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이야기>
공산주의자 겸 친일파인 심영은 국제극장에서 극작영화 님 상영회에서 김두한 패 습격을 당해 도망가는 중 상하이 조에 쏜 총에 영좋지 못한곳에 맞고 백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그러나 수사주임의 이정재 덕에 김두한 한테 백병원에 입원 한걸 들키고 이승과 빠이빠이 준비 하는데....
김두한은 미소를 지으며 심영의 침대로 다가왔다.
심영은 파랗게 질렸다.
"여기 있었구만 심영이. 나 두한이야. 왜 왔는지 알겠나?"
김두한이 말했다.
"댁들은 누구시오?"
심영의 어머니는 벙찐 모습으로 말하였다.
"이… 이 자가 바로 김두한입니다, 어머니!!"
"뭐라고?"
덜덜 떨며 말하는 심영 말에 어머니는 겁을 먹으며 놀랬다.
김두한은침대에 다가와 병상에 누운 심영을 바라보며
"용케도 아직까지 살아 있었구만. 이봐 심영이. 어차피 죽어야 할 목숨이야. 우릴 원망하지 마라."
"김두한 오야붕. 길게 얘기할 거 뭐 있습니까? 빨리 죽이고 갑시다."
이에 심영을 죽이기 위해 벼르고 있던 상하이 조는 총을 꺼내고 병상에 누운 심영에게 권총을 겨누었다.
이에 놀란 어머니는 갑자기 막아서며 팔을 벌리며 말하였다.
"안 돼요!! 누굴 죽인다는 거요?!! 내 아들이요!! 하나밖에 없는 내 아들이오!!"
그리곤 무릎까지 꿇으며 아들을 살려달라며 애타게 빌었다.
"비키십시오. 지금 이 사람은 민족 반역잡니다. 나라에 큰 죄를 지은 사람입니다."
김두한은 어머니 생각이 나서 착잡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방해하지 말라며 말하였다.
"왜들 그러시오 도대체.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심영은 자기가 뭔 잘못을 했냐고 물었다. 이에 상하이 조는 김두한 대신해 나서며
"야, 너 골수 빨갱이 맞잖아. 엉터리 선동영화를 해서 학생들과 시민들을 속였어. 공산당이 뭐가 어쨌다고? 야 이 새끼야. 지상에 낙원을 만들어? 낙원이 뭐 어째!! 다시 주접 한 번 떨어봐봐!!"
총의 자물쇠를 풀며 말하였다.
그 시각 전위대는 뒤늦게 택시기사를 통해 심영이 백병원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차를 타고 백병원으로 급히 향했다. 정진영은 심영이 평소에도 택시를 즐겨 탔다면서 '택시부터 먼저 조사했으면 좀 더 빨리 찾았을 거라며'안타까워하며, 경찰과 이정재를 반동놈들이라고 마구 까대었다.
한편 병실 안에서는
심영의 어머니는 상하이 조를 바짓가랑이를 잡으며
"왜들 이러시오, 용서들 하시오… 우리 아들이 무슨 죽을 죄를 지었는지는 모르지만 용서들 하시오… 다 내가 잘못해서 그렇수… 이 애미가 못나서 이 지경이 됐수…"
상하이 조는
"비키슈, 비키란 말이야!!"
반말까지 하며 심영의 어머니를 밀쳐버렸다.
"우리 아들 쏘려거든 날 먼저 죽이시우!! 자식이 잘못되면 다 부모 탓이라 했수!! 정 그러면 날 쏘시우!! 날 쏘란 말이오, 젊은이들…"
심영의 어머니는 막아서며 팔을 벌리며 말하였다.
"이 노인네가… 씨, 비키라니까!"
상하이 조는 잠시 난감하였다. 그러나 상하이 조는 심영의 어머니를 매몰차게 밀치고 심영의 이마에 총구를 겨누었다.
" 아… 악… 용서해주시오… 제발… 김두한 대장! 나 좀 살려주시오. 으흑흑"
심영은 눈물을 흘리며 말하였다.
"아니 되오.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는 모르지만,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 이 늙은이를 봐서라도 살려 주세요." 넘어진 심영의 어머니는 김두한의 바짓가락에 매달리며 다시 사정하였다.
"…비키시죠."
김두한의 차거운 말에 심영의 어머니는 두 손을 모아 빌며
"내 이렇게 빌겠소. 열 번 스무 번도 날 보고 죽으라면 죽겠소. 댁들도 집에 돌아가면 늙으신 어머님이 계시질 않소.
애비 없이 키운 하나밖에 없는 내 자식이오."
심영도 간절한 눈빛과 말투로
"용서하시오, 김두한 대장. 나 없으면 노모께서 혼자 사셔야 하오. 제발 용서하시오."
"제발 용서해 주세요. 제발 용서‥"
"이러다가 전위대 애들 들이 닥치겠습니다. 빨리 죽이고 가야겠습니다."
김관철이 다급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이어 상하이 조도
"아, 시간이 없다고 했소. 김두한 오야붕. 허락하시오."
김두한에게 말하였다. 한편 김두한은 어머니 생각이 나서 고민하고 있었다.
이를 본 상하이 조는 김두한에게 다급한 목소리로 언성을 높이기 말하였다.
" 아, 진짜 이러고 있을 겁니까? 시간이 없어요. 아, 오늘 따라 왜 이러시오?"
심영의 어머니는 심영을 감싸안으며
"이보시오 젊은이. 이 늙은이가 이렇게 빕니다. 죽은 귀신도 지성으로 빌면 들어준답디다. 우리 못난 아들 이번만은 용서해 주세요. 다시는 이런 일이 절대로 없도록 하겠소. 정말이오."
