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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준비를 안했다면 충무공도 안나왔겠지...
옛날 위인전같은거에 저런 내용 많았던 듯. 영웅을 부각시키기 위해 주변을 바보로 만드는건 자주 쓰이는 방법이니...
삼포왜란이나 을묘왜변 수준을 생각하고 대비했는데 히데요시가 노망나서 20만을 꼬라박을 줄 알았겠냐고.
원균이 잘만햇어도...
한반도가 평화병에 걸렸던 적이 있나
화력덕후민족은 저때도 열심히 덕질을 하고 있었다구
맞아 20만 대군 이란 숫자도 미친 숫자이고 훈련 안된 무지랭이 같은 징집병이 아니라 대부분 실전 투입된 정예병들
애초에 준비를 안했다면 충무공도 안나왔겠지...
삼포왜란이나 을묘왜변 수준을 생각하고 대비했는데 히데요시가 노망나서 20만을 꼬라박을 줄 알았겠냐고.
옛날 위인전같은거에 저런 내용 많았던 듯. 영웅을 부각시키기 위해 주변을 바보로 만드는건 자주 쓰이는 방법이니...
원균이 잘만햇어도...
한반도가 평화병에 걸렸던 적이 있나
화력덕후민족은 저때도 열심히 덕질을 하고 있었다구
사실 임진왜란은 왜구 침입이 잦았던 과거 사례로 인해서 왜구냐 전쟁이냐 판단을 하려던 차에.. 생각보다 많은 물량에 부산진이 무너지면서 속수무책이 된 게 큼..
저당시 20만이면 지금 인구비율로 200만 쯤??? 당시 유럽군대가 최대 긁어 모아야 1-2만 당시 유럽을 떨게했던 오스만도 원정군 긁어 모으면 5-6만??
커트야!커트!예의가 없어!
맞아 20만 대군 이란 숫자도 미친 숫자이고 훈련 안된 무지랭이 같은 징집병이 아니라 대부분 실전 투입된 정예병들
원균자리에 이순신 있었으면 그저그냥 임진년에 왜구가 쳐들어왔으나 미연에 방지했다 한줄로 끝났을텐데
아냐 그건 모르는거야 축차투입이긴하지만 부산포에서 20만을 다 막을수는.없슴 물론 그분이라면 정탐 돌려서 오기전에 끊어먹긴 했을테지만...
왜란 전에 니탕개의 난도 있었고, 진관체제의 한계기도 했고.
임진왜란 일본의 실효지배 면적을 보면 1년만에 경상도 아래로 쪼그라듬 조루녀석들
당시 지구상예 (사실상) 직업군인 20만 동원 가능 한 나라는 일본 뿐 상식을 초월한 미친 새기들이 일본 놈들이었음 ㅋㅋㅋ 대개 20만 대군이라 해도 정예는 선봉 1~2만에 본대 2~3만이고 나머지는 죄다 징집병이어야 정상인데 아니면 전부다 말 타고 다니는 유목민 오랑케 거나 근데 그들은 항상 부족간 내전 중이라 통일이 되어야 10만 이상 대군 모을 수 있음 ㅋ
전국시대 유산 아닌가?
그럼 선조의 재평가가 필요한 건가??
율곡 이이의 십만양병설은 후대의 제자들이 기록한거라 쳐도 당장 이이는 선조 즉위초부터 서얼금고철폐를 주장하고 니탕개의 난에서도 서얼들을 임용하여 군에서 써야 한다고 주장함. 서인이자 율곡 이이의 직제자인 중봉 조헌은 <의상소>에서 둔전을 돌려서 지방병을 양성해야 하고 <청절왜사소>,<청참왜사소>에서 일본과 교류를 끊고 전면전을 대비해야 한다고 했고 동인인 서애 류성룡은 <비변오책>을 올려서 군포를 폐지해 군병을 보충해야 하고 성을 쌓고 수군을 양성해야 한다고 했지. 그리고 선조도 내탕금 털어서 성을 개축-보수했음. 준비를 나름 할만큼 했는데 20만이라는 개떡드랍이 떨어질 것은 예측 못한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