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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즈는 침묵하고 있었다.
그의 상징과도 같은 기묘하면서도 나태한 듯한 미소는 역시나 샌즈의 얼굴에서 떠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지만, 그것은 평상시의 그 느긋한 웃음과는 확연히 다른 것이였다.
아니, 그저 앞으로 닥쳐올 일들에 대해서 아주 조금이라도 냉정해지기 위한 최후의 발악에 지나지 않을지도 몰랐다.
그래도 그는 내색하지 않았다. 여전히 양손을 주머니에 찔러넣은 채 씩 미소짓고 있을 뿐.
"이상하네..."
그의 앞에서 누군가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는 말투로 중얼거렸다.
"왜 아직도 버텨?"
그 '누군가'는 또다시 한 번 정말이지 순진무구한 호기심으로 가득 찬...아니, 그런 것 같다는 착각을 하게 하는 부드러운 소프라노톤의 목소리로 다시 한 번 질문을 던졌다.
그래도 샌즈는 여전히 씩 웃기만 했다.
상대가 뭐라고 하는지는 별로 신경쓰이는 일도, 신경쓰고 싶은 일도 아니였다.
물론 어디까지나 상대의 '말'만 그렇다는 얘기지, 상대가 지금까지 계속해서 해왔고,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같은 상대의 '행동'이라면 얘기가 좀 달랐다.
그 묘하게 화사한 미소탓에 환하게 노출되어 새하얗게 빛나고 있던 샌즈의 이빨사이로, 한 줄기의 핏물이 소리없이 흘러내렸다.
"이런, 참았는데도...'골' 때리게도 그냥 흘러내려버리네."
하지만 그 당사자는 어깨를 한 번 으쓱하며 그렇게 중얼거릴 뿐이였다. 그 핏줄기가 새파란 점퍼 위를 따라 흘러내려 조용히 바닥을 적시는 장면을 보면서도, 샌즈의 말은 꼭 오늘의 저녁메뉴가 (또다시) 스파게티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처럼 아주 일상적인 어조에 가까웠다.
그래, 좀 '골' 때리는 상황이긴 했다.
갑자기 이곳에 나타난 인간 살인마 한 명에게 수도 없이 많은 이웃들이 처참하게 살해당했다. 슬프게도 자기 동생도 거기에 끼여있었다. 요리는 한다고 하는데 스파게티만 이상스럽게 고집하고, 좀 '골' 때릴 정도로 착해빠진 녀석이였다는 점 빼면 정말 좋은 (뼈다귀이자) 가족이였는데, 살인마 녀석을 해치지 않으려다가 오히려 살해당해버렸다. 아이러니했다.
저 움직이는 재앙을 막을 수 있을 거라고는 기대하지조차 않는다. 처음에는 이기는 것 같겠지만, 결국은 이 끝이 없는 싸움에서 쓰러지게 정해져 있는 건 자신이였다.
그런데도 그가 버티고 서있는 이유는 딱 하나였다.
자기가 나서서 조금이라도 저 재앙의 발을 묶어놓지 않는다면...돌이킬 수 없을 큰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점은 확실했으니까.
그래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을 뿐이였다.
"어이...꼬맹이."
착잡한 기분을 그 특유의 미소로 억누른 샌즈가 불쑥 말을 꺼냈다.
살짝 뜬 실눈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아이에게 씁쓸한 미소를 건네며, 그는 느긋히 말을 이었다.
"네가...이런 일을 처음엔 하고 싶지도 않았을 거라는 거, 알아."
그래, 그랬겠지.
아마 알고 있었을거다, 처음에는.
"너도...토리엘, 언다인...그 모두들..."
샌즈는 몇초동안 그 다음 할 말을 잊어버린 듯 보였다. 하지만 곧 그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어쩐지 그렇지 않다는 기분이 강하게 들었지만-한 마디로 말을 마무리지었다.
"...그리고, 파피루스도."
샌즈는 지금까지 한 번도 지어보지 않았던 쓰디쓴 미소가 얼굴 전체로 퍼져나가는 것을 느끼면서, 다시 이어나갈 말을 찾았다.
"그러니...제발."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었을텐데. 아니, 자신의 힘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인간이 될 수도 있었을텐데.
결국은 이런 사이로 마주하게 되지 않아도 되었을텐데...
"제발, 다 잊고...전부 내려놔줘. 알겠지?..."
뭔가 할 말이 더 있었는데...아, 그래.
그거.
"...프리스크."
샌즈는 지친 듯이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조용히 뒤의 쓸데없이 화려한 벽에 몸을 기댔다.
그리고, 기다리기로 했다. 최소한 생각은 할 수 있게 숨통은 틔어주어야 되지 않겠는가.
