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S물에서 성전환 된 주인공이 자주 봉착하게 되는 난관이 있다. 바로 피할 수 없는 생리적 현상과 몸을 씻는 행위다. 그래서 TS를 소재로 한 서브컬처에서 빠지지 않고 그려지고 있다. 달라진 육체로 인한 생소함과 이성의 몸에 대한 호기심과 쑥스러움. 그리고 죄책감. 장르적 특성을 가장 잘 표현되는 장면이기도 하다.
그래서 리얼 TS물을 체험하고 있는 나 역시 그런 문제에 봉착할 거라고 기대하고 있었다. 아니, 걱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닥치고 보니 기대와 달라서 뭐라고 해야 할까.
「놀랄 정도로 아무런 감흥이 없어.」
나는 실망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투덜거렸다.
「그거 참 유감이에요.」
같은 방에 있던 사나에도 나와 비슷한 기분인양 말했다. 나는 그런 사나에를 왜? 라고 묻는 눈으로 쳐다봤다. 그러자, 사나에가 당연하다는 듯 설명한다.
「모처럼 여자가 되었는데, 너무 태연하잖아요. 좀 더 허둥거리면서 곤란해 해야 재밌는데.」
아무래도 사나에는 TS물 주인공의 정석 같은 반응을 기대했었나 보다.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미안하다. 본인은 보통 큰 일이 아닌데, 남 일이라고 강 건너 불구경이구나.
내 눈총에도 불구하고 사나에는 염치 없는 소리를 계속 했다.
「여자 몸으로 소변을 참으면서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이 보고 싶었는데...」
「넌 어째 볼수록 남자 오타쿠같냐.」
「남자 오타쿠라뇨. 실례에요! 여자 오타쿠도 미소녀가 소변을 참느라 얼굴을 붉히는 걸 좋아한다고요!」
「너만 그렇겠지!」
얘랑 대화하고 있으면 나까지 이상해질 것만 같다. 사나에가 이렇게 까지 이상한 애였나? 상당한 오타쿠란 걸 알고 있었지만, 오늘은 그게 한층 더 심한 것 같다. 발언도 그렇지만, 나를 보는 눈이 수상했다. 시종일관 끈적거리는 시선을 받고 있으려니 어쩐지 부끄러워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 된다.
사나에는 내가 누울 이부자리를 깔면서 말했다.
「오빠, 감흥이 없다고 했죠? 이건 제 생각이긴 한데.」
무언가 짚이는 데가 있다는 건가?
나는 사나에의 얘기에 귀를 기울였다.
「마음도 여자가 되어가서 그런 게 아닐까요? 남자였다고 해도 몸은 여자잖아요?」
「그래. 여자인 거랑 지금의 내 몸에 무덤덤한 게 무슨 상관이라는 거야?」
방광의 한계로 어쩔 수 없이 여자인 상태로 화장실을 이용했는데, 앉아서 눠야 했다는 것 외엔 평소와 별 다를 바 없이 느낀 것과 자기 전 목욕을 하면서 본 여자인 자신의 알몸에도 무덤덤했던 것에 대한 의문. 그에 사나에가 내놓은 해답은─
*
「다들 한 번쯤은 생각하지. 여자가 되면 여탕에 마음껏 들락거리면서 즐길 수 있을 거라고. 여자 화장실에도 마음껏 들어가고. 그런데, 실제로도 그럴까?」
예고도 없이 찾아온 유카리에게 루이드는 퉁명스런 어조로 대답했다. 자신에게 어떤 요괴를 성전환 시키도록 명령했던 불청객. 성질 나쁜 여자이긴 하나 환상향에 강한 영향력을 지닌 유력자인 그녀가 던진 물음은,
'여자가 되면 좋지 않아?'
그에 루이드의 대답은 NO.
어디서도 찾아보기 힘든 변태인 그라면 오히려 여자가 되는 걸 반길 줄 알았던 유카리에겐 매우 의외인 답변이었다.
루키드는 그 이유를 담담히 설명했다.
「소싯적에는 나도 그런 줄 알았지. 전신거울 앞에서 여자가 된 자신의 몸을 보면서 기절할 정도로 자위나 해댈 줄 알았다고. 그러나 막상 여자가 되서 그럴러고 하니까, 자괴감 밖에 안 들더라고. 왜인줄 알아? 몸이 바뀌면서 뇌까지 여자로 바뀌기 때문이야.」
「아.. 그렇구나. 이해했어.」
유카리는 납득했다는 얼굴로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리고는 루키드의 설명을 부연했다.
