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온한 것만 같은 날이었다.
하지만 트레이너 본인은 다년간의 경험으로 인해 아주아주 잘 알고 있었다.
오늘은 절대 평온한 날이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그의 안녕을 깨뜨리는 말썽꾸러기에 조금 귀찮은 침입자―담당 우마무스메―들이 그의 사무실에 반드시, 무슨 일이 있어도 한번은 들리는 날이다.
그리고 그것이, 그가 만반의 준비를 한 채로 일곱 시의 티타임을 기다리는 이유이기도 했다.
“…….”
뭐, 만반의 준비라고 해 봐야, 그의 책상 서랍 안에 잘 포장된 채로 있는 일곱 개의 과자 상자일 뿐이다. 한 상자에 무려 5천 엔이나 하는 주문 제작품이다. 오늘을 위해 한 달 전에 예약을 넣어서 준비한 것이다.
물론, 그의 담당 우마무스메들은 전부, 대부분이 아니라 전부 잘 사는 집 아이들이기 때문에 그가 준비한 이 작은 선물 겸 부적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다.
그야 당연하지, 메지로나 사토노의 여식들은 물론이거니와 심볼리의 아가씨는 말할 것도 없고, 말괄량이 꼬맹이 같은 그 토카이 테이오의 집안도 굉장히 잘 사는 집이다. 키타산 블랙 또한 마찬가지다.
그럴진대, 그가 준비한 과자를 받고 기뻐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은…어찌 보면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리라.
하지만 괜찮다. 오늘 중요한 것은 담당 우마무스메들이 기뻐하느냐가 아니니까. 그런 것보다 과자를 ‘주었다’라는 사실이 더 중요한 것이니까.
굳이 주문 제작까지 맡겨가며 고급스럽게 준비한 것은, 이쪽 나름의 성의 표시 같은 것일 뿐이다.
그래, 오늘은 10월의 마지막 날, 사람들은 할로윈이라고 부르는 날이다.
중앙 트레센의 트레이너들 가운데서도 유독 일이 많은 그에게 있어, 할로윈 같은 날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날이었지만, 그래도 그의 담당 우마무스메들은 한창때의 소녀다. 청춘을 즐기는 데에 있어 이런 축제의 날은 소중한 것이다.
그리고 분명, 과자를 주지 않으면 그에게 장난을 치려 들 것이다. 물론 그가 싫어하는 기색을 내비친다면 그만두겠지만, 괜스레 상호 간에 얼굴을 붉히는 것은 그의 스타일이 아니다.
그렇기에, 조금 과하다 싶을 정도의 돈을 써가면서까지 과자를 준비해 둔 것이다. 이렇게까지 성의를 보인다면 무시하고 장난치기 어려울 테니까.
평온하지 않은 하루를 평온하게 만들기 위한, 그 나름의 노력이었다.
그렇게 과자가 들어 있는 서랍을 살짝 열어, 일곱 개의 상자가 있는지 눈으로 다시 한번 세어 본다. 그리곤 개수가 맞는 것을 확인한 후, 고개를 끄덕이며 서랍을 조심스레 닫는다.
탁, 하는 소리를 기다렸다는 듯이, 트레이너 사무실의 문이 똑똑 소리를 낸다. 아니, 잘 들어보면 단순히 똑똑 두들기는 것이 아닌, 알 수 없는 리듬을 타며 소리를 내고 있었다.
이미 흥이 돋을 대로 돋은 것이겠지. 피식 웃으며 사토노 다이아몬드와 키타산 블랙을 예상한다. 왠지 모르게 이 녀석들은 둘이서 같이 올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들어와.”
그렇게 사무실 입장 허가를 내자마자,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번개처럼 열리고, 문 바깥쪽에서 두 우마무스메가 꺄아꺄아거리며 튀어나온다.
“트레이너 씨이이이―!!”
“트릭 오어 트릿―!!”
“하아…….”
예상대로 사토노 다이아몬드, 그리고 키타산 블랙.
본격화가 오기 전에도 한번 보았던 예의 마녀 의상의 할로윈 복장이었다. 하지만 본격화가 이미 다 끝나버린 지금, 마냥 어리기만 할 때와는 다르게 확실히 여성으로서의 이모저모를 뽐내고 있는 모양새다.
