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사이코데믹 | 출시일 | 2024년 12월 26일(글로벌) |
개발사 | 그라비티 게임 어라이즈 | 장르 | 추리 어드벤처 |
기종 | PC, PS4, PS5, NS | 등급 | 청소년 이용불가 |
언어 | 자막 한국어화 | 작성자 | Graz'zy |
※ 본작은 탐정물, 추리 게임으로서 스포일러에 민감한 분은 먼저 플레이를 마치고 리뷰 감상을 권합니다.
게임은 우리에게 다양한 체험을 선사한다. 그게 영웅적이든 악랄하든 뭇 게이머가 기꺼이 지갑을 열 정도로 매력적이면 뭐든 소재가 된다. 어떤 장르는 다른 것보다 신작이 좀 뜸하지만 말이다. 일례로 탐정물을 떠올려보라. 다들 퍽 매력적이라 느낄 소재임에도 게임은 많지 않다. 명탐정이 나설만치 그럴싸한 사건을 설계하는 것부터 큰일이니까. 힘들여 짜낸 트릭을 제대로 풀 게이머가 몇이나 될지도 미지수고. 물론 게임인 이상 머리가 좋든 나쁘든 즐길 수 있어야겠으나, 그렇다면 어떻게 복잡다단한 추리 과정 없이도 스스로 명탐정이 된듯한 기분을 내느냐가 숙제로 남는다.
요컨대 순도 100% 추리 게임은 창작자와 향유자 모두에게 요구 수준이 너무 높다. 그래서 대부분 사건 풀이 자체보다 거기서 벌어지는 활극에 집중한다. 간혹 추리 과정을 넣더라도 현장에 놓인 단서가 빛나거나 누가 자꾸 정보를 흘리는 등 어떻게든 거들어주기 마련. 이 참견이 지나치면 시시하다 욕먹기 일쑤고 마냥 방기하자니 마니아의 전유물이 될 공산이 크다. 게이머가 지적 유희를 즐길 수 있도록 은근히 돕는 요령이 필요하다. 이게 참 미묘한 감각인지라 신작이 드문 것도 이해가 간다. 과연 모처럼 나온 탐정물 ‘사이코데믹 ~특수 수사 사건부 X-FILE~’은 나름의 해법을 찾았을까.
흥미로운 소재지만 창작자와 향유자 모두에게 요구 수준이 너무 높은 추리 장르
모처럼의 신작 '사이코데믹 ~특수 수사 사건부 X-FILE~'는 이를 어떻게 풀었을까
팬데믹이 낳은 정신 건강의 위기, 그리고 범죄
우선 제목부터. ‘사이코데믹(Psychodemic)’은 무슨 뜻일까. 검색해보니 사이코(Psycho, 심리)와 팬데믹(Pandemic, 전염병)을 합친 신조어로, COVID-19가 횡행할 당시 전세계서 대두된 정신 건강의 위기를 설명코자 만들어졌다. 흔히 팬데믹이라면 신체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만 주의하기 쉬운데 바이러스 확산 및 봉쇄 조치가 야기시킨 고립, 경제적 어려움, 불확실성에 의한 우울감 역시 치명적이란 것. 실제로 우리가 지난 몇 년간 그토록 힘들었던 게 비단 피가래 낀 기침과 열병 탓은 아니지 않나. 어쩌면 사회의 폐부 깊숙이 남은 가장 지독한 상흔은 정신 건강 문제일지도 모른다.
따라서 본작의 주역 이와이 탐정 사무소는 사이코데믹 여파라 할 만한 범죄 사건을 추적한다. 대략적인 배경 설정은 이러하다. 2019년 말, 정체 모를 바이러스가 퍼져 수많은 희생자를 낸다. 그 증세는 현실의 COVID-19보다 훨씬 치명적이라 도쿄도를 전면 봉쇄하고도 내각총리대신과 관방장관, 후생노동대신 등 높으신 분까지 죄 죽어나갈 정도. 다행히 치료법이 발견돼 팬데믹은 잦아들었으나 모두가 무사히 일상으로 복귀하진 못했으니. 가령 작중 인체 자연발화 사건의 희생자는 심각한 알코올 의존증이고, 낙하현상 사건의 범인은 팬데믹간 사이비 종교에 휘말려 가정이 풍비박산났다.
