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화 출처 : 칼부림
1607년 혹은 그에 근접한 시점, 해서여진계 세력이던 호이파 내부에서 일단의 반란음모가 발생했다. 해당 반란은 당시 호이파의 버일러였던 바인다리에 대한 봉기 성격을 띄고 있었다. 이는 과거 바인다리가 정권을 잡던 과정에서 파생된 그에 대한 호이파 내부의 반 바인다리 여론 형성 및 그 유지와 관련이 있었다. 그 이야기를 간략히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다.
바인다리는 호이파의 이전 버일러인 왕기누의 손자였는데 조부의 사후 정권을 획책하기 위하여 왕기누의 다른 자식들, 즉슨 자신의 숙부 일곱명을 암살한 뒤 자신이 호이파의 정권을 차지했다. 이로 인해 호이파 왕실 내부에서는 반바인다리 여론이 급격히 거세졌고, 해당 숙부의 친족들을 중심으로 하여 대량의 망명자가 발생했다. 해당 망명자들은 여허로 투신했고 이 덕분에 당시 여허의 버일러였던 나림불루와 부자이는 이들 망명자들을 이용해 호이파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게 되었다.
이로부터 바인다리는 상당한 기간 동안 여허와의 관계에 있어서 을의 위치에 속하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호이파는 여허의 의도에 따라 1593년의 나림불루를 중심으로 한 반(反)누르하치 연합군에 함께 하여 누르하치와 전쟁을 벌이기도 했다.
삽화 출처 : 칼부림
이상에서 언급한 1607년의 반란음모는 이러한 호이파의 여허에 대한 종속관계에 반전을 불러 일으켰다. 해당 반란사태에 직면한 바인다리는 누르하치의 건주에 도움을 요청했고 이에 누르하치는 호이파에 대한 영향력 확대 및 그로 말미암은 울라에 대한 압박구도 구축을 위하여 바인다리로부터 그를 섬기는 일곱 암반의 자식을 볼모로 받은 뒤 1천여명의 원병을 파병하여 바인다리의 반란진압을 도왔다.1
이 때에 바인다리를 향해 반란을 일으킨 세력들은 이전에 여허에 망명했던 반 바인다리파 친족들과 밀접한 관계가 있던 것이 확실하다. 여기서 더 나아가서 아예 이 반란에 여허가 개입되었을 여지 역시도 보인다.
이 때 반란을 일으킨 세력과 그 진압에 대하여 만문노당서는 '여허로 배반하여 가지 않고 (반란이 진압되어) 평온해지니'라는 기술을 하고 있다.2 이것을 보건대 이 때에 반란을 일으킨 세력들은 반란을 일으킨 뒤 여허에 투신하려 했거나, 혹은 아예 여허 혹은 여허 내부의 반바인다리파 왕족들의 사주를 받아 반란을 일으켰을 가능성이 존재한다.
실제로도 호이파 내부의 반 바인다리파가 급작스럽게 독립적으로 바인다리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켰다고 판단하기 보다는 이 편이 사건적인 개연성이 좀 더 높다. 반 바인다리파의 바인다리에 대한 증오가 아무리 강하다고 하더라도, 아무런 지원 세력도 없이 이미 바인다리가 숙부들을 제거한 지 십수년이 지난 시점에 급작스럽게 반란을 일으켰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개인적인 추론으로는 이미 여허/혹은 여허에 망명한 반 바인다리파 호이파 왕족들이 호이파에 남아 있는 반 바인다리파에게 간접적인 지원이나 사주를 하였고 그것이 반란 음모로 이어졌다고 판단된다.
삽화 출처 : 칼부림
바인다리 역시도 이 점을 알고 있었기에 건주에게 지원을 요청한 것으로 생각된다. 건주는 여허와 오랜 앙숙관계였고, 그렇기에 여허의 사주를 받은 반란에 도움을 줄 것이라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보자면 누르하치 역시도 호이파에 대한 영향력 확대와 울라에 대한 압박전략의 구축 외에도 여허의 호이파 종속 의도 저지 역시 목적으로 가지고서 호이파에 원병을 파병했다고 할 수 있다.
이상과 같은 추론을 기반으로 생각해 보자면, 1607년 혹은 그에 근접한 시기에 일어난 호이파 내부의 반란사태는 비단 호이파 세력 내부에서 일어난 불만세력의 마지막 저항만으로 생각할 수 없다. 해당 반란은 호이파의 외부세력이자 반 바인다리파의 거두들이 망명한 세력인 여허가, 누르하치가 잠잠한 틈을 타/혹은 누르하치가 울라군을 격파하자 위기감을 느끼고3, 누르하치를 견제하고 세력을 확장할 의도로 호이파를 정복하거나 최소한 호이파의 정권을 바인다리보다 더욱 친여허 성향에 가까운 이에게 쥐어주고자 하여 촉발된 것으로 보인다.
여허는 해당 반란을 통해 호이파를 확실한 종속세력 또는 병합지로 만들어 건주 세력의 성장을 압박하고, 여허의 사주를 받은 호이파 내부 반란 세력들은 여허의 힘을 빌어 바인다리를 제거한 뒤 정권을 차지하고 복수를 이루고자 했으리란 추정이다.
이 이후 건주와 바인다리의 공투에 의하여 호이파 내부의 반란이 진압되자, 여허측은 바인다리가 건주와 급격히 가까워지는 것을 막기 위해 그에게 여허에 존재하는 망명자들을 돌려보내겠다고 제안했다. 그 대신 건주에게 보낸 인질들을 돌려받고 건주와의 관계를 재정립하라고 요구했는데, 이는 자신들이 사주한 내부 반란이 실패로 돌아가고 도리어 건주의 호이파에 대한 영향력이 강화되었기에 단행한 조치라고 할 수 있을 듯 하다.
삽화 출처 : 칼부림
물론 여허는 이전에 이 사건을 서술한 글에서 언급하였듯 호이파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으며 도리어 호이파로부터 인질까지 받아 그들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려 했고 바인다리는 이에 반발해 다시 건주의 힘을 끌어들였다.
바인다리의 여허에 대한 악감정이 상당했을 텐데도 불구하고 여허의 이러한 외교적 제안을 받아들였던 이유는 이미 여허가 호이파 내부의 반 바인다리파를 사주하여 자신에게 반란을 일으키게 한 것으로 인해 여허가 재차 반란을 사주하는 등의 행보를 보이면 자신의 정권 불안도가 더욱 상승할 것이라 여긴 탓으로 보인다. 그렇기에 이번 기회에 아예 여허의 호이파 내부에 대한 개입능력을 제거하려 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을 듯 하다.
1. 만문노당 정미년 음력 9월
2. 만문노당 앞과 동일, yehe de ubašame genehekv tohoroko manggi
3. 호이파 내부에서 일어난 반란사태가 정확히 언제 일어났느냐에 따라 여허의 호이파 내부에 대한 반란 조장의 의도가 달라질 수 있다. 비록 해당 반란 사건 자체가 실록과 만문노당등에서 오갈암 전투 이후에 기술되었긴 하지만 이는 누르하치의 호이파 공략전이 오갈암 전투 이후에 벌어진 탓이 크며, 실제 호이파 내부의 반란사태의 발생시기는 불명확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