하지만, 그래봐야 중등부 애들이다. 할로윈이라는 축제에 흥분하여 뺨을 상기시키곤, 호박 바구니를 들고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는 철부지 말괄량이들일 뿐이다.
한숨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쪽으로 달려드는 두 우마무스메들을 보니 머리가 지끈거렸지만, 어찌어찌 입가에 미소를 띠며 아이들에게 말한다.
“일하던 중이라, 조금만 조용히 해 줄래?”
“에―, 트레이너 씨 냉정해요.”
“키타쨩 키타쨩, 트레이너 씨는 부끄러우신 거야.”
“전혀 아니니까 소파에 앉아 있으렴.”
사토노 다이아몬드의 말을 일축하며 자리에 앉을 것을 권한다. 키타산 블랙은 헤헤 웃으며, 사토노 다이아몬드는 볼록 뺨을 부풀리며 투덜거리듯 소파로 다이빙한다.
“아무튼, 트릭 오어 트릿이니까요.”
“사탕을 주지 않으면 장난을 칠 거라구요!”
물론, 그런 와중에도 목적을 잊진 않는다. 사탕이건 과자건 뭔가를 주지 않는다면 정말로 장난을 칠 눈빛이다. 간단한 장난이라면 당해주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만, 경험상 이 영악한 아이들이 일반적인 장난을 칠 리가 없다.
그러니까 애써 수고하면서까지 과자를 준비한 것이 아닌가. 하하 웃으며 그는 서랍에서 연한 풀색과 검은색 포장의 과자 상자를 하나하나 꺼낸다.
“그래그래. 과자 하나씩 받아 가렴.”
“에…….”
“…….”
노골적으로 실망했다는 표정이 얼굴에 다 드러난다. 아무렴, 장난칠 생각 만만이었겠지. 하지만 그래봐야 애들은 애들, 어른의 영악함을 따라갈 수는 없는 것이다.
“이거…여기 예약하기 제법 힘들지 않나요.”
“가게 사장님과 조금 아는 사이라서.”
“……그렇군요.”
사토노 다이아몬드가 칫, 하고 혀를 차는 것이 여기서도 보일 정도다. 키타산 블랙 또한 흥미를 잃었다는 얼굴로 소파에 얌전히 앉아 입을 비쭉 내밀고 있었다.
“하지만 트레이너 씨, 과자는 과자고…장난을 받으신다는 선택은 어떠신가요?”
그러나 사토노 다이아몬드는 금강석의 이름답게 포기를 모른다. 강철 같은 불굴의 의지로 다시금 트레이너 씨 공인 합법의 장난을 치기 위한 초석―이라고 해 봐야 생떼 부리기지만―을 다진다.
그러나 사토노 다이아몬드가 간과한 것이 있다면, 그녀의 상대는 담당 트레이너 씨, 그녀보다 훨씬 더 긴 세월을 뱀처럼 살아온 사람이라는 점이다.
“일이 바빠서, 어울려 줄 시간이 없단다.”
“하지만 오늘은 할로윈―”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라고 했었지?”
“우우…키타쨩도 뭐라고 좀 해 봐.”
사토노 다이아몬드의 투덜거림에 못 이긴 키타산 블랙이 입을 열려는 순간, 그가 먼저 선수를 친다.
“너희가 바쁜 트레이너를 괴롭히는 나쁜 아이들은 아니라고 믿고 있어.”
“…….”
“…….”
치사하고 비겁하지만, 사실 평소의 사토노 다이아몬드나 키타산 블랙이 더 치사하고 비겁하니까 가끔 이런 것은 괜찮다. 어른이 되어서 애들에게 뭐 하는 짓이냐…라고 한다면, 저 아이들은 이미 알 거 다 아는 영악한 구렁이들이기 때문에 괜찮다.
기분이 가라앉는 것은 일시적이지만, 버릇은 영원하니까 이럴 때 길을 들여놓아야 한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도 있으니까.
