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촉빔으로 유명한 신권의 왕권 견제.
이게 그 어떤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는 전후후무한 시스템인데, 이걸 확립한 사람이 바로 태종임.
태종은 왕이 절대권력을 잡으면서도 "신권이 옳은 말을 할 때에만 발동할 수 있는" 절묘한 권력균형 시스템을 만들었는데,
옆나라의 명나라 태조 주원장이 황제의 권력을 역대 최고 수준으로 막강하게 만들어 절대권력을 쥐게 한 거랑 굉장히 대조적인 모습임.
태종은 계산기를 타닥타닥 두들겨서 숙청을 아주 조금씩 사용하면서 그 효과를 극적으로 얻어낸다던가(태종의 킬 수는 조선왕조에서도 최하위인데, 태종의 정치력으로 그 사람들을 죽이면서 얻어낸 정치적 영향력이 엄청나게 커서 아직까지도 킬방원 이미지로 화자되고 있음)
퇴위 쇼까지 하면서 그래 퇴위하십쇼 한 애들 짜르고 하면서 신권이 넘보기는 커녕 감히 시비조차도 틀 수 없을 정도의 막강한 전제권력을 이룩해내는것과 동시에
자기가 직접 찍어누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냥을 떠난다던가 일부 행위를 한다던가 할 때, 신하의 말이 옳은 말이라면 "하지 못하는" 행위를 보였음.
이게 진짜 놀라운 게 뭐냐면 보통 신하들이 간언하거나 반대하면 왕이나 황제가 그걸 "받아들여서" "안하는" 형식이지, "못하는"것처럼 하는 경우는 전례가 한번도 없었음. 이런 유사한 일이 발생하는 경우에는 신하가 왕권을 틀어잡고 왕권이 땅을 기는 수준 아니면 없는데, 이마저도 일부 신하들이 권력을 붙잡는거지 모든 신하들의 발언이 이치에만 맞는다면 "못하는" 경우는 역사상 전례가 단 한번도 없었기 때문
그런 걸 하는 것과 동시에 왕인 이방원 본인의 논리가 맞다면 가차 없이 전제 권력을 휘둘렀고, 신하들의 논리가 맞다면 시스템이 확립되기도 전이라 명태조 주원장이 했던 것처럼 권력으로 "찍어누르기"도 충분히 가능했는데, 그걸 의도적으로 하지 않고 못하는 것처럼 상황을 연출함. 이 시스템이 조선 특유의 신권-왕권의 균형 시스템이 되게 됨.
태종 본인은 킬수는 조선왕조 최하위임에도 불구하고 그냥 죽여댄 다른 왕들이랑 달리 자신이 사람을 죽였다는 죄책감이 있었는지, 정치적으로 도움이 되는 경우가 아니라면 왕실 능멸죄를 저질러도 모조리 살려주고(왕자 이름을 공에다가 붙이고 차고 놀았는데도), 죽을 때는 "악업은 내가 전부 짊어지고 갈테니 주상(세종)은 하고싶은걸 다 하시오" 하고 죽은 걸 보면 필요악이라고 생각하고 저질렀다는걸 알 수 있음.
물론 신하들이 "이치에 맞는 상황"에 한정에서 발동하는 권리기 때문에 왕이 하고 싶은 건 이치에만 맞으면 뭐든지 맘대로 할 수 있었고, 이게 바로 조선 초의 찬란한 발전을 이룩하는 데에 알파이자 오메가 그 자체인 영향력을 주게 됨. 이 시스템이 아니었으면 세종은 삼년상 하다가 죽었을수도 있는데, 이 시스템의 진가가 나오는 부분은 세종과 문종을 보면 알 수 있음.
세종은 이미 태종이 자기 어머니의 삼년상을 치루지 말라고 했던 것 때문에 한이 엄청 서려 있어서 (세종 : 내가 아버지 말은 다 듣겠는데, 이것만큼은 못 듣겠습니다. 하고 오열한 적도 있음) 태종의 삼년상만큼은 최선을 다해 치루겠다고 단단히 마음먹었었는데, 태종은 이를 알고 세종에게 "삼년상 도중에도 고기를 먹어라"라는 말을 남기고 사망함.
