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임 자체에 대한 평가라기보다는 지극히 스토리에 관련된 리뷰글입니다. 사실 영웅전설 시리즈 13년차 팬으로서의 느낌이나 푸념이 대부분이기에 이 시리즈에 관심없는 분들을 배려하지는 못한 부족한 글입니다. 또한 보편적인 평가와도 상당히 거리가 있기때문에 영웅전설에 웬만한 관심이 있지 않으시다면 이 글은 그냥 넘어가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 (스토리 내용에 대한 잘못된 해석이 존재할 수도 있습니다)
얼마전에 후일담까지 클리어했습니다. 받은 건 9월 25일이었는데 어쩌다보니 시간이 좀 오래 걸려 버렸군요. 9월 말 정도까지는 루리웹을 전전했지만 엔딩 본 사람들의 반응이 심상치 않아보여서 스포를 보지않기 위해 인터넷을 피하다가 몇달만에 드디어 마지막 엔딩까지 봤습니다. 그리고 직접 클리어해보니..... 대체 왜 그렇게 논란이 많았던지를 이제서야 알겠습니다.
전형적인 "왕도" 스타일처럼 보였던 이야기였지만 실제로 작품이 마지막에서 보여주고자 했던 주제는 "왕도를 파괴하겠다"는, 마치 약을 빤 듯한 충격적인 시도였고, 기존 영웅전설 특히 영웅전설3 하얀 마녀에서 보여줬던 특정 영웅관을 살짝, 정말 살짝 비틀어서 오히려 기존 영웅관의 완전한 파괴를 도모했던 작품. 그리고 여러 다뤄질만한 큰 논란거리들과 시나리오적인 하자 등등.
좋은 뜻으로나 안좋은 뜻으로나 상당히 하고싶은 말이 많아지는 작품이었는데.....
우선 좋았던 점들부터 말해보자면, 뒷맛은 그렇다치고, 저에게 있어선 일단 결론적으로는 재밌게 했던 작품이었습니다. 확실히 이야기의 스케일은 역대 최대급이었고 컨텐츠 및 연출 등등도 선호하는 편입니다. 또한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장면들도 많았었기에 플레이하면서 감정이 요동쳤던 것도 꽤나 오랜만이었던 것 같습니다. 막간에서 제가 좋아하는 린이 정신적으로 성장하게 되는 장면이라던지 크로우가 죽는 장면 및 그 뒤에 일어나는 일들, 그리고 후일담 최후반부 이벤트 등등. 특히 종장 마지막의 크로우 장면은 정말 안타까웠습니다.
크로우가 죽는 장면은 어느정도 예상했었기에 그의 죽음 자체보다는 그와 사관학교 사람들 간의 관계에 대해서 서글픔을 느꼈던 정도였지만, 마지막에 철혈재상이 살아있었다는 것이 밝혀지고 린이 재상에게 "대체 왜 당신이 살아있지?! 크로우가 저격해서 죽었을테잖아! 할아버지의 원수도 갚지 못하고 크로우가, 그가 해왔던 일들이... 그 자식이 해왔던 일들이! 그 자식의 인생이 전부 쓸데없었다고 하는거냐고?!" 라고 외쳤던 장면에서는 잠시 게임을 멈췄을 정도로 진심으로 울컥했었습니다.
크로우의 할아버지였던 줄라이 시장의 "줄라이 시국이라는 작은 국가와 그 정신 및 전통을 지켜나가고 싶다"는 마음이, 결국 철혈재상의 정치적인 조작으로 인해서 부정되었다는 것. 그것도 아이러니하게도 그 시장을 사랑하고 존경하면서 떠받들어 줬었던 줄라이 시민들 그 자체에 의해서 그가 결국은 축출되고 몰락의 길을 겪게 됐다는 것. 그리고 그런 할아버지의 정신 및 존엄이 철혈재상에게 무참하게 짓밟힌 것을 그 재상에게 그대로 돌려주기 위해서 손자인 크로우는 그의 암살을 준비하면서 여러 시련들과 시체를 넘어왔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아무것도 해내지 못했고 그의 인생은 단지 광대놀음에 불과해졌다는 것까지.
어떤 특정 인물에게 대놓고 암울한 과거가 아닌 비교적 덤덤하지만 현실적이고 정치적인 내용을 보여줬다는 것이 마음에 들기는 했었지만, 그를 통해서 상당한 씁쓸함을 느끼게 됐던 것은 어쩔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재상이 자신의 할아버지에게, 즉 '소국의 의지'에게 가했던 짓을 '제국주의'를 상징하는 철혈재상에게 그대로 되돌려주기 위해서 크로우는 자신의 인생을 모두 바쳤었지만 결국은 좌절되었다는 것과,
크로우를 포함한 재상에게 짓밟혔던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철혈재상이 죽어야 했었지만 그런 테러리스트들도 결국은 재상과 다를바없는 폭력적인 방식을 선택하게 되는 악순환 또한 씁쓸했을 따름입니다. 단순히 그런 테러리스트들을 옹호해줄 수도 없는 상황이니...
린이 철혈재상의 멱살을 잡게됐던 동기는 크로우를 돌려받겠다는 선배들과의 약속, 그리고 섬궤1 1장부터 이어져왔던 크로우와 린 사이의 선후배 관계로써의 유대감도 물론 크게 작용했을테지만,
그것과 함께 린 슈바르처는 크로우(소국의 의지)나 스칼렛(터전 및 삶의 붕괴)의 과거 등을 그들에게 직접 듣게되면서 (비록 그들의 테러행위 자체는 용납못하더라도) 그들의 사정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동정심을 느끼는 모습이 보였으며 이를 통해 그의 철혈재상에 대한 회의감이 점점 더 증폭되어 왔었고, 결국 그런 크로우의 복수 인생이 결국은 완전한 광대놀음을 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그런 린의 회의 및 슬픔이 분노의 형태로써 폭발하게 됐던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물론 린이 철혈재상이 죽지않고 살아있다는 것 자체에 대해서 분노한 것은 절대 아니고, 그보다는 철혈재상이 그 사람들에게 가해왔던 폭력, 그리고 그에 대항하기 위해서 복수를 준비해왔던 그 피해자들의 인생 또한 재상에 의해 결국은 아무 의미가 없게 됐다는 사실 자체만에 대한 린의 허무적인 폭발이라고 봐야될까요.
아무튼 린이 철혈재상의 멱살을 잡는 장면은 저에게 있어서는 섬궤2를 하면서 가장 슬펐던 부분들 중 하나였습니다. 또한 그런 철혈재상이 사실은 자신의 부친이라는 것과 결국 그에 의해 이용당하게 된다는 아이러니함까지도.
아무튼 여기에 대해서는 이제 각설하고..... 다른 분들은 어떠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일단 섬의 궤적2를 단순한 재미나 감동 측면에서는 꽤나 만족하는 편입니다. 어디까지나 결과적으로는 좋은 경험했다고는 생각하지만.....
여러 큰 논란들과 더불어서 제가 개인적으로 가장 아쉬웠던 점들까지를 생각해보면, 이 섬의 궤적2라는 이야기는 참 심란한 작품이 아닐 수 없었던것 같습니다.
어쨌든 여기부터는 본문에서 다루기로 하고 일단은 글을 써나가야 될 것 같습니다. 종장 이전에는 그렇게 크게 다루고 싶은 논제는 없기에 종장쪽에 실질적인 내용이 집약되어 있습니다.
그렇기에 만약 내용이 너무 쓸데없이 길다싶으시다면 그냥 다 생략하고 종장 쪽 내용만 보시는 것도 추천드립니다.
(어쩌다보니 글이 마치 일기장 형식처럼 되어버렸지만 부디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1부
총 3파트로 나뉘어져서 각 파트마다 흩어졌던 동료들을 찾아 어떤 지역으로 찾아가게 되고, 그러면서 여러 사건들과 부딪히게 된다는 것이 1부의 내용이다. 일단 이야기의 전체적인 흐름에 있어서는 딱히 문제제기 하고 싶진 않고 전체적으로는 만족하는 편이다. 흩어진 동료들을 한명씩 만날때마다 가슴이 짠했고 마키어스 잘있었능가 스케일 크고 긴장감 넘치는 사건들이 초반부터 끊임없이 계속 터져줘서 즐겁게 플레이했던 편.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전작 섬의 궤적1을 그런 종결 방식으로 끝냈던 것이 긍정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본다.
다만, 세부적인 부분에서 비슷한 패턴의 지나친 반복이나 사건들이 서로 교차할 때의 타이밍적인 우연성 등의 문제점들이 눈에 띄었는데,
A. 위험이 닥쳤을때 특정 어른 격의 캐릭터가 와서 도와주는 패턴의 지나친 반복
20년전의 영웅전설3부터 꾸준히 나와줬던 단골 패턴이며 어찌보면 영웅전설이라는 타이틀을 대표하는 (나름 긍정적인 의미로써의) 클리셰인 것은 맞다. 사실 전작들도 이런 패턴들이 꽤 많았기에 유저들의 구설수에 오르긴 했었어도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크게 다가올만한 부분까지는 아니었었다. 하지만, 이번 섬의 궤적2에서는 그런 패턴이 지나치게 많이 사용된다.
세보지는 않았지만 거의 이런 패턴들이 십수개도 넘게 반복된다고 느꼈고, 더군다나 이런 패턴은 서장 도입부부터 종장 최종던전까지 정말 꾸준히도 많이 나왔다. 물론 이런 패턴은 새로운 캐릭터가 등장할때 그냥 등장시키는 것보다 플레이어에게 강한 임팩트를 줄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것은 패턴화되지 않을때에만 유효하다. 이런 패턴의 반복으로 인해 발생되는 진부함을 피하기 위해서 팔콤은 좀 더 신선한 등장 연출을 연구해야 했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사실 몇몇 인물들은 그냥 평범하게 등장시키는 것도 괜찮았을 것이다.
또한 앞에서 말했듯이 종장 최종던전에서도 이런 패턴들이 반복되는데, 아마 이 부분에 있어서는 하늘의 궤적 SC와 벽의 궤적의 최종던전 패턴을 피하기 위해서 그런 방식을 채택했다고 본다. 이전 최종던전들에서는 "너무 길고 늘어진다", "발터와 같이 기절한 적들을 왜 그냥 내버려두고 가는가?" (사실 이건 급박한 상황이라서 일단 두고간 것이고, 또다른 나름의 이유또한 부여되어 있긴하다) 등의 의견들이 있어서, 좀 더 에픽하게 만들겸 그런 식으로 만들었던 것 같기도 한데 사실 이것은 영웅전설3의 최종던전인 루드성의 패턴과 거의 완전히 일치하기는 한다.
(각 파트의 마지막마다 기신전이 벌어지게 되는 패턴의 반복 문제도 있긴하지만, 그 부분은 일단 이 섬궤2가 그래도 게임이기 때문에 그런 구조를 취한 것이라 치고 일단은 넘어가기로 하겠습니다)
B. 복수의 사건들이 서로 겹칠때의 타이밍적인 우연성
1번과도 어느정도 연관된 부분부터 보자면 우선 1부에서는 샤론 등장씬과 사라 등장씬의 경우가 그러하다. 샤론이야 워낙 신출귀몰한데다 이리나의 명령을 받고 간 것이기도 하고, 사라는 사실 왠지 납득가지 않는다 아무튼 둘 다 오게된 개연성에 대해서는 나름 일단은 인정하는 편이다. 하지만 전작에서도 그랬었듯이 그들의 타이밍이 항상 아주 절묘하게 맞아떨어지긴 하는데, 사실 이건 엄밀하게 보자면 타이밍 문제라기 보다는 패턴 문제에 가깝기 때문에 1번에서 이미 언급했던 것으로 치고 일단 넘어가기로 했다.
(여담이지만, 벽궤의 단장에서도 신수 OOO가 로이드를 위기에서 구해줬을때 로이드가 "타이밍이 너무 좋은거아냐?!"라는 개그를 친 것을 보면 시나리오 작가도 이 부분에 있어서는 스스로 자각하고 있기는 한 것으로 보인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그 이외에도 극적인 전개가 몇몇 눈에 띈다. 첫번째로 1부 3파트에서 주인공들이 라우라와 엠마를 데리고 레그람으로 돌아갈때, 하필 그 날짜 그 시간에 영방군의 주요 장교들이 레그람에 방문했었던 장면도 그 중 하나였다. (만약 그 장교들이 주인공들이 올때를 노려서 방문한 것이었다면 할말이 없지만)
마지막으로 3파트 최후반부에서 린과 유시스가 서로 결투를 끝냈을때 결사 인물들이 오게되고 전투 -> 전투가 끝난 뒤에 사라가 난입 -> 그리고 맥번이 각성하려 하자, 요새를 시찰하고 돌아오던 알바레아 공작과 기갑병들이 와서 기신전 시작.