사정 하였다. 시간은 조금식 흐르고 있었다. 곧 있으면 전의대가 병원에 도착할 것이 였다.
상하이 조는 다시 김두한에게 말했다.
"아니, 김두한 오야붕!"
이어 김관철이
"정말 시간이 없습니다."
심영의 어머니는 다시 부탁하였다.
"부탁이오. 제발 부탁이오. 죽은 사람 살리는 셈 치고 은혜 한 번 베푸시오. 제에발…"
김두한은 계속 노모와 심영을 번갈아 보고 있었다. 이에 상하이 조는
"김두한 오야붕답지가 않소. 이놈은 골수 빨갱이요. 아 이놈을 죽이려고 천신만고 끝에 중앙극장을 거쳐가지고 우리가 여기까지 온 게 아닙니까. 이제 와 뭘 망설입니까?"
상하이 조의 말에 조심스럽게 김두한은 심영에게
"이봐. 심영이."
"예?"
"정말 약속할 수 있겠나?.다음에는… 안 할 수 있겠나. 공산당을 안 할 수 있느냔 말이야."
상하이 조는 기가 찼다.
"아니, 김두한 오야붕, 지금 무슨 말하고 있는 거요."
김두한 상하이 조를 무시하고 고압적으로 심영에게 물었다.
"공산당 할 거야? 안 할 거야!"
심영의 어머니 심영에게
"어서 대답해 드려라. 다시는 안 한다고. 어서."
" 안↑ 하겠소!!! 닷!↓씨↗는↘ 안 하겠소!!!"
심영의 말에 김두한은
"나도 예전에 너처럼 어머님이 계셨다."
그리곤 파일 하나를 심영에게 툭 던졌다.
"여기다 이름을 써라. 백지 전향서야. 전향하거라."
상하이 조는 기가 차서 "아이구, 아 이게 지금 뭐하는 거야?" 크게 혼잣말 했다.
김두한은 심영에게 고압적으로
"이름을 써!"
전향서에 쓸 것을 종용했다.
" 아‥. 아… 알겠소."
심영의 어머니는 심영을 부추기며
"어서 써라...! 어서 써...!"
결국 심영은 협박에 못 이겨 전향서를 쓰게 되었다. 열성당원임을 자처하던 심영에게 그만한 굴욕은 없었다.
김두한은 심영에게
"네 어머님이 아니었다면 너는 오늘 시체가 됐을 것이다. 넌 전향서에 서명을 했다. 공산당을 탈퇴한 것이란 말이다. 그렇지? 어머니를 잘 모셔라. 다음에 또 걸리면 넌 정말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
김두한은 어머니에게 감사하라고 말하며 심영이 쓴 전향서를 코트 안에 넣으며 나가였다. 심영의 어머니는 김두한에게 "고맙습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하며 고개 숙이 였다.
하지만 심영을 끝끝내 못 죽인 게 아쉽고 속상했던 상하이 조는 다시 병실로 들어와
"야 이 빨갱이 새끼야!!!"
" 억! 으어어어어어어어↗엏헣헣헣헣헣헣헣"
"너 때문에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 너 정말 운 좋게 살아나는 거야. 어? 쳇. 하지만 넌 어차피 고자가 된 놈이지. 다음에 걸리면 그땐 진짜로 죽을 줄 알아!! 알겠어?!!"
"으아아아아아아아↗앟핳핳핳핳핳핳"
심영의 환부를 2번 찍으며 말하였다. 심영은 고통 때문에 비명을 지르였고, 심영의 어머니는 눈물만 흘렸다.
김두한이 떠난 직후 전의대가 백병원에 도착하였다. 심영은 병실을 찾아온 전위대들에게 흐느끼면서 김두한의 압력에 굴복한 사실을 털어놨다. 하지만 김해숙과 김천호는 심영을 반동 이라고 심영을 매도했고, 정진영은 자아비판을 한 것이라며 심영을 옹호 하였다. 그리고 전위대 본부에 정진영이 박헌영에게 심영이 전향서를 쓴 사실을 보고하고, 이에 박헌영은 심영을 월북을 시켰다.
월북 이후 심영은 '내고향(1949년작)', '향토를 지키는 사람들(1952년작)', '정찰병(1953년작)', '벗들이여 우리 함께 가자(1960년작)', '두만강(1960년작)', '다시 찾은 이름(1963년작)' 등 작품에 비중있는 역활 맡아 활동하였고, 1952년 조선연극인동맹 중앙위원 및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립 연극극장 배우, 1959년 조선연극인동맹 부총장을 맡았다. 1961년 조선영화인동맹 위원장 겸 조선문화예술인총동맹 부위원장을 지냈으며 같은 해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영화대표단 단장으로 소련을 방문 하기도 했었다. 조선예술영화촬영소 연기과장과 평양연극영화대학 강좌장을 역임했으며 1957년 공훈배우 칭호, 1964년 인민배우 칭호를 받았다.
하지만, 말년은 그리 영 좋지 못했다.
숙청되었다가 복권되어 남로당 숙청 때 걸려들었다 간신히 살아 남았지만 1960년대 한설야가 숙청될 때 다시 사상검토를 받아야만 했다. 1971년 결국 다시 숙청되어 평양에 소재한 삼신탄광 탄부로 떨어졌다고 탄부로 고생하다가 결국 1973년 폐결핵으로 인생의 삶을 마감 하였다.
이에 호사가들은 심영의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고추가 가렵다.
-----------------------------------------------
안녕 하세요 티벳 여우 입니다.
대국적으로 쓰고 싶었는데 망했네요--
또 봅시다.
제목이 엄청나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