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벤트 호라이즌을 보고 썼습니다.
항공우주분야의 천재이며 다이달로스 계획의 청사진으로만 존재했던 핵융합 엔진을 개발하는데 성공하여 광속의 1/4로 여행할 수 있는 우주선을 개발한 박창식 박사. 그의 우주선 덕분에 인류는 몇년 만에 달식민지를 너머 화성에 새로운 땅을 개간하여 농사를 짓는데 성공하기 까지 이르른다. 광속에 근접한다는 버사드의 램제트 엔진을 연구하던 도중 박상철박사는 모든 연구를 포기하고 잠적한다. 얼마뒤 박상철 박사는 해왕성 밖의 운석지대를 탐험하는 오르페우스 프로젝트의 기술고문으로 뽑혔고 1년 뒤 자신이 개발한 엔진을 장착한 슈바르츠실츠 호를 타고 오르페우스 프로젝트의 완성을 위해 운석지대로 떠나나 도착과 동시에 슈바르츠실츠 호가 연락두절, 박사와 탐험대의 생사는 알 수 없게 되었다.
그로부터 9년의 시간이 흐른 뒤 화성 개척지의 로봇을 관리하는 궤도기지에서 슈바르츠실츠 호의 구조신호를 수신하였고 뉴 파이오니어4 호에 탑승한 구조대가 박사일행을 구하기 위해 운석지대로 떠났다.
슈바르츠실츠 호와 도킹한 뉴 파이어오니어4의 승무원들은 선내를 수색했지만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고 탐색을 포기하고 떠나려는 순간 박창식 박사의 목소리가 어디에선가 들려왔다. 출처를 알 수 없는 박사의 목소리는 당황해하는 승무원들에게 기다리라고 말하고 잠시뒤 우주선내의 여러 공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다고 사라지기를 반복한 박사의 모습이 연구실 허공에서 갑자기 합쳐졌고, 그자리에 박사가 있었다.
박사는 천천히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는 사람들을 설득했지
인공 블랙홀을 만들어 시공간을 왜곡시켜 공간을 도약하는 우주선을 만들자고
수천광년이 걸릴 행성을 단 몇시간만에 왕복할수 있을거라고 말이야"
"세상에... 인공 블랙홀을 만든다구요?"
"맙소사... 운석벨트까지 갔던건 지구에서 실험했다가 위험해질수도 있어서였나요 박사?"
박사는 다른 승무원의 이야기는 전혀 듣고 있는것 같지 않았다. 그의 얼굴엔 혼란스러움과 놀라움이 아쉬움과 절망과 동시에 섞여 떠오르고 가라앉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실종된 이후로 9년밖에 흐르지 않았지만 불혹을 넘어서고 나서 9년의 시간을 실종된 우주선에서 보낸 사람의 얼굴치고는 전혀 늙은 티가 보이지 않았으나 그의 눈빛만큼은 수천년을 산 노인의 그것처럼 지쳐있었다.
"하지만 나의 진짜 목적은 애인이었어"
황당한 대답이었으나 승무원들은 무슨 은유적인 뜻이 담긴 말일것이라고 모두 암묵적으로 동의를 했다. 그것을 확인시켜줄 질문을 던진것은 일등 항해사였다.
"박사 당신은 독신이라고 들었는데"
"그래 맞아. 나는 독신이야
이 계획은 다른 은하계의 행성으로 가고자 하는 것이 아니야
먼 곳으로 가는 것은 같지만 종착점은 달랐지."
박사가 테이블에 클립으로 고정되있던 종이 한장을 들어올렸다.
"종이를 봐"
박사는 종이의 양 끝에 구멍을 뚫었다. 너무 흔히 본 장면이었기에 승무원들은 박사가 블랙홀에 대해 뭐라고 말을 하려나 보다하고 어렴풋이 예상할 수 있었다.
"이 지점에서 이 지점으로 가는 최단거리는 종이를 접어서 두 지점의 거리를 0과 가깝게 만드는 거지"
"그렇죠 박사"
"지구에서 안드로메다까지 그냥 가면 멀지만 시공간을 왜곡시킨다면 금세 갈 수 있겠지
내 목적은 안드로메다나 생명이 있는 행성이 아니야. 다시 종이를 봐
이 지점을 그런 곳이 아니라 만약에 여자친구로 한다면?"