물론 그것의 인과적인 개연성 자체는 준수한 편이다. 결사 인물들은 이미 마을에서부터 그들을 계속 지켜보고 있었으니 결사가 오기까지의 개연성과 타이밍에 있어서는 문제없으니 사실 다룰 필요가 없고, 알바레아 공작이 요새쪽을 확인하러 나갔을 때 유시스가 저택에서 나갔던 것이기에 결국 가도에서 조우하게 되는 것은 맞다.
하지만 이 또한 역시 사건들이 갑자기 너무 급박하고 연속적으로 흘러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런 연출은 순기능과 역기능이 모두 존재한다. 일단 순기능은, 여러 긴박한 사건들을 한꺼번에 진행시킴으로써 긴장감을 놓지 않게 할 수 있다는 것이고, 반대로 역기능은 사건의 연결에 대한 철저한 개연성과 감상자가 인지하는 템포에 대한 밸런스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벽의 궤적의 3장~4장도 이와 비슷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는데, 물론 그 안에서 벌어지는 각각의 사건들에 대한 인과적인 개연성 및 떡밥, 그리고 치밀함에 있어서는 출중했으나, 그런 사건들이 지나치게 연속적이고 어떤 곳에서는 매끄럽지 않게 전개되는 부분 또한 있어서 이야기 템포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부분들이 어느정도 존재했었다.
단, 섬의 궤적2는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미시적인 사건 영역이고 벽의 궤적은 거시적인 사건 영역이라는 차이는 있으나 근본적으로 궤적 시리즈 시나리오 라이터는 항상 사건이 거대하고 급박하게 흘러갈때의 이야기 구성에서 어느정도 미흡한 부분을 보인다. 하늘의 궤적은 전체적으로 급박하게 흘러가는 부분은 많지 않았기에 이런 점이 크게 눈에 띄진 않았으나, 그런 급박한 전개 자체를 모토로 하는 벽의 궤적과 섬의 궤적2에 있어서는 이런 점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리고 이것이 섬의 궤적2가 발매되기 전까지 걱정되었던 부분들 중 하나였다. 궤적 시나리오 라이터의 한계들 중 하나는 급박한 전개로 들어설때 몇몇 패턴 반복이나 타이밍적인 우연성이 발생된다는 점에 있었는데, 이 섬의 궤적2는 초반부터 급박한 분위기로 들어설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1부 파트를 정리하면서, 사실 위에서 언급한 A, B 부분은, 비록 신경쓰이긴 했지만 그래도 전체적으로는 재밌게 했었기에 그렇게 크게 보지는 않는 편이다. 다만 궤적의 작가는 앞으로 이런 부분에 있어서 제대로 유념하고 고쳐나갈 필요가 있다.
막간
유미르에 있는 린에 대해서 그다지 신경쓰지 않고있었던 귀족연합은, 막상 시간이 흐르다보니 린의 활약상이 두드러지자 그런 그를 귀족파로 포섭하려고 한다. 그러기위해서 린이 모든 VII반 인원들을 모으게 됐을때를 노려서(확실하진 않다. 추측) 그의 동료들을 인질로 삼아 백은의 거함 팡타그뤼엘에 린을 "초대"하게된다. 그동안 자신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리고 아픔을 주게했다는 열등감에 사로잡혀 버린 린 슈바르처는 이 모든 것을 최대한 빨리 종결시키기 위해서 정말로 귀족파에 협력할까를 잠시 망설이게 된다.
하지만 린은 알핀과의 대화에서 들은 엘리제에 대한 진실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위해서 희생하고 린에게 어떻게든 길을 열어주려고 했던 것은 그 사람들이 린을 진심으로 굳게 믿고있었던 것이자 그를 중요한 희망이라고 생각, 또 린이 타인들을 의식할 필요없이 그가 진정으로 원하는 길을 갈 수 있도록 하기위해서 가족 및 동료들이 그런 행위를 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정신적으로 큰 성장을 하게된 린은 다시 마음을 고쳐먹고 그 자신이 추구하는 길을 따라가기 위해서 알핀 황녀를 데리고 팡타그뤼엘을 탈출하게 된다.
왕도적인 관점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했던 스토리 부분. 물론 필자의 주인공 취향이 궤적 시리즈들 중에서는 린(인간적인 고뇌와 열등감)에 가장 가깝기도 하고 성격적으로도 섬궤에서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들 중 한 명이기도 해서 이 부분을 그렇게나 좋아하게 됐던 것일 수도 있지만, 아무튼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감정적으로 가장 설레였던 부분이 바로 이 막간이었던것 같다. 어린 시절 고아였기에 귀족사교계에서 부랑아 취급을 받아 아버지에게 본의 아닌 피해를 끼쳤던 것뿐만아니라 자신의 몸 속에 잠들어있는 원치않는 미지의 힘으로 인해 가족과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줄까봐 두려워하며 불안감과 열등감에 점철되어 커갔던 린 슈바르처가, 드디어 타인이 자신에게 줬던 원조들을 더이상 "자신의 부족함이 끼친 피해"가 아닌 "자신을 향한 사랑"이라고 진정으로 인식하게되면서 앞으로 나아가기로 한 장면은 개인적으로 정말 감동적이었다.
다만 아쉬웠던 것은 아무래도 볼륨이었는데, 물론 말그대로 '막간'이기 때문에 플레이타임이 짧은 것 자체는 딱히 신경쓰지 않지만 중간중간에 린을 좀 더 정신적으로 뒤흔들만한 이벤트가 한두개 정도는 더 삽입되어 있었다면 어땠을까 싶다. 중간에 적들 각각의 방마다 들어가는 이벤트들이 있었지만 그것들은 아무래도 린의 정신적인 성장과는 거의 연관없이 그 적들 고유의 캐릭터성만을 드러내는 것이 대부분이었기에 아무래도 아쉬운 감이 있었다. 즉, 그 적들과 대화할때는 실질적인 스토리 진행은 없었던 것이다. 그랬기에 크로우와의 대화(린을 흔들었던 두번째 이벤트)를 끝마친 다음에 여러 방을 돌다가 알핀과 조우하여 린이 정신적인 각성을 이루게 되는 부분까지의 스토리 템포가 약간 빠르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것말고는 딱히 지적하고 싶은 점은 없고 어쨌든 막간은 필자가 정말 좋아하는 부분이었다.
사실 이 막간도 역시 위에서 말했던 "조력자가 와서 도와주는 패턴" 및 "타이밍 문제" 등이 존재하기는 한다. 하지만 그래도 막간의 그 마지막에서 카레이저스와 동료들이 모두 한꺼번에 와서 도와주는 장면은 있어서 좋았다고 생각한다. 홀로 떨어진 주인공 일행이 위기에 처했을때 그동안 인연이 있었던 모든 조력자들이 극적인 타이밍에 와서 도와준다는 클리셰는 그동안 영웅전설에서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했던 특징이면서 타이틀을 대표하는 설레는 부분이기도 하기 때문에 막간의 그 장면은 계속 있어줬으면 한다. (막간의 이 부분보다는 다른 파트에서 이런 패턴을 줄여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개연성적으로도, 어차피 팡타그뤼엘은 속도가 느린 편인 거대전함이기에 하룻밤새에 유미르에서 그렇게 멀리까지 갈 수 있을리가 없는데다 레이더 기기도 이미 존재했으므로 카레이저스가 팡타그뤼엘의 위치를 추적하는 것은 비교적 쉬웠을 것이다. 즉 올리발트와 동료들이 린을 구하러 팡타그뤼엘에 올 수 있었던 것은 무리가 없는 전개였으므로 딱히 바꿔야할 여지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다른 궤적들과 마찬가지로 역시 도와주러 오는 타이밍은 정말 심각하게 절묘했다.
2부
올리발트 황자를 포함한 어른 실력자들은 격렬한 제국 서부의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서 사관학교 학생들에게 자신들의 카레이져스를 넘겨주기로 결정하고 그런 그들에게 제국 동부의 상황을 부탁하게 된다. 하지만 1부 마지막 및 2부에서 그들은 과연 귀족파도 혁신파도 아닌 제3세력으로써 대체 어떤 일을 주체적으로 해나가야할지에 대해서 난관에 부딪치게 되고, 이에 대한 답을 내기 위해서 주인공들은 우선 여러 명의 의견수렴도 할 겸 병력도 모을 겸 "톨즈 사관학교의 온전한 형태를 구축하자"를, 즉 여기저기 흩어진 학생들을 모아가면서 사관학교가 있는 트리스타를 탈환하는 것을 2부의 최우선 목표로써 삼고 활동을 개시한다. 정리하자면, 제 3세력으로써의 행동 목적의 설정 및 병력 증강을 위해서 사관학교를 탈환하기로 결정하게 된다.
하지만 그런 일들을 수행해나가던 도중 각지에서 내전의 영역을 넘어선, 예를 들어서 민간인에게 피해를 끼치는 등의 부조리가 발생하게 되자 주인공들은 그를 수습하기 위해서 나서게 되기도 한다. 또한 내전으로 인한 전황을 완화시키기 위해서도 또한 움직인다.
그런 일들을 수행해나가던 중, 드디어 2부 마지막에서 일단 주인공들은 사관학교 탈환에 성공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내용 상 가장 아쉬웠던 부분이 2부에 있기는 하나, 그 문제점은 2부~종장을 전체적으로 아우르는 부분이기 때문에 종장에서 한꺼번에 다루기로 하고..... 그 부분을 제외하면 딱히 내용상 크게 거슬리는 문제는 없다고 여기는 편이다.
전체적인 템포가 1부나 막간에 비해 좀 느슨해진 감이 있기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1회차땐 서브퀘스트나 추가요소 등을 다 무시하고 메인만을 바라보고 달려가는 타입이라 그런 것이 그렇게 크게 체감되지는 않았다. 다만 피할 수 없는 4속성 정령굴에서 고초를 겪기는 했었다. 원래 던전 탐색이 취미을 좋아하는 편인지라 던전을 많이 만들어줬다는 것에 대해서만은 반가웠지만, 스토리 템포에 있어서는 단절감을 줄 수 밖에 없었다.
사실 전작들에 비해서 그 던전의 수 자체는 줄어든 편이다. 하늘의 궤적 SC에서는 정말 7장, 8장, 종장 리벨=아크, 최종던전이 사실상 모두 그런 유형의 던전이었고, 벽의 궤적의 경우는 종장에서 너무 긴 이동거리와 지나치게 많은 수의 던전들로 인해서 플레이어가 느끼는 스토리 템포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쳤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섬궤2 본 스토리의 도중을 진행하는데 있어서 지나치게 늘어지는 던전은 상대적으로 적었다고 볼 수도 있지만, 그 정령굴 던전은 확실히 섬궤2의 전체적인 스토리 템포와는 확실히 오히려 예전보다도 더 큰 위화감이 존재한다. 또한 굳이 4개로 만들 필요없이 두개 정도로 압축하는 것도 가능했었을 것이다.
아무튼 1부에서 2부 항목까지는 스토리의 기술적인 문제점들만을 주로 다뤄보았다. 그래도, 지금은 일단 종장 리뷰에서 한꺼번에 다룰 예정인 2부의 큰 논란점을 제외한다면, 2부까지의 내용 자체에 있어서는 그렇게 크게 문제가 될만한 요소는 많지 않은 편이었다고 본다.
...물론 섬의 궤적2가 거대한 논란의 도가니가 된 원흉은 바로 종장의 내용 및 그 엔딩에 있었다.
