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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칼부림』은 1623년 인조반정을 시작으로 하여, 17세기 초중반 격동기의 조선- 그를 넘어 명과 후금등 동아시아권 일대를 무대로 기구한 사연과 운명을 지닌 주인공 '함이'의 길을 조명하는 사극 서사시이다. 역사적 이야기에 어울리는 유려한 그림체와 고일권 작가의 탁월한 연출, 서사를 풀어나가는 능력이 절묘하게 맞물린 본 작품은 첫 연재로부터 11년여에 가가운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당시 시대와 역사에 관심이 많은 이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
칼부림은 고증의 적용에 심혈을 기울인 작품이지만, 작품의 매끄러운 진행을 위한 각색 역시 여럿 존재한다. 필자는 본 글에서 그러한 각색들을 조명해 보고자 한다.
지난 번에는 후금의 오대신 중 한 명인 동고 어푸 호호리(hohori)의 사망 연대가 실제인 1624년보다 조금 뒤인 1625년으로 각색된 것을 주제로 하였다면, 본 글에서는 이괄의 난의 참여자인 한명련(韓明璉)의 아들이자, 본인 역시도 난의 참여자였던 한윤(韓潤)의 후금 귀부 당시 초기 수여 관직의 각색에 대해 다루어 보고자 한다.
1624년 이괄의 난의 주동자는 당시 부원수 겸 평안병사였던 이괄에 더하여 구성부사 한명련이었다. 해당 반란에는 한명련의 아들인 한윤과 조카 한택(韓澤), 한섬(韓㴸)등 역시 참전했다.1 이괄의 반란군이 안현 전투에서 관군에게 패배하자 주동 세력은 소수의 병력만 이끌고 도주하였는데, 이 중에서 이괄(李适)과 그 동생 이수(李邃), 아들 이전(李栴), 한명련등은 이천에서 수하였던 이수백(李守白), 기익헌(奇益獻)등에게 살해당했다.2그로서 난의 주동자들은 사멸되어, 반란 역시 마무리 수순에 접어 들게 되었다.
그러나 이수백과 기익헌이 이괄을 공격하는 와중에 한윤과 한택 두 사람은 도주하는데에 성공했다.3 그렇게 도주한 그들은 난이 진압된 뒤에도 소재가 불분명하였다. 그렇기에 조정에서는 그들에게 현상금을 걸고서 추포에 골몰하기도 하였으며, 반란이 진압된 지 1년이 넘게 지난 뒤에도 한윤의 문제를 의논하며 그의 생사여부를 탐지코자 하기도 했다.4
조선이 한윤의 소재에 대해 의문을 품은 그 시기, 한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그는 놀랍게도 함께 도주한 자신의 사촌동생 한택과 함께 관군의 추포를 피하여 은거하다가 사세를 살펴 은밀하게 국경을 넘어 후금에 투항한 참이었다.5
1625년 1월 2일, 조선과 후금간 국경을 정탐하러 갔던 무바리 히야(moobari hiya)등은 국경을 넘은 한윤과 한의6를 발견하고 그들의 신병을 확보했다. 한윤과 한의등은 후금에 대한 신속의사를 가지고 있었기에, 자신들이 국경을 넘어 후금에 투항하게 된 자세한 전말, 즉 이괄의 난의 전말을 '자신들의 입장'에서 자세히 공술했다.
또한 이괄의 난 실패후 도주 경로에 대해서도 언급했는데, 반란이 실패한 상황에서 조선에서는 더 이상 갈 곳이 없어졌으므로 후금에 귀부코자 북상, 의주 관할 지역의 활장인의 집에 숨어 있다가 얼음이 언 틈에 국경을 넘고자 했다고 하였다. 그러나 당시 가도에 주둔하고 있던 명의 모문룡(毛文龍)과 그 휘하의 군대의 감시망이 촘촘하여 이제사 강을 건너 후금에 귀부코자 국경을 넘었다고 했다.7
사실, 당초부터 조선 조정은 이괄 세력이 반란이 실패한다면 후금으로 도주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8 그런데 이괄과 한명련등 반란의 주동자들은 모두 제거된 와중에, 뜻밖에도 한윤과 한의라는 변수가 발생하여 후금에 귀부한 것이다.
