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마새 완독한지는 좀 됐는데, 마지막에 케이건의 눈물을 누가 마셔줬다고 할수 있을지 모르겠어서 좀 찜찜함이 계속 들었었단말이지?
사모가 기꺼이 케이건의 눈물을 마시려했지만, 왕은 인간에게 주어진 선물이 아니었기에 그렇지 못했고
륜이 나늬인 데오늬를 보여줌으로써 증오를 거두게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신으로써 폭주가 막혔을 뿐 케이건의 구원은 되지 못했고
하물며 륜이 사모 대신 희생을 한 것이라기엔, 오히려 높은 경지로 승천한 것에 가까워서 이게 진짜 희생이라 할수 있나 싶고
그렇다보니 모든걸 잃었다고 착각한 신의 폭주를 잠재우면서, 덩달아 케이건의 증오를 강제로 거세시켜버린 것 아닌가 싶었거든?
하지만 이제야 좀 스스로 납득이 가는 이해점에 도달한거 같다.
1. 왕이 눈물을 마시는게 아니다. 기꺼이 눈물을 마실 줄 아는 자가 왕이 되는 거다.
'자기완전성을 위해 사는 것을 조심해라' 라고 유해의 폭포가 닐렀었지.
생명과 삶이라는 궁극적인 목적보다,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사용한 수단과 규율이 더 앞장서버리는 주객전도가 일어나면 안된다는거야.
가장 먼저 완전해진 첫번째 종족은 완전해지기 위해 다른 이들을 사랑한게 아니야.
그들은 다른 이들에게 무한한 사랑을 주는 것을 당연하다고 여길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완전해진거지.
얼핏 보면 말장난 같고 같은 말인거 같지만, 전혀 다른 의미란 말이지?
그런 차원에서 왕은 눈물을 마시고 죽어야한다고 말했던 케이건 마저 틀렸던거야.
사모 페이는 눈물을 마시고 죽어야하기 때문에 왕인게 아니야.
다른 이를 위해 기꺼이 눈물을 마실 수 있는 사랑을 가졌으니까 북부의 왕인거야.
눈물을 마시는 새는, 기꺼이 타인의 눈물을 마시고, 희생할 수 있는 사랑을 지닌 자야.
그렇기에 그들은 누구보다 아름다운거고.
2. 그렇다면 눈물을 마시는 새는 왜 빨리 죽지?
승천한 첫번째 종족은 누구보다 타인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이들이었지.
하지만 다른 선민종족들은 어리석게도 그 첫번째 종족의 위대한 사랑을 전혀 깨닫지 못했어.
오히려 누구보다 지혜로운 첫번째 종족을 오만한 거라고 착각하고 있었지.
그들의 깊은 사랑을 이해하지 못했으니까.
또 뇌룡공 륜을 포함한 모든 용인들은 타인을 너무나 깊게 이해하게 되어버리는 탓에 타인을 거부하지 못하게 돼.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이용당해. 키시다 암각문에 적혀있듯, 그리고 륜이 키타타 자보로의 습격을 거부없이 수용해버렸듯.
이해하게 되어버렸기에, 사랑하게 되어버리지.
또 하나의 사례가 더있지. 과거의 케이건 드라카.
극연왕의 오라비이던 시절 깊은 사랑을 가진 케이건 드라카는 사랑하려 한 나가에게 이용당하고, 배신당하고, 증오 받았지.
역설적이게도, 케이건이 그 정도로 깊은 사랑을 가지지 않았다면 그렇게까지 당할 일은 없었을거야.
즉, 깊은 사랑을 가졌기에 기꺼히 희생하는 눈물을 마시는 새는, 그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이들에 의해 이용당하고, 희생을 강요받고, 그렇기에 누구보다 빨리 죽어버리는거지.
(그 대척점에 있는게 타인의 희생을 강요하며 타인을 향한 증오를 부딪히며 언제까지고 살아가는 피를 마시는 새고.)
절대 다수가 그 큰 사랑을 아직 이해하지 못하는 네 선민종족의 한계인거야.
심지어 선민종족들은 자기자신이 그 못지 않은 사랑을 가지고 있다는걸 몰라
북부군은 나가를 향한 증오만을 가지고 움직이는 것 같지만, 한편으로 자신들의 희생으로 북부를 지키기 위해서이기도 해.
시우쇠가 말했듯 모든 생명은 먹는 존재이고, 그건 자신을 지키고 유지하기 위한 파괴야.