종장
우선 본문에 들어가기에 앞서 개인적인 작은 푸념부터 먼저 다뤄보자면, 종장에서 다뤄진 카이엔 공작이라는 캐릭터가 정말 아쉬웠었다. 개인적으로는 이 인물이 귀족파 사상에 정말로 충실한 캐릭터이기를 바랬었다. 서장 마지막의 "민중을 위해서"라는 말을 사용한 것을 보고, 그가 내전을 발발시켰으면서도 진정한 귀족다운 모습을 가지고 있는 매력적인 적이기를 바랬었으나 실제는 전형적인 악당계의 캐릭터로 전락해버린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발매전에 꽤나 기대하고 있었던 캐릭터였는데도 말이다. 아무튼 이건 그렇다고 치고 본문으로 들어가자면,
A. 제3세력: 귀족파, 혁신파의 굴레를 벗어나 새로운 답을 찾아낸다는 것
섬의 궤적2의 마지막을 보기전까지는 가장 아쉬웠던 부분. 우선 일반 스토리 계열에서 "제3세력"이라는 요소가 다뤄질때는 대략 두 가지 정도의 역할이 부여된다. 첫번째로는, 특정세력이 분쟁의 선을 넘어서 민간인들에게 피해를 주는 등의 지나친 행위를 했을때 그것을 견제하는 역할. 두번째로는 양 세력의 대립을 중재하고 서로에 대한 이해를 통해 화합해내는 식의 "새로운 답"을 찾아내는 역할 등이 있다.
일단 첫번째 견제 역할에 있어서는 충분히 잘 수행해내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알바레아가 쪽의 영방군이 내전에서 불리해지자 크레이그 중장의 민간인 딸을 인질로 삼는다던지, 귀족연합의 주도권을 잡기위해서 켈딕 마을을 습격하는 등등의 내전의 범위를 넘어선 중범죄를 저지르자 주인공들은 그런 그를 체포하게 된다. 이것이 대략 2부의 전체적인 내용이라고 볼 수 있다. 내전과는 별로 관계없을지도 모르지만 민간인들을 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야될 행동이었다. 그렇기에 주인공들은 제3세력으로써의 그 첫번째 역할은 일단 잘 충족시켰고, 만약 제국내에 유격사 협회가 아직도 왕성했었다면 유격사들도 그런 그들을 적극적으로 도왔을 가능성이 높다. (그들은 정치에는 일절 간섭하지 않는 주의이지만 만약 그것에 민간인들의 안전문제가 얽혀있다면 팔올 걷고 나서는 세력이기 때문)
다만, 그런 소위 "선을 넘는 행위"를 하는 자들이 귀족파쪽에 몰려있게 되면서 스토리 상의 귀족파와 혁신파 사이의 밸런스가 특정 한쪽으로 치우친 느낌을 받았었다. 물론 알바레아 같은 일부 귀족파들은 자멸할 짓을 했기에 결국 외부세력에 의해 자멸하는 것이 맞지만, 원래 제3세력으로써의 정석적인 이야기를 만들때는 양 세력 사이의 밸런스를 맞춰줘야 함에도 불구하고 혁신파들 쪽에서는 그런 부정적인 면모가 작품의 중간내용에서 보여지지 않는다.
아니, 사실 이야기가 진행되는 도중에 "진정한 혁신파"의 모습조차도 보이지 않는다. 중간에 보이는 귀족파와 대립하는 인물들을 꼽자면 정규군 사단의 크레이그 중장과 잭스 중장이 있기는 했었지만, 섬궤1에서도 언급됐었듯이 정규군들은 혁신파와 중립파가 따로 나뉘어져있고 그 중에서도 크레이그와 잭스 쪽은 혁신파의 사상을 가지고 있지 않은 중립에 가까운 사단이었다. (심지어 잭스는 오히려 철혈재상의 명령에 불복종했다가 놀드 고원으로 가게됐던 인물이기도 하다) 엄밀히 말하자면 그들은 혁신파에 속해있다기 보다는 단지 제국 내의 쿠데타를 수습하고 황족을 구출해내려는 인물들이었을 뿐, 그리고 여담이지만 그것이 주인공들이 위와 같은 몇몇 사안에 있어서는 그런 정규군들과 큰 거부감없이 합동 작전을 펼쳐나갔던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어디까지나 "견제" 역할을 수행할때만) 또한 철혈재상이라는 구심점을 잃은 철도헌병대의 경우도 일단은 그런 정규군들과 협력하게 되고, 그 중에서도 클레어는 내전의 전황을 수습하려는 올리발트쪽으로 붙게된다.
즉, 작품의 중반부에서 혁신 사상을 가진 실질적인 혁신파가 등장하지 않게 되면서 "견제" 역할에 있어서는, 물론 그렇다고 주인공들이 혁신파의 편을 들어주었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야기 자체만으로 봤을때는 역시 어느정도 밸런스가 '치우쳤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였다. 이 작품이 정석적인 제3세력 작품이었다면 혁신 사상을 가진 인물들을 이야기 중간에 배치하고 그들의 부정적인 행위를 그려줬어야 했다고 생각했다. 만약 그렇게 해줬었다면 양세력 묘사간의 밸런스는 물론, 마키어스가 섬의 궤적2에서 활약할 발판 또한 마련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이건 그렇게까지 중요한 것은 아니고,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두번째인 "양 세력의 대립, 즉 내전을 뛰어넘은 새로운 답을 찾아내는 것"이다. 사실 견제 장면이 있든말든 그것만 제대로 구현되어 있다면 정석적인 제3세력의 이야기로써 성립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이미 알다시피 실제로는 그러하지 못하였다. 종장의 도입부에서 주인공들이 마지막으로 받은 의무는 단지 크로스벨의 이변이 사라지자 "그러므로 공화국이 침공하기 이전에 빨리 내전을 어떻게든 종결시키자"였다. 그리고 당시의 나는 이 시점에서 이야기에 대한 몰입도가 급격히 떨어졌었다.
물론 국제 정세가 그렇게 흘러가니 어쩔 수 없는 것은 이해하고 주인공들이 애초에 황족과 연이 있었기때문에 그들을 해방시켜야 하는 것도 맞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바랬던 클라이막스는 그런 식으로 정세에 휩쓸려가는 것이 아닌 주인공들과 학생들 그 자신이 그들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 주체적으로, 그 어떤 어른들도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길을 열어나가는 전개였었다.
섬의 궤적2 오프닝이 처음 공개되었을때 카레이저스 앞에 온 학생들이 모여서 환호성을 지르는 장면에서 기대감이 증폭되었던 이유는 그 장면이 어느 집단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은 순수한 학생들의 희망과 주체성을 상징했던 것처럼 인식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에게 있어서는 그 장면을 보는 것이 이 섬의 궤적2를 플레이했던 가장 큰 목적이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실제로 그 장면은 그저 당시의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기합을 넣는 장면이었을 뿐, 사실상 일말의 주체성 조차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리고 크게 실망을 했었다.
하늘의 궤적 시리즈는 인물들의 이야기 묘사에 있어서는 뛰어난 편이었으나 전체적인 시나리오 전개에 있어서는 미숙한 스토리 연결과 이야기 구조의 단조로움, 그리고 반복적인 구성 등의 결점이 있었다. 그 다음에 나온 벽의 궤적 시리즈는 복선과 반전 간의 치밀함 그리고 전체적인 시나리오 구성에 있어서는 역대급의 임팩트를 보여줬었으나, 군데군데 보이는 매끄럽지 않은 전개와 전반부는 지나칠 정도로 급박하다가 후반부는 지나칠 정도로 늘어지게 되는 완급조절 문제, 그리고 인물들의 역할 분배 편중 등의 비교적 더 심각한 문제들이 존재했었다. 하지만 이번 섬의 궤적2는 그런 종류의 스토리 기술적인 문제를 따지기 이전에 위와 같은 이야기의 큰 줄기가 되는 부분에서 심각한 균열을 범했다. 대체 그런 중요한 부분의 묘사에서 실패해버리면 어쩌자는 말인가?
.....라고 평가하려고 했었다.
실제로 종장의 도입부를 처음 봤을 때는 위와 같이 생각했었고 당시에는 이 문제에 대해서 섬의 궤적2에 대해서 크게 실망했었고 비판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마침내 종장 마지막의 그 장면을 보고나서야 대체 왜 혁신파의 모습이 중반에 안 드러났는지, 왜 귀족파들이 그런 식으로 쉽게 자멸했는지, 그리고 왜 주인공들을 그런 세계의 흐름에 별 수 없이 휩쓸리게 되는 연출을 썼는지를 그제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B. 20년 전의 영웅전설, 하얀 마녀에 대한 안티테제
섬의 궤적1에서 던져줬던 2 마지막 결말에 대한 단서 ( + 4장 마지막 발프레임궁에서 린이 재상에게 반응했던 것도 포함)
섬의 궤적2의 스토리를 예상할 당시, 이 떡밥은 린과 철혈재상 사이에는 판타지 설정적 혹은 혈연적인 관련성이 분명 있다는 것을 암시했고, 또한 이것과 별개로 이야기의 예상 종결시점은 대략 "철혈재상 내전 승리"인 것으로 예측됐다. 즉, 당시에 가장 가능성 높았던 스토리는 "철혈재상이 결국 내전에서 승리하게 되고, 그러면서 철혈재상의 진짜 정체가 밝혀지면서 이야기가 종결된다"였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종결을 맺게되면 논란이 될 것이기에 필자는 어떻게든 다른 가능성들을 모색해보면서 위의 예측을 직접 내놓고서는 또 스스로 부정해보려고 했었지만, 아무튼 결국 실제 섬궤2는 그런 종결방식을 택하게 됐었다.
(다만 2에서는 그 사실이 밝혀질때 직전에라도 그 예전 섬궤1 떡밥을 과거회상식으로 보여줬어야 했었다. 만약 그때 그 떡밥을 놓쳤거나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었던 플레이어가 있다면 그 진실을 처음 받아들였을때 당황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측가능했었음에도 필자가 그 종장 마지막을 보고 당황했던 것은 그에대한 스토리상의 연출이었다.
언젠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섬궤2가 어떤 식으로 끝날 것인가에 대해서 말을 나눠본 적이 있었는데, 그때 나왔던 두 가지 가능성은
1. 철혈재상이 이기더라도 그 사실은 (하궤SC 마지막에서 캄파넬라가 오리올을 회수했던 정도의) 차기작 떡밥으로 작게 다뤄질 것이고, 섬궤만의 이야기는 행복한 해피엔딩으로 끝날 것이다.
2. 철혈재상이 제국에서 주도권을 잡게되고 그가 주인공들과 올리발트를 처치하게 되는 희망없는 배드엔딩으로 끝날 것이다.
정도였고, 이 두 가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둘 다 아니었다.
실제로는 1번 해피엔딩과 2번 배드엔딩의 중간격인, 아니 이와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엔딩이라고 봐도 무방했었다.
섬의 궤적 주인공들이 결국 제3세력의 이상을 이뤄내는데 실패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주인공으로써의 무력이 약해서였을까? 린의 무력은 역대 주인공들 중에서는 가장 강했었고, 심지어 몇몇 어른들이 학생 세력에게 의존했었던 가장 큰 이유인 기신 발리마르 또한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주인공의 정신력과 의지가 약해서였을까? 린의 정신력은 막간에서 앞을 향해 필사적으로 나아가겠다고 결심한 순간부터 이미 전작 주인공들의 수준에 도달해있었다.
그렇다면 대체 무엇이 그런 그들을 가로막았던 것이었을까? 작중에서 보여졌던 주인공들이 실패했었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그들의 사상은 중도파, 그것도 양 거대 세력의 관계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개혁시켜낸다는 주체적인 중도 사상에 속했지만, 그런 이념은 (RPG가 아닌) "현실"에 있어서 이상론에 가깝기때문에 대체 무엇과 싸워나가야 하고 어떤 방식으로 그것을 실현해야될 것인가에 대한 답을 내는 것이 불분명했다는 것>과, <현실 정세와 어른들의 세계가 그들이 감당하기 힘들정도로 거대하게 흘러간다> 이 두 가지 정도로 구체화된다.
본격적인 내용 분석으로 들어가서,
섬의 궤적2의 2부 시작부분에서부터 종장까지의 표면적인 분위기는 희망적이고 왕도적인 분위기이나, 그 내부를 들여다보면 사실 방황으로 가득차있는 밝지 않은 내용을 보여준다.
