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素那)
금천(金川)이라고도 표기되어 있는데 '쇠내'라는 말의 신라 발음을 음차한 게 '소나'로 해석해서, 아마 국어 교과서나 공무원 시험 등에서 한국어의 역사와 변천을 이야기할 때 언급되는 인물일 거임.
삼국시대의 내로라 하는 인물들 중에 삼국사기에 자그마치 개인의 열전을 가진 인물이기도 함.
아버지인 심나(沈那)도 선덕여왕 때 백제와의 전투에서 '비장(飛將)'이라고 불릴 정도로 활약한 맹장이었고 백제인들은 "심나가 살아 있는 한 저 성에 가까이 가지 마라"고 할 정도로 두려워했다고 함.
열전에 소나와 심나의 출신지는 '백성군 사산현'이라고 적혀있는데 여기가 오늘날 천안에 해당되는 동네라서 신라의 전통적 영역인 영남 지역이 아니라 백제의 영역이라는 점이 주목할 점임. 이에 대해서 소나 집안에 대해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지.(백제에 대해 감정이 좋지 않았던 마한계 토착세력 출신이라든지, 아니면 영남에서 이쪽으로 이주한 이주민이었다든지)
어쨌든 소나는 북쪽 변경에서 활약했고 나당전쟁 때 활약했는데, 그의 임지였던 아달성의 성주가 백성들에게 삼을 심으러 성 밖으로 보낸 사이에 말갈군이 기습해 옴.
남자들이 농사일로 밖에 나가 있어서 성 안에는 노약자와 아이들만이 있었는데 이 상황에 대해 소나가 이렇게 외쳤다고 하지.
爾等知新羅有沈那之子素那乎 固不畏死以圖生, 欲鬪者曷不來耶
너희들은 신라에 심나의 아들 소나가 있는 줄을 아느냐? 나는 진실로 죽음을 두려워하여 살길을 찾는 사람이 아니다. 싸우고자 하는 자는 어찌 나오지 않느냐!
- 삼국사기 권47 열전 제7, 소나
그리고 말갈군과 분투하다가 전사하는데 소나 열전은 이렇게 쓰고 있음.
드디어 분노하여 적진으로 돌진하자, 적들은 감히 접근하지 못하고 다만 그를 향하여 활을 쏠 뿐이었다. 소나 역시 활을 쏘았는데 날아오는 화살이 마치 벌떼와 같았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싸우니 소나의 몸에 화살이 고슴도치의 털처럼 박혀 마침내 쓰러져 죽었다.
- 삼국사기 권47 열전 제7, 소나
거의 온몸으로 무쌍 찍는 수준으로 육탄전을 벌였고 말갈군이 소나의 힘을 당해내지 못해서 멀리서 활만 쐈는데 소나도 활도 쏘면서 항전했던 것으로 보임. 그럼에도 하루종일 분전하다가 마침내 힘이 다해서 '고슴도치처럼 화살을 맞고' 쓰러져 죽음.
삼국사기에는 문무왕이 소나의 활약을 듣고 감명받아서 그에게 잡찬 벼슬을 추증했는데, 이게 다름 아닌 신라의 17관등 중 제3위의 벼슬이고 골품제에 의해 진골만 오를 수 있는 벼슬이었음.
신라가 통일전쟁을 벌일 때 전사한 인물에 대해서는 골품과 관계없이 논공행상을 벌이긴 했는데, 소나가 이런 전사자들 중에서는 골품을 뛰어넘어 가장 높은 관위를 받아서 그 용맹을 얼마나 높이 평가받았는지 알 수 있지. 특히 출신지만 봐도 신라에서 높이 대접받던 골품은 아닌 변방의 무장이었는데도 이렇게까지 공을 크게 평가받은 사례도 별로 없고.
여포나 벤케이는 알아도 한국사의 용장들은 많이 알려지지 못한 측면도 있다는 게 은근 안타까울 때도 있다능...;ㅁ;
한국 고대사랑 고려사 기록이 없어진 게 한둘이 아니여가지고
뭐 사실 많이 없어진 기록이긴 해도 비슷한 시기 외국들에 비하면 한국의 고대사 기록들은 비교적 풍부한 축이긴 하지만...ㅋ(다른 나라들은 글자 그대로 갖다 붙이면 말인 수준이라)
통뼈들은 두려움이 없어.
