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드 오브 에반게리온,
그럼에도 희망을 믿는 우리에게
*본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카오루를 죽인 후 완전히 멘탈이 나간 신지.
제레는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네르프를 침공하지만 아스카는 폐인이 된 상태 그대로다.
피로 물들어버린 네르프와 이미 시작되어버린 인류보완계획.
신지는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될까.
이번에는 본편 칼럼에서 다루었던 주제의식을 더 깊게 파고들기 보단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어떻게 표현하였는가를 중점적으로 다뤄보겠습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살아온 환경에 따라 경험이 달라서 시선과 사상이 모두 같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이는 서로를 상처 입히는 가시가 되기도 합니다.
제레는 원죄라는 명분하에 이를 해결하는 방안을 제시한 것입니다. 하지만 작품 전체가 수많은 메타포와 화려한 연출로 가득 차 있어서 이런 합일이 어떤 뉘앙스로 표현되는 건지 쉽게 알기 힘들죠.
그렇기 때문에 합일을 더 직접적으로 또 lcl처럼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표현이 아닌 현실에도 존재하는 합일의 때를 잔뜩 집어넣어 이를 전달합니다.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 전체에서 계속 직간접적으로 나오는 성관계와 관련된 표현들이죠.
하나하나 소개하면 끝이 없으니 묘사들을 종합해서 설명을 해보자면 일단 남녀 간의 관계는 다른 작품들에서도 ‘하나가 된다.’ 라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많이 사용됩니다.
물론 강제로 행하는 관계를 묘사한다던가 해서 다른 표현을 할 수도 있지만 이 작품에서는 강제로 행하는 관계는 직접 표현되지 않으니 원래의 형태로만 해석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이 작품의 묘사들로 한정하면 관계는 사람과 사람이 마음을 하나로 합치는 행위이기도 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죠.
아예 정사씬이 직접 묘사되는 카지와 미사토는 당시 사랑하는 사이, 연인이었고 그렇기에 자연스러운 관계를 맺게 됩니다.
하지만 애매모호한 아스카와 신지의 사이에선 아스카가 키스를 제안해도 신지가 마음을 쉽게 정하지 못하고 서로가 서로를 상처 줄 뿐 합일을 이루지 못합니다.
결국 미사토, 레이, 아스카 모두를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부정마저 심화되어 타인을 상처 입히는 것 또한 극도로 거부하는 신지는 결국 인류보완계획을 받아들여버리는 지경에 이르죠.
그에 따라 인류보완계획은 최종국면에 들어서고 마지막 단계에서 신지는 릴리스. 레이를 마주합니다.
자세가 묘한데 이건 누가 봐도 관계를 직접적으로 묘사하고 있다고 봐야겠죠. 하지만 특이한 점은 서로가 경계 없이 하나가 되어있는 모습이라는 겁니다.
잠깐 인류의 합일을 관계로 묘사한다는 개념으로 돌아가서 관계라는 것을 조금 더 깊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관계라는 건 어떤 것일까요? 서로가 하나 되는 것이기도 하지만 앞서 언급 했듯 사랑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행하는데 있어 서로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우선 되어야 하는 행위입니다.
관계라는 표현으로 끊임없이 합일을 묘사하기에 ‘그래서 제레가 원하던 인류보완계획은 어떤 뉘앙스로 다뤄지는가?’ 에 대한 확신이 안 설 수도 있지만 후반부 신지가 인류보완계획을 받아들이기 직전 나온 레이와의 씬에서 이를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이 관계를 한다고 해서 그것이 서로의 경계를 무너트리는 것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서로를 사랑하고 존중하기에 행할 수 있는 일인 거죠.
신지의 심상 세계 속에서 받아들이는 것을 종용하는 미사토와 거부하는 아스카 사이에서 고민하던 신지는 레이와의 대화를 통해 인류보완계획으로 서로의 존중이나 이해 없이 하나가 되는 것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레이는 모두가 하나 된 세상이 신지가 진정으로 원하던 세상이라 말하지만 미사토의 펜던트를 보며 신지는 이를 부정합니다.
미사토는 신지의 보호자였지만 본편에서 보호자다운 면모를 보인 장면은 거의 없습니다. 오히려 생활적인 면에서 신지가 미사토를 돕는 비중이 많을 지경이었죠.
미사토 또한 아버지를 비롯한 인간관계에서 상처를 입은 인물이고 이러한 결핍 속에서 어엿한 어른이 되지 못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신지가 위기에 처했을 때 온 몸을 던져 그를 구했고 마지막 이별의 순간에는 진심을 숨김없이 전달하며 신지가 도망치지 않고 현실에서 살아가야 할 이유를 만들어줍니다.
AT필드는 앞으로도 상대를 상처 입힐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신지는 희망을 가집니다. 사람이 서로를 이해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모든 일이 끝나고 심상세계에서도 신지에게 역정을 내던 아스카와 단 둘이 세상에 나타나게 됩니다.
신지는 알 수 없는 감정에 아스카의 목을 조르지만 아스카는 저항하지 않고 그저 신지의 뺨을 쓰다듬을 뿐이죠.