우선 그 이전에 주인공들은 사관학교에 있을 적에 올리발트로부터 "귀족과 평민이라는 굴레를 넘어서 새로운 답을 내자"라는 이상을 배웠었고, 이런 이상은 골수 혁신파였던 마키어스조차도 완전한 제3세력으로 탈바꿈시킬만큼 그들에게 깊은 인상을 줬었다. 그러면서 주인공들은 그런 이념을 바탕으로 행동해왔었고, 마침내 올리발트는 서부 시찰을 계기로 카레이저스라는 날개를 그런 주인공들에게 빌려주게 된다.
그리고 주인공들은 이제 그 날개를 가지고 제3세력으로써 어떤 식으로 싸워나갈 것인가에 대한 논의를 하게된다. 하지만, 그들은 그에 대한 구체적인 답을 내지 못한다.
주인공들이 선택한 길은 진정으로 싸워야될 적과 행동방침조차도 명확하지 않은 완전한 중립 세력의 길이었기 때문이다. 그조차도 단순히 침묵하는 유형의 중도파도 아닌, 대립하는 양 세력 사이의 새로운 흐름을 꾀한다는 어찌보면 상당히 몽상가적인 길을 그들은 걷고있었다. 마치 무기를 주고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현실에서의 어떤 정치 세력 둘을 서로 조화시켜내라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전작들의 경우는 어떤 식으로 행동할지에 대해서 비교적 간단명료하게 답을 낼 수 있었다. 하늘의 궤적에서는 리베르를 위협하는 결사를 무찔르면 됐었고, 벽의 궤적에서는 많은 시민들에게 상처를 주고 개개인의 인권을 탄압했었던 독립국파를 제압하면 됐었다. 그리고 그 주인공들에게 이제 중요한 것은 "노력"뿐이었던 반면, 섬의 궤적 주인공들이 실현하고자 하는 이상은 노력할 "방향"조차도 잡기 힘든 이념이었다.
아무튼 그럼에도 주인공들은 어떻게든 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 계속 노력해나간다. 내전으로 인한 피해를 수습한다거나 다른 작은 일들도 서슴치 않고, 또한 위에서도 말했듯이 제3세력으로써의 어려운 방향성을 찾기 위해서 사관학교의 원래 형태를 일단 되찾아 보려고도 하고 그것이 2부에서의 주요 1차적인 목표로써 초반에 결정되기도 한다. 그리고, 크로우를 되찾아서 반드시 함꼐 졸업시키겠다는 린이 선배들과 했던 약속도 지키려고 나아간다. (비록 크로우와 린도 마음 한켠으로는 그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었지만, 린은 그런 순수한(혹은 어린) 희망을 놓지 않으려 한다. 그리고 비타는 종장 마지막에서 그것을 "꿈"이라고 표현한다.)
물론 제국 각지에서 일어나는 부조리를 해결해나가는 것도 포함해서 말이다. 하지만 그런 일들을 통해 차례차례 사실상 자멸해나가는 귀족 주요세력들을 보면서 플레이어들은 이유모를 심상치 않음을 느끼게 된다. 마치 무언가가 살짝 건드려 놓은 것처럼.
그리고 2부 마지막에서, 주인공들은 드디어 사관학교를 탈환해내고 원래의 사관학교 모습을 되찾게된다. 주인공들은 다른 학생들과 재회한 것에 대한 기쁨뿐만 아니라 드디어 제3세력으로써 행동할 방향성을 찾을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희망 또한 가지게 된다.
하지만, 그 순간 그들에게는 피할 수 없는 어떤 거대한 현실이 다가오게 된다.
크로스벨을 지켜주던 결계와 벽의 대수가 소멸함으로써 공화국이 내전으로 혼란스러운 제국을 침공하게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이었다. 즉, 내전을 빨리 종결시키지 못하면 제국이 공화국에게 점령당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런 사실을 알려준 어른들은 제3세력인 주인공들이 그 상황에서 '그나마' 할 수 있는 일을 제안한다.
그리고 이때 주인공들은 잠시 침묵을 한다. 잠시 생각에 잠긴 주인공들은 결국 어쩔 수 없이 그 제안을 받아들이게 된다. 이제서야 겨우 자신들의 방향성을 찾을 희망을 어느정도 갖게됐었는데도, 결국은 그런 불확실한 희망조차도 거대한 현실에게 짓밟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아이러니한 것은, 내부를 들여다보면 위와 같은 상황인데도 이런 일련의 밝지않은 과정들이 작중내에서 다뤄질때의 분위기는 거의 항상 희망적이고 왕도적이었다는 것이다. 그런 침묵의 뒤에도 여전히 밝은 음악이 흘러나오고 주인공들은 희망적인 태도를 잃지않는다. 마치 동화처럼, 마치 주인공들의 여행의 끝에는 언제나 밝고 행복한 미래가 존재할 것처럼 말이다. 이 부분에서 상당히 기분이 오묘해졌었다.
그리고 종장의 마지막에서, 드디어 주인공들은 충격적인 진실을 맞이하게 된다. 위의 귀족들의 자멸을 좀 더 확실하고 본격적으로 유도했던 것이 루퍼스 알바레아였다는 것뿐만 아니라, 주인공 자신들조차도 결국은 철혈재상이 만들어놓은 거대한 체스판의 일부로써 이용당해왔었다는 사실이었다. 결국 그들의 신념은 무참히 짓밟히고, 또한 린은 크로우를 되찾기는 커녕 살려낼 수도 없었고, 또한 그의 인생조차도 결국 부질없는 놀음밖에 더 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된다.
마지막으로, 린 슈바르처는 눈 앞의 슬픔에서 잠시 등을 돌려 이제부터 일어날 거대한 현실들을 바라보게 된다. 철혈재상은 이제 그런 린을 자신의 병력으로써 이용하려고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거기에 저항할 수도 없다. 공화국의 침공에 대한 위협을 무시할 수도 없고, 무엇보다도 이미 린은 제국 사람들에게 "회색의 영웅"으로써 제국의 정신적 지주가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세계정세의 격동기에 대한 대중들의 '두려움'과 재상과 같은 정치세력이 '인위적으로' 형성해낸 "뒤틀린 영웅"으로서 말이다. 어긋나버린 영웅. 제국 사람들의 불안감. '제국을 지켜내야 한다'. 그리고 결국 린은,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죄책감 마저 떠안은 채로 원치않았던 크로스벨 원정을 떠나게 된다.
섬의 궤적2의 배경과 벽의 궤적의 배경들 중, 어떤 배경이 더욱 더 "현실적"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인가? 우선 사회 시대적인 현대성은 벽의 궤적이 단연 위이다. 벽의 궤적은 현대 도시 사회와 비슷한 반면 섬의 궤적2는 봉건 사회와 근대 사회가 서로 섞인 과도기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종류의 현실성이 아닌, 정말로 현실의 상황에 가까운 양상을 보여준 배경은 바로 이 섬의 궤적2였다고 볼 수 있다.
이상론자에게 있어서의 진정한 현실은 단순히 어떤 마왕을 쓰러뜨린다고 해서 모든 것이 행복하게 끝나는 찬란한 이야기가 아니다. 설령 쓰러뜨린다해도 그 다음에는 항상 새로운 문제들이 계속 따라오게 되고, 무엇보다도 사실 그들에게 주어진 진정한 현실 안에서는 '마왕'이라고 단순명료하게 특정되는 구체적인 과제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 주인공들이 단순히 혁신파나 귀족파 중 한 사상에 확실히 몸을 담고 있었다면 그저 한 세력이 괴멸할 때까지 일방적으로 싸워나가면 된다. 이야기는 간단해진다. 주인공들이 만약 귀족파였다면 그들에게 있어서의 '마왕'은 혁신파였을 것이다.
그러나 주인공들이 가지고 있던 이상은 귀족파도 혁신파도 아닌 중도파였었고, 더군다나 그것도 중도파 중에서도 양 거대 세력의 화합을 꾀하려하는 가장 답을 내기 어려우면서도 비현실적인 사상이었다. 위에서 말했듯이 이것은 평범한 중도파와는 달리 '무엇과 싸워나가야 될지도 알 수 없는', 즉 구현의 방향성 조차도 알 수 없는 사상이고, 이런 유형이 사실상 현실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이상론의 한계와 상통한다. 그리고 그런 측면은 2부에서 주인공들이 자신들의 방향성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하는 부분을 통해 표현된다.
하지만 그래도 주인공들은 그것의 답을 찾기 위해서 2부 안에서 끊임없이 희망찬 발버둥을 친다.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아름다운 세상에 대한 꿈을 꾸고, 현실의식에 제대로 눈에 뜨기 전까지는 그것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당시의 VII반 주인공들이 그런 연령대에 속해있었던 인물들이고, 그것은 "순수"라고 정의되어진다. 대부분의 어른들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그래도 어떤 자(올리발트)들은 또 그것에게 어떻게든 기회를 주려고 하는 그것. 하지만 현실은 순수를 위해서 때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종장 초반에서 주인공들이 어른들에게 공화국의 침공 가능성과 그들이 어쩔 수 없이 해야할 일을 제안 받았을때, 그들은 잠시 침묵을 한다. 희망적인 반응이 아닌, 어떤 생각에 잠긴 침묵을 하게된다. 제3세력으로써의 행동방침을 정하기도 전에 그들에게는 피할 수 없는 의무가 생긴 것이다. 그리고 잠시 후, 그들은 '사관학교 이사들을 최대한 모은다, 그것도 우리가 처음에 잡았었던 목표니까'라고 돌려말하는 식으로 희망적인 태도를 버리지 않으려 한다.
그리고 일을 수행하던 도중 황마성이 나타나게 되는데, 역설적이게도 그 곳의 마지막 최종보스의 이름이 노골적으로 "마왕"의 이름을 포함하고 있었다. 고전 중의 고전 RPG들에서 행복한 결말을 내기 위해서 쓰러뜨려야 했던 마지막 시련을 상징하는 소재를 이 이야기의 마침표로써 삽입했던 것이다. 사실 이것 뿐만이 아니라 다른 동화적인 소재들도 상당히 많이 삽입되어 있었다. "붙잡힌 공주", "여행을 떠나는 용자", "마왕성", 그리고 무엇보다도 주인공들이 펼쳐나가는 이야기가 <영웅>으로 일컬어지는 드라이켈스 대제의 과거의 영웅담과 비슷했다는 류의 소재까지도 등장하고, 2부 및 종장 초반의 표면적인 분위기 자체는 그 내면의 좌절감을 숨겨가면서까지 "이 이야기는 행복하게 끝날 것이다"라는 거짓말을 한다. 그리고 그 후에 벌어지는 현실의 절망적인 짓밟음을 통해서 그런 동화적인 소재들과 실제 결말 사이의 모순성을 보여준다.
이런 연출방식은 마치 스탠리 큐브릭의 1987년작 영화 '풀메탈자켓'을 연상시킨다.
전쟁으로 인한 인간성의 파괴와 살인기계화되는 전쟁군인들의 모습을 담아낸 이 영화는, 후반부가 되기 전까지는 극단적인 남성성을 강요받는 군인들의 모습과 베트남 전쟁 도중에 벌어지는 비윤리적인 행위들 그리고 전쟁이 갖는 모순 등의 메세지들을 보여주는데에 주력한다. 그런데 슬슬 이야기가 마지막으로 치달을때 쯤부터, 희한하게도 이야기는 마치 흔하고 정석적인 전쟁영화처럼 전개된다. 베트남군 저격수 한 명을 처리하려다 2명의 전우가 죽고 심지어 주인공의 가장 친했던 친구까지도 죽자 모두가 그것에 애도하며 그 저격수에게 복수하러 건물로 돌입한다. (연출조차도 정석적인 전쟁영화의 방식을 따르기도 한다) 이는 보통 전쟁영화에서 보여지는 "군인으로서 추구하는 이상적인 남성상"을 표현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영화의 마지막에서는 주인공이 가지고 있었던 이중성이 서로 충돌하게 되는 모종의 비극적인 장면을 통해서 전쟁에는 영웅이 있을 수 없다는 것과 전쟁군인에게 강요되어지는 남성성의 덧없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면서 마무리된다. 그리고 섬의 궤적2 또한 이런 연출방식을 채택한다. 자신들이 보여주고 있는 이 이야기를 감상자에게는 계속 RPG라는 꿈의 세계라고 속여오다가 마지막에 진정한 현실을 보여주면서 그 가상 세계를 철저히 파괴한다.
그리고 이것이 팔콤이 발매전 인터뷰에서 말했었던 "기존 RPG들에게서는 보여지지 않았던 요소"인 것으로 추정된다.