「여자가 좋은 이성애자는 남자가 좋은 이성애자가 된다는 거지? 영혼은 육체의 영향을 받으니 당연한 결과인 거네.」
「어. 그래서 현실 TS는 보는 쪽에선 재밌을지 몰라도 장본인은 색다른 체험 정도로 그쳐. 성별이 바뀐다고 해도 본질은 그대로니까.」
「그렇다면 지금쯤 소우지군은 남자에게 반할지도 모르는 상태인 거군.」
「그게 제일 ↗같아! 원래대로 돌아왔을 때, 죽고 싶어진다니까! 내가 남자 알몸이나 보면서 하악거렸다니~~ 하면서!!」
싫은 기억이 떠올랐는지, 루이드는 잔뜩 찌푸린 얼굴로 소리를 왁 질렀다. 그런 루키드의 모습을 보며 유카리는 조금 쓴웃음을 짓는다.
이거 내가 좀 심한 짓 한 걸지도.
하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더는 되 물릴 순 없었다. 소우지와 관련된 인물들의 기억까지 개찬 시키면서 까지 키운 판이다. 어중간하게 엎어졌을 때의 후폭풍은 생각하기도 싫었다.
「그걸 또 겪어야 하다니. 이래서 하기 싫었는데!」
울분 섞인 루이드의 절규.
해주 되었을 때 시전자에게 고대로 돌아온다는 저주의 특성상, 루이드 자신의 성전환은 결정된 사항이었다.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없진 않지만, 언젠가는 자신에게 돌아올 저주의 부채만 늘릴 뿐. 이렇게 된 이상 루이드는 각오를 다지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런 얄팍한 각오는 그때의 끔찍했던 기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산산조각 나버린다.
「아- 진짜 싫어! 싫어 싫어 싫어! 그렇게 되었으니, 유카리 씨는 나한테 잘해줘야 합니다. 예? 알았지요?」
「알았으니까. 땡깡 좀 그만 부려.」
애처럼 투덜대는 루이드의 한심한 작태에 유카리는 짜증이 확 일었다.
*
「육체의 영향이라는 거지?」
「네!」
정신이 육체를 따라가면서 생긴 변화. 나는 사나에가 내놓은 해답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일종의 조율이라고 봐도 무방하겠지. 육체와 정신의 괴리감을 줄이기 위해 정신이 육체에 맞춰진 것이라는 이론. 그래서 내가 여자가 된 자신의 알몸에 반응하지 않았다는 거다.
어쩐지 무지 손해 본 기분이었다.
이래서야 전혀 TS같지 않잖아!
실망스런 사실에 기분이 착 가라 앉는다. 그런 날 보며 사나에가 위로랍시고 살며시 입가를 올리며 미소를 짓는다.
「너무 그렇게 실망하지 마세요. 그래도 여자가 된 덕에 이렇게 같이 한 방에서 잘 수 있잖아요.」
「뭐.. 그건 그렇지.」
그 말이 맞다. 여자가 된 덕에 나는 지금 이렇게 사나에랑 같이 잘 수 있게 되었다. 엉? 같이 잔다고? 내가!?
「잠만, 뭐라고 했어? 나랑 한방에서 잔다고?」
「네. 뭐가 이상하기라도?」
「이상하지! 왜 너까지 손님방에서 자려는 거야?」
태클의 여지가 다분한데도 사나에는 당연한 걸 물어본다는 반응이었다. 아무리 지금 내가 여자라곤 해도 원래는 남자였던 몸이다. 그런데 한방에서 잔다고? 무슨 위험한 소리를 하는 거야?! 스와코님은 그렇다 쳐도 카나코님이 허락했을 리 없을 텐데?
놀라서 묻는 내게 사나에는 흐흥~ 하고 이상야릇한 웃음을 흘리면서 말한다.
「모처럼이니까, 여자가 된 오빠랑 걸즈 토크를 하고 싶어서요.」
「걸즈 토크라 해도 여자가 된지 하루도 안 된 내가 무슨? 나눌 만한 화제 따위 없다고!」
「에이~. 걸즈 토크라고 꼭 연애담 같은 것만 하는 게 아니라고요. 여자 끼리 얘기를 나누면 그게 걸즈 토크에요.」
「직역하면 그렇겠지만, 보통은 다른 의미로 통하잖아. 여자애들끼리만 통하는 공통의 관심사라던가.」
천천히 기어서 다가오는 사나에에게 모종의 공포를 느끼면서 나는 전력으로 거부했다. 내가 싫다고 하는데도 왜 이렇게 들이대는 거야? 속 알맹이가 나라는 텐구라서 걸즈 토크라는 게 제대로 성립되지 않을 걸 알면서도 끈질기게 권한다.
