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있어도 굵은 땀방울이 줄줄 흘르던 유난히 더웠던 그 해의 여름
남자들이 짐을 옮기고 있습니다.
이사의 마무리 단계에서 실시하는 계단청소를 미리 하는 것을 보니 평범한 이사가 아닌 것 같습니다.
마스크도 착용하고 집으로 들어가기 전 심호흡도 하는 직원들
문을 열자 쏟아져 나온 것은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한 악취였습니다.
마스크를 쓴 제작진도 제대로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심지어 죽은지 2주가 지난 후에야 발견되었습니다.
집은 오랜기간 방치되었기 때문에 악취와 벌레들로 가득했습니다.
직원들의 고객이 이사할 곳은 하늘나라
이들은 우리에게 아직은 조금은 생소한 직업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망 후 오랜 시간 뒤에 발견된 고인의 흔적을 지우고 유품을 정리하는 사람들
'유품정리인'
발견 당시에 고인은 여행가방에 엎드린채로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故 윤정희 씨는 40대 혼자사는 여성이었습니다.
그녀의 마지막 모습은 가족이 아닌 경찰이 발견하게 된 것이죠.
시신은 부검하기로 했습니다.
아직은 고인이 왜 그리고 어떻게 죽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하루 혹은 이틀만에 시신이 발견되면 문제는 조금 간단해집니다.
하지만 발견이 늦으면 늦어질수록 흔적을 지우는데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게 됩니다.
특히 여름엔 더욱 심각해집니다.
누군가는 끔찍하다 하겠지만 유품정리인들에겐 당연한 모습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죽습니다.
부패 역시 죽음의 일부죠.
40대 혼자 사는 정희 씨, 그녀는 과연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아기자기한 장신구들이 많은 것으로 보아서 평소에 꾸미는 것을 좋아하는 여성이었던 것 같습니다.
불과 석달 전만 하더라도 소박한 꿈을 꾸고 미래를 준비하던 일반인이었습니다.
숨진 그녀 곁에 있던 남자의 시계는 누구의 것이었을까요?
유품정리인은 정희 씨가 알뜰한 사람이었을 것 같다고 합니다.
이사한지 얼마 안되었는지 뜯지도 않은 새 물건들이 많습니다.
기념으로 모아두었던 각 나라의 여행 책자들과 각 나라의 화폐들
여행을 좋아했던 그녀에게 유럽여행의 사진들은 추억거리였을 것입니다.
최근에 몸상태가 좋지 않았던 모양인지 다 먹지 못한 한약들도 있습니다.
건강검지도 받았는지 지켜야할 수칙들도 빼곡히 적어놓았죠.
생전에 정희 씨를 만난 적은 없지만 유품을 보면 어떤 사람인지 보입니다.
5년 경력의 유품정리인 눈에 정희 씨는 어떤 사람일까요?
왜 그들은 정희 씨의 죽음을 곧바로 알아채지 못했을까요?
테이프는 외로웠을 그녀가 불렀을 노래, 나와 같다면이 들어있습니다.
'나처럼 울고 싶은지 왜 자꾸만 후회되는지 나의 잘못했던 일과 너의 따뜻한 마음만 더 생각나... '
정희 씨의 안타까운 인생이 하나씩 사라져 갑니다.
그 거리는 가깝지만 먼 거리입니다.
'천국의 이삿짐'을 싸는 일이라고 표현합니다.
늘 죽음 곁에 있지만, 일 속에서 삶을 배운다는 이들
죽음을 정리하는 유품정리인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죽음을 바라보는 시선만큼이나 차갑습니다.
가까운 가족들도 죽음과 맞닿은 이 직업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자신의 작업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유품정리인도 가족들의 원망 앞에서는 흔들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그는 여전히 죽음의 곁을 지키고 있습니다.
유품정리인의 가슴에 지울 수 없는 한 이야기가 있다고 합니다.
거동이 불편했던 할머니는 이를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식들에게 자신이 짐이 될까봐, 병조차 알리지 않았던 늙은 부부
이들의 죽음은 한 달이 지나고서야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그 죽음을 마무리한 사람이 바로 유품정리사였죠.
죽음의 풍경 속에서
내일 입을 옷을 다리고, 아침에 먹을 밥을 지었던 사람들
오늘 사용했던 물건이 내일의 유품이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입니다.
그녀의 유품정리가 거의 다 끝나갑니다.
남은 것은 부피가 큰 가구와 가전제품들입니다.
그런데 마지막 짐 속에서 정희 씨의 휴대폰이 발견됩니다.
마지막 통화기록은 정희 씨가 시신으로 발견되기 한 달 전...
7개의 연락처 중에서 그녀가 제일 많이 통화를 했던 번호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녀는 매우 당황스러워하면서 슬퍼했습니다.
후배의 이야기에 따르면 정희 씨는 최근에 술을 자주 마셨다고 했습니다.
그날도 취해있었습니다.
숨지기 얼마 전부터 술 없이는 잠을 자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맨 정신으로는 견디기 힘든 일이 그녀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아버지의 것이었습니다.
지갑 속에 품었던 그리움도 아버지를 향한 것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치매를 앓고 계셨는데, 그녀의 전부였던 아버지가 석 달 전에 돌아가셨던 것이죠.
아버지의 유품인 시계를 바라보면서 술로 슬픔을 달랬을 정희 씨
미혼이었던 그녀 곁에는 슬픔을 위로해주고 아픔을 보듬어줄 가족이 없었습니다.
경찰의 조사결과 정희 씨는 술에 취해 쓰러져 돌연사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습니다.
너무도 외로운 죽음
마지막으로 보겠다며 후배가 정희 씨의 집을 찾아왔습니다.
죽음의 현장에 오니 언니가 죽었다는 사실이 오히려 믿기지 않아 보였습니다.
이렇게 홀로 죽어간 우리 이웃의 죽음은 단지 죽은 사람만의 비극일까요?
죽음이 늦게 발견되면 될수록 참혹해지는 것은 오히려 이웃일 것입니다.
정희 씨의 평생은 단촐하게 1톤 트럭에 다 실렸습니다.
그녀의 평생은 소각되어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정희 씨의 마지막 이사, 천국으로의 이사는 이렇게 끝이 났습니다.
그가 살던 작은 쪽방 안에 연락이 끊긴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쌓여있었습니다.
20cm의 벽을 사이에 둔 이웃들은 2주 동안 그의 죽음을 몰랐습니다.
유품정리인은 고인의 마지막 이사, 천국의 이삿짐을 싸기 시작합니다.
[출처]SBS 궁금한 이야기 Y
138회(2012.10.05) - 유품정리인 "천국으로 이사가는 날" 편
죽음보다 죽은 후 내 취향이 까발려 지는게 두려워
에휴.. 당장 여러 지인과 이웃이 스치네요. 친족 이외 한분이라도 피상적인 인사를 넘어 서로 속내 터놓고 안부를 확인하는 자리를 가져볼까 합니다.
에휴.. 당장 여러 지인과 이웃이 스치네요. 친족 이외 한분이라도 피상적인 인사를 넘어 서로 속내 터놓고 안부를 확인하는 자리를 가져볼까 합니다.
죽음보다 죽은 후 내 취향이 까발려 지는게 두려워
D 드라이브는 지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