이거 때문에 세종이 "삼년상 도중에 고기를 먹는 불효자식이 어디 있냐!" 하고 신하들한테 따지면서 끝까지 삼년상을 치르려고 했지만
신하들이 "태종께서 고기를 먹으라고 하셨는데 그걸 무시할 셈입니까? 본인이 고기 먹으라고 하고 죽었는데 그걸 무시하다가 체력 떨어지면 그게 더 불효 아닙니까?" 라는 논리를 반박하지 못하고, 결국 어쩔 수 없이 고기를 먹게 됬음.
세종 수준의 전제권력이어도, 이치에 맞는다면 이는 거부할 수 없었다는 걸 뜻함. 이 시스템이 아니었었으면 세종은 그냥 신하들 말을 씹고 삼년상 하다가 몸이 다 축났을수도 있음.
이 시스템이 또다시 드러나는건 아들인 문종 대인데, 세종은 자기의 두 부모님의 삼년상을 제대로 치루지 못했다는 것에 대해 커다란 한이 서려 있었기 때문에, 자식들에게는 삼년상에 대해 아무런 말도 남기지 않고 사망함.
그렇기 때문에 이미 어머니의 삼년상을 3년동안 치르자마자 세종이 죽어서 6년상을 치르게 생긴 문종에게 16번이나 상소가 가고 신하들이 제발 고기라도 먹어달라고 문종에게 탄원하고 또 부탁했으나, 이번에는 태종의 발언과 같은 것이 없었기에
"아버지께서도 할아버지와는 달리 아무말 안 하셨는데, 삼년상 도중에 고기를 먹는 불효자가 어디 있냐?" 라고 따지자, 이게 옳은 소리였기 때문에 신하들은 문종에게 반발을 전혀 할 수 없었음.
물론 이런 경우야 세종과 문종이 이상할 정도로 효심이 깊은 사람이라서 그렇지 후기 왕들은 평범한 사람들처럼 설렁설렁 했지만, 이걸로 "옳은 말을 한다면" 신하들이 찍소리도 못한다는 시스템인게 보여줌. 반대로 옳은 말일 경우에는 그 절대적인 권력을 가진 왕조차도 따라야만 하는 시스템인걸 보여주고.
근데 이렇게 완벽한 균형을 잡은 이방원의 왕권-신권 시스템은 세조가 찬탈하고 자기가 끌던 패거리가 훈구공신, 훈구파가 되면서 막대한 권력을 짊어지면서 박살나게 됨. 시스템 자체가 없어진 건 아니지만 "절대권력을 지닌 왕"에 대항하는 "옳은 말을 할때만 발동하는 신권"이라는 시스템이 신권이 막강한 권력을 틀어쥐게 되면서 절대권력이 전제가 되어야만 하는 시스템 자체의 근간이 무너지게 됨.
이후 신하들이 왕을 가지고 흔든다던가, 그거 견제한다고 왕들이 힘 엄청 소진한다던가, 그 훈구파를 견제하기 위해 세조와 성종이 사림을 들여오면서 당파싸움의 막이 열린다던가 (성종은 내가 왕인데 내가 하고싶은거 하나도 못 한다고 불만을 토로한 적도 있음.)
그거 막겠다고 선조나 영조, 숙종 같은 왕들이 막강한 권익을 지닌 신하들을 일부러 싸움붙여서 그 과정에서 권력을 취하는 비효율적인 방법을 취해야만 그 왕에만 한정해서 그나마 전제 권력에 가까운 권력을 얻을 수 있게 된다던가(반영구적인 태종의 시스템과는 달리 왕이 죽었는데 후대 왕이 똑같은 짓을 할 능력이 없으면 말짱 도루묵 됨)
그 당파를 완화시키기 위해서 정책을 펼쳐서 차악을 들여왔더니 그 대가로 세도정치라는 다른 문제가 출범하고 조선 끝까지 가게 됨.
즉 단종때까지는 왕의 절대권력에 대한 "억제기이자 대체방안"으로써의 장치에 불과했던 신권(왕이 무능하더라도 돌아갈 수 있는 구조)이 세조 대에 이르러 변질되면서 원래 목적으로도 굴러가기도 했지만 신하들의 권력을 투사하기 위한 수단으로 변질되기도 한 것.
