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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극복하려고 그렇게나 발버둥쳤는데…. 결국 내게 허락된 결말은 이것 뿐인건가.
내 죄에 대한 대가는, 이 목숨으로 치를 수밖에 없는건가….’
눈앞에 닥쳐온 확실한 죽음 앞에서, 오메가는 번민했다. 하필이면 이제 막 행복한 결말을 위한 첫걸음을 떼려던 차였기에, 이 무정한 선고가 더욱 아프고 괴로웠다.
‘하하…. 언젠가 죽게 된다면 담담히 받아들이겠다고 다짐했는데, 마음이란 것이 이리도 간사하구나. 어떻게든 살아남을 방도가 없을까 미친듯이 발버둥치는 것을 보면.’
오메가는 머릿속에 무수히 떠오르는 돌파구에 대한 생각을 의식적으로 지워냈다. 그녀의 옛 주인이 빠져나갈 구멍을 놓칠 만큼 허술하지 않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
‘내가 죽는 것은 확정이고, 관건은 인간님…인가.’
오메가는 곁눈질로 사령관을 슬쩍 바라보았다. 오메가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인간님을 살려 보내느냐, 죽게 만드느냐….’
첫번째를 선택하고자 한다면, 옛 주인의 의도대로 이 지하에 홀로 남아 폭파를 늦추면 된다. 사령관이 시설을 빠져나간 뒤 이 저주받은 유산과 함께 폭사하는 것이다.
두번째를 선택하고자 한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된다. 말 그대로 아무것도. 오메가는 마찬가지로 죽지만, 사령관과 함께 죽어 묻힐 수 있다는 차이가 있다.
사령관이 살아서 나간다면, 그는 철충의 잔당들을 무사히 소탕하고 이 위기를 극복할 것이다. 가장 강대한 적 중 하나였던 오메가의 펙스 세력이 고꾸라졌으니 무난하게 인류문명을 재건할 수 있겠지.
수많은 여자들에게 둘러싸여 사랑받을것이고, 그들 사이에서 무수한 사랑의 결실도 맺을 것이다. 그 이름은 역사서에 새겨지고, 살아서도 죽어서도 길이길이 칭송받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은 그 자리에 없다. 어리석게도 인류의 구원자에게 반기를 든 용렬(庸劣)한 자로 기록되지나 않으면 다행일테지.
그렇게 생각하니 당장이라도 심장이 산산이 부서질 것처럼 고통스럽다. 사막을 헤매는 조난자가 한 방울의 물을 맛보고 더욱 괴로워하듯, 이제야 겨우 실마리가 잡힐 듯하던 행복이란 존재가 한낱 신기루처럼 사라질거라 생각하니 이 고통이 그 무엇과도 비할 바가 없다.
‘내가 가질 수 없다면, 차라리…. 차라리 그 누구도….’
그렇다면 차라리, 이곳에서 함께 묻혀 그 누구도 갖지 못하게 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만다. 내가 아닌 다른 모두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볼 바에야, 전부 불행하게 만드는 편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 만다.
‘내가 가질 수 없다면 차라리 부숴버린다… 누구도 갖지 못하게 한다…라.’
오메가는 다시 콘솔의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너무 오래 멈춰 있으면 사령관이 이상을 깨달을 테니까.
‘우습네. 정말 우습기 그지없어. 회장의 그 지랄맞은 성격이 그리도 혐오스러웠는데, 나도 최후에 와서는 그놈과 똑같이 생각하고 있잖아. 역시 타고난 피는 어쩔 수 없는건가? 그 빌어먹을 자식의 유전자를 이어받은 이상 어쩔 수 없는 숙명인건가?’
가능한 천천히 작업속도를 늦추며, 오메가는 쓰게 웃는다. 이제껏 옛 주인을 혐오하고, 부정하고, 자신은 다르다고 생각해왔는데, 확실한 죽음이 코앞에 다가오니 놀랍도록 똑같이 생각하고 있지 않은가.
“...윽!”
그때, 오메가의 손이 아려온다. 사령관이 손수건을 매주었던 그 상처로부터 기인한 고통이었다. 상처가 심장 고동에 맞추어 욱신대며 썩 달갑지 않은 통증을 연신 전해준다. 그 모습이 마치 오메가에게 올바른 선택을 하라고 채근하는 것만 같았다.
‘...그래. 나는 그 인간과 달라.’
오메가는 손을 힘주어 쥐며 결심을 굳혔다. 옛 주인의 피를 극복하고 타고난 본능을 이겨내리라고. 그녀가 그리 결심함과 동시에, 통증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인간님. 좋은 소식 하나와 나쁜 소식 하나가 있어. 뭐부터 들을래?”
“음… 좋은 소식부터 말해줄래?”
오메가가 지나가듯이 물었다. 사령관은 오메가의 태도가 심상찮다는 것을 감지하고 조심스레 답했다.
“좋은 소식은, 내가 엔터키만 누르면 이 시설은 작동을 중지한다는 거야.”