만약 전작의 주인공들이 정확히 린의 입장에서 싸워나갔었다면 과연 어떤 결말을 맞이했었을까. 밝음과 희망을 상징하는 에스텔, 혹은 강한 정신력과 빠른 상황판단력을 지닌 로이드였다면 어떘을까. 아니, 혹은 그런 주인공들의 모든 장점들과 린의 무력과 진지함까지 합한 완전체 주인공이 섬의 궤적 시리즈의 주인공이었다면 과연 그들의 목적을 이룩할 수 있었을까?
안타깝게도, 그들도 결국 린과 비슷한 말로를 걸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것은 주인공 개인의 힘이나 의지의 문제가 아닌, 그 인물이 어떤 유형의 이상론을 가지고 있는가와 그 이상을 둘러싸고 있는 현실이 얼마나 거대한가에 대한 사회적인 입장 문제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모습의 일부분은 외전에서의 주인공 vs 주인공 대결에서도 어느정도 드러난다.
지키고자 했던 모든 것을 잃고 반강제적으로 크로스벨 원정에 참가했던 린 슈바르처는, 렉터의 명령을 받고 지오프런트로 향하게되고 그 곳에서 전작 벽의 궤적 주인공인 로이드와 대립하게 된다. <정의를 상징하는 자 vs 정의를 상징했던 자>의 대립 구도를 만들어낸 것도 이야기에서 상당히 중요한 요소이나 이것은 일단 넘어가기로 하고, 아무튼 시리즈에 있어서 오묘했던 그 대결이 끝나고 서로 이름 교환을 한 뒤 떠나는 로이드의 모습을 보고 린은 그를 보고 "부럽다"고 알티나에게 말한다. 작중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들 중 하나이다.
로이드를 포함한 크로스벨 사람들은 현재 제국 점령이라는 힘든 상황에 처해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린의 눈동자에 비친 로이드의 모습에는 절망감이 비치기는 커녕, 오히려 미래에 대한 희망과 믿음으로 가득차있었다. 전작 벽의 궤적에서 로이드 일행은 벽의 대수로 향하기 전에 렉터라던지 다른 크로스벨 외부 사람들로부터 계속 이런 말을 들어왔었다. "만약 너희가 크로스벨을 지켜주던 그들을 무너뜨린다면, 크로스벨은 결국 대륙열강들에게 점령당하는 운명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 주인공들도 그 사실을 알고있었다.
하지만 그 주인공들에게는 지키고 싶은 가치가 있었다. 적들이 크로스벨을 독립시켜 내기 위해서 개개인의 인권을 탄압하고 상처를 안겨줬었던 국가적인 폭력을 부정하겠다는 것과 민주주의의 수호, 그리고 디터와는 상반되는 진정한 의미로써의 "정의"였다. 그리고 또한 특무지원과와 키아, 더 나아가서는 크로스벨 시민들이라는 가족을 지켜내고자 그들은, 비록 또다른 고난이 닥쳐온다하더라도 그 적들과 싸워나가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벽의 궤적 마지막에서 그런 가치들을 모두 지켜낸 주인공들은 어떤 적에게 또다시 그 말을 듣게된다. "크로스벨은 이제 점령의 운명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때 주인공들은 전혀 좌절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의 길을 굳게 믿고있었다. 그런 국가적인 폭력과 개개인에 대한 탄압과 같은 윤리적이지 않은 방식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크로스벨을 대륙 열강들의 간섭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그리고 주인공들은 그런 비(非)정의를 상징하는 적들을 무너뜨림으로써, 그리고 진정으로 추구해야될 가치를 지켜냄으로써 자신들의 신념에 대한 믿음과 희망을 더욱 더 확고하게 다지게 됐었다.
물론 크로스벨을 독립시켜 나가는 것은 매우 고된 일이 될 것이다. 하지만 주인공들은 자신들의 신념을 믿고 끝없이 달려나가다보면 언젠가는 반드시 크로스벨을 독립시켜 낼 수 있다는 희망으로 가득차있었다. 심지어 그들은 마지막에서 "이제부터 좀 많이 바빠지겠는데?"라는 식으로 웃으면서 말하기까지 한다. 그리고 이제 그들에게는 자신들의 희망을 믿고 앞을 향해 계속 달려나갈 일 뿐만이 남아있었다. 그리고 에필로그에서 2년 뒤, 섬의 궤적2보다 미래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그들은 드디어 크로스벨을 제국으로부터 완전히 독립시켜낸다. 수십년동안 열강들에게 노골적으로 간섭받고 조작되던 이전의 크로스벨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였다.
그렇기에 작품적인 관점에서 크로스벨의 2년간의 독립과정은 자세히 다뤄져서는 안되는, 아니 다뤄지지 않았기에 아름다웠던 것이고, 그것이 내가 지금까지도 벽의 궤적의 엔딩을 모든 영웅전설의 엔딩들 중에서 가장 높게 평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반면 제국편의 주인공인 린 슈바르처는 그 이전에 이미 지키고자 했었던 꿈들이 모두 완전히 짓밟힌지 오래였다. 크로우를 선배들과 자신들의 품으로 다시 돌려받겠다는 꿈과 제3세력으로써의 이상을 제국 전토에 펼쳐나가기는 커녕 거대한 현실에 휩쓸리며 철혈재상이라는 어른에게 이용당해왔었고 선배들과 약속했던 크로우 마저도 지켜내지 못한다. 그렇기에 린은 그저 앞을 향해 나아가면서 지켜야될 것을 지켜나가려고 노력하는 로이드 일행의 뒷모습에 부러워할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으로 후일담의 내용이 전개되어 나간다. 제도에서 있었던 일과 크로스벨 침공에 대한 죄책감 등이 섞인 복잡한 감정을 가지고 결국 그는 사관학교로 돌아오게 된다. 다른 VII반 인물들은 돌아온 린을 변함없이 반겨준다. 그리고 예전과 같은 평범한 학교 생활이 다시 시작된다. 마치 그 전에 무슨 일이 있긴했었냐는 듯이 아주 일상적인 생활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런 일상적인 내용이 전개되는데도 불구하고 후일담이 진행되는 내내 느껴지는 쓸쓸함이 있었다. 사실 오히려 그런 일련의 비극적인 사건들 뒤에 일상적인 내용을 반복적으로 배치함으로써 그런 분위기가 더욱 고조된다.
그리고 마침내 린은 토와가 있는 학생회장실에서 눈물을 흘리게 된다. 크로우를 데려오겠다는 선배들과의 약속을 지켜내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드디어 폭발하게 된 것이다. 더군다나 그의 최후가 결국에는 처참했다는 것이 더욱 더 기폭제로써 작용한다. 만약 최소한 그가 긍지있는 최후를 맞이했었다면 린은 "크로우는 아름다운 죽음을 맞이했습니다"라고 선배들에게 슬프지만 자신있게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늘의 궤적에서 레베가 요슈아와 주인공들에게 길을 열어주고 죽었던 것처럼, 비록 레베의 육체는 죽었어도 레베의 본질은 살아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주인공들의 꿈을 상징했던 크로우는 물리적으로 한번 죽고 철혈재상에 의해서 그의 본질조차도 죽어버린, 이른바 정말로 "두번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주인공들은 그를 완전히 잃어버렸던 것이다.
다음 날이 오고 마지막 자유행동일을 진행하던 도중, 주인공들은 또다시 구교사가 이변을 일으키는 광경을 보게된다. 그리고 그를 해결하러 돌입하게되고, 그러면서 린은 같이 들어온 알핀으로부터 올리발트가 작성한 편지를 받게된다. 아래는 편지의 전반부 내용이다.
...자 고지식한 린군.
지금 자신의 입장에 대해 필시 여러모로 갈등하고 있을테지.
내가 거기에 대해 해줄 수 있는 말은 딱히 없는 것 같다만...
다만 한가지 말하자면-
이 세상에 '영웅'은 없다는 것이다.
사자심황제도, 창의성녀도...
현재 국민으로부터 열광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재상 각하 역시...
우리들과 마찬가지로, 고민과 갈등을 품은 한명의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편지의 전반부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더도말고 덜도말고 다음과 같다. "영웅은 없다". 마치 말장난과도 같이 이 영웅전설 시리즈 최신작이 말하고 싶었던 것은 영웅은 없다는 것이었다. 제국 역사에선 드라이켈스 대제를 제국의 내란을 종식시켜낸 영웅이라고 칭하긴 했었지만 그는 그저 그 시대를 살아갔던 한 명의 인간이었을 뿐이다. 물론 그가 자신의 대의를 이뤄내기 위해서 행했던 피나는 노력들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그런 그의 노력이 빛을 발할 수 있었던 것은 당대 역사의 흐름과 상황 덕분이었다. 만약 드라이켈스가 온갖 수완을 발휘하여 제국을 안정시키는 도중에 만약 예기치 못한 외부 정세가 개입하기라도 했었다면, 예를 들어서 어떤 다른 강대국이 제국의 혼란을 틈타 전략적으로 침공했었다면 그런 드라이켈스의 노력은 아무것도 아니게 되어버렸을 것이다. 사실 린을 포함한 주인공들이 그런 어른들의 이해관계와 역사의 흐름에 선택받지 못한 자들이었다.
이에 대해 말하기에 앞서 일단은 영웅전설 전작인 가가브 3부작의 영웅관과 섬의 궤적2의 영웅관을 서로 비교해볼 필요가 있다.
쥬리오, 크리스.
이제부터는, 수행을 쌓은 마법사가 나쁜 용을 쓰러뜨리거나, 실력있는 강한 검사가 검 한자루로 국왕이 되는 시대가 아니야.
그래서 모든게 받아들여지는 단순한 세상은 없어지겠지.
이제부터는 각자가 자신이 가진 재능을 살려서, 각각의 삶의 터전에서 모두를 위해 노력한다.
그렇게 되지 않으면 안돼.
그러기 위해서는 전설의 영웅같은 건 방해만 될 뿐이야.
이제부터는 대지에 뿌리를 내리는 힘이야말로 필요한거야. 하얀마녀의 마음처럼.
1994년에 출시되었던 영웅전설3 하얀 마녀의 마지막 대사이다. 듀르젤의 편지에서도 그런 신념이 언급되기도 한다. 가가브 작가는 거대한 유일 영웅이라는 존재를 거부하고 만약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끊임없이 노력해나간다면 밝은 미래를 볼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이 영웅전설3에서 주인공들과 하얀 마녀가 그려나갔던 이야기였다. 하얀 마녀에 대해 '쥬리오와 크리스가 주인공들 치고는 작중 비중이 너무 낮다'는 평이 있기는 했었지만 오히려 그들의 비중이 낮았기에 모두가 각자 할 수 있는 일을 해낸다는 테마를 보여줄 수 있었다. 하얀 마녀에 삽입되어 있는 한 OST의 제목인 '작은 영웅들'처럼, 영웅전설3의 모든 인물들이 작은 영웅들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하얀 마녀 20주년 기념으로 나온 이 섬의 궤적2는 그런 "작은 영웅들"이라는 영웅관조차도 거부한다. (여담이지만 팔콤이 섬의 궤적2 발매 전에 하얀 마녀를 많이 엮어서 이야기했던 이유가 이제와서야 이해가 간다) 올리발트쪽 사람들은 물론, 섬의 궤적2의 주인공들 또한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최대한 노력해나갔었다. 또한 그들이 섬의 궤적2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과정은 드라이켈스가 걸었던 성공의 과정과 상당히 비슷하게 그려진다. 심지어 "붙잡힌 공주", "마왕성", "마왕"과 같은 동화적인 소재들까지도 가세하면서 엔딩 전까지의 이야기는 왕도적인 영웅담에 너무나도 가까워진다. 그렇기에 만약 이 작품이 전형적인 RPG였다면, 그런 왕도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작품은 그들에게 행복한 결말을 선사해줬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이상론과 현실적인 장벽 사이의 괴리로 인해 방향타를 잡지 못하는 인물들의 모습과 저항할 틈도없이 거대한 역사에 강제로 휩쓸려버리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기존의 관념을 철저히 파괴한다. 아무리 모두가 피나는 왕도적인 노력을 한다고 해도 언제까지나 역사는 그 시대가 선택해준 승자들만의 이야기일 뿐이다. 즉, 진정한 영웅이란 것은 (심지어 '작은 영웅들'조차도) 현실 속에서는 존재할 수 없다는 가혹한 테마를 보여준다. 어찌보면 이는 전작 가가브 트릴로지에 대한 도전처럼 비춰지기도 한다.