한윤과 한의가 거의 1년 가까운 도주 생활 끝에 후금에 항복한 것을 가상히 여긴 누르하치는 두 사람에게 관직을 내렸고, 처와 노복과 살 집과 밭과 가축, 비단등의 많은 재물을 하사하였다. 그로서 두 사람의 사례를 투항의 본보기로 삼고, 나아가 두 사람의 후금에 대한 강고한 충성심을 얻었다.9
조선의 역적이 된 한윤과 한의, 한명련의 두 자질(子姪)은 후금에 투항한 이후 후금- 나아가 청의 충신으로서 활동하였으며, 두 사람의 가문 역시도 두 사람의 공훈과 두 사람의 자손들의 계승에 따라 확장되었다. 하지만 여기서는 그의 자세한 일생과 행적은 다루지 않고자 한다. 본 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것은 그가 최초로 받은 직위의 각색에 대한 부분이다.10
누르하치는 한윤이 제공한 정보와, 그의 부친의 위상, 한윤과 한의 두 사람의 행적등을 고려하여 둘에게 각각 유격(遊擊)의 직위와 비어(備禦)의 직위를 내렸다.11한명련의 친자이자, 투항의 주동자였으며, 한의보다 나이가 많았던 한윤은 유격에, 한의는 비어에 임명된 것이다. 1620년 도입된 명나라식 무관직위 체계와 팔기구조 하의 직책 체계에서 유격은 잘란 어전 직책 하위에 상응하는 직위였으며, 비어는 니루 어전 직책에 상응하는 직위였다.
그러나 웹툰 『칼부림』에서는 다르다. 4부 2화에서부터 본격적인 존재를 드러내는 한윤은12 이후 3화에서 본격적으로 자신의 직책을 '니루 어전'이라고 언급하였다. 이후 4부 13화에서 그의 직위가 비어에서 유격으로 승급되는 장면이 나오면서, 그의 '직위'가 확실히 비어였다가 주인공 함이와 그의 니루에 소속된 가샨 보쇼쿠 타스하의 활약, 그리고 본인의 입신양명을 향한 고군분투에 힘입어 유격으로 승급되었음을 보여준다.
자신의 승진에 감명한 한윤. 웹툰 칼부림 4부 13화
요컨대, 『칼부림』에서의 한윤은 처음 후금에 투항할 당시에는 비어에 불과했으나, 4부 초반부와 4부 이전에 존재했을 여러 전투를 거쳐 그 공을 인정받아 유격이 된 것이다. 이는 실제 역사에서는 곧바로 그 과거 행적과 신분, 후금에 대한 투항의 가상함, 정보 제공의 공로를 인정받아 유격에 임명된 것과는 분명한 차이가 존재한다.
어째서 실제 역사에서는 유격의 관작을 받은 한윤이 칼부림에서는 비어의 관작을 받았다가 공을 세워 승급한 것으로 묘사되었을까. 가장 큰 이유는 한윤의 전공과 그를 통한 입신양명에 대한 열의와 의지, 그 의지를 기반으로 한 행동과 결과를 독자들이 체감할 수 있도록 보여주기 위함일 것이다.
한윤은 실제 역사에서건 작품 내에서건 부친 한명련과 집안에 대한 복수를 위해 움직였다. 그런 한윤의 복수를 위한 열정과 열의를 보여주기 위해서, 작품은 그가 전공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직접적으로 보여주고자 했다. 전공을 세워야만 높이 올라갈 수 있으며, 그렇게 높이 올라가야만 자신의 복수를 실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칼부림 4부 초반부부터 한윤은 무척이나 열정적으로 군을 지휘하며 전공을 세우기 위해 애썼다. 자신의 부하로 존재하는 함이와 타스하, 두 용맹한 전사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이용하면서, 본인 역시 선봉으로서 공성에 임해야 한다는 위험한 임무를 감수하며, 뒤로 물러나야 한다는 부하의 만류조차 뿌리치고 전공을 위해 내달리는 모습을 보였다. 심지어 자신을 조선인 출신이라고 무시하는 잘란 어전과 장교들 사이에서 고생하는 모습 역시 보이며 그의 의지를 더욱 조명했다.
독전 중 부상을 당하는 한윤, 칼부림 4부 6화 中
작품은 그렇게 애쓰는 한윤의 행동의 결과를 보여주어야만 했다. 그렇기에 그 결과로 '승진'이라는 사건이 묘사되었다. 전공을 세운 결과로서 본래 비어/니루 어전이었던 한윤이 유격/잘란 어전으로 승진한 것이다. 작품 속의 한윤은 실제의 한윤이 막 귀부할 때에 받았던 직급에 그제사 오르게 된 것이지만, 과정을 보자면 낮은 관작과 직책에 위치했던 한윤이 자신의 전공에 대한 의지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행보로 말미암아 입신으로의 길을 열은 것이 독자들의 눈에 여실히 보인다. 그리고 그로서 한윤의 캐릭터가 확실하게 완성되고 강조된다.
