숙한 시스템이다. 알고리즘이라는 장비의 일종도 존재한다.

전투 자체는 뭔가 기능을 키고 끌 것도 없이 완전히 자동이지만 어지간한 모바일 게임보다 손이 바쁘다. 오토배틀러 장르를 해봤다면 감이 잡힐 텐데, 5x6 크기의 전장에서 지능체들이 알아서 돌아다니기 때문에 일단 초기 배치가 무척 중요하다. 일례로 사수는 원거리서 적을 녹여버리지만 근접 당하면 순식간에 쓰러질 정도로 역할 구분이 뚜렷한 편. 따라서 부대 편성부터 직업간 균형을 잘 잡아야 함은 물론 전장에서도 수위는 수위의, 치료사는 치료사의 역할을 100% 수행하도록 신경을 써줘야 한다. 매 스테이지마다 적과 아군의 기동을 막는 장애물 구조가 다르고 원거리 공격력이 상승하거나 재사용 대기시간이 감소하는 특수 발판도 있으니 이를 적절히 활용하자.

기본적인 탱딜힐 조합이 단단해야 대열이 무너지지 않는다. 물론 지능체 각각의 육성도 중요.

수위가 앞서서 해결사, 치료사, 사수를 지켜주는 게 일반적인 대열. 특수 발판도 적극 활용하자.

부대 배치를 마쳤다면 다음은 기동전략의 활용이다. 앞서 장애물의 존재를 언급했는데, 아군과 마찬가지로 적도 수위가 길을 틀어막고 사수는 그 뒤에 숨기 마련이다. 단순히 전위끼리 충돌하는 사이 이쪽 사수가 저쪽 사수를 처치해도 되지만 그러면 피해가 너무 커진다. 스테이지 진행이 로그라이트 방식이라 도중에 계속 피해가 누적됨을 기억하자. 이때 기동전략이야말로 게이머가 직접 전투에 개입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수단으로, 아군을 원하는 위치로 순간이동시키거나 적을 잠시 공중에 띄워 이탈시키는 게 가능하다. 혹은 아군 한 명의 액티브 스킬을 곧바로 충전시켜 전황을 반전시키도 한다. 기동전략에 쓰이는 자원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자동 충전된다.

오토배틀러가 지닌 묘미는 나의 전술적 판단이 중요하되 어느정도 무작위성도 함께 작용한다는 점이다. ‘소녀전선: 뉴럴 클라우드’를 본격 오토배틀러라 부르기는 다소 얕지만 이러한 묘미만큼은 제대로 챙겼다. 특히 중후반으로 갈수록 특수 능력을 지닌 적들이 늘어나 부대 배치 및 기동전략 활용에 더욱 집중하게 만든다. 가령 치료사 앞을 지키라고 세운 수위가 적의 도발에 끌려가 대열이 무너질 때, 전술자원이 이미 낭비해버렸다면 다시금 수위를 제자리로 순간이동시키지 못할 터이다. 끝으로 지능체의 궁극기도 게이머에게 발동 권한이 있는데, 대부분 매우 강력하고 유용한 효과지만 간혹 잘못 쓰면 자폭기가 되는 경우도 있으므로 이 역시 머리를 좀 굴려야 한다.

기동전략을 활용하면 장애물 너머로 아군을 급파하거나 강적을 잠시 무력화하는 게 가능하다.

궁극기도 직접 조작으로 발동하는데, 대부분 필살의 일격이지만 가끔 자폭기가 되기도 한다.

다양한 장르로의 확장, IP를 잘 가꾸는 법

로그라이트와 오토배틀러, 어느 쪽이라도 미소녀 수집형 RPG 기준으로는 손이 많이 가는 장르다. ‘소녀전선: 뉴럴 클라우드’를 할 때 잠시 그냥 돌려놓는다거나, 어망을 쳐놓는다거나 하는 플레이는 불가능하다. 자동화에 익숙한 게이머라면 피로감을 느낄지 모르지만 그만큼 고전적인 ‘게임다움’이란 기준에는 훨씬 더 잘 들어맞는 작품이다. 이는 ‘소녀전선’이란 성공작이 받쳐주고 ‘소녀전선 2: 추방’ 완성을 앞둔 선본이기에 가능한 도전이리라. 비단 본작 외에도 외전인 ‘역붕괴: 베이커리 작전’과 ‘소녀전선: 글리치 랜드’도 마찬가지다. 하나의 성공을 발판으로 보다 다양한 장르로의 확장을 꾀하고 완성도를 신경 쓰는 모습, 몇몇 국내 게임사도 모쪼록 배웠으면 싶다.

성공한 IP를 발판으로 다양한 장르로의 질적 확장. 이거 K-게임사도 좀 배워야 하지 않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