팬데믹 와중에 개발된 작품답게 바이러스 확산과 봉쇄 조치가 남긴 상흔을 조명한다
팬데믹을 틈타 교세가 크게 불어난 사이비 종교 문제는 실제 일본 사회가 떠오르기도
앞서 적잖은 탐정물이 추리가 아닌 활극에 집중한다 지적했는데 ‘사이코데믹’은 그와 정반대 사례다. 여기서 주인공은 게이머 스스로를 대입하기 쉽도록 대사나 성격이랄 게 거의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반지하 골방쯤 되는 이와이 탐정 사무소를 벗어나는 경우조차 극히 드물다. 법무성 소속의 코드 네임 정킷, 기지마가 은밀히 건네는 의뢰를 매니저, 아키바가 받아오면 딜러라 불리는 주인공이 앉은 자리서 곧장 풀어낸다. 먼저 여태껏 파악된 정보를 벽면에 가지런히 붙인 후 내부 기자재만으로 자료들을 분석, 차근차근 사건의 진실로 다가선다. 사건이 해결되고 후일담은 다시 아키바의 몫이다.
이렇듯 직접 현장서 뛰지 않고 가만히 머리만 굴리는 유형을 소위 안락의자 탐정이라 부른다. 최초의 소설 속 명탐정이기도 한 오귀스트 뒤팽이 대표적인데 차이가 있다면 주인공은 21세기 사람이란 것. 즉 몸은 탐정 사무소에 머물되 인터넷으로 동료들과 얼마든지 소통 가능하다. 물론 주로 민감한 사건을 다루니 만큼 실제 대화가 오가는 창구는 다크 웹. 그곳에 연락책 정킷뿐 아니라 IT·기계 전문가 메카닉, 가시와바라와 의학 전문가 바텐더, 도쓰카 그리고 오컬트 전문가 오드, 우레시노가 접속해 많은 도움을 준다. 말하자면 사이코데믹 범죄 해결을 위하여 모인 집단지성인 셈이다.
탐정 사무소에 앉아 외부서 보내온 자료를 바탕으로 추리하는 전형적인 안락의자 탐정
때가 어느 땐데 굳이 현장을 뛰어다니나, 다크 웹으로 동료들과 실시간 소통하면 된다
만물박사 대신 집단지성, 머리 대신 기자재 쓰기
보통 소설 속 명탐정은 사건 풀이와 관련된 온갖 분야에 해박한 경우가 많다. “희생자에게 살구 냄새가 나는군, 청산가리를 먹었어” 같은 대사가 단골로 쓰인다는 건 독극물에 대한 지식이 탐정의 기본 소양이기 때문. 반면 게임 속 명탐정은 처음부터 그리 똑똑히 묘사하기가 좀 곤란하다. 주인공이 다 아는 바를 정작 게이머는 모른다고 생각해보라. 정보의 비대칭 탓에 몰입이 저해되지 않겠나. 따라서 ‘역전재판’ 나루호도처럼 나사가 살짝 빠졌어도 행동력 강한 유형이 주인공에 훨씬 잘 어울린다. 비슷한 맥락에서 본래 안락의자 탐정은 비디오 게임과 궁합이 좋으려야 좋을 수 없을 테고.
이에 ‘사이코데믹’은 다크 웹을 통해 게이머와 주인공간 정보의 비대칭이 생길 여지를 차단한다. 전문 지식이 필요할 때마다 그 분야 담당자에게 물어보니 꼭 주인공까지 만물박사일 필요가 없고, 어쨌든 최종 판단은 직접 내리므로 탐정으로서 입지도 흔들리지 않는다. 작중 첫 사건을 예로 들자면, 원인 모를 소사체 발견 → 오드가 인체 자연발화에 대한 도시전설을 소개 → 과학적으로 풀이 가능할지 고민 → 희생자의 마지막 행적이 담긴 CCTV 영상을 메카닉이 입수 → 거기서 포착된 화학품이 뭔지 바텐더가 설명 → 모든 정보를 취합하여 주인공 즉 게이머가 문제의 답을 찾는 수순이다.
