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한나라 주들의 대부분을 차지한 위나라였지만
※위나라 주들의 면적이 작은게 그만큼 인구밀도가 높았다.
의외로 파죽지세로 촉나라와 오나라를 몰아치지 않고
내실다지기에 들어가야해서
제갈량쪽에서 오히려 북벌을 시도할 배경이 있었는데
우선 위나라와 전대 후한의
수도권은 장안~낙양일대인데
황건적~동탁일행으로 엄청난 피해를 입었던게
위나라의 중원~화북지방(기존 중국의 중심지)이여서
비교적 혼란기에서 피해가 적었던
익주와 형주~강남 같은 곳은 후한말기의
대규모 난리에서 좀 멀리 떨어져있어서
위나라 쪽에서도 적벽대전으로 단기간 통일이 불가능해지자
아작난거 복구하는게 우선이었다.
삼국 구도라고 불리우는 것과 달리 시간은 오히려 위나라의 편이었다네여…
애초에 위나라 그 당시 알짜빼기 땅만 먹은 상태로 삼국으로 나눠진거라 통일은 시간 문제였지
적벽의 패배가 좀 크기는 했음 그 때 입은 손실을 위 문제 시기까지 복구를 못했으니
게다가 유비가 죽었다는 말 듣고 급할거 없다 판단한것도 있고
그래서 제갈량, 강유의 북벌이 위나라 입장에서 은근히 짜증이 나구나
실제로 1차 북벌 때 제갈량이 옹주,양주 평정했으면 역사가 많이 달라졌을거라고 함
장안 낙양쪽 땅들이 그만큼 중요했구나
중국 역사에서 많이 나오는 중원이라 생산력이나 지리적 요건이 진짜 압도적이었음
수도권 지역이 초토화된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