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세자가 살인, 방화, ㄱㄱ등
그당시 내란만 안일으켰지 사형당해야 마땅한 중범죄를 저질렀고
결국엔 영조가 커버쳐주지 못할지경에 이르자 영조는 고민하는데....
영조 : 세자가 ㄱㅅㄲ인건 맞지만, 세손은 뛰어나 장차 왕위를 이으면 성군이 될 사람인데,
그렇다고 세자를 공개적으로 처벌하면, 연좌제로 세손의 적통성이 훼손된단말이지...
그순간 악마도 울고갈만큼 소시오패스적인 영감이 영조의 머리를 스치고 마는데...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어서 굶겨죽인다
즉, 적법한 절차를 밟아 형벌을 정해서 죽은게 아니라
반성하고 있는데 죽었다는게 영조의 주장이었다
그니까 벽보고 서있어! 라고 했더니 애가 죽을때까지 서있게했던 이야기다.
뭐 그런 끔찍한 이야기가 있냐고 하겠지만, 영조 나름 짱구를 굴린 결과물이라고 본다
노론A :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너무 끔찍한거 아녀?
님자 생각은 어떰?
노론B : 아니 그래도 난 주상전하의 선택을 이해한다네
어쩔수없지 않았는가
노론A : 이런 시파, T발놈들!
이거 완전 벽보고 대화하는 거냐?
이렇게 노론은
사도세자를 죽음에 반발을 가지던 시파와
영조를 지지하는 벽파로 나누어지게 된다
15년전만해도 벽파랑 정조와 사이가 안좋았다고 했지만
벽파 출신 영의정 심환지와 비밀편지를 주고받은게 발견되었다
정조입장에서도 결국은 영조의 입장을 따라준 벽파덕에 왕위에 오르게 된거긴 하니
앞에선 시파들과 둥가둥가하고 뒤에선 벽파를 챙겨주어
강력한 왕권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정조가 너무 유능했던 탓일까?
정조는 재임기간동안 강력한 중앙정치를 위해 서원정리나 언론기관인 삼사를 치워버리는 등
강력한 중앙정권을 이륙했지만, 어디까지나 군주가 유능해야 빛을 발하는 시스템이었다
결국 순조가 10세라는 어린나이에 왕위에 오르자
지방이 정부를 견제를 못해 사또가 직접 백성들의 고혈을 빠는 세도정치의 시작이 되는 부작용을 낳고 말았다
당시 조선 시스템이서 세자를 암살이나 독살을 비밀리에 한다는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라..
사실 신하들도 에이 설마 저기에 가둬서 진짜로 죽이겠어? 했었다 그래서 감시를 맡은 근위병들도 형식적으로 서있었고 오히려 뒤주를 열어주어 사도세자가 바람도 쐴수 있게 해주고 궁인들은 먹을것과 마실걸 주기도 하였다 영조가 뒤주에 못 질하고 줄로 칭칭 감으라고 한 다음 거적을 뒤집어 씌워 빛도 나오는것도 완벽하게 차단하기 전까지는
독살은 해봤으니까 이번에는 뒤주에 넣고 말려죽여볼게요
그런 사람이 확인사살한다고 하루 더 놔두나요
그치만 사도세자 어렸을때부터 애 정신병 올때까지 갈군게 영조 아님?
그 방식은 영조의 평생 동안 따라다니던 짐이었으니 실행하지 못한 거 아닐까
유배도 처벌임 정조를 위해서 사도세자는 '처벌'중에 죽은게 아니라 '집안일'중에 죽어야했음
사도세자를 독살한다거나 암살하는 등 비밀리에 하는 걸 택하지 않은 이유가 있던 걸까
만해그만해
당시 조선 시스템이서 세자를 암살이나 독살을 비밀리에 한다는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라..
만해그만해
그 방식은 영조의 평생 동안 따라다니던 짐이었으니 실행하지 못한 거 아닐까
아앙♡거기는...
독살은 해봤으니까 이번에는 뒤주에 넣고 말려죽여볼게요
아 영조한텐 게장 안 판다고 이제
"신은 갑진년부터 게장을 먹지 아니하였습니다!"
걍 어차피 영조 본인이 다 뒤집어쓰고 가겟단거지 그리고 계획을 세우다가 독약 넣기로 한 애들이 외부에 퍼트리면 그건 그거나름대로 영조에게 치명적인 약점이 됨.
"설마 또 곶감과 게장을?"
안그래도 형에대한 소문이 죽을때까지 따라다녔는데 독살이라던지 암살을 했을경우 뭐...
