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솔·모바일로 ‘창세기전’ 부활 이끈, 팀 안타리아 삼각편대
드디어 오랜 기다림의 결실이 목전에 다가왔다. 국산 RPG의 전설 <창세기전 2>가 장장 27년이란 세월을 뛰어넘어 리메이크 타이틀 ‘창세기전: 회색의 잔영’으로서 닌텐도 스위치에 연내 정식 발매된다. 라인게임즈(舊넥스트플로어)가 소프트맥스로부터 IP를 인수한 게 2016년, 첫 PV 공개가 2020년, 기자가 ‘LPG 2021’서 데모 빌드를 시연할 때가 2021년이니 정말 어지간한 해외 AAA급 타이틀보다 장기간 개발을 이어온 셈이다.
그간 라인게임즈는 실적 악화로 고전하다 ‘창세기전’ IP 인수 및 리메이크 프로젝트를 의욕적으로 추진해온 김민규 창업자가 퇴사하는 등 큰 부침을 겪었다. 그만큼 <창세기전>의 성대한 부활이 그 누구보다, 어느 때보다 간절할 터. 더하여 지난 달 <창세기전 모바일: 아수라 프로젝트>를 <회색의 잔영>과 함께 연내 출시한다고 깜짝 발표하는 등 IP 저편 확대에 전력하는 모습이다. 과연 국산 RPG ‘왕의 귀환’은 이루어질지, 기자간담회서 들어봤다.
※ 분량 관계상 PT와 인터뷰 기사를 분리했습니다. 발표 내용부터 확인하길 추천합니다.
[인터뷰] 신생 '창세기전' 야심 찬 출사표, 목표는 동아시아 최대 IP
콘솔로 부활하는 국산 RPG의 전설, 회색의 잔영
먼저 레그 스튜디오 이세민 디렉터의 ‘창세기전: 회색의 잔영’ 발표가 진행됐다. 그는 “2022년 발매 약속을 지키지 못해 죄송하다. 더 좋은 결과를 내고자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고 심심한 사과를 전했다. 또한 ‘회색의 잔영’ 출시가 드디어 임박했으며, 모든 분들에게는 아니지만 많은 분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IP로 리빌딩하겠다는 야심 찬 출사표를 던졌다. 지금도 회자되는 96년 당시 압도적 스케일을 최신 기술로 되살리겠다는 것.
평소 SRPG를 즐겨한다는 이 디렉터는 일본 ‘디스가이아’부터 서양 ‘XCOM’까지 다양한 작품을 나열하 뒤 ‘회색의 잔영’이 고난이도 및 포토리얼 계열에 속한다고 분석했다. 전투는 클래식 SRPG의 전형을 잘 살리되 어드벤처 모드로 현대적인 플레이를 가미하고, 비주얼은 일본도 서양도 아닌 국산 나름의 미를 추구한다. 스토리는 대하사극이자 무협이며 중세 판타지이자 SF이기도 한 원작의 매력을 훼손하는 일 없이 현세대기로 옮겨오는 데 주력했다.
그러면 ‘회색의 잔영’ 인게임 콘텐츠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모험 모드는 필드 이곳저곳을 자유롭게 오가며 살피는 구간이다. 원작에서 턴을 소모하여 지역을 이동하거나 조사하던 시스템을 현대화한 것. 이때 필드에 자리한 적을 공격하거나 피하며 교전 여부를 게이머가 직접 결정할 수 있다. 방패를 든 클래스는 적의 공격을 튕겨내는 식으로 파티 리더가 누구인가에 따라 교전 대응 능력이 달라지므로 그때그때 적절한 편성이 요구된다.
다음으로 전술 모드에선 캐릭터를 성장시키고 이들을 활용한 팀 플레이가 기본이 된다. 원작의 클래스 체인지는 오늘날 보다 대중적으로 자리잡은 상위 승급 시스템으로 교체했다. 또한 특정 아이템으로 스킬 트리를 해금하여 새로운 기술을 얻는다. ‘창세기전’ 전매특허인 초필살기도 당연히 구현되었는데, 예전처럼 적 전체를 일거에 쓸어버리는 위력까진 아니다. 여기에 여느 캐릭터들도 초필살기 보유자와 보조를 맞출 수 있도록 마장기가 지원된다.