후일담 구교사 이공간의 마지막 장소에서, 그 흰색의 거대한 그림자는 대결에 앞서서 이런 대사를 남긴다.
" 이 시험은 그 무엇도 얻을 수 없는 <공허한 시험>에 불과하다. "
작가는 그 시련에 대해서 다른 목적을 부여할 수도 있었다. 예를 들어 구교사의 이변을 종식시킴으로써 사관학교와 트리스타를 안전하게 만든다던지 등등. 그런데도 작가는 그 시련에 대해서 아무리 이겨낸다 해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것만을 강조한다.
그렇다. 그 소위 "공허한 시험"은 이 작품에서 주인공들이 지금까지 걸어왔던 과정을 상징하는 소재였던 것이다. 주인공들은 어떤 아름다운 꿈을 가지고 "제국"이라는 시험에 도전해나갔었지만, 그들이 어떻게든 달려가서 "마왕"이라는 최종보스를 쓰러뜨렸음에도 불구하고 주인공들에게 돌아온 것은 단지 세계의 차가운 대답뿐이었다. 그들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그와 같은 아무 보상도 걸려있지 않은 시련이 주인공들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어떻게보면 참 잔인한 상징이 아닐 수 없다. (여담이지만 만약 딱 이 시점에서 이야기가 끝났더라도 상당히 흥미로웠을 것 같다. 현실에 좌절당한 주인공들 앞에 그 공허한 시험을 갖다놓은 후 주인공들은 그저 그 곳에 어두운 표정으로 가만히 침묵하고 있고, 마지막으로 그런 주인공들의 뒷모습을 천천히 페이드아웃하는 것이다. 하찮은 상상이긴 하지만, 만약 정말로 그랬다면 다른 방향으로 의미가 있는 작품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아무것도 얻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주인공들은 그 <공허한 시험>을 헤쳐나가려고 한다. 대체 왜 그랬던 것일까?
큰 줄기를 다루기 이전에 일단은 곁가지부터 다뤄보자면, 올리발트는 편지의 후반부에서 이런 말을 한다.
"너도 마찬가지다. 너는 결코 '영웅' 같은 것이 아니야. 한 명의 젊은이로서, 학생으로서 많이 고민하고 방황하고 괴로워하고... 허세를 부리고, 때로는 약한 소리도 하고, 우정을 나누고, 사랑을 애태우며-
'영웅'도 아닌 '너 자신'으로서 앞으로도 성장해 줄 것이라 믿는다."
작중에서 린은 수많은 사명을 떠안고 있었다. 기신 발리마르라는 거대한 힘을 가진 자로서, 선배들로부터 크로우를 되돌려달라고 부탁받은 자로서, 내전이라는 폭풍전야 속에서 민생들을 안정시키고 귀족파와 혁신파라는 양 세력의 대립을 뛰어넘어 새로운 답을 꾀하였던 자로서, 린 슈바르처는 자신에게 주어진 그 사명들을 헤쳐나가다 보면 자신의 길에 대한 답은 물론 다른 사람들에게도 길과 희망을 줄 수 있을 것이라 굳게 믿어왔었다. 그랬기에 그는 "자기 개인으로서의 린"보다는 "모든 사람들과 자신에게 있어서의 영웅인 린"의 길을 우선시했던 것이고, 그런 길이 당시의 린에 있어서는 모든 것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영웅"으로서의 정체성이 린의 전부였기에 종장 마지막의 그 결말은 그에게 더욱 더 비참하게 다가올 수 밖에 없었다. 린 슈바르처와 VII반이 그려왔던 영웅담의 결말이 비극적이었다는 것은 린에게 있어서 그의 모든 것이 짓밟힌 것이나 다름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외전과 후일담에서 린은 표면적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면서도 실제 내면은 극심한 슬픔에 침식되어 있는 모습을 보여줬던 것이다.
그런 린을 위해서 작성되었던 것이 바로 올리발트 편지의 마지막 문구였다. '영웅'이 아닌 '너 자신'으로서 성장하라.
꼭 '영웅'이라는 사명에 '나 자신'을 불태울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또한 그런 사명들을 하나도 이룩하지 못했다고 해서 좌절할 필요도 없다. 현실은 동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드라이켈스와 같은 역사적 인물들도 단지 그 사회에서 고뇌하면서 살아갔던 한 명의 '인간'이었을 뿐, 열심히 노력한다고 해서 반드시 성공이 보장되는 필연적인 영웅이라는 것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순수한 꿈과 뜨거운 열정을 갖고 왕도를 걸어나간다면 밝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까? 이 곳은 현실이기 때문에 알 수 없고 오히려 반대의 경우가 더 많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렇기에, 비록 옳은 일을 행한다고 해도 '영웅'으로서의 정체성을 위해 '나 자신'을 재물로 바쳐서는 안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언젠가 비로소 현실의 씁쓸한 맛을 보게되고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었을때 그 자신이 너무나도 비참해지기 때문이다. 영웅에 대한 강박관념을 가질 필요없이 자신 스스로 슬퍼하기도 하고 소소한 행복을 느끼기도 하는, 자신이 그런 '인간'임을 잊지말고 성장하면서 앞으로 나아가야한다.
그리고 이는 주인공들이 그럼에도 공허의 시험에 도전해나갔던 이유이자 크로우의 마지막 유언이었던 "그저 한결같이 앞으로"라는, 섬의 궤적2의 가장 핵심적인 테마와도 어느정도 상통한다. 영웅에 대한 사명으로 자기 자신을 불태워가면서까지 격정적으로 달려가는 것도 아닌, 그렇다고 실패에 대한 극심한 좌절에 빠져서 제자리에 멈춰서 있는 것도 아닌, 사람들은 그저 '인간'으로서 묵묵히 한발짝씩 미래를 향해 앞으로 걸어나가야 하는 것이다. 물론 그 앞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밝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 수도, 아니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세상이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고, 혹은 더 어두워진 세상을 보게될지도 모른다. 여긴 동화가 아닌 현실이기 때문에 알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앞으로 나아가야만 한다. 아무리 작은 힘일지라도 누군가는 어떤 방식으로든지 움직여야만 밝은 미래를 거머쥘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것이고, 무엇보다도 주인공들은 한 명의 인간으로서 그리고 미래를 맡은 사람으로서 성장해나가야만 하기 때문이다. 드라이켈스라는 한 인간이 그러했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주인공들은 현재 자신들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공허한 시험"을, 비록 극복해내더라도 아무것도 얻을 수 없었던 "황마성"과 같은 시련에 도전해나간다. 꿈에 가득차 있었던 VII반이라는 공동체에 매듭을 짓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그 시련을 넘어서고 앞으로 나아간다면 언젠가는 해피엔딩을 맞이할 수 있을까? 모른다. 하지만 올리발트가 2부에서 말했던 것처럼, 비록 그들의 노력이 결국은 좌절된다고 해도 그런 실패를 양식으로 삼고 사회로 나가 세상과 상호작용해나가다 보면, 언젠가 주인공들은 그들이 원했던 세상과 진정으로 마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난 뒤 마지막 결전에서 너무나도 희망적인 음악이 흘러나왔을때 내가 느꼈었던 감정은,
이상하게도 '행복함'이었다.
지금까지 봐왔던 어떠한 해피엔딩들을 접했을 때보다도 더 행복한 감정을 느꼈던 것 같다. 단순히 절망 속에 희망을 배치해놔서 그런 감정을 느꼈던 것일까. 아니면 누군가가 거대한 현실에게 좌절당한 어떤 순수에게 실현가능한 희망을 보여줬기 때문이었을까. 작가는 제국이라는 실제적이며 가혹한 현실을 만들어놓고 이상론 및 꿈의 한계와 국가 정세의 거대함을 통해 주인공들을 좌절시킨뒤 그들에게 또다시 어렴풋한 빛을 선사해준다. 너무나도 절망적이고 잔인한 이야기이면서도 밟혀 으스러져가는 꿈과 용사들에게 바치는 헌사이다.
더군다나 나중에서야 알게된 이 공허한 시험 BGM의 이름은 "찬란한 내일을 향해서"이다. 그저 앞을 향하여, 사회를 향하여 걸어가기로 결정한 주인공들의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해서 팔콤 사운드팀은 그것이 찬란할 것이라고 말하면서 그들을 떠나보낸다. 후일담 엔딩에서의 동료들을 떠나보내는 린 또한 이제는 슬픔이 아닌 어떤 희망에 부풀어있는 모습으로 걸어나간다.
또한, 공허한 시험을 완료한 뒤 VII반 주인공들이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여러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우선 밀리엄이 "VII반은 단지 재상의 명령으로 들어왔을 뿐인데 왜 마지막 순간에 눈물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밀리엄과 주인공들이 눈물을 흘렸던 가장 큰 표면적인 이유는 이제 그것으로 VII반 인원들끼리 헤어지고 다시는 모두가 함께일 수 없다는 이별의 슬픔이었다. 또한 그런 울음의 한 일면을 보자면 자신들의 꿈이 완전히 밟힌 것에 대한 슬픔 또한 존재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앞을 향해 묵묵히 나아가겠다는 주인공의 의지를 통해서 그것은 주인공들이 진정으로 성장하였다는 일면 또한 있었다고 생각한다.
리뷰 후기
아무튼 이것으로 섬의 궤적만의 이야기는 마무리되었다. 사실 작품적인 관점으로 볼때는, 그런 주제를 선택한 이상 이 다음의 제국편이 나와서는 안된다. 한결같이 앞으로 나아간다는 테마를 부각하기위해서는 주인공들의 미래가 어떤지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을 피해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게 이번에는 전작들과는 달리 아직 제국편 내에서 풀리지 않은 궁금증들이 상당히 많기 때문에 다음 최종제국편은 나올 것이다. 사실 이 섬의 궤적2는 애초에 후속작을 염두에 두고 만든 작품이기도 하다.
또한 인터뷰를 보니 원래는 종장에서 린의 아버지 정체가 밝혀지고 나서 이야기를 끊으려고 했다고 한다. 섬의 궤적2의 백미라고 볼 수 있는 외전과 후일담도 사실은 발매 8개월쯤 전에서야 만들어졌다고. 그렇다는건 원래 섬궤2에서는 현실에 대한 씁쓸함만을 보여주고 후일담의 주제는 다음 제국편에 가서야 적용시키려 했다는 것인데...
아무튼, 그럼에도 후일담에서 보여준 테마는 26년동안 이어져왔던 영웅전설 시리즈에 있어서 상당히 흥미로운 결과물이었다. 영웅전설 가가브 3부작이 "작은 영웅들"의 이야기를 보여줬다면, 이제부터 벌어지는 신세대의 영웅전설은 "없는 영웅들"(?)의 이야기를 보여줄 것으로 보인다. 팔콤이 섬의 궤적2를 발매하기에 앞서 "이번 작품은 기존의 JRPG들에는 없었던 것을 보여줄 것이다."라고 했었고 (사실 당시에는 그것이 단순히 작은 소재정도인줄만 알았지, RPG의 관념을 완전히 뒤집는 주제의식일줄은 몰랐다), 더군다나 최근 인터뷰에서는 "(앞으로 펼쳐질) 제국편은 기존과는 상당히 이질적인 이야기가 될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물론 이런 테마는 단지 섬의 궤적2에서만 다루고 다음에는 "그런 적 없는데?"라면서 다시 정석적인 영웅담으로 갈아탈 가능성도 적지는 않다. 그런 영웅관과 궤적 시리즈 마지막의 해피엔딩(아마도)를 어떻게 접목시킬지가 상당한 난제이기 때문이다. 팔콤 측은 이미 궤적 시리즈 마지막에 대한 "흐름" 자체는 설정해두었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섬의 궤적2와 상통하는 흐름이라고 확신하기도 힘들다.
아무튼 그렇다하더라도 앞으로 펼쳐져나갈 작품들은 과연 어떤 이야기가 될지 궁금증이 생기고, 그런 걸 떠나더라도 이번 섬의 궤적2에서 보여준 영웅관은 12년차 영웅전설팬에게 있어 상당히 큰 충격으로 다가왔었다.
