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산 안창호 선생
갓 20살이 된 후 독립협회에서도 활동
독립협회 해체 후 미국으로 망명하여 유학하면서
한인단체에서 만든 신문이
훗날 대한인국민회의 기관지 신한민보 가 됨
을사조약 이후 국내에서는 공화주의 비밀결사 신민회를 세우고
한일병합 이후에는 연해주 만주 등을 떠돌다가
미국으로 건너가서(공교롭게도 105인사건 이전)
대한인국민회2대 회장으로 활동
3.1운동이 벌어지자 미국에서의 (비교적)편한 생활을 청산하고
재미교포들이 모아준 기부금을 갖고 상하이로 가 임시정부 설립에 기여
국민대표회의 결렬 후 잠시 다시 미국에 돌아갔다가
중국으로 돌아와 민족유일당 운동을 주도
필리핀에 만주 한인들을 이주시키는 계획을 추진했으나 실패
윤봉길의 의거 이후 한인애국단 배후로 지목되어 일제에 체포
두 차례 투옥생활 후
순국
만주 중국(관내) 미국 심지어 필리핀까지 오가며
국내외 독립운동사에 단언컨데 가장 큰 족적을 남긴 분
미국 캘리포니아 시는
안창호 선생의 생일인 11월 9일을 안창호의 날로 지정 했다고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