"박사 그게 무슨 소리지?"
선내는 혼란에 휩싸였다. 여자친구란 말에 은유는 없었다.
"나는 오랫동안 혼자였다
어머니 이외의 여성과 긴 대화를 나눠 본적도 없었어. 나는 늘 외톨이었고 애인은 없었지
젊고 팔팔한 육신을 가지고도 암컷에게 접근조차 할 기회가 없다는 것은 고통인 동시에 외로움이라는 짙은 절망이었다."
"그것이 이 인공블랙홀과 무슨 관계가 있다는 거지?"
파이오니어의 수리를 담당하는 기술자 존이 이해가 안된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는 평소 박사를 흠모하여 박사의 책을 다 읽고 외우고 다닐정도의 사람이었다.
"자넨 거기 서있지"
박사가 말했다.
"하지만 자네가 계속 그곳에 서있을까? 아니야 자네는 움직일거야"
박사가 의자에 있던 머그잔을 집어 존에게 던졌다. 아슬아슬하게 존은 던져 머그잔을 피했고 머그잔은 벽에 맞아 산산조각이 났다.
"뭐하는거야!"
"봐 자네는 움직였어."
박사는 재미있다는듯 싱긋 웃었다.
"우리는 삼차원 시공간의 존재야
그렇기 때문에 평면의 사람들이 종이 위에 떠있는 작가의 손을 보지 못하듯
우리는 사차원의 공간을 보지 못해. 정확히 인지하지 못하는거지."
박사는 선생님같은 말투로 무엇인가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공중에서 갑자기 나타난 이후로 그의 표정이 가장 즐거워 보였다.
"삼차원의 시공간에 갇힌 우리는 시간의 순서대로 사물을 볼 수 밖에 없지만
사차원에선 그렇지 않아. 삼차원이 가로, 세로 그리고 높이인것과 달리 사차원에는 변수가 하나 더 있지. 그게 뭘까? 시간일까?
아마 시간일거야. 난 그걸 시간이라고 생각했어. 그러니까 시간이 공존하는거야! 따라서 과거도 미래도 한 순 간에 볼 수 있을지 몰라.
그말인 즉슨 그곳에 서는 것과 움직이는 것이 동시에 일어난다는 거지"
"박사 당신은..."
"그래. 나는 지금 외톨이지만 언젠가 나에겐 여자친구가 생기겠지
나는 외로웠어 그래서 여자친구가 필요했어"
"그렇다는 말은?"
" 어떻게 해야 다른 차원으로 넘어갈 수 있을까? 평면에 붙은 종이카드는 2차원이라고 볼 수 있지. 이걸 삼차원 공간-공중에 띄우려면 바람같은 힘으로 평면에서 떼어 버려야해. 중력은 강력한 힘이야. 그리고 중력이 강한 블랙홀은 시공간의 왜곡을 일으켜. 이건 평면에서 바람으로 종이카드를 불어낸것과 같이 나를 다른 차원으로 튕겨낼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야. 그래서 나는 더 몰두해서 연구를 했다.
내가 만일 3차원의 감옥을 벗어난다면 나는 여자친구가 있는 미래의 나와 같은 시공간에 공존하게 되는 것이니까.
나는 그저 그걸 원했을 뿐이다. 더 이상 혼자가 아닌, 나에게도 여자친구가 있는 그런 공간을 말이야."
박사의 말은 구조대중 그 누구도 상상조차 해본적이 없는 것이었다. 특히 그것을 성취하려는 목적은 애인이 있어봤던 그들에겐 박사의 이상한 말 만큼이나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박사 당신은 미래의 애인과 시간을 보내고 싶었던거군"
"그렇지. 하지만 나의 눈은 두 개의 안구로 평면의 이미지를 뇌 속에서 착각을 일으켜 삼차원으로 보이게 하는 것이 전부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사차원 시공간으로 간다 해도 나의 눈으로 미래의 애인을 볼 수 있다는 보장은 없었어. 하지만 느낄 순 있겠지, 같은 공간에 애인이 있다는 걸 느낄수 있다. 그것만으로 난 충분했어. 시도해볼만한 일이었지."
