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흡의 비밀
―自序
방금 전, 초침이 손목을 긋듯 자정을 스쳐 갔을 때
지구상의 몇 명이 숨을 내쉬고, 또 들이쉬었는지
멈췄는지
호흡들의 부력으로 지구는 간신히 제자리에 떠 있다
차가운 물을 끓이다가 보면 되살아나 커지는 물의 호
흡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나는 되살아나려는 물에 죽은 물고기를 빠뜨린다
무와 두부를 잘라 넣고 맑은 탕을 끓인다
딸은 늘 죽은 듯 자는 능력을 타고났다
자기의 잠과
잠이 두부처럼 둥둥 떠 있는
조용히 끓고 있는 열 감기의 호흡 주위로, 혹시 꺼져버
릴라
나를 불러들이고 붙잡아두는 능력이 있다
호흡은 각자 잘 숨겨온 비밀 같은 것일지도
몸 안이 자욱해서 할 수 없이
조금씩 흘렸다가 얼른 되삼켜 누구의 주위도 끌지 않
으려 조심하는 최소한의 불가피한 행위
내 비밀은, 내가 살아서 여기 있다는 사실
호흡하고 있다는 사실처럼
그것을 자주 잊는다
나의 생존이, 내가 잊은 나만의 비밀이었다는 사실을
살아 있다는 걸 모른 채 살아가야 사는 데까지 살 수
있을지도
백수의 내 할머니가 말했더라도
깜박깜박 잊히는, 내가 살아 있다는
나만 모르는 것 같은 비밀을 좇으려
내 숨의 온도와 소리와 물결에 구멍 난 두 귀를 띄워
보지만
잘 모르겠다
인간은 왜 호흡을 하게 진화했는지
자신도 줄곧 잊고 사는, 자신 말고는 알려는 이도 관심
도 없는
알량한 비밀 때문에?
누군가, ‘당신이 그곳에 살아 있다’는 그 비밀을 지켜
주려 그렇게 설계했는지도
나도 알아, 하며 불현듯 터지는 옆 사람의 울음
밀물과 썰물 같은 호흡 위에 띄워진 구멍 난 목선 같은
울음
호흡이 없으면, 물밑으로 가라앉지도 못할 울음
우리는 옆 사람이 흘린 울음의 찌꺼기
녹슬고 나중에 먼지나 일으킬 침전물
세상 나무들로 쓱쓱 쓸어, 나무들 밖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도시로 우리를 쓸어 모아놓는다
까만 밤으로 덮어놓고
신은, 쓰레받기를 사러 갔다
그래 어서 우리를 싹 쓸어 담아 가시옵고
두 손으로 모으고 안테나처럼 위로 뽑아 올려도 여태 연
락 두절이다
세상은 비극으로, 가득하다
그냥 잊고 사는, 또 하나의 전형적인 비밀이다
살아 있다는 걸 잊는 편을 택한다면
그곳이 비극으로 가득하다는 비밀도, 모른 채 살아야
살 수 있어
전생 누구의 당부였더라, 멍투성이 여섯 살 아이는 골
똘히 생각한다
울음은, 울음 실은 더운 호흡은
혼자 창틀에 걸터앉아 하염없이 창문을, 만지지도 않
고 하얗게 열었다가 닫았다가 한다
그것이 아이의 호흡에 유일하게 분장된 일과다
여섯 살 아이의 울음은 늘 혼자 그러고 있다
창문 밖 누구도 그 호흡의 비밀을 아는 사람이 없다
어제는, 내가 하루 종일 가야 하는 곳에 있는
교회 주차장에서, 태어난 지 하루 된 아기가 호흡을 그
만두었다
자신이 살아 있다는 비밀을 혼자서 하루 만에 알아차
린 아기가
세상 누구보다 신속히 천국으로 돌아갔다
맑은 탕을 한 그릇 떠 아기가 돌아간 남쪽으로 둔다
만약 우리의 시 속에 아침이 오지 않는다면
김중일, 문학과지성 시인선 5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