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의 모든 사진은 구글에서 검색한 것이고 동영상은 유튜브에서 찾은 것임을 먼저 밝힙니다]
원조 판타지스타 로베르토 바조의 별명이 '신성한 말총머리'죠.
사실상 최고의 찬사가 포함된 별명인데
이 별명이 붙은데는 단순히 축구 실력 때문만이 아닙니다.
그가 왜 이탈리아인들과 세계인들에게 아직도 사랑을 받는지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써볼게요.
1. 우선 로베르토 바조는 선수 생활 초반 즉 1989,90 시즌을 끝으로
피오렌티나 -> 유벤투스로 이적하죠.
정확히는 당시 피오렌티나 구단 고위층에서 유벤투스로 로베르토 바조를 팔아버린 겁니다.
피렌체에서는 대충격에 빠집니다.
팀의 에이스가 당시 월드 레코드 이적료 120억원에 제일 사이가 안 좋은 비안코네리가 되자
피렌체 시민들이 거리로 몰려나와 시위를 시작합니다.
지금은 이적료가 천 억원 대지만 지금으로부터 31년전인 1990년 로베르토 바조에 의해 이적료 100억 시대가 열렸습니다.
아무튼 그 시위로 피렌체에서 다친 사람만 50명, 피오렌티나 구단은 이 사건으로 고위관계자 상당수가 쫓겨나는 등 난리가 납니다.
로베르토 바조도 유벤투스로 가기 싫어했습니다.
이탈리아 언론에 로비가 이적을 거부한다는 뉴스도 나왔죠.
그러나 구단 고위 관계자들끼리 오피셜 계약이 되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유벤투스로 갑니다.
이적 후 처음으로 피렌체에 갔을 때 경기장은 완전히 만원이었고
로베르토 바조에 대한 피렌체 사람들의 감정은 상당히 복잡했죠.
엊그저께까지 피오렌티나의 떠오르는 태양이 갑자기 제일 사이 나쁜 구단의 10번이 되어 나타나
함성과 비난이 교차하는 상황에
자존심 대결로 되어버린 경기는 점점 거칠어지고 결국 유벤투스가 페널트킥을 얻죠.
근데 페널티킥 전담 키커로 예정되어있던 로비가 페널티킥을 차기를 거부합니다.
겉으로는 '피오렌티나 골키퍼가 자신의 차는 방향과 버릇을 알고 있다'는 이유였는데,
속으로는 자기가 사랑하는 피오렌티나에 대한 마지막 매너를 지킨 거죠.
그런데 로비 대신 찼던 유벤투스의 키커 데 아고스티니의 페널트킥이 막혀버립니다.
유벤투스의 당시 감독 마이프레디가 로비를 교체한 다음 운동장에 앉히지 않고 선수대기실로 바로 내려보냈는데
그 때 관중석에서 누군가 피오렌티나의 스카프를 걸어가는 로비에게 던집니다.
로베르토 바조가 그걸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집어들었죠.
그리고는 피렌체 관중들이 그에게 엄청난 박수를 보내며
피오렌티나와 로베르토 바조는 아름다운 이별을 하게 됩니다.
이게 바로 그 스토리의 동영상입니다.
[출처 : 유튜브 matrixx1908]
2. 이건 로비가 피렌체를 떠난지 한참 후의 일이고 심지어 은퇴후의 일인데
로베르토 바조가 피오렌티나에서 뛸 때 1989년에
듀오로 같이 뛴 스테파노 보르고노보라는 선수가 있었습니다.
로비 옆의 이 선수가 훗날 '근 위축성 측삭 경화증' 으로 투병생활을 하게 됩니다.
로베르토 바조는 2008년, 보르고노보가 뛰었던 피오렌티나와 AC밀란 출신 레전드들에게 연락을 하여
축구 경기를 개최하였고, 그 수익금을 보르고노보 재단에 기부하였으며
경기 시작전 보르고노보의 휠체어를 직접 밀면서 옛 동료에 대한 우정을 지키죠.
로베르토 바조가 친선 경기 개최를 앞장서자 그의 레전드 동료들이 전부 후원세력이 되었죠.
사진 상으로 로비 우측에 알베르티니, 그 옆에 바레시, 그 옆에 리피 감독, 보르고노보 옆에 앉은 사람은 말디니.
그리고 몇 년후 보르고노보 선수는 세상을 떠납니다.
3. 로베르토 바조는 아주 오랜 기간 세계식량계획, 유네스코의 친선대사를 역임하고 있습니다.
로베르토 바조는 아이들을 사랑하고, 아시아와 남미 등 어려운 나라에 직접 가서 구호 활동을 하죠.
그리고 온라인으로 구호를 독려하죠.
아이티 대지진 구호 활동, 희귀병 환우 돕기 활동,
그리고 아웅산 수지 석방 운동 등에 앞장서
2010년에는 달라이 라마, 류샤오보, 아웅산 수지 등 노벨평화상 수상자들의 추천으로
노벨 평화 정상 회의상 (Peace Summit Award)을 일본 히로시마에서 수상합니다.
4. 비교적 최근인데 2017년 이탈리아의 노르시아 지방에 지진이 납니다.