아무튼, 조금 강하게 말한 덕분일까, 사토노 다이아몬드도 키타산 블랙도 얌전히 소파에 앉아 과자 상자를 품에 끌어안은 채, 차를 홀짝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사무실의 문이 벌컥 열리며 또 다른 담당 우마무스메들이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들어온다. 자세히 들어보니 우마뾰이 전설이다. 문도 제대로 닫지 않고 방방 뛰듯이 들어오는 것이 영락없는 어린아이다.
“야―호, 트레이너!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지?”
“트레이너 씨, 오늘만큼은 말리면 안 되는 것이와요!”
토카이 테이오와 메지로 맥퀸이 헤실거리며 그에게 달려든다. 한쪽은 붉은 망토를 두르고 번뜩이는 송곳니를 드러내며, 다른 한쪽은 원피스 위에 붕대와 하얀 천으로 분장을 한 채로.
그러나 달려들던 두 우마무스메들은 소파에 시무룩하게 앉아 있는 사토노 다이아몬드와 키타산 블랙을 보곤, 순간 머뭇거리며 트레이너의 눈치를 살핀다.
“테이오, 맥퀸. 너희도 일 방해하지 말고 소파에 앉아 있으렴.”
“에…….”
“그렇게 나오시는 것이군요.”
하지만 두 우마무스메들에게 포기할 생각은 없었던 것일까, 그의 말을 무시하며 다시금 달려들 준비를 한다.
“트릭 오어 트릿! 이라구!”
“과자를 주지 않으시면 장난을 칠 것이와요!”
물론, 예상했다. 한쪽 입꼬리를 슬며시 올리며 서랍을 열고 두 개의 과자 상자를 꺼낸다. 그리곤 정열의 붉은색으로 포장된 것을 토카이 테이오에게, 옅은 보랏빛으로 포장된 것을 메지로 맥퀸에게 던진다.
“어림도 없지, 과자 받아라!”
“삐이이잇―?!”
“핫……이것은, 과자! 스위츠!”
토카이 테이오가 깜짝 놀라며 간신히 받아든 것과는 대조적으로, 메지로 맥퀸은 눈을 빛내고 입맛을 다시며 날아오는 상자를 편안하게 받아들었다. 하기야, 원체 달콤한 것만 먹을 수 있으면 아무래도 좋다는 성격이었지.
“받았으면 오늘은 얌전히 소파에서 다과나 즐기고 가려무나.”
“우―, 트레이너는 바보.”
토카이 테이오가 투덜거렸지만, 과자는 받아버렸고, 명분은 없다. 사토노 다이아몬드와 키타산 블랙이 힘없는 얼굴로 토카이 테이오에게 이쪽으로 오라고 손짓한다. 패배자들의 모임 같은 것이리라.
하지만 메지로 맥퀸은 달랐다. 평소보다 더 방긋방긋 웃으며, 그녀의 담당 트레이너 씨에게 재차 확인한다.
“이거, 분명히 제게 주신 것이 맞는 거죠?!”
“그럼, 당연하지.”
“먹어도, 되는, 건가요?”
“……제발 한 번에 다 먹진 말고.”
메지로 맥퀸이 달콤한 것을 좋아하긴 하지만, 이렇게까지 환장하는 경우는 생각보다 드물다. 하지만 최근 몇 주간 단 것을 참으며 감량을 하였기 때문에, 조금의 유혹에도 쉽사리 흔들리고 기뻐하는 것이리라.
“후후, 이런 선물을 주셨으니, 오늘은 특별히 넘어가 드리겠사와요.”
기쁨에 들뜬 목소리로 말했지만, 메지로 맥퀸은 모른다. 그녀의 과자만 특별히 무설탕 저칼로리라는 것을. 아마 기숙사에 돌아가 풀어본다면, 그리고 하나 먹어본다면 바로 알아차리겠지만…적어도 지금만큼은 행복에 겨워하도록 내버려 두는 편이 나으리라.
피식 웃으며 다시 손을 키보드로, 눈을 모니터에 두고 업무를 재개하려는 찰나, 덜 닫힌 문틈 사이로 새하얀 손가락이 불쑥 튀어나오더니, 이내 끼이익 소리를 내며 문이 열린다.
“안녕하세요, 트레이너 씨.”
“어서 와, 아르당.”