이는 뜬금없이 보일 수도 있지만 작품 내내 방황하던 신지의 마음을 아스카가 ‘이해하고 보듬었다.’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신지가 품었던 사람이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을 아스카가 보여준 것이죠.
서로를 상처 입히는 AT필드를 가진 우리는 평생 서로를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서로를 가로 막는 마음의 벽을 인정하고 상대를 존중한다면 전하지 못할 것 같았던 진심을 전한 미사토와 자신에 대한 위협에도 상대를 보듬어준 아스카처럼 언젠가 사람이 서로를 이해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아직은 그저 희망에 불과하지만 그를 품고 있기에 세상을 향해 당당히 나아갈 이 세상 모든 신지에게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이 말합니다.
+에반게리온 시리즈를 해석한 수많은 글과 영상들을 보았지만 제가 느끼는 에반게리온은 애초부터 다양한 방면의 해석을 열어두고 제작한 작품인 거 같습니다. 기독교적인 해석부터 시리즈 전체가 신지의 창작물이라는 메타픽션적인 해석까지 다양한 방면에서 해석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알면 알수록 '정답은 없다'가 이 작품에 가장 잘 어울리는 말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기독교적인 해석도 전부 메타픽션이라는 해석도 각자의 근거와 논리가 있고 어떤 것이 맞았다고 반대가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해석을 하신 분들의 식견은 진심으로 존경스럽습니다만 그렇다고 저처럼 식견이 얇디 얇은 일반인은 해석이 불가 해 즐길 수 없는 작품인가? 는 또 다른 문제인 거 같습니다. 그렇기에 다른 이들의 해석보단 제가 직접 보고 느낀 것들, 개인적으로 추측한 것들을 토대로 본편, 다카포, 엔오에 칼럼을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분명히 다른 해석이 더 맞는 해석이라거나 본문에서 애초부터 잘못 해석된 것 같다고 느끼실 수도 있으시겠지만 에반게리온의 근본은 모든 요소가 하나의 정답을 가르키는 것이 아닌 중심이 되는 주제의식 아래 다양한 곳을 가르키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아, 이런 식으로도 볼 수 있구나' 라고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당연하게도 에반게리온은 여러분이 직접 보고 느끼신 그것이 당신의 정답입니다.
+에반게리온 시리즈를 해석한 수많은 글과 영상들을 보았지만 제가 느끼는 에반게리온은 애초부터 다양한 방면의 해석을 열어두고 제작한 작품인 거 같습니다. 기독교적인 해석부터 시리즈 전체가 신지의 창작물이라는 메타픽션적인 해석까지 다양한 방면에서 해석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알면 알수록 '정답은 없다'가 이 작품에 가장 잘 어울리는 말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기독교적인 해석도 전부 메타픽션이라는 해석도 각자의 근거와 논리가 있고 어떤 것이 맞았다고 반대가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해석을 하신 분들의 식견은 진심으로 존경스럽습니다만 그렇다고 저처럼 식견이 얇디 얇은 일반인은 해석이 불가 해 즐길 수 없는 작품인가? 는 또 다른 문제인 거 같습니다. 그렇기에 다른 이들의 해석보단 제가 직접 보고 느낀 것들, 개인적으로 추측한 것들을 토대로 본편, 다카포, 엔오에 칼럼을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분명히 다른 해석이 더 맞는 해석이라거나 본문에서 애초부터 잘못 해석된 것 같다고 느끼실 수도 있으시겠지만 에반게리온의 근본은 모든 요소가 하나의 정답을 가르키는 것이 아닌 중심이 되는 주제의식 아래 다양한 곳을 가르키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아, 이런 식으로도 볼 수 있구나' 라고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당연하게도 에반게리온은 여러분이 직접 보고 느끼신 그것이 당신의 정답입니다.
저도 마지막장면에서 제나름의 대답을 적자면 아스카는 언제나 수동적이었던 신지를 답답해 했고 처음으로 능동적인 행동이 자신을 향한 살의라는것에 미안함과 약간의 동정 그리고 그조차 마무리짓지 못한데에 다시금 답답해서 던진 '기분 나빠' 이것이 결국 아스카의 목을 조르면서 시작된 '달콤한 죽음이여 오라' 가 결국 신지의 포기로 멈춘것의 시니컬한 은유라고 생각되어서 정말 인상적인 끝맺음이었습니다
다시금 합쳐지려는 레이의 경계를 부정하고, 손길을 느끼면서 그 아픔을 받아들이고자 하는것이 아스카의 손결에서 살의를 멈춘것과도 겹쳐보였어요 시청각보다도 촉각에대한 연출이 너무나 가슴아렸던 영화한편이었습니다
에바 자체가 기독교를 소재로 해석한 애니이고, 마지막에 자신을 죽이려는 신지를 자신의 상처받은 팔로 보듬어주는 아스카는 결국 "원수를 사랑하라"는 자애를 보여주는 거 아닌가요? 그리고 "기분나빠"는 혐오인데, 취향에 맞지 않더라도(혐오의 대상이라도) 자애는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구요. 이건 상징적 해석이고, 작중에서 아스카가 그렇게 행동한 것은 신지에 대한 애정(비록 자기 목을 조르고 있는 중이라도)과 츤데레적 기질 때문이겠죠.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