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낙 조선말이 막장이라그렇지
일본이 에도시대때경제가 발달하고 문화가 꽂피었다고하지만
대부분을 차지하는 농민들 삶은 ㅈㄴ별로였던거같던데
마비키나 도쿠가와 이에야스만해도 농민은 죽지도살지도못하게하라했고 에도시대 관리가
농민은 기름이다 짜면짤수록 나온다고 했을정도니
워낙 조선말이 막장이라그렇지
일본이 에도시대때경제가 발달하고 문화가 꽂피었다고하지만
대부분을 차지하는 농민들 삶은 ㅈㄴ별로였던거같던데
마비키나 도쿠가와 이에야스만해도 농민은 죽지도살지도못하게하라했고 에도시대 관리가
농민은 기름이다 짜면짤수록 나온다고 했을정도니
루리웹-9618843361
추천 0
조회 52
날짜 16:58
|
tierra
추천 2
조회 69
날짜 16:58
|
롱파르페
추천 0
조회 51
날짜 16:58
|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
추천 1
조회 178
날짜 16:58
|
맥도날드버거 만만세
추천 0
조회 106
날짜 16:57
|
루리웹-8514721844
추천 0
조회 24
날짜 16:57
|
히카姉
추천 5
조회 89
날짜 16:57
|
박쥐얼간이
추천 0
조회 92
날짜 16:57
|
세린홀릭
추천 1
조회 112
날짜 16:57
|
티그리
추천 1
조회 116
날짜 16:57
|
초초전도체
추천 0
조회 31
날짜 16:57
|
메주맨 엑스
추천 0
조회 68
날짜 16:57
|
MooGooN
추천 0
조회 70
날짜 16:57
|
아재개그 못참는부장님
추천 3
조회 302
날짜 16:57
|
핸디
추천 35
조회 1610
날짜 16:57
|
anjk
추천 4
조회 128
날짜 16:56
|
새벽반유게이
추천 1
조회 68
날짜 16:56
|
아랑_SNK
추천 3
조회 491
날짜 16:56
|
어쩔식기세척기
추천 1
조회 52
날짜 16:56
|
레스토랑스
추천 35
조회 3435
날짜 16:56
|
히틀러
추천 82
조회 11124
날짜 16:56
|
평면적스즈카
추천 0
조회 51
날짜 16:56
|
S3cre7arY
추천 0
조회 161
날짜 16:56
|
M.O.M
추천 1
조회 93
날짜 16:56
|
역병망령
추천 0
조회 103
날짜 16:56
|
루리웹-9153344288
추천 0
조회 34
날짜 16:56
|
박쥐얼간이
추천 0
조회 142
날짜 16:56
|
안심하세요 병원입니다
추천 118
조회 9335
날짜 16:56
|
솔직히 조선 농민으로 살기 vs 에도막부 농민으로 살기 하면 1초도 고민 안하고 조선 고름. 물론 상위 계급으로 산다면 에도막부가 더 좋은데, 그 돈이 어디서 났을지 생각하면.......
임란 이전 한정
? 병자호란끝나고 영정조떄까진 살기좋았던거아녔음?
아니 임란 호란 거치면서 은결이 많이 생기고 이이 시절 이후 가속되던 대농장이 본격화되면서 소작농이 본격적으로 늘어났음 인조 이후로 따지면 각종 역과 소작비, 농세등으로 인해서 실질세율 70%까지 된다는 연구도 있고
영조때 조창 정비로 선조때부터 있던 함경도의 영아살해 풍습이 없어졌다고 하고 상업이 발달하면서 단순히 땅만 보고 살아야 했던 전기보다 직업도 다양하게 분화함. 기술의 발전도 생각하면 오히려 전기보다 영, 정조때가 살기에는 더 좋음 임금님이 아들을 죽였다고? 원래 한성부민 이금은 흉참한 소인배지만 정문선무희경현효대왕은 백성을 보살피는 위대한 지도자니 상관 없다
상업의 발전은 맞는데 그게 전체 농민 평균적 질의 상승이냐면 그게 아님 오히려 상업의 발전으로 소수 자영농과 도심 상업부민들만 잘살게 되고 그걸 뒷받침하는 단위경제로의 소작농들은 더 쥐어짜였음
그건 조선 내내 있던거라 전기라고 다른것도 아님. 전기라면 아직 기술도 발전되기 이전이고 고려의 수혈식 주거도 타파되기 전이라 후기가 살기에는 더 나음
아니라니까? 대체 뭘 보고 그렇게 주장하는지 모르겠는데 극히 일부 빼면 삶의 질은 계속 나빠졌음 17·18세기 조선후기의 사회는 커다란 변동기에 접어들었다. 사회변동의 현상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것은 농촌사회에서의 농민층의 분해가 촉진되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곧 移殃法이 라는 농업 기술의 변화과정에서 농업 노동력의 변동이 생기는 데에서 말미암은 것이다. 이앙법을 선택한 것은 1) 노동력이 적게 들고, 2) 단위면적당 생산고가 높으며, 3) 이모작이 가능하였기 때문이다. 이 이앙법으로 농업노동력의 80%가 절감(불필요)되고 따라서 경작지를 확장하는 소위 廣作운동이 전개되었다. 광작운동은 빈부의 차를 현격하게 함으로써 농촌의 분화를 촉진시키고 토지겸병을 자극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 결과 당시 이앙법으로 불필요한 노동력은 광작운동이 일어남과 동시에 농촌에서 밀려나게 되어 농촌사회는 ‘十室九空’이라 말할 정도로 많은 이농민이 생겨 났다. 이 이농민의 일부는 상공업 부문에 종사하였으나 대부분은 실업민으로 유랑하였는데 이른바 ‘流民·盜賊·過客·居士·社黨·錢垈軍’이라 불리는 무리가 바로 그들이었다. 이들 이농민은 ‘成群作隊’하여 농촌을 휩쓸고 사회 질서를 혼란시키고 있었다.註 003
일반 부민들의 삶의 질이 나빠지지 않았으면 정치적 위기도 오지 않고 안정적인 통치가 가능한데 역설적으로 영정조 시기를 뺀 조선 후기는 통치 자체가 불안했고 이는 경제적 정책의 이행과 그 정책 반영에 서로간에 네거티브 피드백을 끼쳤음
동서양 막론하고 어느나라든 민초의 삶은 고달프고 귀족은 살기좋은거 똑같음
솔직히 조선 농민으로 살기 vs 에도막부 농민으로 살기 하면 1초도 고민 안하고 조선 고름. 물론 상위 계급으로 산다면 에도막부가 더 좋은데, 그 돈이 어디서 났을지 생각하면.......
20세기 이전에는 어떤나라든 이와 벼룩한테서 자유롭지 못했을듯
뭐 사실 영국도 빅토리아시대때 노동자들 삶 ㅁㅁ이었으니까
조선도 시대 따라 다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