메지로 아르당이 문 사이로 고개를 빼꼼 내민다. 이 청초한 메지로의 아가씨는, 의외로 귀염성이 많다. 입가에 웃음이 절로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 뒤로 문이 홱 열리며, 메지로 아르당이 균형을 잃고 앞으로 두어 걸음 내디딘다. 그리고 그렇게 열린 문에서 심볼리 루돌프가 조금 뚱한 얼굴로 그녀답지 않게 한쪽 뺨을 볼록 부풀린다.
“나도 왔다, 트레이너 군.”
“학생회 일이 꽤 여유롭나 보네, 루돌프.”
“왜, 나에 대한, 기준만, 엄격한 건가!”
“그야 넌 중앙 트레센의 모범이 되어야 할 학생회장이니까.”
“우우…….”
입술을 비쭉 내밀며 트레이너 군의 냉정한 발언에 항의한다. 하지만 어림도 없다.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트레이너 군에게는 사람의 마음이란, 없는 것이다.
그러다가 심볼리 루돌프도, 메지로 아르당도 소파에 축 처진 채로 풀 죽어 있는 세 우마무스메와 포장된 상자를 보며 눈을 반짝반짝 빛내는 메지로의 기대주에 시선이 옮겨간다.
심볼리 루돌프는 물론이거니와 메지로 아르당 또한 총명한 우마무스메이기 때문에, 그녀들의 복장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놀라우리만치 정확하게 상황을 유추할 수 있었다.
그야, 마녀 복장에 뱀파이어 복장에 미라 복장을 한 채로 손에 과자 상자 하나씩 들고 있으면서 차를 벌컥벌컥 들이켜고 있으면…알기 싫어도 알 수밖에 없겠지.
물론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고는 있었지만, 메지로 아르당도 심볼리 루돌프도 다른 아이들보다 조금 더 어른스러운 성격이니만큼 트레이너를 귀찮게 하고 싶지 않았었다. 하지만, 저 철부지 없는 아이들의 손에 과자 상자가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다 같이 못 받는 거라면 문제없지만, 나만 못 받는 것은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경우, 보통은 심볼리 루돌프보다 메지로 아르당이 조금 더 장난기 많고, 조금 더 살가운 편이다. 한쪽 입꼬리를 살그머니 올리며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트레이너 씨의 앞으로 다가가 그의 책상에 살짝 걸터앉는다.
“트레이너 씨~♪”
“……아르당?”
살짝 들뜬 메지로 아르당의 목소리에, 트레이너 씨는 그녀가 곧이어 무슨 말을 할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자기도 모르게 담당 우마무스메의 이름을 읊조리게 된 것은.
“트릭 오어 트릿, 이에요♪”
검지를 세운 채 트레이너 씨의 눈앞에서 그녀의 꼬리처럼 살살 흔들며, 메지로 아르당은 트레이너 씨에게 할로윈의 선물을 요구한다. 마치, 과자를 주지 않으면 이 손가락으로 장난쳐 버리겠다는 듯이.
그러나 트레이너 씨는 침착하게 서랍을 열고, 그 안에서 검은색과 하늘색 포장지로 정갈하게 포장된 상자를 하나 꺼내어 메지로 아르당에게 내민다.
“이미 준비 해 놨단다.”
“……그런 것 같았지만, 막상 받으니까 기분이 조금 묘하네요.”
예상했던 결말이었지만, 과자 상자를 받아든 메지로 아르당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제야 소파에 둘러앉은 네 우마무스메들의 기분을 알 수 있었다. 트레이너 씨에게 장난…치고 싶었는데, 그런 속마음을 가슴 한편에 묻을 수밖에 없었다.
“아, 루돌프 너도 받아 가.”
“나는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단 말이다!”
갑작스러운 트레이너 군의 말에, 심볼리 루돌프는 반사적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그도 그럴 것이, 제아무리 중앙 트레센의 학생회장이라는 막중한 자리에 있다지만, 그래 봐야 고등부 학생, 한창때의 소녀다.
할로윈의 결말을 눈앞에서 지켜보긴 했지만, 그래도 한번 말이나 해보고 싶은 것이 소녀의 마음이니까. 이렇게 받으면 뭔가 트레이너 군의 비즈니스적 인맥 관리와도 같은 느낌의 과자 상자를 받게 되는 것이 아닌가.
