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달러
사하라에서
우리가 겨우 굴속에서 나와 움막집을 파고 씨를 뿌려 거
두기 시작하던 삼천오백년 전 저렇게 정교하고 거대한 구
조물을 만들어 세웠다는 사실이 믿어지느냐고, 그때 이미
오늘의 과학문명을 능가하는 문명이 존재헀을 것이라고,
높이 21미터 무게 140톤의 오벨리스크를 가리키며 하는 가
이드의 설명은 자못 공상적이다. 어느날 지진이나 홍수가
역병 같은 대재앙이 닥쳤으리라…… 지배층은 생존에 알맞
은 다른 별로 도망가고 백성들은 모두 죽는다…… 다만 몇
몇이 동굴 속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아, 그 후손이 나무를 비
벼 불을 일으키고 풀을 뜯어 목숨을 이으면서 새로운 문명
이 시작되었으니…… 옛날의 화려했던 문명이 있었는지조
차 까맣게 모른 채……
카메라를 들고 있는 우리들한테 관광경찰이 다가온다.
친절하게 웃으면서, 모델이 되어주겠단다. 오벨리스크를
배경으로 어깨를 나란히 사진을 찍고 나니 내려놓았던 총
을 도로 어깨에 메며 엄지와 검지를 비빈다. “원 달러.” 모
델료를 달란다.
재앙은 갈수록 난폭해지고 지구는 점점 무력해진다. 미
국에서 허리케인 카트리나는 천오백명을 죽이고 인도네시
아 욕야카르타에서는 지진이 육천명을 땅에 묻었다. 태국
스리랑카 등 동남아에서는 쓰나미가 이십오만명의 생명을
빼앗더니, 마침내 미얀마에서는 싸이클론 나르기스가 덮쳐
십만명을 휩쓸어가고, 중국 쓰촨성에서는 지진이 십여만명
생명을 앗아갔다. 지구의 종말이 가까웠다고 여기저기서
탄식이 터진다. 이것이 다 우리가 하늘을 두려워 않고 자연
을 넘보면서 뿌린 오만의 씨앗이란다. 드디어 지구가 멸망
하면 다들 우주선을 타고 더 살기 좋은 별을 찾아 날아갈지
도 모르지만, 또 많은 나머지들은 어쩔 수 없이 망가진 지
구에 남아 구차하게 목숨을 부지하고, 그들의 자손들은 나
무를 비벼 불을 일으키며 풀을 뜯어 배를 채울는지.
우리가 누렸던 문명을 까맣게 모른 채.
한 오만년 뒤 무너진 시멘트 무더기 앞에서 모델이 되어
주고는 “원 달러”를 외칠 내 후손을 떠올려본다. 돌아오는
길은 이미 어둡고 하늘엔 별이 가득하다.
어쩌면 내 후손들이 찾아가 살게 될지도 모르는 저 별들
이 그래도 아름답다.
사진관집 이층
신경림, 창비시선 3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