물론 통촉빔 그대로 하진 않고 이건 이러이러해서 아니되옵니다 이러는데, 이걸 요새는 통촉빔이라고 부르길래 그냥 그렇게 말했슴
영조 정조도 능력자고 당대에 괜찮았던 시절이긴 한데, 문제는 그 방식이 세도정치를 낳아서 빛바램.(물론 숙종이 판벌린건 어찌 안된다는 이유가 있다지만.) 태종은 진짜 효율적이고 오래 갈 시스템을 만들어놨었음. 그몸의 시발 세조만 아니었으면.
그래도 태조 태종 세종 문종이 조선의 기틀을 잡아서 세조가 망쳤음에도 굴처가는게 가능했던 것.
본문 글쓴이가 분명히 적어넣었듯이 태종은 신하들이 개기지도 못할 정도로 완전히 전제권력으로 눌러버렸지만 그럼에도 이치에 맞는 내용에 한정해서는 이기지 못한다는 듯한 행보를 보였음. 이 내용들 죄다 조선왕조실록에 나와있는데 안 읽은건 너 아닐까...
그런식으로 들어가면 연산군이 폭군짓한것도 의미없는게 되지 않을까? 어차피 일본이 쳐들어왔는데 중간에 폭군이 나오든 암군이 나오든 알게머임 만력제가 명나라를 조졌어도 결국 멸망시킨건 청나란데 알게뭐고
"왜 생겼는가"를 봐야지 갑자기 뿅 하고 자연발생하는건 아니지
세조 직전의 단종때까지는 저 시스템이 전혀 무리 없이 갔던거 보면 그건 아니라서...
"신하들의 권력을 투사하기 위한 수단" <- 이거 잘 써먹은 대표적 인물이 송시열. 왕이 벼슬주며 불러도 일부러 짐짓 튕김 -> 왕이 '그래 그럼 하지 말던가' 하려고 하면 벼슬하고 있는 송시열 제자들이 들고 일어남 -> 왕이 모양새 빠지게 송시열에게 한번 더 와달라고 부탁하는 꼴이 됨 -> 못이기는척 궁뎅이 떼는 송시열. 뭐... 그러다가 제대로 임자 만나서 사약받았지만...
결국 세조가 도트딜 넣은게 조선 망한거란 이야기.
훈구가 권력을 잡고 흔들었음에도, 후기 왕들이 당파끼리 싸움을 붙였음에도 기본적인 시스템만큼은 계속해서 건재했음. 그리고 전제권력은 세조의 쿠데타로 공신한테 권력 나눠주는 초유의 사태 같은 일이 없고서야 없어지지도 않음. 그렇게 쿠데타가 났는데도 왕의 기본권은 전혀 상하지 않았던걸 보면. 망할때까지조차도 전제권력이 해소가 안 되서 결국 망해버린 명나라만 봐도....
메가톤.맨
물론 통촉빔 그대로 하진 않고 이건 이러이러해서 아니되옵니다 이러는데, 이걸 요새는 통촉빔이라고 부르길래 그냥 그렇게 말했슴
전례가 없다기에는... 공자나 맹자가 왕들 말빨로 털어도 왕들이 걍 부들대기만 하고 살려보내는게 전국시대부터 있었음.
그거는 공자랑 맹자 같은 유명인사 한정이잖....
그당시에는 명망있는 인물을 함부로 죽이면 자기 지지기반이 흔들리거나 옆나라가 쳐들어올 정치적 명분을 주는 때라...
결국 세조가 도트딜 넣은게 조선 망한거란 이야기.
일본이 쳐들어와서 망한거지 세조즉위해서 망했겠냐
토코♡유미♡사치코
그런식으로 들어가면 연산군이 폭군짓한것도 의미없는게 되지 않을까? 어차피 일본이 쳐들어왔는데 중간에 폭군이 나오든 암군이 나오든 알게머임 만력제가 명나라를 조졌어도 결국 멸망시킨건 청나란데 알게뭐고
세상엔 원인과 결과라는게있잔슴 결과가 일본이 러쉬왔을때 암것도 못할정도로 허약한 나라였던거고, 원인은 세조인거임.
영조는 이인좌난때매 어쩔수 없긴 했어서..
근데 이런 시스템도 태종이니 가능한게 아닐까 군주가 누구냐에 따라서 달라질 수 밖에 없는게 한계이긴 한거 같아
루리웹-37658296
세조 직전의 단종때까지는 저 시스템이 전혀 무리 없이 갔던거 보면 그건 아니라서...
