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빵 때문임
빵으로 싸웠다니 대체 무슨 소리냐 하시는 분들을 위해 설명하면
그리스도교에 있어서 "빵=그리스도의 몸"임
그리고 당시 동방의 교회와 서방의 교회는
"최후의 만찬, 즉 성체·성혈성사가 제정되었을 때(처음으로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되었을 때) 썼던 빵은 어떤 빵인가"로 싸웠음
이게 왜 중요한데? 라고 물어볼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리스도가 최후의 만찬에서 쓴 빵이 무엇인가에 따라서 "누가 그리스도의 성사를 온전하게 지켰는지", 바꿔말하면 "교회의 정통성과 권위가 누구에게 있는지"에 관한 문제가 달려있었기 때문에 이 논쟁은 파장이 굉장히 컸음

서방에서는 당시에 "누룩이 없는 빵(Azymos)"을 썼고
그래서 "아지마이트(Azymite)"라고 불렸음
그리고 서방교회는 누룩이 없는 빵을 쓰면서
1. 공관복음서에서는 "유월절 밤"이라고 적혀있었다는 점과
2. 유월절 기간에는 무교병을 썼다는 점과
3. 옛 이스라엘(유대인)의 계명과 새 이스라엘(교회)의 계명의 영적 연속성을 주장함

반대로 동방은 "누룩이 있는 빵(Prozymos)"을 썼고
그래서 "프로지마이트(Prozymite)"라고 불렸음
그리고 동방교회는 유교병을 쓰면서
1. 요한복음서에서는 "유월절 전날 밤"이라고 적혀 있다는 점과
2. 인위적인 효모를 넣지 않아도 반죽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발효는 부활의 기쁨을 상징할 수 있다는 점과
3. 옛 이스라엘과(유대인)의 계명으로부터의 단절로 인해 새 이스라엘(교회)의 계명이 새로이 시작되었음을 주장함
결국 이 둘은 신학적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대논쟁을 벌였지만 둘 사이의 감정의 골만 깊어지게 되었고,
여기에 필리오퀘 논쟁과 동서 대분열까지 가세하면서 동·서 교회사 최대의 오점인 "라틴인 학살"과, "십자군 학살"로 이어지게 됨
근데 이 빵, 정확히는 성체 논쟁은 아이러니하게도 오늘날에는 그렇게까지 교회 간 대화에 있어 큰 문제로 다뤄지지는 않는데,
이건 16세기에 예수회의 개입(이렇게 표현하는 이유는 뒤에서 언급할 공동체의 탄생에 예수회가 굉장히 "민족적", "정치적"으로 영향을 끼쳤기 때문)으로 생겨난 "우크라이나 그리스 가톨릭"을 필두로 "동방 (전례) 가톨릭"을 세우는 과정에서
"교황과 교황의 수위권에 순명하기만 하면 전례적 요소의 유지를 허가하겠다."라고 합의를 봤기 때문임
정리하면
1. 빵은 초기 교회사에서는 굉장히 중요했지만
2. 지금에 와서는 그렇게 큰 문제로까지는 여기지 않음
3. 오늘 저녁은 빵 드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