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롭지 못한 해결사와 늘 악에게 패배하는 선, 강자에게 착취당하는 약자들
그리고 인간의 피를 마실 수밖에 없는 운명인 혈귀.
세상에서 너무나도 당연한 것
니체는 우버멘쉬를 낙타, 사자, 아이 세 단계로 분류한다
우버멘쉬는 보통 철학서에서 철인으로 번역되지만 니체가 사용한 의미로는 '넘어서는 사람'으로 사용됨
그렇다면 여기서 넘어선다는건 무엇을 넘어선다는걸까
대략적으로 정리하자면 '시대의 윤리'를 넘어선다고도 해석할 수 있음
그럼 시대의 윤리란? 이건 그 시대에 당연하다고 받아들여지는 것들임
이 당연하다고 받아지는 것들은 그 자체로 '윤리'이므로 도덕에 의해 제정되는 법과 규칙도 이를 따라감
그렇다면 이를 감히 넘어서려고 하는 우버멘쉬는?
시대의 범법자이자 반란자, 기존 윤리의 파괴자라고 할 수 있음
하지만 절대 혼동되지 말아야할 것이 그냥 아무 범법자라고 우버멘쉬가 될 수 있는건 아님
기존 윤리는 수천년간의 시행착오 끝에 만들어진 시행착오 모음집이라고 할 수 있음
따라서 우버멘쉬가 기존 윤리를 넘어서며 제시할 윤리는
똑같은 시행착오가 아닌 반드시 기존의 것과는 새로운 창조성이 있어야함
이제 돈키호테를 한번 볼까?
처음에는 바리에게 낙타처럼 끌려다니기만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사자처럼 혈귀들이 처한 상황에 반항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아이처럼 이를 놀이로 파악하고 즐기기 시작했지(라만차 랜드)
돈키호테는 너무나도 당연한 것을 깨부수고자 했음
하지만 라만차 랜드는 실패하지 않았느냐? 실패한게 뭐가 어때서?
전쟁에서 패배한 전사는 전쟁에 참여한 전사고 낙마한 기사는 말에 탄 기사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자들은 절대로 이런 값진 실패를 할 수 없음
그리고 마냥 실패했다고 하기엔 산초가 남아있음
인간의 피를 마시는게 당연한 혈귀
해결사가 정의롭지 못한 것도 당연한거고 늘 악에게 패배하는 선 또한 당연한 것, 강자에게 착취당하는 약자들도 당연.
여성은 참정권이 없는게 당연하고 흑인과 백인은 당연히 같은 공간에 있어서는 안되며
어린 아이들이 공장에서 매일 12시간씩 일하는 것 또한 당연하고
우월한 자가 열등한 자를 노예로 삼는 것 또한 너무나도 당연한 것.
하지만 우리는 우버멘쉬 덕분에 당연하지 않은 세상에 살고 있음.
어두운 도시에는 잠시라도 밝게 타오를 빛이 필요해
반복되더라도 중요한건 한번이라도 굴례가 끊어 졌었다는 것이라는 비나의 말하고 같네
하긴 산초가 돈키호테가 바랬던걸 결국 성공한 상태니까.
"충분한 난폭함이 있다면, 네 삶을 시련으로 만들어라." "삶은 실패하기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
피마새가 진짜 니체 사상 향이 엄청 진함
반복되더라도 중요한건 한번이라도 굴례가 끊어 졌었다는 것이라는 비나의 말하고 같네
"충분한 난폭함이 있다면, 네 삶을 시련으로 만들어라." "삶은 실패하기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
피마새가 진짜 니체 사상 향이 엄청 진함
사실 이영도 작가 본인부터가 니체 사상을 이야기하기 위해 장르문학을 쓰는 사람에 가까우니.....
어두운 도시에는 잠시라도 밝게 타오를 빛이 필요해
멋있다
하긴 산초가 돈키호테가 바랬던걸 결국 성공한 상태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