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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는 왜 북유럽을 공격하지 않는가?
푸틴은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하면 러시아의 안전보장에 위협이 된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 자체는 어느 정도 근거가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기나긴 국경을 공유하고 있으며 모스크바까지 가장 가까운 거리로는 450km에 불과하다.
만약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한다면 러시아의 전략종심이 대폭 후퇴하고
푸틴의 말처럼 아주 짧은 시간에 미사일이 날아올 수도 있다.
문제는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이 임박했는가 하는 점이다. 러시아가 바이든 정권의 우크라이나 정책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던 점은 제1장에서 언급했지만 결과적으로 이 우려는 반만 맞았다.
즉 바이든은 크림반도 강제 합병을 인정하지 않는 자세를 분명히 내세우고 있었으나 그 이상 깊게 개입하지는 않았다.
우크라이나에 대규모 군사 지원을 하거나 나토 가입을 떠미는 일은 신중히 회피하고 있었다.
현실적으로 생각해도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은 어려웠다. 2014년의 제1차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돈바스는 계속해서
분쟁 지역이었다. 이런 상태에서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한다면 북대서양조약 제5조에 정해진 집단방위 조항이 발동되어
러시아와 직접 전쟁으로 발전할 수 있다. 바이든 정권이 2021년 이후 러시아와의 전쟁 회피를 지상 명제로
우크라이나 문제에 대처해온 것을 생각해보아도 나토 가입이 임박하였을 가능성은 확실히 없었다고 할 수 있다.
더군다나 제2차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벌어진 후에는 스웨덴과 핀란드가 나토 가입 의향을 표명하였으며
실제로 6월에는 가입이 승인되었다. 냉전시대부터 두 나라가 지켜온 중립 방침을 버리고
특히 '소련에 가까운 중립'이었던 핀란드가 나토에 가입하는 사태는 원래라면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에 필적하는 위기다.
그런데 이에 대해 러시아는 외교부에 의한 형식적인 비난 외에 그다지 격렬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산발적인 영공 침범과 에너지 공급에 관련한 소규모 보복에 그쳤을 뿐이었다. 또한 푸틴 대통령은 6월 말에 열린 카스피해 연안
각국과의 정상회담에서 '(두 나라의 나토 가입은) 우려할 만한 일은 하나도 없다. 그렇게 하고 싶으면 그렇게 하라'고 말했다.
분명히 푸틴은 만약 스웨덴과 핀란드에 나토 군부대와 군사 인프라가 전개된다면 이에 상응한 대응을 하겠다고 단서를 달기는 했다.
하지만 이것은 그야말로 '만약'이며 법적인 나토 가입은 곧 러시아와의 군사적 대립으로 이어진다든지,
군사력 행사를 초래한다든지 하는 말은 하지 않았다('거듭 말하지만 우리에 대한 위협이 발생했을 경우에'라고 푸틴을 거급 확인했다).
나토와 러시아와의 관계를 정한 1997년의 '나토-러시아 기본협정서'에 비추어 보면 이것은 아주 합리적인 대응이라고 할 수 있다.
해당 문서의 제4장에는 나토는 신규 가입국에 핵무기와 전방 저장 시설을 설치하지 않고
또한 대규모 전투부대를 추가적으로 영구 배치하지 않는다고 명기되어 있기 때문이다.
푸틴의 말은 나토가 이 약속을 어기면 보복하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스웨덴과 핀란드의 신규 가입은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순수하게 군사적으로만 보자면 스웨덴과 핀란드의 나토 가입이 '우려할 만한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면
의문이 생긴다. 러시아와 핀란드의 국경은 1400km에 이르며 더구나 여기에는 극소수의 러시아군만이 배치되어 있었다.
또 핀란드 국경에서 러시아의 제2도시 상트페트르부르크까지는 150km, 모스크바까지 최단 거리는 790km에 못 미치고,
이미 나토에 가입한 라트비아는 590km에 못 미치며, 기존 나토 가입국인 노르웨이 국경에서
러시아군의 핵 억지력을 담당하는 콜라반도의 세베로모르스크 원자력 잠수함 기지까지는 230km에 못 미친다.
단순히 미사일 도달 시간이 문제라면 아직 가능성의 문제에 불과한 우크라이나보다도 이 가맹국들이 더 위협적이다.
라트비아와 노르웨이는 이미 정식 나토 가입국이니까 다른 문제라고 하더라도 핀란드와 스웨덴에는 가입 전에
선제공격을 가한다든지 경제, 에너지 제재 등의 위협을 해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현실에서 푸틴은 '걱정할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푸틴의 야망설과 그 한계
반대로 생각해보자. 스웨덴과 핀란드의 나토 가입이 조건부 수용 가능한 것이라면
러시아는 왜 우크라이나에 대해서도 같은 반응을 보이지 않은 것일까?
푸틴의 주장은 '우크라이나는 러시아를 흔드는 반러시아 거점으로 나토에 이용되고 있고',
'러시아어와 러시아 문화에 도전하고 자신들이 러시아 세계의 일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박해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는 2021년 7월 12일 푸틴의 논문과 2022년 2월 21일의 비디오 연설에서 그가 한 말과 거의 같다.
따라서 스웨덴과 핀란드의 나토 가입 문제는 우크라이나와 같은 선상에서는 논할 수 없다는 것이 푸틴의 주장이다.
따라서 문제의 본질은 나토 확대가 아니라 우크라이나라는 국가를 러시아와의 관계에서 어떻게 위치 지을까 하는 점에 있다.
쉽게 말해서 '자신의 대에서 루스 민족의 통일을 이룬다'는 민족주의적 야망 같은 것이 있다고
상정하지 않고서는 스웨덴과 핀란드의 나토 가입을 둘러싼 푸틴의 행동거지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이렇게 본다면 나토 불확대 등 서방에 대한 요구는 외교적 속임수에 지나지 않으며
(합의 문서안을 공표하면서 교섭을 압박하는 수법은 외교적 상식에 반한다는 점은 제2장에서 언급했다)
푸틴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집착이 더 강한 동기라고 말할 수 있다.
이제까지 여러 번 언급한 푸틴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제2차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더 크게 영향을 미친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고 생각한다.
현시점에서 이러한 생각은 필자의 상상에 불과하다. 이 전쟁에 개전에 이르게 된 상세한 의사결정 과정이 밝혀지고 나면
사실은 푸틴의 머릿속에는 나토 확대에 대한 공포가 가득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민족주의적인 동기가 중심이었을 수도 있다.
또는 그 두 가지가 푸틴의 머릿속에서 서로 분리할 수 없이 이어져 있고 나토에 가입한 우크라이나가 '반러시아 거점'이 된다고
정말로 믿고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
푸틴의 민족주의적 야망성로는 이 전쟁이 왜 2022년 2월 24일에 시작되어야 했는지 설명할 수 없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군사적으로 보아도 돈바스의 인도적 상황을 보아도 러시아가 즉시 개입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다.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이 임박한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푸틴에게 개전을 결단하게 한 동기가 무엇이었는지는 현시점에서 잘 모르겠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언젠가 러시아 정치체제가 크게 변했을 때 역사 연구자들이 이 전쟁에 대해 무엇을 발굴해낼 것인가?
지금은 그날이 오기를 기다릴 수 밖에 없다.
출처: 우크라이나 전쟁의 해부, 고이즈미 유 저, 김영배 옮김, 허클베리북스, 2023년, 194~198쪽
*고이즈미 유는 일본 외무성 국제총괄 정보분석관, 러시아 과학 아카데미 객원연구원, 現 도쿄대학첨단과학기술연구센터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