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얼어붙은 업계 새활로 모색
폐기 유니폼 디자이너 손길 거쳐 굿즈로
보잉 747-400 동체 일부 골프 볼마커로
회사 로고·특색 살려 새 활용 제품 탄생
환경문제 해결 동시에 부가가치 창출
국제선 운항 급감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항공업계에 ‘업사이클링(새활용)’이라는 새바람이 불고 있다. 얼어붙은 경영 환경 속에서 항공사들은 예비 승객들에게 회사를 알리면서도 최근 화두인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실천할 수 있는 방안을 내놓고 있다. 수천명에서 수만명에 이르는 직원들이 매년 버리는 의류나 캐리어 등을 활용한 제품부터 퇴역하는 항공기의 동체를 활용한 굿즈(기념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상품을 내놓고 있다.
◆업사이클링 시초는 퇴역 항공기 기념품… 하루 만에 완판
18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대한항공은 2019년 운항을 중단한 보잉의 여객기 B777(HL7530) 퇴역을 기념해 동체 일부를 활용한 네임태그(인식표) 4000개를 한정판으로 만들었다. 항공기 동체의 겉면을 잘라 고유 숫자를 각인했다. 대한항공 측은 “로고 부분을 잘라 네임태그별로 표면 색상이 다르고 자재 본연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흠집과 얼룩을 최대한 보존했다”며 “많은 분들을 태우고 하늘을 날던 항공기가 행복한 추억의 조각으로 재탄생했다”고 전했다. 1997년 3월 도입된 이 항공기는 23년간 1만6903회, 10만682시간을 비행했다. 그러다 2019년 12월18일 홍콩-인천 노선을 마지막으로 운항을 멈췄다. 코로나19로 업계가 불황을 겪으면서 매각처를 찾지 못해 결국 분해됐다.
과거에는 퇴역 항공기를 단순히 원료에 따라 재활용하는 데 그쳤지만, 최근 들어 재활용을 넘어 새로운 가치를 부여해 활용하는 업사이클링이 화두가 되고 있다. 대한항공의 첫 업사이클링 제품은 하루 만에 완판됐다. 당시 접속이 몰리면서 서버가 다운되기도 했다. 이에 지난 9월에는 ‘하늘의 여왕’으로 불린 보잉 747-400 항공기 자재를 활용한 네임태그와 골프 볼마커를 출시했다. 이 항공기는 1997년 도입돼 23년간 전 세계를 누비다 2020년 2월 발리-인천 비행을 끝으로 은퇴했다. 네임태그와 볼마커로 재탄생한 항공기의 소재는 단단한 두랄루민 소재 합금으로 제작됐다. 대한항공은 이를 항공 마일리지 상품으로 판매했다. 제품 제작은 부산에 있는 대한항공 테크센터가 맡았다. 항공기 동체를 분해하고 표면을 잘라낸 뒤 전문 가공업체에서 마무리 작업을 담당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ESG 경영의 일환으로 스카이패스 회원의 마일리지 사용과 연계해 환경에 기여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마련하는 한편, 고객들이 마일리지를 보다 편리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마일리지 사용처를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승무원 유니폼부터 캐리어까지 다양한 자원 활용
‘하늘 위 민간외교관’으로 불리는 승무원의 유니폼도 친환경 제품으로 재탄생하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에서 매년 폐기되는 각 직종 유니폼은 3만여벌에 달한다. 이를 새활용하기 위해 지난 1월 폐기 유니폼을 재활용한 태블릿 파우치를 선보였다. 아시아나항공 승무원의 유니폼과 같은 색상에 회사의 상징인 색동이 들어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를 위해 서울새활용플라자에서 시제품을 제작했다. 수명을 다한 유니폼이 디자이너의 손길을 거쳐 노트북 파우치와 태블릿PC 파우치, 여행 키트, 지갑 등으로 재탄생했다. 회사는 우선 임직원과 고객을 위한 이벤트용품으로 먼저 제공한 뒤 향후 판매를 고려하고 있다. 제품 제작에 참여한 한 관계자는 “직원의 열정이 담긴 유니폼이 단순히 폐기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쓰임을 찾는 것에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유니폼 등을 활용한 새활용 제품 제작 과정은 대개 다음과 같은 절차로 이뤄진다. 우선 직원들이 기부한 유니폼을 세탁한다. 이후 재단 작업의 효율성을 위해 해체하고 사용할 수 없는 부속물을 떼어낸다. 그 뒤엔 오염과 파손 부분을 검수하고 사용 가능한 원단을 선별한다. 최종 선별된 원단을 활용해 제품을 제작한다. 이 때 각 회사의 로고나 특색을 살려 새 제품이 탄생하게 된다.
제주항공은 폐기처분된 유니폼을 새활용해 만든 손가방 ‘리프레시 백’ 시리즈를 자사 쇼핑몰 ‘제이숍’에서 판매하고 있다. 객실 승무원 재킷의 카라를 활용한 크루 재킷 백, 운항승무원의 유니폼을 활용한 여행자용 텀블러 백 등을 각각 100개 한정으로 내놨다. 제품 제작에는 제주도의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소셜벤처기업 ‘레미디’가 참여했다. 제주항공은 새활용 제품을 알리기 위해 지난 1월 승무원이 라이브방송에 출연해 리프레시 백을 소개하는 이벤트도 진행했다. 제주항공 관계자는 “앞으로 구명조끼, 정비우의 등 폐기 자원을 활용한 다양한 새활용 상품 개발을 이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천 소재의 유니폼 외에도 캐리어 가방을 활용한 새활용 제품도 있다. 에어부산은 폐기되는 승무원 캐리어 가방을 재활용한 열쇠고리를 내놨다. 부산지역 새활용 사회적 기업 에코인블랭크과 함께 버려지는 승무원 캐리어 가방과 함께 지역 특색을 살린 서핑복 등을 활용해 열쇠고리를 제작했다. 이 열쇠고리는 멸종위기 동물인 고래의 지느러미 모양을 본땄다. 앞면은 캐리어 가방 원단을 활용했고 뒷면의 서핑복 원단을 사용해 의미를 더했다.
캐리어 가방은 승무원의 비행 필수 지급품으로 평균 2∼3년에 한 번씩 교체하는데 재사용이 어려워 전량 폐기 처분된다. 서핑복도 대부분 합성고무로 만들어져 원단이 찢기거나 갈라지면 쉽게 버려진다. 에어부산은 이 열쇠고리를 기내에서 판매하고 수익금은 부산의 바다 정화 활동 기금으로 사용할 예정이다. 에어부산 관계자는 “승무원 유니폼 등 각종 소재를 새활용한 제품 제작도 검토하고 있다”며 “버려지는 자원의 지속적 선순환으로 환경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부가가치도 창출할 수 있는 좋은 사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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