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형욱의 뷰티풀게임] '국대 감독 유력' 판 마르베이크에 관해 궁금한 8가지 것들
1. 괜찮은 선수
드벤터 출신으로 1969년 고향팀 고어헤드 이글스에서 성인 무대에 데뷔한 뒤 1988년 선수 은퇴했다.
2. 준수한 감독
선수를 그만둔 뒤에는 코치 생활을 거쳐 선수 은퇴 이후 10년만에 감독 지휘봉을 잡는다. 1997/98 시즌 도중 약체인 포르투나 시타드를 맡아 리그 7위로 이끈 그는, 이듬해 팀을 네덜란드컵 준우승으로 이끌었고 1년 뒤 명문 페예노르트 감독으로 부임한다. 페예노르트에서도 탄탄대로는 이어졌다. 첫 시즌 팀을 2위로 이끈 그는 이듬해 UEFA컵(현 유로파리그)에서 페예노르트에서 사상 두번째 우승컵을 안긴다. 도르트문트와의 결승전에서 판 호이동크, 오노 신지, 욘 달 토마손, 판 페르시, 요한 엘만더 등을 앞세워 3-2 승리를 거둔 것이다. 여세를 몰아 2004년 여름 도르트문트 지휘봉을 잡으며 독일 분데스리가에 입성했지만 성과는 좋지 않았다. 30퍼센트 대의 승률로 리그 중위권을 맴돌았고 두번째 시즌 도중 감독직을 내려놨다. 이후 페예노르트로 돌아와 한 시즌을 마친 뒤 2008년 여름 네덜란드 대표팀 감독에 부임했다. 판 바스텐 감독의 뒤를 이어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그는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준우승의 성과를 낸다. 네덜란드가 월드컵 결승에 오른 것은 요한 크루이프 시대 이후, 그러니까 1978년 이후 32년만에 처음이었다. 그리고 2011년 8월에는 네덜란드를 FIFA 랭킹 1위 자리에 올려놓는다. 하지만 이 때가 마르베이크 감독의 (현재까지는) 전성기였다. 2016년까지 계약을 연장했지만 유로2012에서의 부진한 성적(3전 전패)으로 대회 탈락과 함께 대표팀 감독직을 놓았다.
3. 최근 2년의 행적
2013년 9월 독일 분데스리가의 명문팀 함부르크에 부임한다. 하지만 시즌 도중 부임한 함부르크는 여러 가지로 좋지 않은 상태였고 마르베이크 부임 효과는 오래 가지 못했다. 후반기 들어 연전연패한 함부르크는 급기야 리그 최약체로 꼽히는 브라운슈바이크에게 2-4로 대패하며 리그 6연패 포함 8연속 패배라는 참담한 부진에 빠졌다. 결국 마르베이크 감독은 부임한 지 5개월만에 승률 23%의 기록을 남기고 팀을 떠나게 된다. 이로써 마르베이크 감독은 독일에서 보낸 두 번의 임기를 모두 시즌 도중 하차로 마무리하는 아픔을 겪는다. 이후 마르베이크 감독은 1년 6개월 동안 감독직을 맡지 않고 있다.