“정말이야? 다행이다! 그럼 더 이상 철충이 생산되지 않는-”
“나쁜 소식은, 엔터키를 누름과 동시에 자폭 프로토콜이 발동돼서 둘 중에 한 명만 살아나갈 수 있다는 거고.”
“...뭐라고?”
밝게 미소짓던 사령관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는다. 사령관은 오메가의 눈빛을 보고 이 말이 농담이 아님을 깨달았다.
“해결할 방법은 없는거야?”
“없어. 무슨 수를 써도 불가능해. 반드시 둘 중의 한명은 죽어야 해. 한 명이 남아서 폭파를 늦춰야 하거든.”
“...그렇다면, 내가…! 내가 남을게!”
사령관이 망설임없이 외친다. 오메가는 사령관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피식 웃었다.
“남아서 뭐 어쩌게. 폭파 어떻게 늦춰야 하는지는 알아? 내가 온 힘을 다해야 겨우 할 수 있는 어려운 작업인데.”
“그건, 네가 알려주면 어떻게든…!”
“와, 그건 좀 기분나쁜데. 겨우 몇 분 교육받은 걸로 나만큼 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는거야?”
“그런 뜻은 아닌데….”
장난삼아 던진 말에 쩔쩔매는 사령관이 퍽 사랑스러워, 오메가는 필요 이상으로 짓궂게 그를 놀려댔다. 이제 곧 죽을 마당에 이 정도 욕심 부린다고 누가 뭐라 할 수 있겠는가.
“물론 내가 너만큼 잘 할 수 없겠지만, 널 위해 시간을 벌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생각해줄 수는 있잖아? 넌 레모네이드 시리즈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오메가니까.”
“그래, 당신이라면 그렇게 얘기할 줄 알았지.”
만류에도 굴하지 않고 재차 요청하는 사령관에게 슬픈 웃음을 지어보이며, 오메가는 조금 전 사령관에게 겨눴던 총을 다시 그 손에 쥐었다.
-타아앙!
“으…아…으윽…!”
그리고 사령관이 말릴 새도 없이, 총구를 허벅지에 대고 그대로 방아쇠를 당겼다. 허벅지 근육이 헤집어지고 혈관이 파열되는 고통에 목 깊은 곳에서부터 신음소리가 새어나오고, 이윽고 총흔으로부터 혈액이 세차게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지, 지금 뭐 하는거야! 잠깐만 있어 봐. 지혈을…”
“됐어. 그렇게 안 해도 돼.”
경악하며 입고 있는 옷을 찢어 지혈을 하려던 사령관을 오메가가 막는다.
“미안해, 인간님. 사실 거짓말이었어. 폭파를 막는건 나밖에 못해. 가르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야. 애초에 나만 할 수 있게 만들어져 있으니까.”
오메가는, 사령관을 안심시키기 위해 가능한 담담한 목소리를 꾸며냈다. 잃어버린 혈액 탓에 벌써부터 호흡이 가빠지고 정신이 아득해지고 있었지만, 필사적으로 이성을 붙잡으며 그저 버틴다.
“인간님은… 상냥하니까, 바보같을 정도로 착한 남자니까…. 내가 이 정도로 억지부리지 않으면 날 두고 가지 않을 거잖아?
자, 이 상처를 봐. 나는 어차피 죽어. 그러니까 인간님이 나가는게 맞지 않겠어?”
오메가는 허벅지에 난 상처와 흘러내리는 피를 보여주며 사령관에게 다가갔다.
“자, 이 총… 어차피 여기에서는 더 필요없으니까 인간님 줄게. 지상으로 올라가서 우리가 타고 왔던 로켓에 시동만 걸면 돼. 목적지는 출발했던 막사로 지정되어 있으니까 그냥 타고 가면 알아서 도착할거야.”
오메가가 사령관에게 총을 건넨다. 총은 이미 오메가가 흘린 피로 질척하게 젖어 있었기에, 사령관의 손에도 그 피가 잔뜩 묻고 말았다.
“미안해, 인간님. 인간님이 줬던 손수건… 답례하고 싶었는데…. 나는 이런 것밖에 못주네.”
오메가가 힘없이 미소짓는다. 하지만 그 미소가 거짓된 것이라는 사실은 너무도 쉽게 알 수 있었다. 눈가에 가득차 흘러내리기 직전인 눈물, 울음기가 섞여 엉망으로 갈라지는 목소리, 잔뜩 흐트러진 호흡에 가냘프게 떨려오는 어깨를 보면 누구라도 알 수 있었으리라.
그녀 역시 너무나도 삶을 갈망하고 있음을.
닥쳐오는 죽음이 두려워 소리 없이 울부짖고 있음을.
그럼에도 사령관을 살리기 위해 어설프기 그지없는 연기를 하고 있음을.
사령관은 그런 애처로운 이를 보고서도 발걸음을 돌릴 수 있을 만큼 냉철한 자가 아니었다.
“오메가… 명령이야. 우리 둘 다 살아나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줘. 너라면 할 수 있잖아, 그렇지? 그게 안 된다면 날 내버려 두고 너 혼자 나가! 내가 어떻게든 막을 테니까!”