여기서 작가가 한윤이 실제 역사보다 한 단계 낮은 위치에서 시작하게 한 이유를 알 수 있다. 만약 작품 내의 한윤이 실제 역사처럼 유격으로 시작했다면 분전의 결과로 승직을 시키는 것이 부담이 된다. 실제 역사의 한윤 역시도 결과적으로 참장으로 승진하긴 하지만, 4부 초기 시점인 1624~1625년은 지나치게 빠르게 고위 직급으로 올라가는 것이다.13 물론 3등 유격에서 시작하여 2등 유격, 1등 유격등으로 승진했다는 묘사를 할 수는 있지만 한윤과 그의 니루가 세운 전공이 대단하거나 보상이 파격적이라는 인식이 사라지게 된다.
그렇기에 작가는 도리어 한윤을 비어/니루 어전에서 시작하게 하여, 함이, 타스하, 그리고 본인의 분전으로 빠르게 유격이 되게 하고 직책 역시 니루 어전에서 잘란 어전이 되게 했다. 그로서 한윤의 공적이 후금 조정과 누르하치에게 상당히 높게 평가받았으며, 그의 니루(와 니루에 소속된 함이와 타스하)의 전공 역시 고평가 받았음을 묘사했다. 그러면서도 승진한 직급 자체는 유격으로 하여, 동시기의 실제 한윤과 직급의 차이가 없게끔 하는 치밀함을 통해 최소한의 고증을 준수하는 뛰어난 각색 능력을 선보였다.
결론적으로, 한윤의 초기 직급을 한 단계 깎아내는 각색은 한윤의 복수를 향한 몸부림과 입신양명을 향한 질주, 그리고 그 결과를 보다 훌륭하게 꾸며 주는 선행조치였다. '복수와 입신양명을 위한 분전과 승진'이라는 과정과 결과를 묘사하는데에 훌륭한 향신료로서 기능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한윤이라는 작품내 인물의 인물상이 확실하게 갖추어 질 수 있었고, 그러한 인물상은 작품을 보는 독자들에게 깊게 어필되었다.
사실, 한윤의 초기 직급이 비어로 시작한 것은 비단 이런 이유에서 뿐만은 아니리라고 생각한다. 작품내에서 사촌형제 한택/한의의 존재가 사라진 대신, 작품 속의 한윤에게 실제 역사의 한윤은 물론 한택/한의라는 인물이 포괄된 탓 역시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다음을 기약하며, 본 글을 마친다.
각주
1.조선왕조실록 『인조실록』 인조 4년 4월 14일.
2.조선왕조실록 『인조실록』 인조 2년 2월 15일.
3.김기종, 『서정록』, 明璉子潤及其姪子一人, 逃命失捕.
4.조선왕조실록 『인조실록』 인조 2년 5월 16일. 『승정원일기』 인조 3년 6월 17일.
5.『만주실록』 천명 10년 정월. 본기록에서 한택은 한의(韓義, han i)로 기술된다.
6.이하로는 조선에서의 이름인 한택 대신 후금의 기록상에서의 이름인 한의로 기술한다.
7.『만문노당』 천명 10년 정월 2일.
8.『비변사등록』 인조 2년 1월 28일. 啓曰, 此賊不無交通西虜之事, 亦不無見, 敗投胡之患 (하략)
9.『만주실록』 앞과 같음.
10.우경섭, 「17세기 전반 滿洲로 歸附한 조선인들-八旗滿洲氏族通譜를 중심으로 -」, 『조선시대사학보』 48, 조선시대사학회, 2009 참조.
11.『만문노당』 앞과 같음.
12.3부에서도 한윤의 존재 자체는 대사를 통해 드러나나 그저 암시만이 존재했다. 칼부림 3부 49화 : 필사의 각오 참조.
13.실제의 한윤은 1625년에 후금에 귀부했지만 칼부림의 한윤은 1624년 이괄의 난이 일어난 본해에 귀부했다. 이는 추후 다른 이야기로 다루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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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의제기와 의견제시를 환영합니다.
웹툰 칼부림 좋아하는 사람이라 이런글 넘 좋아요
와...난 칼부림이란 만화는 몰랐는데 이렇게 긴 분석글을 그것도 꾸준글로 쓰는거 보니 명작의 향기가 나네 한번 봐야겠다
1부, 2부는 초기인지라 그림체 적응이 좀 힘들수도 있는데 3부부터 작품의 화풍이 보다 정돈되고 깔끔해진다는 점 염두에 두면 좋음.
요즘에 댓글에 분탕들이 꼬이는게 인기좀 받는거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