스토리는 한국 게임 시나리오 사상 최고라 평가받는 스케일과 캐릭터성을 게임이란 형태로 완성시켰다. 알다시피 ‘창세기전’ 유니버스의 시작이 바로 <회색의 잔영>이라 그만큼 압도적인 스토리와 콘텐츠를 제공한다는 방침이다. 다만 80시간에 달하는 분량으로도 다 담지 못한 내용은 ‘안타리아의 서’라는 인게임 다이제스트 콘텐츠를 통해 이해를 돕는다는 계획. 원작의 팬이든 입문자든 장편 대하 역사 드라마를 즐기는 기분으로 플레이하게 될 것이다.
‘LPG 2021’ 행사서 한 차례 기자 시연이 진행된 후 레그 스튜디오는 최종 품질과 분량에 대한 목표를 세웠다. 당시 빌드는 스크린 비율 70%, 가변 30f(25~30)이었으나 최종적으로 스크린 비율 80%, 고정 30f를 실현했다. 플레이 타임 역시 최초 발표보다 두 배 가까이 불어나 약 80시간에 육박한다. 어쩔 수 없이 개발 기간도 계속 늘어났으나, 그럼에도 끝까지 다듬어서 닌텐도 스위치 타이틀 중 상위권 품질로 인정받겠다는 목표를 달성했다.
출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놀라운 성과는 한국닌텐도가 국내 유통을 직접 진행하게 됐다는 것. 플랫폼 홀더가 서드파티 타이틀을 유통하는 경우 자체가 흔치 않은데, 특히나 한국닌텐도로서는 극히 드문 사례에 해당한다. 이는 레그스튜디오의 ‘창세기전’ IP를 향한 애정과 개발력을 높이 평가한 결과라는 게 이 디렉터의 설명이다. ‘창세기전’이 국내에서 어떠한 IP인지, 그런 작품이 스위치로 출시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끊임없이 설명하고 설득했다고.
그리하여 오는 12월 닌텐도 스위치로 정식 발매를 앞두고 최종 스펙은 다음과 같다. 장르는 어드벤처 SRPG. 플레이 인원은 1인. 분량은 총 42챕터 완결로 80시간 정도. 한국어 자막 및 음성을 지원하며, HD 진동에 대응한다. 심의는 12세 이용가를 받았다. 다운로드 및 패키지 판매되는데, 일반판이 64,800원이고 한정판이 168,000원이다. 한정판 구성은 공개되지 않았다. 이달 중 챕터 1, 2를 포함한 체험판 배포 예정으로 제품판과 세이브가 연동된다.
참고로 체험판과 제품판간 세이브가 연동되긴 하나 품질에 미세한 차이는 발생할 수 있다. 체험판 분량이 올해 초 빌드를 기반으로 제작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음달 받아볼 제품판은 체험판보다 다듬어진 모습을 기대해도 좋겠다. 또한 마찬가지로 라인게임즈 산하에 몸담은 라르고 진승호 PD의 작품 ‘베리드 스타즈’와도 데이터 연동 특전이 제공된다. 다만 해당 사항은 이어진 인터뷰서 배포 방식을 더 고민해보겠다며 결정을 보류한 상태다.
12월 정식 발매가 마무리되면 레그 스튜디오는 곧장 DLC 개발에 돌입한다. 고난도 도전이 가능한 ‘용자의 무덤’을 비롯해 여러 크고 작은 콘텐츠가 업데이트될 예정이다. 물론 전투나 장비 등 밸런스 조정도 계속해서 이루어진다. 글로벌 및 타 플랫폼으로의 전개도 2024년 내 완수한다는 계획으로, 일단 영어·일본어·중국어 지원이 결정됐다. 이외에 유럽 언어 몇 가지를 검토 중이라고. 타 플랫폼 출시의 경우, 상술한 DLC가 포함된 합본 발매를 고려 중이다.
모바일로도 원작의 감동 전한다, 아수라 프로젝트
이어서 ‘창세기전 모바일: 아수라 프로젝트’ 발표는 미어캣 게임즈 남기룡 대표가 맡았다. 그는 금번 모바일화의 첫 번째 특징으로 ‘원작의 감동을 충실히 재현한 스토리’를 꼽았다. 비단 ‘창세기전 2’에 국한되지 않고 ‘서풍의 광시곡’부터 ‘창세기전 3 파트 2’에 이르는 시리즈 전체 내용을 아우를 계획이라고. 심지어 원작에서 조작할 수 없는 캐릭터도 아군으로 합류하는데, 금번 영상에선 베라딘(베라모드)가 파티 멤버가 되어 싸우는 장면이 나왔다.