그렇기에, 자신에게 있는 명령권을 사용해서라도 오메가를 살리고자 하였다.
“우후후… 그것도 미안, 인간님. 명령권이 있다고 한 얘기도 거짓말이었어. 만에 하나 회장이 살아나도 내게 명령할 수 없도록 조치를 취해둔 상태였거든.”
허나 그것마저도 의미가 없었다. 오메가는 이미 사령관이 취할 수 있는 모든 선택지들을 없애버린 후였다. 때문에 사령관은 오메가가 말하는대로 그녀를 두고 가야만 했다.
“하지만, 만약에… 인간님. 내가 조금 욕심을 부리도록 허락해 줄 수 있다면….”
오메가의 안색이 더욱 창백해진다. 그녀의 생명이 시시각각 빠져나가는 것이 보일 정도였다.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키스해 줄래?”
결국 참고 참던 눈물이 터져나오고야 말았다. 조금 더 공들여 꾸민 로맨틱한 분위기 속에서 첫키스를 하고 싶었다. 살아오며 처음으로 섬기고 싶어졌던 남자를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하고 또 사랑받고 싶었다. 이 저주받은 피를 타고난 자신도 사랑하고 사랑받을 자격이 있음을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하지만 이 저주받은 피와 죄의 굴레는 끝끝내 그런 행복을 허락해 주지 않았다. 그렇다 해도, 단 한 번, 단 한 번의 키스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필사적으로 숨겨왔던 연심의 한 조각 정도는, 그에게 보여주어도 괜찮지 않을까.
사령관 역시 눈물을 흘리며 오메가를 껴안았고, 둘은 뜨거운 키스를 나누었다. 피가 빠져나간 입술은 차가웠고, 두 사람 모두 울고 있었던 탓에 키스는 그야말로 엉망진창이었다. 하지만 오메가에게는 이제껏 맛보았던 그 어떤 것보다도 달콤하고, 또 황홀한 시간이었다. 곧 죽는다는 슬픔마저도 잊게 할 만큼.
천천히 입술이 떨어지고, 오메가는 메마른 미소를 입가에 띄우며 소리 없이 말했다. 이제 가야 할 시간이라고.
사령관은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재촉하며 엘리베이터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오메가의 각오를, 그 의지를 헛되이 하고 싶지 않았다.
사령관이 시야에서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며, 오메가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콘솔의 키보드에 손을 얹었다. 거의 끝내두었던 작업을 다시 재개하여 시설의 작동을 정지하는 명령어 입력을 순식간에 끝냈다.
그 순간, 시설 내에 시끄러운 경보 소리와 함께 적색 램프가 점등한다. 자폭 시퀀스가 자동으로 시작되었다는 뜻이었다. 오메가는 케스토스 히마스를 전개하여 자폭을 늦추는 코드를 입력했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그저 하염없이. 사령관이 지상으로 빠져나갈 시간을 벌기 위해서.
그러는 와중에도 상처로부터 혈액은 끝없이 빠져나가, 시야가 회색으로 물들고 호흡하는 것조차도 여의치 않았다. 스스로 몸을 지탱할 수도 없어 콘솔의 모니터에 기대어 손가락을 움직이는데 온 신경을 집중한다. 당장이라도 의식을 잃을 것 같았지만, 그저 버텨낸다.
그렇게 억겁과도 같은 시간이 끝나고, 콘솔 화면에 반가운 알림이 떴다. 엘리베이터가 지상에 무사히 도착했다는 알림이었다.
“헤… 헤에….”
그와 동시에, 오메가는 줄이 끊어진 인형처럼 풀썩 쓰러졌다. 웃는 것인지 우는 것인지 알 수 없는 표정을 하고서.
“인간님, 좋아했어…. 정말 사랑했어…. 인간님에게 구원받은 목숨을 당신에게 돌려준 것 뿐이니, 미안해 하지는 마….”
오메가의 눈동자가 시시각각 빛을 잃어간다. 이제는 붉은색 램프가 점등하고 있음을 겨우 알 수 있을 정도로 시야가 흐려진 상태였다.
“만약, 바이오로이드들에게 영혼이 있다면… 내게 다음 생이 허락된다면….”
핏줄기마저도 그 기세가 미약하기 그지없다. 더 이상 짜낼 혈액마저도 바닥난 상태였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했지만.
“그때는 당신의 곁에… 있을 수 있으면… 좋겠네.”
오메가의 몸이 잘게 경련한다. 그녀는 마지막 숨결과 함께 간절한 소망을 토해냈다.
‘...나 같은 년한테는, 과분한 무덤인걸….’
쓰러진 오메가에게 시설의 진동이 전해져왔다. 당장 다음 순간 터져버리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격렬한 진동이었다. 다행이라고 할지, 불행이라고 할지, 오메가는 시설의 폭발에 휘말리기 전 의식을 잃었다.
죽이지말라고!!!!
죽이지말라고!!!!
수고하셨습니다
아직 다음화와 에필로그가 남아있습니다
오
비서 유미가 봤으면 뭐라 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