그래서 조선은 만들려고 했잖아
아니 그러니까 그 때까지 적용된것도 군주가 잘 해서 그런거 아니냐 하는 말이지
루리웹-37658296
훈구가 권력을 잡고 흔들었음에도, 후기 왕들이 당파끼리 싸움을 붙였음에도 기본적인 시스템만큼은 계속해서 건재했음. 그리고 전제권력은 세조의 쿠데타로 공신한테 권력 나눠주는 초유의 사태 같은 일이 없고서야 없어지지도 않음. 그렇게 쿠데타가 났는데도 왕의 기본권은 전혀 상하지 않았던걸 보면. 망할때까지조차도 전제권력이 해소가 안 되서 결국 망해버린 명나라만 봐도....
영조 정조도 능력자고 당대에 괜찮았던 시절이긴 한데, 문제는 그 방식이 세도정치를 낳아서 빛바램.(물론 숙종이 판벌린건 어찌 안된다는 이유가 있다지만.) 태종은 진짜 효율적이고 오래 갈 시스템을 만들어놨었음. 그몸의 시발 세조만 아니었으면.
☆쇼코&키라리☆
그래도 태조 태종 세종 문종이 조선의 기틀을 잡아서 세조가 망쳤음에도 굴처가는게 가능했던 것.
세도정치같은건 그냥 오래된 왕조에서 흔히 생기는 문제지... 세조없었어도 외척,내시,권신,군인 쿠데타등등은 일어났을걸.
기끟이
"왜 생겼는가"를 봐야지 갑자기 뿅 하고 자연발생하는건 아니지
서구 열강이나 강대국들의 식민지배도 19세기에는 흔히 생기는 문제지... 이완용이 없었어도 일본이외의 다른 나라에서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려했을 걸.
문종이 저 때 신하들 말 듣고 고기먹고 몸 보양하면서 3년상 지내기만 했어도..
"신하들의 권력을 투사하기 위한 수단" <- 이거 잘 써먹은 대표적 인물이 송시열. 왕이 벼슬주며 불러도 일부러 짐짓 튕김 -> 왕이 '그래 그럼 하지 말던가' 하려고 하면 벼슬하고 있는 송시열 제자들이 들고 일어남 -> 왕이 모양새 빠지게 송시열에게 한번 더 와달라고 부탁하는 꼴이 됨 -> 못이기는척 궁뎅이 떼는 송시열. 뭐... 그러다가 제대로 임자 만나서 사약받았지만...
태종 : 고기는 못참지.....(내 새끼가)
루리웹-8296320972
태종은 애초에 훈구파 같은 공신 세력 자체가 없었고 세조는 있었음 그게 제일 중요하지 공신 세력이 없이 전제권력을 잡은 태종이랑 훈구파 눈치보느라 마음대로 권력 투사하지도 못한 세조랑 비교 자체가 어불성설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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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리웹-8296320972
본문 글쓴이가 분명히 적어넣었듯이 태종은 신하들이 개기지도 못할 정도로 완전히 전제권력으로 눌러버렸지만 그럼에도 이치에 맞는 내용에 한정해서는 이기지 못한다는 듯한 행보를 보였음. 이 내용들 죄다 조선왕조실록에 나와있는데 안 읽은건 너 아닐까...
루리웹-8296320972
태종은 명분과 전제권력이 있었고 세조는 명분도 없고 전제권력도 없었음 세조가 대놓고 훈구파 견제하기 위해서 사림파 등용하라고 한것도 실록에 버젓히 나와있는데 그리고 훈구파는 본인들이 "자발적으로" 왕권에 충성하는걸 원해서 걔들 장단에 맞는 선에서만 세조 한정으로 권력 투사가 가능했던거고 세조실록에서도 나와있듯 훈구가 점점 도를 넘기 시작했을때도 세조는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견제를 위해서 사림 등용하는거 말고는 할수 있는게 없었음
루리웹-8296320972
"왕에게 진짜 권력이 있는거"랑 "신하에게 권력이 있으나 왕에게 자발적으로 충성" 하는 거랑은 하늘과 땅 차이임
루리웹-8296320972
태종이랑 세조랑 뭐가 다르냐고 했는데 1. 태종은 명분이 있고 세조는 없음 2. 태종은 공신 세력이 없는데 세조는 있어서 조선 망할때까지 그 공신 세력이 쥔 권력으로 인한 폐혜가 감 이게 다른거임 그리고 이게 제일 큰 포인트인거고
루리웹-8296320972
그 따까리들이 성종한테 하두 개겨서 나온게 연산군 아니였음?