솔직히 이 팀은 메카닉 없었으면 진즉 해산이다. 온 동네 CCTV 영상을 다 빼오는 인재
직접 머리 굴리는 추리보다 기자재로 자료를 분석할 때 장르적 쾌감이 극대화되는 편
물론 명탐정의 지적 능력이 집단에게 분산, 대체될수록 추리 게임이 주는 장르적 쾌감은 떨어지기 마련. 명탐정이라면 역시 진구지 사부로마냥 담배 한 모금 맛깔나게 빨며 날카로운 추리를 이어가는 독고다이가 멋지니까. 그래도 주인공과 게이머의 강한 일체감만큼은 ‘사이코데믹’ 같은 시점이어야 느낄 수 있는 큰 장점이다. 다만 여기서 개발자가 미처 깨닫지 못한 정보의 비대칭이 잔존했으니. 바로 음계만 듣고 민요 ‘사쿠라 사쿠라’ 맞추기. 일본인치고 모를 리 없는 곡이라 아무런 추가 단서도 주지 않는다. 결국 대다수 해외 게이머는 머리털 빠져라 골몰하다 구글링 후 볼멘소리F-word를…
이렇듯 트릭의 난도를 조정하는 건 생각보다 퍽 지난한 작업이다. 개발자는 라라시~ 라시도시~ 라시라파~ 정도면 ‘사쿠라 사쿠라’를 떠올리기 충분하다 여겼지만 현실은 어떤가. 서두서 언급했다시피 이 장르의 관건은 어떻게 실제 추리 과정이 적거나 없는 와중에 명탐정 기분을 잘 내느냐다. ‘사이코데믹’은 주어진 자료를 기자재로 분석하고 동료들의 조언을 종합하는 과정 자체가 어느 정도 탐정 역할극 노릇을 한다. CCTV 영상을 돌리다 어느 한 장면만 자른다든지 특정 주파수의 소리를 키울 때면 스스로 전문가가 된듯해 어깨가 으쓱거린다. 전통적인 탐정과는 살짝 결이 다르지만서도.
비유하자면 외국인에게 음계만 주고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맞추라고 한 격이다
충분히 정보가 모였다면 보고서 항목에 정답이라 생각되는 자료를 넣고 마무리 짓자
흥미롭되, 오묘한 설정과 미묘한 조작은 아쉬워
‘사쿠라 사쿠라’ 맞추기처럼 사소한(…) 문제를 빼면 ‘사이코데믹’의 시나리오와 트릭은 대체로 준수하다. 인체 자연발화나 마의 삼각지대 등 익히 알려진 사건을 나름대로 재구성해 흥미를 유발하고, 개별 사건이 모여 큰 그림으로 완성되는 흐름 역시 흠잡을 데 없다. 그저 자그마한 아쉬움은 종반에 접어들며 불쑥 대두되는 이능교단의 힘이 기존 추리 과정을 무색케 만든 감이 있다는 것. 여전히 널리 읽히는 추리 소설 작법 ‘녹스 10계’와 ‘반 다인 20칙’에 따르면 비과학적, 초자연적인 설정을 함부로 넣어선 안 된다. 정체 모를 이능력이 개입할 경우 추리의 전제 자체가 뒤틀리기 때문이다.
물론 이능력이라도 명확한 작용법과 한계를 짓고 그걸 탐정이 파악함으로써 추리의 영역으로 들어올 수 있다. 초능력 추리 어드벤처를 표방한 국산 인디 ‘스테퍼 케이스’가 좋은 사례. 어떤 힘이 어디까지 발휘되는지 인지 및 추적 가능하면 그때부터 칼이나 총에 의한 범죄와 크게 다를 바 없다. ‘사이코데믹’ 역시 이능교단의 힘이 어떻게, 어디까지 발휘되는지 알려주지만 솔직히 확 와닿지는 않았다. 접촉한 상대를 잠시간 정신 지배, 같이 범용성이 지나치게 뛰어난 이능력을 상대로 애써 추리할 의욕이 날까. 접촉한, 그리고 잠시간, 정도의 제약으로 용인해 줄 만한 범주를 넘어서는 힘이다.
아니 잠깐, 무난하게 진중한 추리극으로 잘나가다가 거기서 갑자기 빅장을 쏜다고!?