몇분이 지났을까, 잠시동안 눈을 지그시 감고있기 그대로 서있기만 하던 샌즈는 실눈을 가늘게 떴다.
그리고 지쳐서 닳을데로 닳아버린 미소를 지었다.
줄무늬가 있는 푸른색 스웨터를 걸치고 있는 자그마한, 단발머리와 실눈이 특징적인 꼬마아이.
꼬마의 한 쪽 손에 들린 시퍼런 빛깔의 식칼이 이상하게 벌벌 떨리고 있다는 걸 샌즈는 뚜렷히 알아볼 수 있었다.
얘기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린 건 아니였던 모양이였다.
다행히도.
샌즈는 착잡한 표정으로-그래봤자 얼굴에 남는 건 이 기묘한 미소밖에 없었지만-천천히 꼬마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꼬마의 조그마한 몸집에 맞춰 가만히 무릎을 끓고, 주머니에 찔러놓고 있던 양쪽 손을 꼬마의 양 어깨에 올려놓는다.
계속해서 떨리고 있긴 하지만 아직도 꼬마의 손아귀에 꽉 잡혀있는 식칼을 보며 샌즈는 쓰게 미소지었다.
그리고는, 그 저주스러운 칼을 잡고있는 꼬마의 손가락을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떼어내기 시작했다. 꼬마는 흠칫하는듯 했지만 최소한 샌즈의 행동을 거부하지는 않고 있었다.
지지대를 잃은 칼이 마침내 땅바닥을 향해 떨어진다.
쩔그렁, 거리는 이상할 정도로 가벼운 소리와 함께 땅바닥을 구르는 칼을 거추장스럽다는듯이 한쪽 발로 저 멀리 밀어낸 샌즈는, 다시 꼬마를 향해 눈을 돌렸다.
넋을 잃은 채 그 자리에 못박히듯이 서있기만 하는 꼬마.
애틋함과 증오가 뒤섞인 기분으로 꼬마를 잠시 응시하는 샌즈. 먼저 그 침묵을 깬 것은 놀랍게도 지금까지 아무 말도 없었던 꼬마 쪽이였다.
"샌...즈."
순수한 악의에 물들어있었던 아까의 그 소프라노톤과 이 기어들어가는 자그마한, 여린 톤이 같은 인물의 목구멍에서 흘러나온 소리라고 하면 누가 믿기나 할까. 하지만 그 광경을 눈 앞에서 직접 보고 있는 샌즈는 충분히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아니, 그 이유가 뭐든지 간에 당연한 일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하룻동안 별 일을 다 겪어본 입장으로서 말이다.
샌즈는 여전히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꼬마의 어깨에 올려져있던 손을 내렸다.
대신 꼬마를 자신의 품에 조심스럽게 껴안았다.
맙소사, 이런 건 파피한테도 해준 적이 없는 것 같은데 말이야, 골때리네,라고 샌즈는 머리 한편으로 생각했다. 그 생각과는 반대로 꼬마를 감싸고 있는 두 팔은 오히려 꼬마를 더욱 더 꼭 껴안고 있긴 했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을듯 했다.
"괜찮을거야."
샌즈는 지친 듯이 중얼거렸다.
"괜찮고 말고..."
스파게티, 파피루스, 빨간색 머플러, 인간꼬마, 토리엘, 언다인, 그릴비...그 모든 것들이 샌즈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인간이 괴물들이 있는 지하계로 오더라도 충분히 평하롭게 같이 살 수 있을거라고 토리엘은 자주 말했다. 자기 동생이였던 파피루스도 내심 그녀의 말에 동조했다는 걸 샌즈는 충분히 알고 있었다.
슬프게도, 그건 거짓말일 뿐이였다.
아무 확신도 없으면서 희망과 낙관에 사로잡혀있는 주장은 거짓말과 다를 게 없다는 건 결국 당사자인 토리엘, 그리고 파피루스의 죽음으로 증명되고 말았다.
하지만 자신은 그들이 거짓말을 했을 뿐이라고 말할 자격이 될까.
한 때 이 꼬마에게 약간의 믿음을 가졌던 자신이,
아니, 지금 이 꼬마에게도 죽음을 선물할 수 밖에 없으면서도 괜찮을거라고 중얼거리는 자신이,
누군가가 거짓말을 했다고 말할 권리가 있을까.
"괜찮을거야...그래..."
꼬마의 스웨터를 적시고 있는 눈물-자신의 것은 아니였다, 왜냐하면 자기는 눈물을 흘릴줄 모르니까-을 안쓰럽게 바라보며 샌즈는 다시 한 번 중얼거렸다.
다 괜찮을거라는 그 거짓말을...
친구가 될 수 있었을 인간에게,
한 번 더 반복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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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 카테고리가 없어서 잡담으로 던져버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