그런 건 싫은데, 트레이너 군은 둔감한 멍청이다. 옆에서 상자를 받아든 메지로 아르당도 작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내저을 정도였다.
“아, 그래그래. 빨리 말해 줘.”
“……하?”
“트릭 어쩌고 말하려는 거 아니었어?”
“…….”
하늘도 무심하시지, 그리고 트레이너 군은 더 무심하다 못해 배려심이라곤 지옥 밑바닥에 처박아두고 온 것 같지, 심볼리 루돌프의 표정이 악귀처럼 무섭게 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심볼리 루돌프는 중앙 트레센의 학생회장. 무거운 책무를 지고 있는 만큼, 그 마음의 평정심을 되찾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 평온한 마음으로 곰곰이 생각해보니, 화가 난다. 응, 그래. 화가 많이 난다. 지금도 어서 말을 하라는 듯이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는 저 트레이너 군의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로 화가 치솟아 오른다.
그래, 황제가 왜 황제인지 가끔은 보여주어야 하는 것이다. 미래의 부군(아니다)이 이리도 짓궂게 군다면, 황제 또한 조금쯤 짓궂어질 필요도 있으리라.
“트릭, 오어, 트릭.”
그렇게 말하며 한 걸음, 트레이너 군에게 다가간다.
“……조금 다르지 않니?”
심볼리 루돌프의 말에서 뭔가 이상함을 느꼈는지, 트레이너 군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하지만 뭐 어쩌라고. 제대로 들은 것이 맞다고 확인을 시켜준다.
“트릭, 오어, 트릭이라고 분명히 말했다.”
그러면서 메지로 아르당을 지나쳐, 트레이너 군에게 다가간다. 의외로 제지하지 않는다. 오히려 트레이너 씨에게 조금 경멸 어린 시선을 보내는 것이, 그녀가 생각하기에도 트레이너 씨가 너무했다 싶은 것이리라.
“그게 아닌 것 같―”
“과자 필요 없으니까, 얌전히 장난이나 당하도록, 트레이너 군.”
그의 코앞까지 다가와, 순식간에 그의 목덜미에 팔을 두른다. 아무래도 메지로 아르당을 비롯한 다른 아이들이 있기에 높은 수위의 장난까지는 어렵겠지만…목덜미 한 번쯤 깨물어주는 것 정도는 괜찮겠지.
하지만 그녀가 생각하지 못한 것이라면, 트레이너 군은 언제나 심볼리 루돌프보다 한 수 위라는 것이었다.
그는 쓴웃음을 지은 채, 심볼리 루돌프의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장난은 여기까지 하자, 루돌프.”
“무슨 소리인가, 트레이너 군. 장난은 이제 시작―”
“알고 있잖아, 슬슬 올 시간이라는 걸.”
“…….”
그의 말에 심볼리 루돌프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트레이너 군이 말하는 것이 무슨 뜻인지를 알고 있으니까. 중등부 시절부터 계속된 악연, 심볼리 루돌프를 반드시 막아 줄, 트레이너 군의 경호원이 올 시간이 된 것이다.
그리고 그 경호원은 놀라우리만치 정확한 시간에, 심볼리 루돌프가 계획적이건 그렇지 않건, 트레이너 군에게 뭔가를 하려 하면 항상, 말도 안 될 정도로 빠르게 나타난다.
그래, 지금처럼 사무실의 문이 벌컥 열리며 모습을 드러내곤 했다. 여유롭게 웃고 있는 녹색의 악마, 심볼리 루돌프 최후의 벽이.
그리곤, 심볼리 루돌프에게 경고하듯 한 마디 차분하게 건넨다.
“루돌프 양, 트레이너 씨를 방해하지 말아 주시겠어요?”
“…….”
얌전히, 천천히 트레이너 씨에게서 떨어지며, 하야카와 타즈나의 말을 따른다. 이상하리만치 하야카와 타즈나에게 반항하는 것이 어렵다. 히토미미임에도 불구하고, 본능적으로 거스를 수 없는 것이다.
마치, 서열이 가장 높은 우마무스메의 말을 듣는 느낌과도 같아서, 솔직히 심볼리 루돌프는 불쾌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서열이 가장 높았는데, 순식간에 2인자가 되어 버린 것이니까.