이제 마지막으로 들어와서, 그렇다면 이제 '결과적으로 나는 이 작품에 만족했는가?'라는 질문을 내 스스로에게 해보자면
...사실 거기서부터 문제가 생긴다.
필자가 전작인 섬의 궤적1이라는 작품을 좋아했었던 이유는 전형적이지만서도 훈훈함과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줬던 각 인물들의 성장 스토리, 그리고 아직 어느 세력에도 소속되지 않은 순수한 학생들이 완전히 새로운 꿈에 도전해나간다는 것에 있었다. 그리고 이 작품이 그것의 후속작인 만큼, 섬의 궤적2 또한 그런 전작의 특징을 이어나가기를 바라고 있었다.
일단 성장 스토리에 있어서는 막간에서의 린의 이야기를 통해 개인적으로 만족했으므로 이어나갔다고 치자. 하지만 가장 기대했었던 후자에 있어서는, 그것을 제대로 조명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철저히 배신한다. 사실 이 작품의 가장 중요한 메세지 자체가 "그것은 불가능하다"였으니까 말이다. 그것도 실제 제국의 사회상과 대조되는 동화적인 소재들을 삽입해가면서까지.
바로 위에서도 말했었듯이 만약 필자가 섬의 궤적2를 하나의 개별 작품으로만 봤을때는, 아무튼 결과적으로는 정말 좋아하는 작품이기는 하다.
그러나 섬의 궤적2 발매 전 당시에 내가 바라고 있었던 이야기는 성장하는 주인공들의 희망에 가득찬 성공 이야기였었다. 예전의 영웅전설들이 그랬던 것처럼 비록 오글거리고 전형적이더라도 따뜻하고 밝은 영웅들의 이야기를 말이다. 물론 개인적인 성향으로는 해피엔딩보다는 오히려 배드에 가까운 엔딩을 더 선호하기는 한다. 어떤 변태적인 취향때문인지, 아니면 그냥 단순히 뭔가 신선한 충격을 받고싶어하기 때문일지는 몰라도 어떤 이야기가 의미있는 배드엔딩으로 끝나는 것을 더 좋아하기는 한다. 하지만 필자가 섬의 궤적1의 성장 스토리에 애정을 가지고 있었던 만큼, 그런 개인적인 취향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만은 해피엔딩으로 끝나주기를 바랬었다.
그리고, 팔콤은 분명 그런 희망적인 영웅전설을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VII반의 꿈이 실현되는 이야기를 만들 수 있었을 것이고,결국 철혈재상이 내전에서 이기기는 하더라도 올리발트와 주인공들의 활약으로 귀족 세력들과 혁신파가 공존하게 되는 이야기를 만들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해피 엔딩을 만든 후에는 다음 제국편을 위해서 마지막에 철혈재상이 린을 따로 불러낸 다음 그 충격적인 사실을 말해주고 끝나는 클리프행어식의 결말을 만들어도 됐다.
하지만 팔콤은 그것의 정반대 이야기를 만들었었고, 그렇기에 사실 나는 이 작품을 대체 어떻게 평가해야될지 아직도 혼동스럽다. 작품적인 관점에서는 큰 인상을 주었던 이야기였으나, 그러면서도 섬의 궤적1을 좋아했던 사람으로서는 일종의 배신감마저도 느꼈던 이야기였다. 또한 다른 궤적 전작들에서 보였던 시나리오적인 결점이 고쳐지기는 커녕 오히려 그것이 극대화되서 나타난 것도 상당히 아쉬울 따름이다.
어쨌든 섬의 궤적2에 대한 것은 그렇다치고... 아무튼 다음에 나올 마지막 제국편은 그래도 순수하게 기대된다. 결사를 포함한 대륙 내 세력들 간의 대립구도가 상당히 흥미로운 방향으로 변화하였다. 또한 제국 땅에 잠들어 있다는 2개의 지보 및 여러 기신들, 환염계획을 가로채간 철혈재상과 결사 간의 대립, 제국에 잠복해있는 성배기사단과 결사와의 본격적인 대결, 그리고 올리발트와 철혈재상과의 대결 등의 거대 떡밥들이 드디어 한자리에 모이게 된다. 물론 결사에게는 환염계획이 단지 최종계획의 한 단계에 불과하다고 했기에 제국편이 마무리된다고 해서 궤적의 모든 것이 마무리되는 것은 절대 아니겠지만, 그래도 현재까지의 궤적 시리즈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건들이 드디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과연 이런 요소들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면서 흘러갈지가 호기심을 자극한다.
비록 이번 섬의 궤적2는 여러모로 탈도많고 말도많았던 작품이고 개인적으로는 행복함과 배신감을 동시에 느꼈던 기묘한 작품이었으나, 부디 다음 제국편을 통해 궤적 시리즈를 재기시켜주기를 바란다.
여담
A. 발매 전 인터뷰에 대한 뒷북 분석
1. 팔콤 측: 이번 작품에는 결사에 대한 충격적인 전개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확실히 궤적설정덕후로서는 상당히 충격적인 전개였습니다. 사실 당시에는 이것을 "결사에 대한 많은 사실이 밝혀집니다"라고 잘못 받아들였었기 때문에 실제 작품을 봤을때 김이 빠지기는 했지만, 종장 마지막에서 결사 주요 인물이 의외로 주인공들을 돕는다거나 철혈재상한테 오히려 결사가 한방 먹게되는 부분은 차기작에 있어서 꽤나 흥미로운 전개였습니다.
이로써 다음 제국편에서 철혈재상 vs 결사 vs 성배기사단 3개 세력 간의 대립각이 완성되었는데, 중요한 것은 이 3 세력 모두 서로 타협점이 안보인다는 것입니다. 철혈재상은 이미 예전부터 성배기사단의 개입을 가로막았었고, 2에서 끝날뻔했던 환염계획을 날름 가로채고 도발까지 하면서 결사와의 관계도 최악. 게다가 결사와 성배기사단은 이미 고대적 시절부터 싸워왔던 앙숙이었으니, 다음 차기작에서는 이 먼치킨 3 세력간의 진흙탕 싸움이 다뤄질 것임은 물론, 과연 주인공들이 이런 대립에서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가 관건이 되겠습니다.
아마 전작들처럼 정석대로 성배기사단 테크를 탈 가능성이 가장 높지만, 린에게 있어서 철혈재상은 자신의 친부이기도 한데다 크로우를 데리고 다니던 결사의 비타 크로틸다와 협력한 경험도 있는 상황. 물론 그렇다고 린이 철혈재상이나 결사쪽에 붙는다고까지 주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튼 이런 요소들이 꽤나 복잡한 스토리 텔링으로써 엮어들어갈 가능성은 무시할 수 없는 편입니다.
사실 꼭 그게 아니더라도 거의 항상 결사와 주인공들이 대립하던 전작들과는 달리 이번 작부터는 이 3 세력간의 대립과 주인공들의 관계가 다뤄진다는 점만으로도 궤적으로써는 신선한 시도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게다가 거기에 십삼공방까지 가세, 그것도 예전에는 결사의 부하세력인줄만 알았던 십삼공방이 실제는 오히려 결사보다 상위의 존재일 수도 있다는 정보까지 들어오면서, 이번 제국편은 기존의 대립각을 완전히 뒤엎을 수도 있다는 점도 기대가 됩니다.
아무튼 이건 그렇고, 종장 마지막에서 잠시 결사인물이 오히려 주인공들과 같이 싸운다거나 크로우를 애도해주는 전개도 꽤나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로써 결사 인물들에 대한 평균적인 인간상이 정립되었는데, 대략 "표면적으로는 변태(?)같은 성격의 전형적인 악역으로만 보이나, 내면까지 사악하지는 않고 오히려 어느정도의 인정까지도 있는 사람" 정도가 되겠습니다. 비타 크로틸다가 딱 그 평균이었다고 볼 수 있는데 실제로 작중에서의 묘사도 적이긴 하지만 얄밉다고까지 느껴지지는 않고, 물론 제국을 혼돈의 도가니로 만드는데 어느정도 일조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와이즈맨처럼 극악무도한 짓까지는 벌이지 않기도 하죠. 결사 인물들에 있어서 꽤나 흥미로운 성격의 인물들 중 하나이기도 하고, 차기작에서 비타가 어떻게 다뤄질지가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물론 어디까지나 "평균"이지, 결사에는 아직도 비인간적인 실험을 자행하는 노발티스 박사라던지 등등의 와이즈맨보다는 약하지만 여전히 질 안좋은 인물들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면서도 아리안로드나 맹주, 로젠베르그 공방의 노인처럼 인덕을 중요시 여기는 인물들 또한 있고, 이번에 결사가 단순한 작품내 악역은 아니라는 것이 더욱 확고해지면서 오묘해지는 상황. (그래도 역시 모든 결사인물들의 공통점은, 여전히 와이즈맨을 찬밥 신세로 여긴다는 점)
2. 결사 소속 제5기둥 <파계> 관련 언급
게임잡지 기자: 전작 벽의 궤적에서 제국에 임무를 맡고있는<파계>에 대한 언급이 있었는데 섬의 궤적2에서 어떤가요?
팔콤 측: <파계>는 이미 예전부터 등장하고 있었습니다.
"팔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섬궤2에 파계가 밝혀진다고는 말 안했음ㅋ" 정도 되겠습니다. 파알코옴!!
섬궤1 후속작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흥미로운 내용을 누설시켜줘서 팬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려 한 것 같지만... 파계의 정체가 섬궤2에서는 안 밝혀진다는 것을 고려해서 팔콤은 인터뷰에 좀 더 능숙하게 대처해야했습니다. 저같은 궤적팬이 저런 위의 인터뷰 내용을 들으면 "섬궤2에 파계의 정체가 밝혀진다!"라고까지 확대해석할 가능성이 높아서 (사실은 제가 그 주동자들 중 주요 한 명이었다는 사실) 전체적인 기대수치가 올라갈 수 밖에 없고, 그렇게되면 진실이 밝혀졌을때 팬들의 김이 빠져버릴지어니...
팔콤은 이를 고려해서 '파계가 등장합니까?'라는 질문에 "여기에 대해서는 누설이 되므로 설명해드릴 수 없습니다"로 일축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식의 답변이 팔콤이 예전부터 굉장히 많이 쓰던 말이었다는 아이러니한 사실. (이번엔 왜 안그랬니)
아무튼 확실한 것은 <파계>라는 인물의 정체는 이미 궤적 시리즈에서 최소 한번 이상은 등장하고 있고, 아무리 늦어도 다음 작품 내로는 제국에 올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혹은 이미 제국에 있다거나) 게다가 최근 잡지에서 파계가 제5기둥임이 확정됐다는 것과 5기둥의 말투를 감안한다면 파계의 정체는,
어느정도 고지식하고 + (무술계열 or 동방계열인) + 중년이나 노년 정도의 남자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3. 성배기사단
게임잡지 기자: 성배기사단은 이번에 등장하나요?
팔콤 측: 정확히 말할 수는 없지만, <벽의 궤적>에서 (제국에 파견된) 성배기사단들에 대한 언급이 나옵니다.
"팔콤: 그렇다고... (퍽)
B. 인물 비중 및 운용 (+ 이번 인연이벤트에 대해서)
1. 알리사
이 캐릭터의 성장과정을 마음에 들어했었던 사람으로써, 이번 작품에서도 상당한 비중을 어필해주기길 바랬었지만 결과적으로 실질적인 역할이 거의 없었던 인물. 사실 알리사는 이미 섬궤1에서 완성된 캐릭터이기는 했다. 1에서 그녀의 고뇌와 갈등이 드러나지만 여러 사건과 만남들을 통해 마음을 다지고, 6장 후반부에 자신의 어머니에게 간언하기까지 이르면서 알리사의 '성장 스토리'는 2가 시작되기 전에 이미 마무리되었다고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알리사를 이야기에서 비중높게 다루기 위해서는 이제 "내전 속에서의 라인폴트 기업의 방향"이 등장해야 했으나, 실제 내전 속에서 라인폴트사는 일단 방관자 역할에 불과했기에 <내전>과 <라인폴트 후계자 후보로써의 알리사> 간의 상호작용이 다뤄지지 않았다. 아쉽기는 하지만 그래도 섬의 궤적1의 성장 스토리를 본것만으로도 일단은 나름 만족하는 편이다.