로베르토 바조는 뒤도 안돌아보고 지진 피해 지역으로 달려갑니다.
앞서 말했듯 그가 국제 구호활동에 앞장서기도 하지만
자신이 앞장서면서 다른 이탈리아 사람들 특히 정치인들이 지진 피해지역에 더 관심을 가질 것이므로 그렇게 한 것이죠.
[동영상 출처 : 유튜브 Mister Arnauna]
이 때 로베르토 바조의 50회 생일이 겹치는데 그 지역 주민들이 힘든 와중에도 그를 위해 조촐한 생일 파티를 하죠.
5. 그는 선수 시절 엄청난 수입을 거둔 슈퍼스타였죠.
그는 연봉 외에도 30여편의 CF, 방송 출연, 스폰 계약 등의 부대 수입도 엄청났죠.
그는 유벤투스와 볼로냐 시절 동료였던 마로키의 말대로
ㅁㅇ, 이성 스캔들 등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습니다.
로비의 동료들의 말을 종합하면
그와 방을 같이 쓰면 염불 소리만 난다고 할 정도로 불교(정확히는 일본 불교의 종파인 SGI)에 심취한 사람이죠.
로베르토 바조는 몇 년 전 이탈리아 토리노 근처에
같은 불교신자들과 함께 모여 설법을 듣고 기도하고 싶다며 불교문화 센터를 지었죠.
이 때 로비가 굉장히 많은 기여를 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유럽 최대의 불교문화 센터죠.
그는 이 동영상에서 처럼 종교활동으로 마음을 정화하고 있습니다.
[동영상 출처 : 유튜브 milorenteggio]
6. 로베르토 바조가 사랑받는 결정적인 이유는 아내와 가족만 사랑한다는 거죠.
유명한 이야기죠. 1990년에 마돈나가 로베르토 바조에게 호감을 표시했다는 이야기.
마돈나는 1990년 이탈리아 로마 공연 때 로베르토 바조의 유니폼 까지 입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 때 로베르토 바조는 마돈나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듣고 이렇게 말했죠
"나는 사랑하는 아내가 있고, 그 사람과 무덤까지 함께 갈 것이다"
그렇게 그는 아내와 2남 1녀를 두고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이 동영상은 바로 그 마돈나의 로마 공연 모습입니다.
[동영상 출처 : 유튜브 plasbon]
7. 그는 은퇴 직후 세리에 B팀으로부터 감독 제의를 받았지만 거절했습니다.
2010년 경 인터밀란 모라티 회장이 두 번이나 불렀지만 거절했죠.
최근 이탈리아 방송사 몇 곳에서 그를 해설자로 모시려 했지만 거절했습니다.
그는 인터뷰에서 "아직도 솔깃한 제안들이 여기저기서 오지만 나는 주목받는 삶을 살 생각이 없다"고 말했죠.
이건 작년 이탈리아 언론에 나온 사진 한 장입니다.
로베르토 바조가 자신의 집 뒷마당에서 수확한 농작물물 오래된 낡은 자동차에 싣고 있는 사진이죠.
로베르토 바조는 아우디 한 대와 바로 그 30년된 이탈리아의 국민차 판다 그렇게 2대를 타는데
엄청난 슈퍼스타가 그렇게 검소하고 겸손하게 사는 모습을 이탈리아 언론이 일제히 칭송했죠.
그는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슈퍼스타입니다.
그는 엄청난 부와 명예를 가졌지만
자신에게는 엄격하고 검소하게 돈을 쓰지만
국제 구호활동, 종교 활동 등 명분이 있는 소비는 통 크게 쓰죠.
그리고 자신이 나서야 할 때 나서지 않아야 할 때를 정확히 압니다.
물론 그런 체계적인 관리는 로비의 평생 매니저인 페트론이라는 친구가 합니다.
그런 충직한 사람을 곁에 두는 것도 로베르토 바조의 능력이죠.
이렇게 많은 이유로 이탈리아 국민들과 세계의 많은 팬들이
로베르토 바조를 아직도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탈리아의 인기가수 '크레모니니'는 이렇게 로베르토 바조를 위한 헌정곡을 만들어 부릅니다.
파도바 공연에 로베르토 바조를 이렇게 직접 초대하기도 했죠.
[동영상 출처 : 유튜브 Huffpost Italia]
그런 로베르토 바조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가
넷플릭스에서 5월 26일 개봉합니다.
<이 동영상은 넷플릭스가 공개한 로베르토 바조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Il Divin Codino (신성한 말총머리) 의 공식 티저 영상입니다.>
그는 2013년 이탈리아 축구협회 기술위원장을 사임한 이후,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 취임 기념 평화축구대회에 그라운드에 나타난 이후
축구계를 떠났습니다.
그가 다시 축구계로 돌아올지 그건 모르겠지만,
아직도 그의 이야기가 많은 커뮤니티에 올라오는거 보면
아직도 슈퍼스타임을 기쁘게 생각하며
이 글을 써봤습니다.
* 이 글에 첨부한 모든 사진은 Google에서, 동영상은 유튜브에서 검색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