하지만 그녀가 불쾌할지라도, 본능을 거스르기란 참으로 어렵다. 우마무스메가 그렇게 마음대로 본능을 거스를 수 있었더라면, 수년간 레이스에 매진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는 와중에, 트레이너 군이 마무리 일격을 날리듯 비수를 꽂는다.
“루돌프, 이거 받아 가야지.”
서랍에서 과자 상자를 하나 꺼내어 심볼리 루돌프에게 건넨다. 황제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진다. 트레이너 군의 이 행동이, 그녀에게 얼마나 모욕적인지 알고 있을까.
모르겠지. 이전에도 몰랐고, 앞으로도 모르겠지. 알았더라면 가면을 써서라도 심볼리 루돌프의 소망을 들어주었을 테니까. 그런 사람이니까.
그러나 한편으로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만큼 트레이너 씨가 편하게 대할 수 있다는 뜻이니까. 심볼리 루돌프를 편하게 생각한다는 의미니까.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이지만 뇌에서 도파민이 분비되는 것 같았다. 황제의 정신 승리, 그러니까 멘탈 케어 방법이다.
그러나 그것을 알 리 없는 트레이너 군은 심볼리 루돌프에게 과자를 건네주곤 다시 모니터로 시선을 옮긴다. 그런 그의 곁으로 하야카와 타즈나가 다가와, 손에 들고 있는 서류 뭉치를 건넨다.
“오늘도 수고하시네요, 트레이너 씨.”
“서류 고마워. 오늘따라 일이 조금 많네.”
“어휴, 오늘도 야근…하시나요?”
“아무래도…오늘 안에 끝내야 해서 늦게까지 있을 것 같아.”
“그래도 건강은 챙기세요, 트레이너 씨.”
“그래, 걱정해줘서 고마워.”
평소라면 여기에서 대화가 끝났겠지만, 오늘은 다르다. 하야카와 타즈나도 사무실의 묘하게 무겁고 쌀쌀한 기류를 이미 파악했고, 그녀들의 손에 들린 과자 상자로부터 마찬가지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충분히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리고 하야카와 타즈나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문득 스쳐 지나갔다.
트레이너 씨가 담당 우마무스메들에게 할로윈 과자를 나눠주었고, 아무도 장난을 치지 못했다. 트레이너 씨라면 당연히 그녀들에게 줄 것을 미리 준비하셨을 테지만…어디까지나 담당 우마무스메들의 몫이다.
그렇다면, 하야카와 타즈나의 몫은 있는가.
할로윈은 아이들만의 것이 아니지 않은가.
아니, 오히려 할로윈이야말로 어른들의 축제가 아닌가. 하야카와 타즈나가 할로윈을 그냥 넘길 이유 따윈 전혀 없는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조금 전의 메지로 아르당처럼 한쪽 입꼬리를 살며시 올린다. 그 모습을 심볼리 루돌프도, 메지로 아르당도 눈치챘지만 구태여 제지하지 않는다. 제지할 필요가 없으니까.
“있잖아요, 트레이너 씨.”
“응, 왜?”
“저기, 그……트릭 오어 트릿, 이네요. 후후.”
하지만 다른 아이들 앞에서 말하기는 조금 쑥스러웠을까, 하야카와 타즈나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살살 꼬았다.
그런 하야카와 타즈나를 트레이너 씨는 어이없다는 눈으로 잠시 바라보더니, 이내 피식 웃는다. 그래, 이런 녀석이었지. 하야카와 타즈나라고 해서 예전, 토키노 미노루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까.
어렴풋이 이럴 거로 생각했기 때문일까, 과자 상자는 일곱 개를 준비해 두었다. 서랍을 열고 그 안에 마지막으로 남은, 밝은 녹색의 상자를 꺼낸다.
“자, 여기. 왠지 이럴 것 같아서, 준비해 뒀어.”
“……준비성이 철저하시네요.”
“뭐, 평소의 감사도 겸하는 거니까.”
“솔직히 트레이너 씨에게 장난쳐보고 싶었지만요.”
“그건 안 돼.”