"그렇게 슈바르츠실츠 호는 지구를 떠났고 이곳 운석지대에서 드디어 인공 블랙홀을 가동하게 된거야"
"그래서 성공했나?"
구조대는 모두 숨을 죽였다. 박사는 석상처럼 굳은얼굴로 창밖으로 보이는 칠흙같은 우주공간을 노려보더니 마치 죽은이가 내쉬는 한숨처럼 말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장막을 걷고 미래를 엿보았지만 그곳엔 망각뿐이었어..."
"사차원으로 넘어간다는 것은 정말 믿기 힘든 경험이야
나는 뭐든것이든 꿰뚫어볼 수 있었고 아무리 멀리 있는것이라도 가까운것처럼 볼 수 있었지"
박사의 눈주름엔 형용할 수 없는 슬픔이 맺혀 있었다. 그것은 검은 타르의 늪처럼 박사의 신체 전부를 휘감고 있던 무엇인가였고 오래 정지되있던 슈바르츠실츠 호의 공기를 타고 구조대 전원에게 전염이 되는듯한 착각조차 일으켰다. 그것은 박사의 슬픔이자
"나의 공간은 내가 생활한 모든 공간이었고 나는 과거를 보는 동시에 미래를 느끼고 있었어. 미래와 과거의 나가 같은 공간에 있었지 나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던 동시에 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을 보고 있었어 익숙치 않은 광경에 내 뇌는 타버리는 것처럼 혼란스러웠지"
고통이었으며
"본다라는 걸 넘어서 느끼는거야. 아 느낀다는 것이 적합한 표현일까
자네는 자네가 태어나는 것과 죽는 것을 동시에 볼 수 있는 곳을 상상할 수 있나?"
"말그대로 나는 태어나는 동시에 생활을 하며 자라고 늙는 동시에 죽어가고 있었어."
인류의 한계를 넘은 깨달음이었고,
"인공 블랙홀 기계의 가동은 멈춰 버렸지
가져간 가속장치론 버티지 못하더군"
"다른 승무원들은 전부 죽었어.
아니 모르겠다 그건 내가 시공간이 왜곡되던 순간에 본것이라 언제 죽었는지 명확히 알 수가 없군. 그들은 죽었다. 늙어죽었는지 쇼크로 죽었는지 충격에 자살했는지 모르겠어"
"어쨌든 나는 무엇인가를 깨달았고 자네들이 이곳에 도착하기 직전 여기 나타났다."
"나타났다고?"
"그래 나타났어."
"그리고 난 깨달았지
나의 미래에도 내 애인은 없었다는 사실을 말이야."
고통이었다.
박사는 그자리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는 이제 다른 차원으로의 여행을 멈추고 모래톱에 묶여있는 이아손의 아르고호 처럼 완전히 그가 태어난 차원에 매여 있었으나 그의 존재의 의미는 뺨을 타고 내리는 눈물 줄기와 함께 소리없이 함몰되어 우주의 냉혹한 검은 공간 어디론가 사라져버린것 처럼 보였다. 구조대원들은 그자리에서 정을 박아 놓은듯 멈춰서서 박사가 다녀왔던 사건의 너머(이벤트 호라이즌)에 대해 저마다의 상상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그들의 생각은 늘 한곳에서 일치하였으며 그것은 박사가 느낀 고독이란 지나간 시간만큼만 느끼는 인간의 것을 초월한 어떠한 절대적이고 무자비한, 그렇기때문에 너무나 무자비하고 차가운 감각이었을것이란 예상이었다.
박사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꼈는가. 그것을 어떤이는 생물의 감각을 초월하기 때문에 묵시록적이기까지한 지옥이라고 묘사하였다. 그것은 다른 차원으로 여행을 떠난 사람의 이야기를 전한 책의 저자가 한 말이었다.
흥미로운데 단편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