루리웹-8296320972
니가 말한 김종직이요.... 훈구 계통 대신들이랑 걔들이랑 연결된 사람들이 너도나도 벼슬 먹고 있을 때 그 김종직을 비롯한 인사들 소규모로 등용하기 시작한게 세조고(김종직은 비록 세조에 의해 경질당했지만) 그걸 이어서 제대로 본격적으로 등용하기 시작한게 성종이고...
루리웹-8296320972
그니까.. 훈구공신들로 가득차고있는데 그 김종직을 필두로 반훈구적인 사람들을 소규모로 등용하기 시작했다니까.... 그리고 몇 번이고 경질당한게 아니라 세조가 직접 만나서 조언까지 해줬는데 앞에서 "응 니말 듣기 싫음 ㅋ" 했다가 경질당한거임 당할만해서 당한거지 세조가 김종직을 처음부터 싫어했는데 갑자기 미쳐서 등용했다가 또다시 미쳐서 경질시킨게 아냐...
루리웹에서 역사 배우는 거 아니다 애들아.
그것도 유게에서 ㅋㅋㅋ
개인 성향이 아니라 태종과 세종이 만들어낸 조선 시스템이야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나라였지 조선은 세조도 그 시스템을 부수진 못했어 왕도 자기 맘에 안드는 놈 처벌할때 사형을 직접 언도 하는게 아니라 형조에 고발하는 형식임 그 시스템을 부수려다 실패한게.연산군이고 고발을 하는 형식을 따라야 함
본문에서도 시스템이 완전히 소멸한게 아니라 원래 의도랑은 천만광년 다르게 박살나버렸다는게 포인트임
조선은 처음부터 굉장히 체계적인 관료 중심 사회였고 그 시스템으로 돌아간 나라야 그 장단점이 잘 들어난 나라이고 왕권과 신권의 대립이라는 이덕일식 사관이 무조건 들어 맞는 그런 나라가 아님
그 굉장히 체계적인 관료 중심 사회를 결딴낸게 세조잖아... 집현전 철폐로 인한 관학파 소멸은 왜 취급도 안함 그리고 왕권과 신권의 대립은 세도정치나 당파싸움만 봐도 고대로 드러나는데 어디가 안 드러난다는거임 그게 안 들어맞는 시기가 바로 세조 이전 시점이지
결단 못냈어 어디서 뭘보고 이야기 하는지 모르겠는데 세조의 쿠테타는 대가리만 바뀐거지 관료제 자체를 들어내진 못했음
세도정치나 당파싸움도 지들 파벌기리의 대립이지 왕권에 대한 도전이 아냐
그 대가리가 바뀌어서 생긴 훈구파가 권신이 되고 부정부패의 절정을 찍었잖아;;; 그리고 그 훈구파 들어내려고 지원한 사림이 집권하면서 비관료적 주제가지고도 토론하고 싸우고 당파싸움하고 그랬는데
그야 이미 권력들중 일부가 진작 뺏겼고 그게 고착화됬는데 왕권에 추가적으로 도전할 필요가 없지 애초에 "파벌끼리의 대립을 감히 시도할 일말의 껀덕지"조차도 없던 조선 초기랑 수양대군 이후로 공신들이 권신이 되면서 그걸 견제하기 위해서 "파벌끼리의 대립을 부채질한 왕들"이라는 시점에서 권력이 비교도 안되게 약해졌다는 증거라는건데
그게 왕권에 대한 도전이 아니여도 나라에 큰 악영향을 미친건 사실임 대표적인게 임진왜란인데.
왕권이 진작에 빼앗겼다는것도 웃기네 왕권이 빼앗겼다면 사림은 어떻게 등용이 되고 송시열은 뭔수로 죽였냐? 세도정치를 만들어줬다고 평가 받는 정조는 뭔수로 권력을 몰아주는거고 홍국영은 어떻게 죽임?
혹시 난독증 있음? "권력들중 일부가 뺏겼고" 가 어떻게 "왕권이 죄다 빼앗겼다" 가 됨?