순간적으로 기분이 착 가라앉는다. 트레이너 씨가 곤란해하실 장난, 치고 싶었는데. 속으로 투덜거리지만, 트레이너 씨가 내민 과자를 받지 않을 명분은 없다. 그녀를 보고 있는 여섯 쌍의 눈동자 때문에라도, 감사히 받고 끝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하야카와 타즈나의 기분을, 심볼리 루돌프와 메지로 아르당은 알아차린다. 아니, 그녀들뿐만이 아니다. 토카이 테이오와 메지로 맥퀸도, 사토노 다이아몬드와 키타산 블랙도…하야카와 타즈나의 미세한 감정변화를 분명하게 알아차린다.
오직 트레이너 씨만이 평소보다 서늘하고 축축한 사무실 내의 분위기를 알아차리지 못한 채, 고개를 갸웃거리며 제습기를 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이대로 끝나리라 생각하진 마세요.”
살짝 분한 마음에 어딘가의 악역 같은 대사를 날리자, 트레이너 씨는 피식 웃는다.
“두 번은 룰 위반이야.”
“……알고 있어요.”
하야카와 타즈나가 투덜거린다. 그녀의 뒤, 소파에 앉아 있는 다른 우마무스메들도 쓴웃음을 짓는다. 그녀들도 하야카와 타즈나도, 내년을 기약해야 하는 것이다. 오늘만큼은 어쩔 수 없다.
그래서일까, 오늘따라 사무실의 공기가 차가웠다.
중앙 트레센의 어느 날이었다.
* * * * * * * * * *
열한 시 반, 트레이너 사무실의 불은 여전히 켜져 있었다.
키보드를 두드리던 그의 손가락이 엔터 버튼을 탁, 누른다. 그리곤 의자에 등을 기대로 쭈욱 팔을 뻗어 스트레칭을 한다.
“끝났다…….”
오후 여섯 시부터 장장 다섯 시간 하고도 삼십 분 만에 오늘 처리해야 할 여러 가지 서류들, 그리고 제출해야 할 보고서를 전부 작성, 제출했다. 이제 퇴근할 수 있는 것이다.
야근을 굉장히 자주 하는 그였지만, 이 시간까지 남아 있는 것은 그래도 드문 일이다. 아마 지금 이 건물에 본인과 당직, 그리고 야간 경비원 말고는 남아 있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뭐, 가끔 아그네스 타키온의 담당 트레이너가 아그네스 타키온과 실험 때문에 이 시간까지 남아 있는 경우가 종종 있긴 하지만…오늘은 아닐 것이다.
노트북을 챙기고 컴퓨터를 끈다. 귀가하면 씻은 후에 바로 잘 것이기 때문에, 집에서 일할 뭔가를 가져갈 생각은 없다. 오늘 하루도 알차게 보내기도 했으니, 달콤한 휴식이 필요하다.
게다가 오늘은 할로윈이지 않았는가. 담당 우마무스메들의 속 보이는 공세를 잘 넘겨버렸다. 그래도 아끼는 담당 아이들이니까, 서로 얼굴 붉히지 않도록 미리미리 과자를 준비해 둔 보람이 있는 것이다.
하야카와 타즈나가 이대로 끝나리라 생각하지 말라며 2류 악역 같은 대사를 한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어쨌든 하야카와 타즈나도 과자를 받았고…할로윈의 장난을 칠 수는 없을 것이다.
내년을 기약하겠지만, 내년에도 똑같이 준비해 두면 될 일이다. 옷걸이에서 외투를 집어 몸에 두른다. 이제 집으로 갈 시간이다. 자리에서 일어난다.
하지만, 그 순간. 똑똑, 노크 소리가 들린다.
“……?”
이 시간에 올 사람이 있나? 고개를 갸웃거리며 살짝 경계하는 듯한 목소리로 말한다.
“누구세요?”
그러자, 문 건너편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저예요, 트레이너.”
“……타즈나?”
아주아주 익숙한, 하야카와 타즈나의 목소리. 그녀도 아직 퇴근하지 못한 것이리라. 아무래도 이사장 비서의 일도 제법 많은 편인데, 종종 이쪽의 일도 도와주니까 제시간에 퇴근하지 못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다만, 이 시간에 무슨 볼일이 있어서 찾아왔는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문득, 하야카와 타즈나가 두고 보자는 듯이 말했던 말이 떠올라, 주머니의 스턴 건을 만지작거렸다.