그런 사나에에게 무슨 다른 꿍꿍이속이 있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을 때였다. 어느새 내 팔에 밀착한 사나에가 요사스런 웃음을 흘리면서 내 귀에다 후- 하고 입바람을 불어 넣었다.
「왓!」
치명적인 간지럼이 귀를 통해 전신으로 퍼진다. 나는 몸을 부르르 떨면서 발작했다. 그리고 황급히 그녀로부터 멀어졌다.
「뭐하는 거야!?」
또 있을지 모를 공격에 나는 귀를 접어 단단히 방어했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지금 내가 동성이라고 해도 그렇지, 보통 귀에다 바람을 불어 넣진 않잖아. 설마, 유혹하는 건가? 사나에는 그런 쪽?
경계하는 눈초리로 바라보는 내게 사나에는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말한다.
「방금 반응 좋았어요.」
「좋긴 뭐가 좋아! 너 자꾸 까불면 카나코님에게 이를 거야!」
「으음.. 카나코님에게 혼나는 건 싫은데..」
「싫으면 하지 말라고!」
그렇게 으름장을 놓았는데도 사나에게서 전혀 반성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요사스런 미소가 한층 더 강해졌다.
「제가 말했죠? 여자의 기쁨을 알려 주겠다고.」
「너.. 설마!?」
나는 사나에의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절로 떠오른 이상야릇한 상상에 침을 꿀꺽 삼켰다. 이게 말로만 듣던 요부의 독니라는 건가?
가슴이 두근두근거린다.
네 다리로 걸어서 다가오는 사나에가 무척이나 야하게만 보인다. 내 첫경험은 백합이 되는 걸까?
바이바이 내 예쁜 동정(처녀)아.
나는 눈을 질끈 감고 여자로서의 선배인 사나에에게 모든 걸 맡기기로 했다. 귓가를 가득 메우는 심장 소리가 파열할 것처럼 격렬하다. 마침내, 사나에의 새하얀 손이 내 뺨을 간지럽혔다.
그리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
「아하하하! 농담이에요.」
갑자기 웃음을 터트린 사나에를 나는 어리둥절한 눈으로 쳐다봤다. 너무 웃어서 눈가에 고인 투명한 물기를 손으로 쓸어낸 사나에가 잠시, 숨을 고르면서 말했다.
「설마, 눈까지 감을 줄이야. 얼마나 기대한 거예요?」
「너 잘도 날 가지고 논 거구나.」
「죄송해요. 그치만 오빠는 놀리는 맛이 있는 걸요.」
부대장 같은 소리를 하는 사나에. 버릇없는 그녀의 태도에 화가 났지만, 그 이상으로 그렇고 그런 상황을 기대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쿵쾅 거리는 심장 소리가 다른 의미로 격렬하다.
「아무리 나라도 자꾸 놀리고 그러면 화내는 수가 있어.」
「이젠 안 그럴게요.」
말로는 그렇게 하지만, 정말로 반성하고 있는 진 모르겠다. 그런 것을 기대하고 간단히 속아 넘어가버린 것과 그런 날 재밌어 하는 사나에 때문에 빈정이 상한 나는 퉁명스럽게 고개를 홱 돌렸다. 누가 봐도 삐친 모양새가 된 내게 사나에는 웃음기를 지우고 얘기했다.
「그래도 오빠랑 자고 싶은 건 진심이에요.」
어?
놀란 눈으로 돌아본 사나에의 얼굴은 소녀 그 자체였다. 뺨을 살짝 붉힌 청순가련한 얼굴이 말해 주고 있었다. 이번엔 농담이 아닌 진심이라고.
저런 얼굴을 보고 나면 내치기 힘들어 진다.
나는 한숨과 함께 항복을 선언했다.
「알았어. 맘대로 해.」
어차피 같은 여자겠다. 선만 넘지 않으면 괜찮겠지.
「신-난-다!」
사나에는 내 허락이 떨어지기 무섭게 해맑은 표정으로 환호했다. 그리고는 곧장 나를 향해 다이빙..
하는 가 싶더니 내 꼬리에 얼굴을 묻고 뺨을 부비적거렸다.
「에헤헤헷.. 이 푹신한 꼬리를 안으면서 자고 싶었어요!」
「그.. 그래?」
진짜 별난 애다.
설마하니 내 꼬리를 다키마쿠라 삼아서 잘 생각을 했다니. 그러나─
「근데, 안고 잘 만큼 푹신하지 않을 텐데?」
내 꼬리는 여우와 달라서 털이 빳빳한 편에 속한다. 내 꼬리를 맘에 들어 하던 레이무도 인정하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사나에는 「괜찮아요. 이 정도면 충분히 푹신.. 해요.」하고 무리하는 게 뻔히 보이는데도 좀 체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