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엔딩 스포일러 및 주관적 감상입니다.
목차
1. 서문 - 트리거는 용두사미 혹은 용두월미
2. 감상 - 달을 쫓는 자들의 이야기
3. 후기 - 사이버 사이코는 달과 탄알 중 무엇을 꿈꿨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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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문 - 트리거는 용두사미 혹은 용두월미
트리거 제작사에 애증이 있던 팬으로서 정말 기대와 우려가 많았던 작품이다.
특히나 '용두사미'라는 말이 아닌 '용두월미'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우주에 대한 애정이 가득한 제작사이기에 불안감에 떨며 작품을 봐왔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이번 엣지러너를 통해 트리거의 우주사랑은 '트리거'의 것이 아닌 '등장인물'들의 것이 되었다 생각한다.
어쩌면 이 작품을 본 후부터 관객들도 달을 쫓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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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감상 - 달을 쫓는 자들의 이야기
단숨에 1화부터 10화 까지 본 나의 감상은 애매모호함이었다. 데이비드의 비극에 가슴이 갑갑했으며, 주변인물들의 덧없는 스러짐에 슬픔가득한 짜증이 눈가를 찌푸리게 만든다.
나이트시티는 지배계층들의 놀이판이며 이를 벗어나는건 사이버 사이코가 되는 법 이외엔 보이지 않는다.
만약 사이버 사이코가 될 위험을 감추치 않는다면 광기를 놀이삼는 기업의 사이코들을 두려워 해야하는 세상이다.
그 속에서 엣지러너는 자신의 이정표를 밝힐 작은 빛 한줄기를 쫓고있는 자들의 모습을 그린다.
가장 먼저 데이비드의 어머니는 데이비드의 성공만을 바랬다. 자신의 자식이 아라사카의 꼭대기에 올라가 빛을내길 간절히 기도했다.
메인은 자신과 주위를 보호할 달빛이 되길 바랬으나 너무나 뜨겁게 달궈진 나머지 불타오르는 별똥별이 되어버렸다. 마침내 모든것을 파괴할 운석이 된 순간 메인을 붙잡은건 자신의 과오로 쓰러트리고만 사랑에 대한 애도였다.
데이비드는 자신의 달을 빛나게 할 태양이되고자 했다. 그러나 빛을 낼 뿐 식힐줄을 몰랐다. 혹은 자신이 빛을 꺼트리는 순간 달과 별들이 모두 사라질것이라는 두려움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루시는 자신의 어두운 감옥을 비춰 자유를 찾아줄 달을 바랬으나, 달에 매료된 별이 된채 달의 뒤에서 헌신하는 사람이되었다. 그러나 달이 사라질까 두려운 나머지 서로가 서로를 비추자는 말을 하지 못한다.
레베카는 달을 동경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어린아이였다. 동경을 정복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닌 바라보게 만드리라는 친절과 열정을 가진 사람.
(스트롱 암즈와 아라사카 광고판의 대비 _ 데이비드가 어머니의 꿈대신 반대방향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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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후기 - 사이버 사이코는 달과 탄알 중 무엇을 꿈꿨는가?
나는 이 이야기를 '비극'이라 칭할수 있는가 고민했다.
이 이야기는 관객의 입장에서 '비극'과 같다. 데이비드는 결국 죽었으며, 루시는 자신의 진정한 달을 결국 잃게되며, 레베카는 아담에게 죽음을 맞이하니까.
시점을 데이비드로 돌리면 비극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데이비드의 결말은 사이버 사이코가 아닌 자신이 지키고자 하는것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투쟁이었기 때문이다. 루시를 만나고, 메인을 만났으며 레베카를 만났다. 이 모두 가족과 같은 이들이었고 구원과 같았기에.
그러나 이 이야기의 시점을 '나이트 시티'로 바꾼다면 이 이야기는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내 생각은 일상극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생각한다.
엣지러너는 데이비드를 나이트 시티를 비추는 하나의 조명이자 카메라로 사용했다. 마침내 아라사카의 꼭대기에 올라갔지만 결국 기업에 의해 죽음을 맞이한다. 마지막까지 나이트시티에 거스르지 못한 하나의 돌연변이였고, 그 최후마저 죽음을 묘사했을뿐 기업의 악랄함을 생각하면 완벽한 죽음을 맞이했다고 확신하지 못한다. 어쩌면 맨 처음 어머니의 유골함이 인게임에서 간접적으로 묘사되듯(장기밀매등을 하는 병원) 수미상관의 일종일지도 모른다.
나이트 시티는 여전히 밤을 빛내고 있고, 수많은 나방들이 네온사인에 불타오름을 반복하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이트시티의 사람들은 달을 쫓는다.
사람들을 비추는 달이 되고자 혹은 나이트 시티의 새로운 달이 되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