그러니간 권력을 뺏고 뺏기는 관계가 아니라 조선이란 나라 자체가 왕도 거기에 포함된 체게적인 관료 사회였다니깐 왕권이 약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왕이 혼자 폭주 할수도 없는 그런 체제임 그걸 누가 만들ㅇㅆ다기보다 초기부터 그런 설계로 만들어진 나라임
선조가 이순신 등용 할때 괜히 절차를 복잡하게 시간 단위로 1단계씩 올린게 아냐
왕권이 약했다면 이순신은 등용이 안되었고 왕이 혼자 폭주 할수 있으면 처음부터 삼군 통제사에 앉히지
본문조차 안읽었나보네 애초에 본문에도 나와있듯 그 선조가 신하들 서로 싸움붙여서 권력 얻은 왕들 중 한 명이잖아.....
왕권이 약한건 아니지. 근데 조선 초기의 전제 권력은 이미 잃어버린지 오래라는거임 대체 어떻게 압도적인 전제 권력이 아니게 되었다 = 왕권이 약하다라는 뜻이 되는거임
아니 처음부터 없던 전제권력이 왜 없어졌다고 하냐고 태조는 너무 나이가 많앗고 본격적이 조선이란 나라가 체계를 잡기 시작한 태,세종때부터 "법률"에 따라 통치 기반이 돌아가던 나라인데
"본격적이 조선이란 나라가 체계를 잡기 시작한 태,세종때부터 "법률"에 따라 통치 기반이 돌아가던 나라인데" 조선 법률은 세조 대에서 만들기 시작하고 성종대 완성된 경국대전으로 돌아갔는데요...? 경국대전 없던 시절에는 조선경국전이나 속육전이나 경제육전이 다였는데 이것들 조금이라도 읽어보거나 알아보고 하는 소리임...? 제대로 된 법전이 하나도 없는데 어떻게 법률로 통치기반이 돌아감? 폰법률이야?
심지어 "태,세종때부터 "법률"에 따라 통치 기반이 돌아가던 나라인데" 이말이 존나이해가안가는데 그럼 세종때 법전반포는 왜 실패한거임? 육전상정소는 왜 설치한거임?
경제육전을 재편집한게 경국대전이고 그리고 법률인란게 막 만들자 하면서 바로 만들어지는것도 아니고 공민왕때부터 다듬다가 넘어 와서 대명률을 기반으로 만들어진게 조선 법령 체계임 조선의 왕권이란게 처음에는 신성 불가침 영역이었을거라는 이야기인데 조선은 처음부터 사대부들의 추대로 만들어진 나라야
그리고 조선의 법전은 법의 모음집이지 그걸 만들고 그때부터 시행하는게 아냐
경제육전만 재편집한게 아니라 속육전이랑 경제육전 "기반"에다가 오리지널요소를 엄청나게 섞은거임 그리고 그 대명률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는게 뭔소린지 모르겠는데 대명률은 참조법령이지 기반은 위 세개임. 애초에 현지 관리 ㅈ대로 판결이 계속 바뀌는데다 제대로 된 법안도 없이 "왕이나 현지 관리 마음대로 법률 결과를 조정해도 되는" 상황이었는데 그리고 논제가 갑자기 달라졌는데 세종 태종때부터 법률에 통치 기반이 돌아간다며 그건 어떻게 해명할건데
"그리고 조선의 법전은 법의 모음집이지 그걸 만들고 그때부터 시행하는게 아냐" ?????? 혹시.... 안읽어보고 대충 말하는거 아니죠...? 세종이 이제부터 이 법률 따르자고 법전을 반포, 실행했다가 반발로 사장되었는데 그러면 세종은 사실 법전 반포, 실행하지 않았고, 조선왕조실록이 구라를 까고 있는거다? 와....??
"조선의 왕권이란게 처음에는 신성 불가침 영역이었을거라는 이야기인데 조선은 처음부터 사대부들의 추대로 만들어진 나라야" 이건 무슨소리임? 나 - "태종 이방원은 집권 후에 조선의 왕권을 전제 권력으로 만들었다." 너 - "무슨소리야 태조 이성계때는 전제권력 없었어" ??? 이성계때 이야기하는게 아니잖아;;;
그리고 세조가 반포하고 실행한 경국대전도 사실 안했는데 조선왕조실록이 구라까고있는거다? 이건 참 대단한 이론아님? 학계 내봐도될듯
이게 괜히 수양대군시절로 가는게 아니었군 아무리 헬창민국으로 부국강병할래도 이때까지 거슬러올라가지않으면 답이없던거였어
세조 강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