“무슨 일이야?”
“잠깐 보여드리고 싶은 것이 있어서요.”
하야카와 타즈나의 말에 호기심이 동했다. 뭐, 당연히 할로윈 관련해서 어떻게든 장난 한번 쳐 보려고 이러는 거겠지, 그렇게 확신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하야카와 타즈나가 무엇을 준비했는지 호기심이 생기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 들어와.”
그래서, 하야카와 타즈나의 방문을 허락했다. 어차피 무엇을 계획했고 무엇을 하려 들건 간에 이미 과자를 받았으니까 쓸데없는 장난을 칠 수는 없다. 그게 명분이고, 그게 룰이니까.
그러나, 문이 열리고 들어온 하야카와 타즈나의 모습에, 그의 사고가 순간적으로 정지했다.
녹색과 검은색, 그리고 약간의 금빛이 섞인…그의 뇌리에 깊게 박혀 있는, 마지막 레이스에서의 모습 그대로, 3년간의 추억.
평소에 쓰던 모자는 어디 가고, 두 개의 우마미미가 쫑긋쫑긋 움직이고 있었다.
머리카락은 옛날처럼 길진 않았지만, 그런 것쯤은 문제 되지 않았다. 그의 눈앞에 있는 사람은 하야카와 타즈나가 아니다.
“……미노루.”
조용히, 그 이름을 부른다. 신마, 토키노 미노루가 입꼬리를 살며시 올리며 사무실의 문을 닫는다. 찰칵, 문이 잠기는 소리가 들린다.
“트레이너.”
평소처럼 트레이너 씨, 라고 부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렇게 불리는 것도 굉장히 오랜만이기에, 신인 트레이너였을 그때 그 시절의 추억 한 조각을 꺼내 온 것만 같았다.
그때 그 승부복, 그때 그 모습, 그때 그 말투와 성격 그대로.
토키노 미노루는, 장난스러운 웃음과 함께 천천히 그녀의 담당 트레이너 씨에게 다가간다. 그런 옛 담당 우마무스메의 묘한 박력에, 그는 조금씩 뒷걸음질을 친다.
하지만 히토미미의 걸음 따위가 우마무스메 앞에서 의미 있을 리 없다.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온 녹색의 신마는, 조용하고 차분한, 그러면서도 어딘가 살짝 들뜬 듯한 목소리로 한 마디를 내뱉는다.
“트릭, 오어, 트릿♪”
그러면서 깔깔깔 웃는다. 소름이 돋을 정도로, 옛날의 그 토키노 미노루처럼.
그녀만이 할 수 있는 편법, 교묘하게 할로윈의 룰을 비틀어버린다.
그는 대답할 수 없었다. 남은 과자가 있을 리 없으니까. 그녀가 모를 리 없다.
신마의 입술이 목덜미를 간질인다. 트레이너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가을, 할로윈의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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댕같이 유기하려다가 그냥 올린 글
유기안해줘서 고마워요
여윽시 신마님...
역시 미ㄴ.....아니 타즈나씨
그런 납븐말 ㄴㄴ해요
서열 2위는 얌전히 우마뾰이 라이브나 보고 있으라구wwwwww
신마님 여전하네.ㅋㅋㅋ
유기안해줘서 고마워요
여윽시 신마님...
신마님 여전하네.ㅋㅋㅋ
처음으로 오구리가 와서 다 먹고서 트레센 서바이벌 일 줄 알았는데
정말 잘 읽었습니다.
개쩜 나 발기함
역시 미ㄴ.....아니 타즈나씨
유기했으면 다음 엘은 3천장 쳤을 것
그런 납븐말 ㄴㄴ해요
잡아먹혔나요?
서열 2위는 얌전히 우마뾰이 라이브나 보고 있으라구wwwwww
이걸 유기할 발칙한 생각을 하셨다니 주인장도 트릿 오어 트릭 당하셔야 될듯 ㅋㅋㅋㅋㅋ 아 물론 추천은 낭낭히 넣었습니다
무패의 신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