그러나 인터뷰에서 라인폴트 기업과 철혈재상 간의 관계가 뭔가 심상치않게 다뤄지는 것으로 봐서는 차기작에서 다뤄질만한 라인폴트의 진상이 상당히 수상하다. 게다가 최근 인터뷰에서도 알리사가 차기작에서 활약을 한다는 떡밥을 뿌려주면서 과연 그녀가 어떻게 다뤄질지가 꽤나 기대된다.
2. 라우라
사실 발매전에는 듀발리와 철기대가 본격적으로 등장할 것으로 예상했었기에 그와 연동된 라우라 일가의 비중도 상당히 중요하게 다뤄질 것으로 예상했었으나, 실질적으로 아리안로드는 커녕 다른 철기대 사람들조차도 등장을 안하게되면서 풀어낼만한 이야기가 없었던 비운의 인물. 어쩔수없이 결사 철기대 및 아리안로드가 본격적으로 활동할 것으로 보이는 다음 궤적에서 라우라의 활약을 기대하기로 했다.
3. 엘리엇
딱 예상했었던 만큼의 비중. 사실 예상했던 것보다는 살짝 더 비중이 높아서 나름 만족하는 편이다. 이 캐릭터의 테마 자체가 섬궤2의 내전 스토리와는 동떨어져있는 음악 진로였는데다, 그 진로를 반대(?)해서 엘리엇과의 갈등이 있을것 같았던 그의 아버지가 알고보니 수준급의 자식바보였다는 (갈등은 거의 없을 것이라는) 반전이 드러남으로 인해, 사실 개인적으로는 섬궤2에서 엘리엇의 비중은 거의 0일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그래도 다행히 요새에서 궁지에 몰렸던 영방군들이 민간인인 엘리엇의 누나를 인질로 잡는 해프닝으로 인해서 나름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보여줬기에 이 정도면 만족한다.
4. 유시스
만족할만한 높은 비중. 1부 후반과 2부 후반에서 메인을 담당하게 되면서 주인공 이외 우리 편 주연들 중에서는 유독 돋보이는 비중을 보여줬던 인물이다. 다만 아쉬웠던 것은, 그런 유시스의 방황과 관련되서 그와 앙숙이었던 마키어스가 본격적으로 개입해줬으면 했었고, 또한 유시스와 그의 아버지인 알바레아 공작과의 대립에서 유시스의 노블리스 오블리제 주의를 강조하면서 공작을 설득하고 그에 대해서 그 공작이 뭔가를 생각하게 되는 이야기가 있어주기를 바랬었다. 전체적으로 그의 비중과 캐릭터성은 꽤나 마음에 들었으나 일부 부분에서는 내가 했던 기대와 어긋난 면이 있었다. 그래도 전체적으로는 만족스러웠다고 생각한다.
5. 마키어스
마키어스도 알리사와 마찬가지로 전작 섬의 궤적1에서 정신적인 성장을 완성시켰던 인물이었다. 전작 4장에서 골수 혁신파에서 완전한 제3세력으로 탈바꿈한 인물이다. 다만, 본문에서도 말했듯이 그런 성장의 결과물을 쏟아낼만한 "다른 진정한 혁신파"가 실질적으로 이야기 중간에 나오지 않았었기에 2 메인스토리에서의 비중은 거의 완전히 없었던 편이다.
차기작에서는 철혈재상과 아버지인 레그니츠 지사 간의 관계가 다뤄질만하지만 아직 그렇다할 확신은 없다.
6. 엠마
그렇게까지 크지는 않지만 그래도 상당히 중요하게 다뤄진 인물. 마녀 일족의 사명에 대한 것은 거의 완전히 밝혀졌으나, 여전히 상세정보와 일족 사람들에 대한 정보는 베일에 가려져있다. 또한 언니인 비타 크로틸다와의 결착까지도 남아있기에 엠마 또한 차기작 지향형 캐릭터들 중 한 명이라고 볼 수 있다.
7. 피
사실 피 클라우젤의 경우는 어떻게 판단해야될지가 애매한데, 일단 피에 대한 이야기는 일단락난 것으로 보인다. 작중에서 크지도, 작지도 않은 비중으로 다뤄진 편. 그런데 이게 최근 인터뷰에서 피와 서풍의 여단에 대한 의미심장한 정보를 흘려줘서 아직 단정짓기는 이른 것으로 보인다.
8. 밀리엄
(이건 맨 밑 총정리에서 언급하겠습니다)
9. 가이우스
가장 아쉽게 다뤄졌던 캐릭터. 단순히 비중이 낮았다고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고, 가장 비중이 높을 수 있었던 조연임에도 불구하고 그러지 못했었다. 심지어 유시스급의, 혹은 그 이상이 될 수 있었는데도. 이 캐릭터의 정체성은 "놀드 고원과 민족을 세계정세의 풍파에 휩쓸리지 않도록 하자"에 있었기에 가이우스의 비중을 늘리기 위해서는 놀드 고원이 위기에 처하는 상황을 만들어줘야 하고, 실제로 1부 파트2에서는 그런 이야기가 다뤄진다. 하지만 그 부분에서 가이우스를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가이우스만의 주체성이 강조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보여진 것은 단지 동료들에게 도움받아서 끌려가는 느낌의 수동적인 자세였다. 물론 이를 통해서 "제국인과 놀드주민들 사이의 인연"은 잘 드러내줬다고는 생각하지만, 가장 중요한 "가이우스만의 의지"가 부재되어 버리면서 실제적인 그의 비중은 사실상 없다시피 되어버렸다.
이건 뭐 그렇다치고, 그래도 나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1부니까 그렇겠지'라고 생각하며 2부를 기다렸었다. 사실 이 부분에서는 정말로 희망이 있었다. 바로 놀드 혈통이면서도 귀족연합 영방군 소속인 월리스 준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놀드 혈통'이었기에 가이우스와 어느정도 상통하는 부분이 있으면서도 대립하는 위치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만약 2부에서 월리스 준장이 이끄는 영방군 사단이 놀드 고원으로 가 또다시 전쟁을 일으켜 놀드 지역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그런 그를 저지하기 위해서 가이우스가 직접 나서게되는 식의 전개라도 채택했었다면 어땠었을까 싶다. 놀드를 지키기 위한 놀드 혈통끼리의 대립을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 섬궤2에서는 그런 가이우스와 월리스 준장 간의 관계가 다뤄지지 않았다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아무튼 인터뷰에 따르면 월리스 준장은 다음 편에서 제대로 활약을 어필해준다고 하니 가이우스가 그와 연동되기를 기대하면서 일단은 그때를 기다려보기로 했다. 가이우스가 더이상 바람이 아닌 폭풍으로 승격되기를 바란다.
섬의 궤적2의 인물운용에 관한 제 개인적인 느낌은 "전후사정을 고려한다면 어떻게든 납득은 가나 그래도 탐탁치 않다" 정도가 되겠네요. 몇몇 인물들의 이야기는 다음 제국편에 가서야 본격적으로 다뤄지게 되고 또 어떤 인물들은 섬의 궤적1에서 이미 완성된 캐릭터이기도 했으니... 이번 중간격의 제국편에선 전체가 아닌 소수의 조연들만 스폿라이트된다는 것은 이해해줄만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말그대로 탐탁치는 않았습니다. 그런 "다뤄지는 소수들"의 정체성조차도 어느정도는 후속작에 기대고 있을 뿐더러, 그 인물들이 펼쳐나가는 스토리 또한 100% 만족하고 납득할만한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또한 인물간의 관계에 관련해서, 일단 하늘의 궤적 시리즈에서 보여졌던 과도한 커플링의 양산이 전작 영벽궤와 마찬가지로 없다는 점에서는 만족스러우나, 이번 섬궤2에서는 오히려 섬궤1에서 보여줬던 <유시스 對 마키어스>, <피 對 라우라> 등과 같은 일반적인 관계도조차도 희석되어버린 것이 아쉬웠습니다. VII반 전체끼리의 유대감이 강조되기는 했지만, 그것과 더불어서 2~3명끼리의 소소한 인간관계도 하나 이상정도는 강조됐었으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인연이벤트와 관련되서, 공식 리뷰에서는 "메인스토리에 들어갔어야 했을 특정 인물의 설정들을 대부분 인연이벤트로 몰아넣었다"고 작성되기는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엄밀히 분석해보자면 사실과 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밀리엄의 검은 공방 이야기와 엠마의 마녀 관련 상세이야기인데 (알리사와 린만의 어렸을적 추억같이 메인 스토리 흐름과 관련없는 설정들은 물론 제외하겠습니다) , 이런 인물들의 설정이 메인스토리에서 언급되기 위해서는 그 인물과 관련된 커다란(중요한)사건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합니다.
예를들어 하늘의 궤적SC 5장에서, 애거트의 고향이 또다시 파괴되고 그에 분노한 애거트가 레베와 싸움을 벌인 뒤에 티타에게 자신의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해줬었듯이, 어떤 특정 인물의 중요한 설정이 언급되기 위한 개연성을 유도하고 몰입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그 인물과 관련된 메인 해프닝이 존재해야만 합니다. 밀리엄에 대한 설정이 메인에서 제대로 다뤄지려면 검은 공방과 알티나에 대한 큰 사건이 터져줘야만 하고, 엠마의 마녀에 대한 나머지 상세 이야기를 펼쳐나가기 위해서는 비타와 마녀 일족 전체 그리고 엠마 그 자신을 둘러싼 사건을 다뤄줘야만 합니다. 아무런 연결고리 없이 그런 부분을 메인에서 다루기는 부자연스럽기 때문입니다. 검은 공방만 봐도 2에서는 아직 모습조차도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고 그렇다고 밀리엄이 본격적으로 스포트라이트될만한 부분도 2에서 나올만하지 못했기에, 그녀에 관한 정보가 조금이라도 메인에서 밝혀지기에는 무리가 있었죠. 그리고, 사실 그런 이야기들은 어떤 형식으로든 차기작에서 다뤄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즉, 오히려 섬의 궤적2의 인연 이벤트에 삽입되었던 그런 주요 정보들은 원래는 차기작에 가서야 다뤄질 정보였고, 어차피 그때가서 그 정보를 다시 한번 언급해줄 것이기에 흥미를 돋구기 위해서 섬의 궤적2의 인연 이벤트에 그런 내용을 미리 넣었다고 보는 편입니다. (인연이벤트처럼 둘만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할만한 환경이 될때는 그런 정보를 은근슬쩍 흘려두기에 적합하기 때문. 만약 섬의 궤적1처럼 비교적 여유로운 상황이었다면 메인 내에서도 그런 것이 가능했겠지만 섬의 궤적2는 아예 메인이 전쟁 상황이기 때문에 메인에서 넣는 것이 부적합하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저는 섬의 궤적2 메인 스토리에서 각 인물들의 이야기가 적게 다뤄지게 된 이유를 인연이벤트 문제로 보기보다는 위에서 언급했듯이 "많은 인물들의 이야기가 너무 다음 제국편으로 치우쳤기 때문"의 문제로 봐야된다고 생각합니다. 그 부분은 확실히 저도 아쉬웠고 문제점으로 꼽는 편입니다.
( 물론 사실 2부 후반부의 사라 교관의 이야기에 대한 것은 아쉬웠습니다. 개인적으로 인연이벤트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좋아하는 것도 아니라서 파고들지 않는 편이기에 사라에 대한 인연이벤트는 보지 못했었지만, 2부 후반부에서 북쪽의 엽병단과 사라 간의 결착이 사전 언급없이 (물론 그에 대한 정보가 그 시점에 빠르게 등장하기는 했었지만) 이뤄진 것에 대해서는 확실히 조금 당황하기는 했었습니다. 아마 사라와의 인연이벤트에서 그런 사라의 과거가 제대로 등장하는 모양인데, 사라처럼 섬궤2에서 그 이야기가 결착나는 경우에는 그런 과거 정보를 (비록 2에서는 전황상 힘들더라도) 전작 1에서라도 메인의 <학생들 對 사라>에서 다뤄줬다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
아무튼 글을 마치며, 이런 대책없이 긴 글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개인적인 어떤 부끄러운 이유때문에, 이 글에 댓글은 이왕이면 달지 말아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잘봤습니다. 떡밥회수를 어떻게 해쳐날갈지 저는 이게 가장 큰 걱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