명확한 작용법과 한계를 짓는다면 초자연적 힘이라도 추리의 영역에 들어올 수 있다
또 하나 아쉽달까, 다소 불편했던 점은 이따금씩 게임의 친절이 과하다는 것. 가령 아키바가 “대조 장치를 통해 이 사진과 CCTV 영상 속 인물을 비교하자”고 말하는 상황이라 치자. 이미 대화문으로 다음에 해야 할 행동이 뭔지 알려줬음에도 굵직한 빨간 화살표가 대조 장치에 달리고 심지어 다른 조작은 못하도록 잠가버린다. 특정 기능을 처음 사용할 때야 튜토리얼이라 이해하겠지만 이게 마지막 사건까지 반복된다. 명색이 추리 게임인데 대화문으로 충분하다. 빨간 화살표는 있으면 고마운 정도고. 조작을 강제하는 단계에 이르러선 되려 불쾌할 공산이 크다. 친절함도 너무 과할 경우 독이 된다.
상술했듯 각종 기자재로 자료를 분석할 때 장르적 쾌감이 발휘되는 작품이라 뭘 찍고 자르고 추출하는 등 쓰이는 키가 꽤 많다. 그런데 게임패드와 달리 키보드, 마우스로 조작하면 손맛이 약간 어색하다. 차차 적응하면 괜찮아지나 애초부터 키 매핑을 지원했다면 더 나았으리라. 일본 게임이야 원체 콘솔 위주로 만들고 즐기니 전혀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다만 그라비티 게임 어라이즈는 본사가 한국에 있지 않나. QA 단계서 ‘사쿠라 사쿠라’ 같은 내수용 트릭이나 키보드, 마우스 지원에 대해 신경을 써줬다면 좋았지 싶다. 일견 사소하게 보이는 문제가 부정적인 평가를 낳기도 하니까.
탈선이 가능한 오픈월드 게임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조작을 강제할 필요가 있나 싶다
기자재 다룰 때 조작이 복잡한데 일본 게임답게 키보드, 마우스 지원은 영 어설프다
이와이 탐정 사무소의 다음 추리를 기대하며…
참고로 ‘사이코데믹’은 완전히 독립된 이야기가 아니라 전편이 존재한다. 이와이 탐정 사무소라면서 정작 소장인 켄지는 내내 감옥에 있다든지 첫 사건부터 배경 설정이 지나치게 소상한 게 바로 그 때문. 본작의 감독이자 각본가 이마이 슈호는 고전 게이머에게 ‘도쿄마인학원 검풍첩’으로 나름 알려진 인물로 2021년작 ‘사다코M 미해결사건탐정사무소’서 탐정 켄지와 조수 아키바를 한 발 먼저 등장시켰다. 심지어 제목에서 보듯 저 유명한 ‘링’ 사다코가 핵심 소재였다고. ‘사이코데믹’ 역시 자못 충격적인 결말을 통해 속편을 암시한지라 앞으로 이와이 탐정 사무소의 고난은 계속될 전망이다.
자, 정리해보자. ‘사이코데믹’은 명작 반열에 올리기 다소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나 가뭄의 단비 같은 추리 게임으로서 여전히 즐길 가치가 있다. 조언을 아끼지 않는 다크 웹 동료들과 지나치게 친절한 게임 시스템이 종종 지적 유희를 저해하지만 그렇기에 이 장르 특유의 진입장벽이 낮아진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최근 글로벌 콘솔 버전이 출시되며 스팀 역시 정식 한국어화를 마쳤다. 게임 내 문서로 주어지는 자료의 분량이 굉장히 많은데 한 장 한 장 모두 꼼꼼히 번역했더라. 요즘 날씨가 자칫 귀 떨어지길 지경이다. ‘사이코데믹’과 함께 뜨뜻한 방에서 안락의자 탐정이 되길 추천한다.
내내 감옥에 갇혀있는 소장 이와이 켄지는 '사다코M 미해결사건탐정사무소'에 등장
향후 계획이야 흥행 여부로 갈리지겠지만 일단 속편을 구상해뒀다는 암시가 나온다
작성 및 편집: 김영훈 기자 (grazzy@ruliweb.com)
스팀 평가가 낮아도 너무 낮은 것 같은데 한국어 지원이라고 했다가 최근에 지원되어서 그런건가
기대했던 게임인데 스팀평가가 너무 안좋아서 손이 안가는 게임...
한국어가 된거 같은데 너무 낮아 평가가..ㄷㄷ
작년 출시전부터 기대 했는데 한국어 안나오고 comming soon 이길래 곧 뜨겠지? 기다리다가. 지쳐서 손이 안감 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