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들이 기우제를 안 믿은 이유
를 찾기기에는 이미 기우제가 궁과 지방 관아 민간에 이를 것 없이 전국 팔도 무속인들의 퍼포먼스를 관람할 수 있는 연중 정기 행사라는 점에서 질문 전제 자체가 아웃임
ㅇㅇ 이거 궁에서만 하는게 아닐뿐 더러 걍 시즌만 되면 전국에서 안 하는 곳 찾기가 더 어려움
조선 시대를 본다면 기우제 하면 뭐 단판 승부 올때까지 버티자, 인디언 기우제 이런거 생각하기 쉬운데 아님
온갖 절차와 의례가 있고 집집마다 김치맛이 다르듯 지역마다 기우제가 또 다름
기우제 시즌은 보통 4~7월 사이인데 궁궐의 경우 국행기우제라고 해서 명산, 사직, 종묘, 대천, 북교(창의문 밖 북쪽 제사 지내는 곳)에 대신들을 제관 삼아 12차까지 용신 콘서트를 돌림
지방 관아는 지역마다 특색있는 행사도 있는데 보통 산상분화라고 해서 한밤중에 동네사람들 모아다가 캠프파이어를 돌림
기우제 정기 콘서트는 나라만 하는가? 아님 민간도 함 ㅇㅇ
그런 갸들은 뭐하는가 보면? 일단 터부를 만듬
여인들이 묘를 파헤친다거나, 동네에서 각출해서 흔히 말하는 용연이나 용소에 개를 잡아 그 시체를 조각내 던지거나 피를 뿌림
(아무튼 해룡 ㅇㅇ)
이러면 용이 노해서 비를 내린다~ 이말이지
물론 그런 정신 나갈것 같은 짓만 하는건 아님
우리가 명절마다 올리는 강신/헌주/독축/음복의 레파토리로 달리는 제사는 모든 기우제의 기본이며
장터를 계속 옮기는 것도 방법이었고, 여인들이 키나 나뭇가지 등으로 냇가나 연못에서 몸에 물을 뿌리고 천국의 계단 돌리듯 뭍으로 올라갔다 내려갔다 무한 반복 때리는 곳도 있었음
당연하지만 고려시대 아니 그 이전부터 내려온 방법인 무당들이 모여 흙으로 용을 만들거나 용을 그린 그림을 여기저기 붙이며 굿을 하는 것도 있었음
물론 줄다리기(줄이 용이라고 생각하면 됨 ㅇㅇ 이긴쪽에 용신의 가호가 깃든다 뭐 이런거)라거나 솔로 입구를 막은 물병을 거꾸로 매달아 비가 내리는 듯한 모습을 흉내내는 것도 있었지.
뭐 이런 저런 여러 방법을 스까가며 총 동원했음
걍 어디 영화에서 처럼 무릅끓고 하늘에 빌거나 뭐 과학적이고 이성적인 사고로 안되는거 알긴 아는데 걍 함 이런게 아님
사회 저변에 깔린 믿음이 어느 정도냐 하면 기우제에서 용신 소환 타율 괜찮은 무당들은 나라에서 세금까지 감면해줄 정도였으니 말 다했지 ㅋㅋ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