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전 한 무협 온라인 게임이 있었다
남녀 성비가 9.9 대 0.1 정도로 남탕 게임이였다
내가 속한 길드가 50명 정도였는데
여자가 단 1명 이였다
길드내 아재들이 그 단 1명인 여잘 꼬셔보겠다고
온갖 '게임 내 선물' 을 가져다 받치는걸 봤다
나는 연애를 포기하고 살던 돼지 뚱땡이라
쳐다도 안보고 관심도 없었다
오프 모임도 생기고 토크온(지금의 디스코드 같은)도 생기고
칙칙하던 길드가 아주 그냥 핑크빛 이더라
난 당시 여혐, 쿨찐 루트로 인생을 조지고 있던 중이라
그냥 길드 던전이나 제대로 굴러가면 다행이라 생각했었다
여왕벌이 파닥이니 아재 몇이 그에 낚여 들었고
결국 싸움이 나더라
일단은 게임내 1위였던 길드라
당시 길드 운영진들이 길드 살려보겠다고 중재를 섰고
내가 그 여왕벌의 담당자가 되었다(?)
이유는 나는 그 여왕벌에게 대놓고 적대감을 표하던 찐이였고
어쨋든 그 여왕벌이 길드를 활성화 시키는건 맞으니
데리고 던전도 돌고 퀘도 돕고 할 인원이 있어야했고
그럼 그 여왕벌을 여자로 안보는 내가 적합한 인재(?)라는 이유였다
아 그때 길마 형에게 쌍욕을 하고 길드를 나왔어야했는데
https://m.ruliweb.com/community/board/300143/read/66526685
길드 아재들 싸움 이후
편하게 버스를 타던 여왕벌은 이제
여혐, 쿨찐(본인)의 리딩 아래
좋은 템이 나와도 언제나 지가 먹던 시절을 떠나
공평하게 주사위를 돌리며
힐러였던 여왕벌이 힐을 못해도
비싼 물약 쳐마시며 웃어주던 아재들 없이
바로 쌍욕 던지는 돼지, 뚱땡이(본인)의 잔소리를 버텨야했다
그렇게 어느 순간부터
언제나 서로 으르렁 거리는
그런데 항상 같이 붙어있는
이상한 관계가 지속되고 있었다
그러다 길드 네이버 카페가 생겼다
여왕벌의 목소리만 듣던 아재들은
여왕벌의 사진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반 장난하듯 말하던 아재들이
어느 순간 과하다 싶을 정도로 집착하는 아재가 생기기 시작했고
여왕벌이 사진 올리기를 거절하자
점점 이상한 말들이 퍼지기 시작했다
여왕벌이 사실 되게 못생겼다드라
여왕벌이 20대 중반이라던데 사실 30대 아줌마 라더라
생각해보니 여왕벌이네 열받네 내가 해준게 얼만데
길드는 망해가는 게임과 함께
당연하듯 같이 망해가고 있었다
https://m.ruliweb.com/community/board/300143/read/66527082
쌤통이다?
속 시원하다?
사이다 엔딩이다?
뿌린대로 거둔거다?
자승자박 이다?
자업자득?
자작자수?
이젠 반대로 아재들에게 공격당하는 여왕벌을 보며
깔깔 거리며 웃을 돼지, 뚱땡이, 여혐, 쿨찐인 내가
이상하게 기쁘지 않았다
여왕벌은 내게 이쁜척을 하지 않았다
물론 파티에 다른 사람이 있으면 여왕벌 연기에 심취하셨지만
둘이서 메인퀘를 밀거나 일퀘를 하거나 할땐
이게 같은 여자가 맞나 싶을 정도로 달랐다
아재들 앞에서 언제나 하이톤의 잘 웃는 여왕벌은
내 앞에선 허스키한 욕쟁이 할머니 였다
아재들 앞에선 오늘 다녀온 이쁜 카페
친구들이랑 여행 다녀온 이야기로 호호호 거렸지만
내 앞에선 자기가 직접 빚져서 동생 학비낸 이야기
회사에서 사장에게 까인 이야기로 껄껄껄 거렸다
여왕벌이 여왕벌이 아니였네
아닌가 아재들 앞에서 실실 거렸으니 여왕벌인가
선물도 받고 그랬자나
아재들 이용해 먹었자나
김치년, 된장년 이자나
내가 가장 싫어하는 유형의 여자자나
그런데 왜 나는 화를 내고 있지
새벽
여왕벌이 없는 토크온에서
여왕벌 욕을 하던 아재에게 쌍욕을 퍼붓고 있는
돼지, 뚱땡이, 여혐, 쿨찐이였다
https://m.ruliweb.com/community/board/300143/read/66527354
네이버 카페가 불타고 있었다
여왕벌이 카페에 자신의 사진을 올렸다
긴 갈색 머리에 살짝 웨이브가 들어간
전형적인 미인상 이였다
171cm, 늘씬하고 길쭉한 여자였다
척봐도 각도빨에 화장실 조명빨 이였지만
며칠간 나왔던 잡소리들이 쑥 들어가는 사진이였다
갑자기? 왜?
