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쪽은 문통 류의 급진적 자유주의 내에 내제된 타협성을 그닥 좋게 보질 않음. 근데 우리나라에 급진적 자유주의 풍토마저 잘 뿌리내리질 못했는데 타협은 없다고 하는 건 영.)
그래서 내가 개인적으로 인상깊게 여긴 부분을 발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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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
정체성 정치에 무비판적인 경향이 사회운동에 널리 퍼져 있으므로, 약점을 명확히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 차별에 맞서 효과적으로 싸우기 위한 전략과 전술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정체성 정치에 깔린 핵심 가정은 특정 차별을 받는 집단의 구성원들이 모두 단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같은 차별을 당하는 집단에 속하더라도, 그 구성원들의 삶은 계급에 따라 매우 다르다. 호화 주택에서 살며 청소와 요리 등 온갖 궂은일을 노동자를 고용해 처리할 수 있는 부유층 여성의 처지는 노동계급 여성의 처지와 전혀 다르다. 자본가계급 성소수자의 삶과 노동계급 성소수자(성적 지향이 드러나 해고될까 봐 불안한)의 삶도 다르다. 부유한 사람들은 특정 차별을 겪더라도 차별로 인한 효과를 완화할 자원이 있다.
지배계급 여성도 투표권이 이혼의 권리를 인정받지 못하던 자본주의 초기에조차 지배계급 여성의 대다수는 투쟁적 여성운동과 거리를 뒀고, 노동계급이 벌이는 파업과 시위에는 격렬하게 반대했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벌어진 여성 참정권 운동을 단일한 여성운동으로 간주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이 운동은 결코 단일한 운동이 아니었다. 참정권 운동 내에서는 사회주의자들이 주도하는 노동계급적 운동과 중간계급 페미니스트들이 주도하는 운동이 경합을 벌였다. 출신 배경이 다른 여성들이 함께 시위를 벌이는 일이 때때로 있었지만, 계급 문제 때문에 결속은 지속되지 못했다. 상층 계급의 여성 참정권론자들은 투표권 보장을 만병통치약으로 여겼고 노동계급의 처지에는 무관심했다. 제1차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여성 활동가들 사이의 계급적 차이는 더 첨예해졌다. 상층 계급 여성들은 거의 전폭적으로 전쟁을 지지하며 참정권 요구마저 포기했다.
정체성 정치를 통해 대중적 결집이 이뤄진다 해도, 이런 결집은 일시적일 수밖에 없다. 운동 참가자들의 계급적 배경이나 정치적 지향이 상이하므로, 운동이 성장하면 운동의 향방을 놓고 정치적 차이가 커지기 마련이다. 정체성 정치는 차별받는 사람들 사이에 엄연히 존재하는 계급적 차이를, 그에 따라 생길 수밖에 없는 운동의 목표와 전략 차이를 뛰어넘고자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정체성 정치의 핵심에는 자율주의가 있다. 특정한 차별을 받는 사람들 자신이 그런 차별에 맞선 투쟁을 이끌어야 한다고 본다. 차별받는 사람들이 스스로 투쟁할 것을 강조하는 것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차별받는 당사자만이 투쟁을 잘 할 수 있다는 주장은 문제가 있다. 차별에 반대하는 모든 사람들의 동참을 이끌어내서 투쟁을 더 강력하게 만드는 것을 가로막기 때문이다.
특정 정체성을 중심으로 운동을 조직해야 한다는 생각에는 특정 차별을 직접 겪지 않는 사람들은 그런 경험을 이해할 수 없기에 함께 싸울 수 없다는 비관적인 생각이 깔려 있다. 이런 생각은 차별에 맞선 투쟁이 노동계급의 계급투쟁과 무관하다고 여긴다.
(중략)
그래서 정체성 정치는 차별을 개인적 피해로 여기게 해, 집단적 저항을 호소할 때조차 시나브로 집단적 조직의 효과를 떨어뜨린다. 개인들의 피해 경험 드러내기를 고무하며 운동의 방향에 대한 이견 제시, 비판 등 정치적 주장을 펼치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개인의 피해를 기준으로 불평등 문제를 제기하면, 초점이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가 아니라 개인들 간의 위계나 차별에 맞춰지며 개인들을 성토하는 게 주가 된다. 그런데 차별을 주로 개인 관계에서 찾으면 누가 차별 유지에 이해관계가 있는지 오해하기 쉽다. 남성 일반이 여성을, 이성애자 일반이 동성애자를, 백인 일반이 흑인을 지배한다며 노동계급과 사회운동 내에서 적을 찾는 경향이 생긴다. 이런 분위기는 운동의 불필요한 분열을 초래하며 운동의 파편화를 촉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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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 좌파의 탈을 쓴 꿘충들은 계속 존나 갈라치고 있다. 사회적 개혁 동력을, 개조 동력을, 하다못해 인간 보편적의 기본권적인 권리든.
이 점만은 굉장히 인상깊고 예리하다 생각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