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이 무너졌습니다
실상 조차 규명하지 않은 카르텔이라는 이름 아래
대부분의 연구실이 난도질을 당했습니다
우리나라 먹여 살리겠다고, 그래도 우리나라에서 연구하겠다고 뛰어드는 지식인들에게, 박정희부터 문재인까지 그 어떠한 대통령도 정파문제에 가리지 않고 지원을 해줬습니다. 이들은 이러한 이공계를 리스펙을 해주었습니다.
저는 부족한 학생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이공계는 대우하나 못받는 집단인걸 알고있었지만, 그럼에도 제가 국가로부터 받은 혜택과 지원을 제 부족한 실력으로라도 환원하고자 이공계에 뛰어들었습니다.
이 학교는 그러한 학생들로 이루어진 집단입니다. 이공계가 의사, 변호사, 정치인, 법조인 이런 다른 잘 나가는 지식은 계층에 비해 찬밥신세를 받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싶고, 그 꿈을 우리나라 안에서 키워서 가치를 환원하는 바보 같은 학생들로 이루어진 집단입니다.
비단 우리학교만 그렇지도 않습니다. 이공계에 있는 학생 대부분은 그렇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2022년 새 정부로부터 난도질을 당했습니다.
그 순간부터 저는 도저히 정부를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그 날부터 오직 2024년 총선때 새 정부를 심판하는 것만을 생각했습니다.
제 친구들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모두들 정치얘기를 쉽사리 꺼내지는 않았지만서도, 자교 학생이 굴러들어온 대통령에 의해 졸업식장에서 끌려나갈때, 연구실에서 월급을 받지못한 대학원생들이 학교를 떠날 때, 이상해져버린 학교의 원인이 누군지 너무나도 잘 알고있었기에,
학생들은 교수들과외 대화의 장에도, 국회에도 나갔고, 천막도 첬으며, 서명도 하여 끊임없이 우리를 난도질 한 사람에 대한 소리없는 분노를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2년을 기다린 총선일이 되었습니다.
학생들이 투표한 정당은 다양했습니다. 민주당, 개혁신당, 조국혁신당 등...
저는 2년을 기다린 그 날
새로운미래에게 한 표를 주었습니다.
정말 많이 고민했습니다. 새로운미래는 도저히 정상적으로 굴러가는 정당이 아니란 것을 지켜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고민, 왜 우리 정치에서 윤석열이라는 자가 탄생했을까로 거슬러올라가니, 대화와 이해 포용이 없는 이 현재의 한국사회가 근본적인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지역구는 이해관계를 따져 민주당을 찍었지만, 비례만큼은 제가 2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고민한 가치와 생각을 담아 찍었습니다.
그렇기에, 민주연합 내지는 조국신당을 찍었을때, '윤석열'은 해결될 수 있을지언정 근본적인 정치 문제는 해결되지 않으리라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개혁신당과 새로운미래를 두고 고민했습니다. 그러나 두 당이 합당 및 분당과정에서 있었던 일을 볼 때, 결국 선택은 새로운미래로 가게되었습니다.
하지만 가장 강력한 이유는 하나였습니다.
저는 이낙연이란 정치인을 신뢰했습니다.
2년간 고민한 한 표의 정답이 되는 가장 큰 논리였습니다.
이낙연 전 총리가 세간으로부터 비판받는 이유도 잘 알고있습니다. 어느정도 공감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일하는데, 말하는데 있어서 가장 신의가 있고 신뢰가 가는 사람은 현 정치판에서는 이낙연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고나니, 선택은 더욱 간단해져 제 표를 투표함에 부담없이 넣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새로운미래에게 투표한 것을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제가 새로운미래를 투표한건
새로운미래라는 당을 보고 뽑은 것이 아닙니다.
난장판인 한국정치에서 정제된 언어를 쓰고 신뢰를 보여주는 정치인 이낙연을 보고 뽑은 것입니다.
오히려 윤석열 심판이란 가치아래 정치적인 전략을 가장 잘 짠 것은 조국신당이었습니다. 그러니 국민 3할이 조국신당을 찍었을겁니다.
그럼에도 새로운미래를 뽑은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총선 후 새로운미래의 행보를 보면 대단히 안타까운게 많습니다. 최초로 당 가입도 한 당이었지만 저는 총선 전에 탈당했습니다.
저는 강력한 정치언어를 주로 사용하고 싶은 사람은 아닙니다. 다만, 이낙연이라는 정치인이 이대로 없어지는 일 만큼은 없길 바랍니다.
뭐 하나 없는 작은 대학생이지만, 이낙연 전 총리를 응원하며, 새로운 미래가 노선을 명확하게 하기를 기대하겠습니다.
대화와 이해, 포용과 합의, 정제된 언어와 태도, 그리고 신뢰감 이런 게 중요한 가치라는 걸 모두들 알기는 해도, 모두한테 이 가치들이 절실하지는 않은 거 같아. 정치권, 유권자, 그리고 심지어 새미래 내부 일각들한테조차도. 더 급한 목적이 있으니 걸음을 더디게 만드는 가치들은 좀 나중으로 치워놔도 된다고 생각하거나, 방향보다도 속도에 조바심을 내거나, 더 자극적인 언어에 끌리거나, 혹은 분노와 증오에 몸을 맡겨버리거나... 하지만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우리가 이야기하는 가치들이 모두에게 상식처럼 받아들여지고 정치인을 판단하는 눈높이의 기준이 될거라고 나는 아직도 믿고있어. 민주주의의 원칙은 대화의 타협이고, 원칙보다 강한 것은 없으며, 태도가 본질이라는 것 모두 자명하기에, 결국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함. 이낙연 같은 정치인이 존재한다는 것이 그 방증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