북부군은 자신들이 희생하고 나가를 먹음으로써, 북부라는 거대한 생명을 유지하고자 한거지.
뇌룡공 륜 페이가 나가를 먹음으로써 사모 페이의 생명을 지키려 했듯이.
만약 북부군의 행군이 그저 나가를 향한 증오만을 위한거였다면,
왜 대다수의 북부군은 하늘누리 위에서 나가를 구하기로 했을까?
왜 주요 인물들은 나가 살육신이 나가를 멸하는걸 멈추려 했을까?
자신들조차 자각하지 못하는 사랑이 그 마음 속에 있는거지.
그걸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건 여전히 규율, 도덕, 수단에 얽혀있기 때문이고.
자신들이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한다고 생각하지 못하고, '사랑해야하기' 때문에 사랑한다고 생각해버리고 마는거야.
비유하자면 사랑하는 사람을 배우자로 맞이하는게 아니라, 배우자로 맞이한 사람을 사랑하려고 하는거지.
마음 속의 깊은 사랑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못하고, 거기에 도덕이라는 논리나 이유를 부여해서 당위성을 설명하려하지
결말부에 가장 큰 사랑을 내보인 사모 페이마저도 여기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해.
사모 페이도 자신에게 사랑이 있기에 희생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자신이 왕이기 때문에 희생한다고 생각해버리니까.
3. 그렇다면 케이건의 증오는 어떻게 청산되었는가?
케이건은 왜 마지막에 증오를 거두게 되었을까? 마지막 여행자는 왜 키시다 암석문에서 '미움'을 지웠을까?
케이건은 사랑을 아는 사람이야. 오랜기간 증오에 억눌려 잊어버렸지만 아직도 케이건은 사랑을 알아.
그가 정말 모든 사랑을 잃어버린거라면 요스비는 케이건과 마주친 순간 죽었겠지.
사모 페이 말마따나 그는 요스비를 사랑한거고, 마음 깊은 곳에는 나가를 다시 사랑하는 자신이 되고 싶지.
사모가 케이건의 눈물을 마시겠다고 사랑을 내보였을 때, 사랑을 모르는 어리석은 이들이 그래왔듯 눈물을 마시는 새를 죽일수도 있었지.
실제로 한순간 그러려고 했고.
하지만 사랑을 끝까지 이해하지 못하고 발악한 비아스, 사랑을 뒤늦게 깨닫고 뉘우친 세리스마, 무한한 사랑을 내보이는 사모 페이의 모습을 보고 인간 케이건의 증오를 거둔거지.
사모 페이의 깊은 사랑에 대한 대답으로 증오를 내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랑을 이해함으로써 오히려 인간 케이건의 증오는 청산된거야.
그럼에도 나가살육신이 멈추지 않은 건, 아직 케이건의 증오에 의해 폭주한 어디에도 없는 신이 아직 진정되지 않았기 때문이고.
그래서 발자국 없는 여신이 깨어나 셋이 모인 순간, 륜이 나늬의 존재를 일깨워주면서 어디에도 없는 신을 가라앉힐 수 있었던거고.
인간 케이건의 증오는 사랑으로 청산되었고, 신의 폭주는 자신이 사랑의 증표로 하사한 선물을 다시 보고 이성을 되찾은 거야.
그리고 한켠에선 방금전까지 서로를 죽이려 증오를 쏟아내던 북부군과 나가들이 서로 힘을 나누어 하늘치에 오르고 있었고.
자기들이 왜 그런 선택을 하는지 제대로 설명도 못했을 테지만, 자기도 모르게 말이야.
그래서 마지막 여행자는 키시다 암석문의 '미움'을 지울수 있게 된거지. 그건 틀렸다는 뜻으로
눈마새의 결말은 지금까지 보답받지 못했던 거대한 사랑들이 처음으로 조금이나마 이해받게 된 기적같은 순간이었던 거니까.
세줄요약
1. 왕이 눈물을 마시는 새가 되는 게 아니다. 눈물을 마시는 새가 왕이 되는 거다.
2. 눈물을 마시는 새의 사랑은 지금까지 이해받지 못했기에 증오 받고 이용당하고 희생 당했다.
3. 소설의 결말은 선민종족이 지금까지 이해하지 못했던 깊은 사랑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된 기적적인 순간이다.
그럴듯한걸?
결론:다들 서로 사랑하며 사이좋게 지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