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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께서 지인의 결혼식에 가셔서 집에 안계시던 주말. 우리 집에 놀러온 소꿉친구는 뜬금없이 나에게 요구했다.
“자X해봐.”
“…….”
“…….”
“…….”
“…….”
“……네?”
여기서 나의 소꿉친구에 대해서 말해보도록 하겠다.
요즘은 식상하다 못해 쉰내 풀풀 풍기고, 층층이 쌓인 세월을 파헤쳐서 발굴해야할 정도로 오래된 신조어(이렇게 말하니 신조어도 아니겠지만)로 표현하자면 소꿉친구는 차가운 도시 여자다.
표정변화가 적고, 겉으로 감정표현을 하는 일은 적지만 무슨 일을 하든 평균이상을 해내는 여자. 그리고 소꿉친구인 내가 보더라도 ‘예쁘다.’라는 평가를 내리는 데에 전혀 주저함이 없을 외모. 별명이 ‘얼음공주’라는 낯부끄러운 별명이 붙었지만 일단 한 번 만나게 되면 누구나 수긍하게 만드는 그런 소꿉친구.
지금 그런 소꿉친구가…….
“뭐라고?”
하하하. 내가 잘못 들은 거겠지. 설마 소꿉친구가 당당하게 나에게 그런 일을 요구할 리 없잖아.
“자X해봐.”
“…….”
OK. OK. 침착해라, 나. 지금 소꿉친구가 나에게 자X해보라고 했지요? 분명히 자X라고 했지요? 자X라고……했지요!? 에!? 자X라고 했어!? 누가!? 소꿉친구가!? 누구에게!? 나에게!? 지금 자X해보라고 했지요!? 지금 소꿉친구가 나에게 자X해보라고 했지요!? 아냐 흥분하지마. 침착해라.
다시 생각해보자. 내가 잘못 들은거다. 아직 뒷부분은 제대로 못 들었잖아. ‘자’로 시작하는 두 음절의, 그리고 파생어로 동사가 될 수 있는 단어는 많잖아.
자랑, 자극, 자정, 자취, 자치, 자문, 자백, 자각, 자원, 자제, 자진, 자립, 자수, 자습, 자선, 자살……마지막은 빼고, 어쨌든 많잖아.
내가 생각하는 그게 아닐 수도 있잖아. 그렇잖아. 그 소꿉친구잖아. 지금 집에 부모님이 안 계실 때에 나에게 그것을 요구할 리 없잖아!? 그렇지!? 그렇지 않나요!? 그렇다고 해주세요!
“X위해보라니까?”
알겠어! 알겠다고! 알겠다니까!? 이번엔 첫 글자는 못 들었지만 분명히 뒷글자는 들었지요!? 분명히 X위라고 했어!? X위라고!? 방금 전에 들은 것과 조합해보면 나오는 단어는 하나뿐이지요!? 지금 소꿉친구가 나에게 X위해보라고 했지요!? 자X라고!?
아냐아냐아냐아냐아냐아냐아냐아냐아냐아냐아냐아냐아냐아냐아냐아냐아냐아냐아냐아냐, 침착하자. 침착하자고. 침착해주세요, 제발.
이성적으로 생각해서 단 둘이 있는 집에서 소꿉친구가 나에게 자X를 요구할리 없잖아? X위를 말이야.
방금 전의 말과 의미는 같지만 발음이 다른 말을 했을 수도 있잖…….
“자위 안 해?”
난 침착해! 침착하다고! 이번엔 똑똑히 들었어!? 하지만 나의 마음은 무척이나 평온하다고!? 분명히 자위라는 말을 들었어!? 잘못 들은 게 아니야!? 지금 소꿉친구께서 저에게 자위해보라고 하셨지요!? 하지만 괜찮아! 난 쿨하니까? 어떠한 상황이 닥치더라도 나의 대양 같은 마음은 풍랑이 치지는 않아!?
부모님이 안 계신 집에 나와 소꿉친구 단 둘이 있는 상황에서 소꿉친구가 나에게 ‘자위해봐.’라고 말해도 나는 결코 흔들리지 않아!? 난 침착해! 침착하다고! 러시안룰렛을 하는 사람만큼이나! 아니 6발짜리 리볼버에 5발을 넣고 하는 캅카스 룰렛을 하는 사람만큼이나 나의 마음은 평온하다고!?
자아 심호흡하자, 심호흡.
들이마시고, 내쉬고. 다시 들이마시고, 내쉬고. 들이마시고, 내쉬고.
……OK침착해졌다.
간신히 안정을 찾은 나는 소꿉친구에게 말했다.
“지, 지, 지, 지금 뭐뭐뭐뭐뭐라고 하셨쎄요!?”
침착해 임마!!!!!!! 당황하지마라! 훨훨 나는 저 꾀고리 암수 서로 정다우니 침착해! 불심으로 평온을 되찾는 거다.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내가 아는 건 여기까지니 더 이상 자세한 것은 생략한다! 당황하지마! 당황하지마라고! 당황하면 지는 거다!
“잠시, 잠시만! 잠시만 기다려!”
나는 방에서 뛰쳐나가서 주방으로 갔다. 냉장고를 열어 1L짜리 우유를 팩째로 들이켰다. 차가운 우유가 입천장을 할퀴며 목구멍으로 넘어가자 찌잉하고 머리가 아파온다. 나는 두통을 가라앉히기 위해 관자놀이를 집게손가락으로 압박을 가했다. 하지만 차가움과 고통 덕분에 나는 간신히 평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후우~!”
