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 16년에 삼강행실도를 편찬해서 일반 백성들에게 유교 윤리를 전파하려고 했고,
지속적으로 유교 윤리를 일반 백성에게 알려주려고 노력했는데
백성들이 글을 모르면 알려줘도 무쓸모였기 때문에 최대한 일반 백성들이 문자를 알 필요가 있었음.
정창손을 제외하면 사실상 집현전 학사들도
" 일반 백성에게 글을 알려줘도 쓸모가 없다 "는 논리가 아니라
" 중국과의 외교 문제, 왕의 건강 문제, 정무를 돌보지 않는 문제, 비밀리에 만드는 문제, 이미 이두가 있는데 왜 그걸 만듦?"
이거를 찝어서 이야기 했고 실제로 세종은 저거를 제대로 반박하지 않고
그냥 빡쳐서
니들은 설총은 옳고 나는 그르냐?
아주 그냥 임금 알기를 동네 개객기로 알지?
그리고 너 너 이 새끼 이리와 김문 너 이새끼 니는 저번에 찬성한다 해놓고 지금 와서는 ㅅㅂ 반대를 해?
넌 뒤졌어 이 새끼야
하고 분노한 거
물론 다음 날 최만리와 김문을 빼고는 다 풀어줬음.
아무튼 제일 중요한 게, 지속적으로 백성들에게 유교 윤리를 알려주려고 책을 편찬하고 만들었는데,
백성들이 진짜로 알 필요가 없고 글이 필요 없으면 한글 창제 이전에
삼강행실도, 오륜행실도 같은 책을 안 만들었음.
다만 예외적으로 세종이 대 놓고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폐급이라고 쳐 박은 정창손은
" 에이 백성들 글씨 알아봐야 뭐해요? " 했다가
세종에게 욕 먹은거
일종의 죽여주시옵소서~ wwe도 좀 있었던거려나 그중 일부 과몰입 급발진이 있었고..
말이 좋아 저 논리로 반대한거지 실제로는 백성들이 글을 알면 지배구도 변동 가능성이 커지니까 반대한거지
전혀 아님. 백성들이 글을 알아서 지배구도가 바뀔 정도의 체제면 얼마나 존나 부실한 체제란거임? 그리고 이미 이두를 쓰는 사람은 이두를 잘 썼음.
실제로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 비율을 보면 훈민정음 나오기 전 ~ 나온 후에도 꾸준히 하위 계층에서 급제자 나왔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