‘아수라 프로젝트’의 두 번째 특징은 전략성이 살아있는 전투 시스템이다. 본작은 플랫폼은 다르지만 <회색의 잔영>과 마찬가지로 SRPG를 표방하며, 이 장르의 꽃인 전략성에 초점을 맞췄다. 다양한 클래스 및 특수기를 활용한 협공, 위치에 따른 호위나 은폐 효과, 병종에 따른 유불리와 속성간 상성 체계 등 SRPG서 기대할 법한 시스템은 거진 다 구현했다. 접전이 벌어지는 순간은 캐릭터에 근접한 구도로 멋진 연출을 감상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설화난영참, 천지파열무, 아수라파천무 등등. ‘창세기전’하면 가장 먼저 떠오를 초필살기는 ‘아수라 프로젝트’에서도 건재하다. 원작의 압도적인 감성을 유지하며 오늘날 유저들의 눈높이에 맞춰 보다 화려한 연출을 가미했다. 실제로 최신 영상을 통해 이올린 팬드래건의 블리자드 스톰을 비롯해 주요 캐릭터들의 초필살기 시전 장면을 확인 가능한데, 모바일 기기 대응을 고려하여 너무 길지 않으면서도 박력 넘치게 표현된 발군의 연출을 보여준다.
스토리 전개에 따라 G.S와 라시드 등 핵심 캐릭터가 그때그때 합류하거나 이탈하는 ‘회색의 잔영’과 달리 ‘아수라 프로젝트’는 흔히 수집형이라 불리는 모바일 RPG다. 따라서 원하는 캐릭터를 얻기 위해 확률에 기대야 하는 곤란한 측면도 있는 반면, 상술했듯 원작에선 볼 수 없는 드림팀을 구성해보는 즐거움이 존재한다. 론칭 스펙 기준 50여 명에 달하는 캐릭터는 저마다 고유한 능력 및 특징을 지녀 전략적 조합의 묘미를 극대화할 전망이다.
창세기전의 모든 걸 관리 및 제공하는, 팀 안타리아
끝으로 이 모든 ‘창세기전’ 리메이크 프로젝트를 물밑에서 관리하는, 마치 뫼비우스의 우주를 유지하는 베라모드나 시즈 같은 인물이 팀 안타리아 이경진 IP 디렉터다. 과거 소프트맥스서 ‘창세기전 4’ 일러스트레이터를 역임했으며 레그 스튜디오 창립 당시부터 IP 관리 및 재해석에 전력해온 그는, 이제 팀 안타리아로 독립하여 더 큰 역할을 수행 중이다. ‘창세기전’ IP 관련 리소스를 전부 보관하여 제공할 뿐 아니라 직접 기획 및 제작까지 도맡는다.
이렇듯 팀 안타리아가 중심을 잡아주는 덕분에 서로 다른 두 개발사가 ‘창세기전’이란 하나의 IP 아래서 정합성을 유지할 수 있다. 가령 캐릭터의 외형과 성격, 특정 상황에서의 대본, 나아가 그 목소리를 담당한 성우까지 ‘회색의 잔영’과 ‘아수라 프로젝트’는 어색함이 없다. 단순히 레그 스튜디오와 미어캣 게임즈가 각자 IP를 수주해서 개발했다면 전부 달라졌을 부분이다. 마치 소프트맥스 시절 주먹구구로 나왔던 ‘창세기전’ 관련작들처럼 말이다.
순서상 팀 안타리아와 레그 스튜디오, 미어캣 스튜디오간 협업 방식은 어느 정도 차이가 있다. 레그 스튜디오는 아직 이경진 IP 디렉터가 팀 안타리아로 독립하기 전부터 ‘회색의 잔영’을 개발해왔다. 그래서 당시 팀원이던 이 디렉터가 하드에 파묻힌 리소스를 찾아내고 파편화된 설정을 취합 및 정리하는 과정을 거쳤다. 대본 작업은 ‘창세기전 3 파트 2’ 스토리팀 출신의 이래연 작가가, OST는 마찬가지로 원작에 참여한 장성운 음악 감독이 담당해줬다.
즉 레그 스튜디오와의 협업은 모든 걸 바닥부터 쌓아가는 과정이라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다. 반면 미어캣 스튜디오는 팀 안타리아가 완전히 가동하기 시작한 다음 프로젝트에 합류하여 그간 축적된 리로스가 충분히 누렸다. 물론 콘솔용으로 마련된 기획이나 자료를 모바일 게임에 곧장 적용시킬 순 없고, 그래픽풍을 카툰렌더링으로 변경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아수라 프로젝트’의 빠른 개발 속도야말로 팀 안타리아가 추구하는 바라 하겠다.
김영훈 기자 grazzy@ruliweb.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