4. 직설적인 남자, 공격적인 축구
마르베이크 감독은 직설적인 사람이다. 어느 팀을 지휘하든 선수와 스탭들에게 자신이 원하는 바를 직접적으로 전달한다. 에둘러 표현하는 법이 없다. 기자들이 어설픈 질문을 하면 “그건 내가 10번도 넘게 했던 얘기요”라며 면박을 주기도 한다. 마르베이크 감독의 지인은 한 인터뷰에서 “그가 말한 원칙을 지키기만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선을 넘는 순간 절대로 봐주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좀처럼 웃는 법이 없는 그는 팀 운영도 굉장히 체계적이고 꼼꼼하게 한다. 이러한 성향은 축구 스타일에서도 묻어난다. 빠른 공수전환, 전방압박과 역습 축구 등 최근 축구의 트렌드를 진작부터 사용해왔는데 그 어떤 감독 못지 않게 많이 뛰는 축구를 추구한다. 과거 네덜란드가 ‘아름다운 축구’에 대한 로망을 금과옥조처럼 떠받들고 있을 때조차 마르베이크는 실리 축구를 주창해왔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당시 네덜란드는 이전과 달리 보여주기보다는 승리하는 데에 초점을 맞춘 축구를 펼쳤다. 물론 네덜란드 축구팬들은 실망했지만 마르베이크는 성과로 말했다. 언젠가 마르베이크는 유로2008 당시의 네덜란드 대표팀에 관해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멋진 축구를 펼치며 이탈리아도 누르고 프랑스도 꺾었지만 그게 전부였다. 멋진 축구도 좋지만 내가 원하는건 컨디션이 나쁠 때조차 승리하는 팀이다.” 그는 늘 스스로를 공격 축구를 지향하는 감독이라 말하지만 ‘화려함’을 추구하는 것과는 분명 거리가 있다. 공격에 방점을 두지만 흔히들 말하는 네덜란드식 '섹시 축구'를 보여주는 지도자는 아닌 셈이다.
5. 노 타이, 버스터 키튼
짧은 백발이 매력적인 마르베이크 감독은 예나 지금이나 절대로 넥타이를 매지 않는 패션으로 유명하다.
6. 한국과의 인연
마르베이크 감독은 2003년 6월에 한국을 찾은 적이 있다. 당시 페예노르트 감독이던 마르베이크는 소속 선수 송종국의 친정팀인 부산과의 친선 경기를 위해 팀을 이끌고 내한했다. 6월 6일 부산에서 열린 경기는 부산의 1-4 승리로 끝났다.
7. 마르크 판 봄멀
판 봄멀은 작은팀 포르투나 시타드에서 뛰던 1997년 이 팀에 부임한 마르베이크 감독과 인연을 맺었고 이때 만난 마르베이크 감독의 딸 안드라 판 마르베이크와 결혼해 2남 1녀를 뒀다. 마르베이크 감독은 대표팀 감독 시절 판 봄멀이 부진할 때도 대표팀에 발탁했다는 이유로 일부의 비난을 받은 적도 있다. 하지만 판 봄멀 스스로 워낙 뛰어난 선수였기 때문에 두 사람이 대표팀에 함께 있는 것을 트집잡는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8. 거스 히딩크
페예노르트 감독 시절, 라이벌인 PSV 감독으로 히딩크 감독을 상대한 적이 있고 지난 2012년에는 히딩크 감독이 마르베이크의 대표팀 후임 감독으로 거론된 것 정도가 눈에 띈다. 직설적인 언변이나 축구 스타일은 두 감독이 닮아있는 편이다. 선수들에게 온전한 자율을 부여하기 보다는 적절한 통제로 팀을 이끄는 것도 비슷하다. 히딩크 감독은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마르베이크 감독의 축구를 가리켜 “리얼리즘이 ‘뷰티풀 게임’이라는 이상을 대체했다”고 평하며 “전성기 시절의 독일 선수들처럼 플레이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눈이 즐거운 축구는 아닐지 모르지만 비범한 수준의 경기를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마르베이크 감독의 축구에 대한 직접적인 칭찬이다. 한편, 두 사람은 커리어 상에도 공통점이 있다. 히딩크 감독은 감독 초년병 시절 PSV를 유럽 정상에 올려놓은 뒤 네덜란드 대표팀 감독을 거쳐 레알 마드리드와 같은 명문팀을 맡았다가 실패를 맛봤다. 그러다 권토중래를 꿈꾸던 휴식기에 대한민국 대표팀을 만나 자신의 커리어를 반등시켰다. 페예노르트에서의 성공, 분데스리가에서의 연이은 실패와 네덜란드 대표팀 경력까지, 그리고 1년 넘게 쉬면서 반등을 노리는 마르베이크 감독의 상황 또한 대한민국 부임 당시의 거스 히딩크와 닮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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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수 기술위원장이 출국하고 다음날 바로 입국한뒤에 브리핑한다는거 보면 거의 확정일거 같습니다.
아무쪼록 열심히 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