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5월 조서를 내렸다.
- 촉은 작은 나라로써 영토는 협소하고 백성이 적은데도 강유는 그 군대를 혹사시키고 잠시도 쉬게 하지 않았다.
작년에 그는 전쟁에서 진 이후로 또 답중에서 경작을 하며 수많은 강인을 핍박하고 끊임없이 일을 시켜 백성들은 명령을 견디지 못했다.
약자를 병합하고 우매한 자를 공격하는 것이 군대를 사용하는 방법이고 적을 공격하여 적으로 하여금 공격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병법가의 상책이다. 촉이 의지하는 것은 단지 강유뿐이다. 그가 본거지를 멀리 떠난 틈을 타서 공격하면 절반의 힘으로 쉽게 두 배의 공을 세울 수 있는 것이다.
지금 정서장군 등애에게 장수와 여러 군사를 통솔하여 감송ㆍ답중으로 달려가 강유를 포위하여 잡도록 하라.
옹주자사 제갈서에게 제군을 인솔하여 무도ㆍ고루로 나아가게 하여 앞과 뒤에서 공격하도록 하라.
만일 강유를 잡는다면 동쪽과 서쪽에서 동시에 진격하여 파촉을 멸할 수 있을 것이다.
-조환전
경요 6년(263년) 여름, 위나라에서 군사를 크게 일으키고,
정서장군 등애, 진서장군 종회, 옹주자사 제갈서에 명해 여러 길로 나아가 아울러 공격하게 했다.
이에 좌우거기장군 장익, 요화, 보국대장군 동궐 등을 보내 이를 막았다.
-후주전(유선)
가을 8월, 군대가 낙양에서 출발하였고, 황제가 군사들에게 많은 상을 주며 군을 정렬시키고 병사들에게 맹세하게 했다.
9월, 천수태수 왕기에게 강유의 진영을 공격하게 하고, 농서태수 견홍은 강유의 앞길을 차단하게 하며, 금성태수 양흔은 감송으로 진격하게 했다.
-진서
음력 상 여름은 4~6월이니
5월에 위는 촉을 정벌하겠다고 움직임
유선은 늦어도 6월에 장익, 요화, 동궐에게 방어지시를 내림.
위군이 낙양을 떠나는게 8월, 접전이 9월임
상대방이 출전하기 2개월 전에 미리 대응한 것임
연희 7년(244), 위군이 흥세에 도착하자 비의에게 절(節)을 내리고 군대를 인솔해 가서 막도록 하였다.
-비의전
연희 7년 봄, 위나라의 대장군 조상이 보기(歩騎) 10여만을 거느리고 한천으로 향하였는데
그 선봉이 이미 낙곡에 있었다.
이때 한중을 지키는 병사는 3만이 되지 못하여 여러 장수들은 크게 놀랐다.
-왕평전
약 20년전에 적이 낙곡에 온 이후에 움직인 흥세 전투때와 비교되는 부분.
진짜 나이먹어서 떨어진 것인가?
궁금한게 낙곡전투때 강유처럼 위가 쳐들어 올걸 미리 알아차리고 표올렸었나?
그리고 이전 전투의 비교는 의미가 없다고 보는게, 저때는 더 늦장대응했다고 보면 되는거고 결국 본래 하달한 명에 따른 위치에 이동을 못했다는건 달라지지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