이사부와 거칠부가 편찬한 국사나 삼국사가 망실되지만 않았다면 우리 역사가 얼마나 더 풍부해 졌을지ㅠㅠㅠㅠ
드라마 한편 뚝딱이네
로마같은 곳은 많이 남아있겠지? 로마나 이집트가 좀 사기적인건가
로마나 이집트, 중국 같은 나라들 말고도 외국들도 나름대로 문자체계로 기록을 남겼지만 전쟁이나 재난 등 여러 이유로 남지 '못했다'는 게 더 정확할 듯? 우리나라의 고려실록이나 구삼국사도 전란 와중에 실전되어 버린 것처럼 다른나라들이라고 전란이 없었던 건 아니니까.
한국 고대사랑 고려사 기록이 없어진 게 한둘이 아니여가지고
뭐 사실 많이 없어진 기록이긴 해도 비슷한 시기 외국들에 비하면 한국의 고대사 기록들은 비교적 풍부한 축이긴 하지만...ㅋ(다른 나라들은 글자 그대로 갖다 붙이면 말인 수준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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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같은 곳은 많이 남아있겠지? 로마나 이집트가 좀 사기적인건가
로마나 이집트, 중국 같은 나라들 말고도 외국들도 나름대로 문자체계로 기록을 남겼지만 전쟁이나 재난 등 여러 이유로 남지 '못했다'는 게 더 정확할 듯? 우리나라의 고려실록이나 구삼국사도 전란 와중에 실전되어 버린 것처럼 다른나라들이라고 전란이 없었던 건 아니니까.
통뼈들은 두려움이 없어.
부자가 쌍으로 버서커였던 ㅎㄷㄷㄷ
백성군 호칭 자체는 안성을 의미하는 걸 알아서 그런가 지자체 땅ㄸㅁ기 결과로 사산현 일부가 지금은 천안 지역이란 얘기군
백성군 산하의 사산현인 건데 당시에는 안성과 천안이 행정구역 상으로는 하나였다는 거지 ㅋ 특히 저 사산현은 천안에서도 좀 윗쪽인 직산, 성환 요쪽께일 거임.
그 당시엔 그게 꽤 넓었나보네 관할 자체가...
어쨌건 분명한 건 심나와 소나는 신라의 '주류 귀족'이 아닌 글자 그대로 변방의 인물이었다는 거.
뭐 하기사 천안 쪽이면 목지국 쯤은 생각해보긴 했을 법하네
ㅇㅇ 목지국과 같은 마한 쪽 토착세력 집안이었는데 신라로 귀순한 것이라면 백제에 대해 맹렬하게 싸울 이유도 충분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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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로디미르 젤렌스키
그 엄청난 공을 세운 안시성주조차도 이름이 남지 못해서 김부식 역시 개탄을 금치 못했지...
ㄷㄷㄷㄷㄷㄷㄷㄷ
부자가 쌍으로 초인이었던 워리어 가문 ㅎㄷㄷ 물론 통일전쟁을 치르고 있었던 신라의 상황이나, 7세기 신라에서 용맹하게 싸우다가 전사한 인물들의 이야기가 많이 남은 걸 생각하면 무열왕이나 문무왕이 의도적으로 이런 인물들의 이야기를 널리 퍼뜨린 측면도 있겠지만 소나는 그렇게만 보기엔 상당한 수준의 특진임...
이사부와 거칠부가 편찬한 국사나 삼국사가 망실되지만 않았다면 우리 역사가 얼마나 더 풍부해 졌을지ㅠㅠㅠㅠ
고구려와 백제도 사서를 남겼지만 이 역시 남지를 못했고...ㅠ 그나마 간간히 발견되는 목간이나 금석문을 통해 삼국시대 사람들이 직접 남긴 말들의 일부만 추정할 수 있고.
드라마 한편 뚝딱이네
언젠가 나당전쟁을 다룬 드라마가 나온다면 강렬하게 묘사할 수 있는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