유배보낸다음에 서고사 시키는 노력도 없는거 봐서는 그냥 스트래스 해소용...
신은 갑진년부터 게장을 먹지 아니하였사옵니다!!
형님도 '감,게장' 하더니 아들도 '감,게장' 하셨구만? 하고 말나오니까 ㅋㅋㅋ
버플스머크 스퓨핏
유배도 처벌임 정조를 위해서 사도세자는 '처벌'중에 죽은게 아니라 '집안일'중에 죽어야했음
연좌제 때문이라도 유배도 선택지에 들어갈 수가 없음.
독살함 > 건장했던 세자가 갑자기 죽었다 수사해야함 뒤주 > 체벌했다가 죽은거임 단순한 집안일일뿐
유배를 보내면 세자는 죄인이 되는 것이고 손자인 이산은 죄인의 아들이 되어버림 어디까지나 훈육 중에 사고로 죽은 우연으로 만들어야 함
사실 신하들도 에이 설마 저기에 가둬서 진짜로 죽이겠어? 했었다 그래서 감시를 맡은 근위병들도 형식적으로 서있었고 오히려 뒤주를 열어주어 사도세자가 바람도 쐴수 있게 해주고 궁인들은 먹을것과 마실걸 주기도 하였다 영조가 뒤주에 못 질하고 줄로 칭칭 감으라고 한 다음 거적을 뒤집어 씌워 빛도 나오는것도 완벽하게 차단하기 전까지는
영조가 조선시대 평균왕수명보다 훨씬 오래 살아서 다행이지 갑자기 요절했음 세도정치가 몇십년앞으로 댕겨졌을거임
이런 시벽파
영조가 사도세자를 커버쳤다는게 커버로 쳤다는거죠?
방- 밀
피말리는게 괴롭힌건 괴롭힌거고, 저런 범죄들 자체는 커버 쳐준거 맞음.
실록에 나온 것만 해도 묵인한 범죄들이 꽤 많음. 물론 기억했다가 나중에 ‘집안일(뒤주)’할때 다 꺼냄
"제 아들을 죽여놓고선 개선가라니..."
(노론 벽파 IP에서는 볼 수 없는 댓글이올시다)
그런 사람이 확인사살한다고 하루 더 놔두나요
하필 다음 왕이 ^경 아무 것도 안함 축^ 순조여서 그만
안동김씨 세도정치도 처음부터 내 세상이로구나 하고서 시작한건 아니었는데...
영조가 사도세자 커버쳤단건 뭔소리임 그렇게 갈궈대다가 궁에서 시체 나오지마자 의금부 푼게 영조야
나경언이라는 사람이 세자 주변 사람들이 숨기려던 세자가 빙애를 죽인 일과 여러 일을 영조에게 고했다. 영조는 무엄하다며 나경언을 다음날 사형시켰다 ??
나경언 자체는 신분 질서를 어긴거라 죽인거고 그 시점에서도 다른 신하들이 그래도 세자를 그렇게 대하면 되겠습니까 하는데 제일 앞에서 세자 엄벌론 내세우고 핍박했던게 영조임 게다가 나경언 고변이 2개인데 1번째는 역적모의로 의심될 수 있게 해석되는 내용이었고 2번째 상소는 (다들 알고 있던) 여러가지 비행들 모음집 근데 1번은 좀 뻥카가 심하다보니 영조도 자주 들먹이지는 않음
순전히 사도세자를 보호하려 커버 - x 자기 왕권을 보호하려 사도세자를 커버 - ㅇ
정조가 개혁군주가 아니라 반동군주였다 하던데 왕권을 강화하려고 했던 개혁이 훗날 세도정치를 낳았다고
정조는 안좋게보면 유교꼰대임. 왕권강화가 개혁이라고 보면 개혁일텐데 이게 왕이 잘나야 돌아가는 시스템이라.. 나는 딱히 개혁적이진 않다고 보는데
왕이 부지런하면 잘 굴러가는 시스템인데 순조가 통치를 내던지는 거까지 정조가 파악하진 못했겠지
역사에서도 개폐급 국왕이 나올수 있다는 점을 충분히 알고 있었을텐데 국왕이 멀쩡해야만 굴러가는 시스템으로 바꾸면 그건 책임이 있다고 생각함
연산군 같이 10년 잘 하다가 막판에 빡 돌아서 미친 짓 하는 왕도 있으니 그런거까지 다 고려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봄. 순조 본인의 책임이지
그리고 정조 본인도 순탄히 왕위에 오른 케이스는 아니었고 본인 자리 세우려고 그런건데 거기까지 가버리면 사도 죽인 영조 책임론으로 갈 수 밖에. 영조도 영조 나름대로 변명의 구석이 있을테고
그치만 사도세자 어렸을때부터 애 정신병 올때까지 갈군게 영조 아님?