여왕벌은 대단한 여왕벌 이였다
토크온에 부계정을 심어두는 여자였다
새벽에 내가 자신을 위해 화를 내준걸
실시간으로 듣고 계셨다
사진 하나 안올린다고 욕하는 야재들이 싫었고
그거보다 내가 자기 편을 들고 있는게 싫었덴다
맨날 남한테 싫은 소리 하나 못하고
자기 의견도 제대로 못내서 맨날 어버버거리는 멍청이가
자기를 좋아하지도 않고 관심도 없으면서
맨날 새벽까지 함께 있어주는 바보가
쎈척하느라 목소리가 덜덜덜 떨리는데도
자기를 위해 화를 내주는 모습이 너무나도 꼴뵈기 싫었덴다
우리는 바로 다음날
게임이 아닌 현실에서 보기로 했다
https://m.ruliweb.com/community/board/300143/read/66527706
한달이 지났다
응? 한달?
다음날 보자고 전화번호를 교환하고
1분도 안지나서 여왕벌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달만... 미안합니다 한달만;;;"
그렇다
돼지, 뚱땡이, 여혐, 쿨찐이였던 나는
당장 다음날 여자를 만나러 간다는 선택지를 견뎌내지 못했다
거기다 카페에 올린 사진까지 봤다
부담감은 하늘을 찌르고 우주를 넘겼다
화를 낼지, 어이없어 할지, 그냥 없던일이 되버릴지
내가 그렇지 뭐 하며 전화기 넘어 여왕벌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 날 사람이 너무 웃으면 헛구역질이 나온다는걸 알았다
여왕벌은 웃다가 헛구역질하며 한달 후에 보자고 했다
한달 후 첫 만남에 우리는 정동진을 갔다
응? 갑자기?
데이트 경험이 초 희박한 나는
첫만남에 당일치기 여행이라는 굉장한 무리수를 뒀다
그리고 지금 생각해보면 웃긴게
여왕벌도 아무 생각 없이 좋다고 말했다
나중에 안거지만 내가 덮치거나 할 용기가 있는 놈으로 안보였기 때문에
그냥 오케이 한거고
이 찐따가 어디까지 날 웃기려나 기대하면서 오케이 했다고 했다
오케이 알았어... 그래...
서울 고속버스 터미널 앞에서 보기로 했다
약속시간 1시간 전에 이미 도착해 있었다
횡단보도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1시간동안 너무 많은 생각을 했다
대부분 아 지금이라도 도망칠까 라는 생각이였다
안나오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은 왜 안했을까 신기하네
횡단보도 건너편에 여왕벌이 나타났다
누가봐도 쟤가 걔구나(?) 싶었다
활짝 웃으며 내게 달려왔다
빨강색 잠바와 스키니진이 너무 잘 어울리는 여왕벌 이였다
안녕!
....아...아...안녕하세여;;; 에헤;
12년이 지났다
나는 가끔
서울 고속 터미널 앞에서
쿨하게 집으로 혼자 돌아가는 날 상상하곤 한다(?)
여왕벌은 여왕님으로 진화했고
지금도 처음 만난 날 손 벌벌 떨면서
이...이..이거 마셔요 하고 물을 건네는 날 흉내내곤 한다
나는 이제 지쳤어요
나는 이제 지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