게장을 좋아하지 않아서 그만...
ㄹㅇ
대리청정 꽤나 했다던데 약간의 잘못 있으면 신하들 앞에서 존나 갈궜다던데
미친 정신병자게장씹새끼
세자역학의 실험이었을 뿐 그리고 정조도 지금 와서 보면 걍 유교꼰대지 ㅋㅋ 그 황금같은 시기를 평온하게 보내버림
연산군 : 야잇 부모 잃은 왕 맛 좀 볼래?
사도세자는 원인은 그대로 둔 채 정신병을 방치하고 악화시킨다면 어디까지 가게 되는지를 보여 준 사례라 생각함
저 죄중에 방화는 실화를 영조가 방화로 과장한거 낙선당 화재 시점까지는 의외로 아직 사도세자는 광증이 있긴 해도 통제불능까지는 아니었는데 저때 영조가 사도세자 몸가짐이 불량하다는 이유로 "너 술먹었지!" 하고 추궁함 사도세자는 영조의 압박에 술 안먹었는데 먹었다고 거짓말을 함 궁인, 신하들 모두 세자 커버쳐주는데 그 앞에서 망신주고 신하들보고 세자 훈계하라고 명령한 후 떠남 영조 떠난 후에 세자가 화나서 신하들을 쫓아보냈고 그 과정에서 촛대가 넘어져 불이 남
화재 진압 이후에도 며느리, 손자 걱정은 해도 아들 걱정은 안함 그리고는 니가 아비를 태워죽이려고 불을 질렀구나 같은 식으로 신하들 보는 앞에서 대놓고 꼽줌 결국 사도세자는 그날 우물에 떨어져 자1살 시도하지만 궁인들고 신하들이 건져내서 살아남
사도세자가 죽인 사람이 106명인가 그렇슴. 전쟁도 아닌 평화로운 시절 궁인과 내시들 어떻게든 처리를 했어야 할 상황이였슴. 물론 원인은 영조였지만, 사건이 생기고 뒷감당 가능한 선에서 죽였어야 했었지
저 대로라면 딱하 다른수도 없긴하네
근데 보통 사도 세자에 이입해서 생각해서 그렇지 대부분의 궁 안의 사람들은 저 인간 뒤져서 꼬시다고 생각했을 거임.
ㄴㄴ 당시 신하 당파, 궁궐 사람들 안가리고 영조가 사도세자 갈구는 거에 대해선 불쌍하게 본 것도 맞음. 사도세자 트집잡고 갈구는 영조에게 대놓고 맞댄 궁녀도 있을 정도였으니
갑자기 사도세자 방에 들이 닥쳐서 “이 새끼가 꼬라지를 보니 술처먹었네? 술처먹었지?”라고 하도 닦달해서 상궁이 목숨 걸고 “술을 드셨는지 냄새를 맡아보세요”라고 항변하는 사태도 있었는데 과연…
불쌍하게 본 건 불쌍하게 본 거고 지 옷 갈아입혀 주는 나인들 주먹으로 때려죽이는 망나니가 뒤져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을 거임.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할 거임.
알만한사람은 끝까지 쉴드쳐주더라
당시 사람들도 바보도 아니고 사도세자가 처음부터 사람 때려죽이고 그랬다는 게 아닌 걸 뻔히 알고, 사도 본인도 병이 있다 라는 걸 인지하고 남에게 밝혔고, 누구 때문에 그런 건지 다 알고 있었음. 그걸 대놓고 지적하거나 바꿀 수 없어서 그런거지.
그리고 나인이나 밑 사람들에게만 그랬던 것도 아니고, 다들 옷 갈아입히는 거 기피하니깐 자기 부인인 혜경궁이 직접했는데 부인에게도 바둑판 던져서 눈알 나갈 뻔했고, 후궁인 빙애도 맞아죽었음.
근데 정작 사도세자는 그래도 지 애비라고 어딜 감히 나서냐 라고 막았는데, 영조는 도리어 '야 어디 어른 앞에서 사람을 혼냄?' 이라면서 여기서 또 사도세자 갈굴 각을 봄. 이러니 미치지.
애초에 밥솥에 쳐넣고 말려죽이겠다는게 사람새끼 생각인가
식량인 쌀 담는 통인 뒤주에 사람을 가둬 굶겨 죽인 건 진짜 음습하긴 함
간장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