심호흡을 한 뒤 나는 현재 나의 상황을 살펴보았다. 육하원칙에 따르자면 현재 나의 상황은 다음과 같다.
누가? 소꿉친구가
언제? 방금 전에
어디서? 부모님이 안 계신 우리 집의 나의 방에서
무엇을? 나에게
어떻게? 자위할 것을 요구했다.
왜? 우쨔서!? 어째서!? Why!? 나한테 자위를 하라고 말하는 거여!? 안 그러셨잖아요!?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되죠!? 19금딱지가 붙고 빨간 색으로 적당히 표지를 장식할 그런 소설 혹은 만화에서나, 그것도 아니면 성적인 환상을 품게 해주는 다중 디지털매체에서 나올 그런 시츄에이션이죠!? 미녀인 소꿉친구가 나에게 자위를 해보라고 요구하고 있어요!?
소꿉친구의 성격을 생각하면 내가 자자자자자자자자자자자위를 하는 것을 보고 난 다음에 입싹 씻을 확률이 분명히 존재하지요!? 그런데 왜 입을 싹 씻을 까요!? 서서서서서서설마 구구구구구강성……멈춰! 그 이상의 망상은 위험하다!
안돼! 흥분하지마! 이 이상 흥분하면 위험하다고! 진정해! 진정하라고옷!
적지 않은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나는 간신히 폭주하는 사고를 진정시킬 수 있었다. 그래도 혹시 몰라 슬쩍 간을 보았다.
지금 상황을 다시 정리하자면 ‘소꿉친구가 나에게 자위 할 것을 요구했다.’이다.
“…….”
후우, 좋았어. 아까 전처럼 마구잡이로 폭주는 하지 않는다. 나는 사고를 계속 이어갔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어째서 소꿉친구는 나에게 자위할 것을 요구했는가?’에 대한 답변이다.
“…….”
다행이다. 이 정도로 진정했으니 재차 폭주할 리는 없겠지. ……아마도. 먼저 어째서 나에게 ‘자위’를 할 것을 요구했는지 물어보자. 그리고 그 다음은……일단 대화를 하고 생각하자.
나는 방문을 열었다.
“…….”
방에는 소꿉친구가 침대 위에서 내 팬티를 늘어놓고 그것을 관찰하고 있었다.
“…….”
무척이나 진지한 눈으로.
“흐음…….”
그리고 구도자의 모습으로 팬티 하나를 집어 들고 그것을 이리저리 살펴보고 있었다.
과부화로 인한 사고의 단절 직후.
“으가아아아아아아악!”
나는 괴성을 지르며 소꿉친구에게 달려들었다.
내 속옷이 날아다닌다. 침대가 격하게 삐걱거린다. 달콤한 향기가 나를 엄습한다. 소꿉친구 부드러운 살결이 닿았다. 세상이 빙글빙글 돌았다.
한바탕 소란을 피운 후에 우리들의 몸은 안정을 되찾았다. 일단은 몸은 말이다.
소꿉친구는 침대에 눕고 나는 그 위에서 엎드리는 상황이 되었지만 일단 더 이상의 운동에너지는 만들지 않았으니 사태는 진정됐다고 할 수 있었다. 일단은 겉으론 말이다.
내 밑에 있는 소꿉친구는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놀란 것이다. 이런 표정은 소꿉친구인 나도 그리 많이 볼 수 없는 희귀한 표정이었다. 내 손에 잡힌 것이 휴대폰이었으면 난 지금 소꿉친구를 찍었을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지금 내 손엔 가슴 뭉클한 감촉 느껴진단 말이다. 이, 이게 바로 상위 1%의…….
소꿉친구는 내 손과 내 얼굴을 번갈아보았다. 그리고 얼굴이 조금씩 붉어지더니 소꿉친구는 눈을 돌렸다. 어떤 남자든지 이 모습을 본다면 흥분해서 달려들 게 분명하다.
그리고 나도 그 모습에 흥분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외쳤다.
“여기서 얼굴 붉히지 마라, 이 똑똑한 바보야!”
나는 그렇게 외치며 침대에서 내려왔다. 맙소사. 이 똑똑한 바보 좀 어떻게 해봐라. 이러다 이상한 남자 만나면 인생 꼬일 게 분명하다. 더군다나 소꿉친구에게 자위해보라고 요구하는 굉장한 녀석이다. 어허허. 누가 이 녀석에게 제대로 된 성교육 좀 해주세요. 그런데 내 경험상 그 성교육을 할 사람은 나일 확률이 높다. 거의 100퍼센트.
나는 주위에 흩어진 내 속옷을 모아서 대충 서랍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의자에 앉아서 녀석을 바라보았다.
“똑바로 앉아. 이 녀석아.”
소꿉친구는 내 말에 흐트러진 옷을 바로하고 침대에 걸터앉았다. 이야기를 그림으로 표현하는 성인용 매체라면 소꿉친구가 자신의 이름과 나이를 말하며 ‘이제부터 제 (하략)’이라는 대사를 말할 순서였다. 하지만 지금은 현실이다! 그리고 나는 이 녀석의 소꿉친구고!
“야.”
“응?”
나는 심호흡했다.
“어째서 나한테……그 짓을 해보라고 한 거냐?”
나는 대명사를 썼다. 입으로 말하면 부끄럽잖아. 다행히 소꿉친구는 대명사가 무엇인지 묻지는 않았다.
“얼마 전에 T가 말이야.”
……또 그 년이냐.
T는 나와 이 녀석의 학교친구다. 아 실수. 친구가 아니라 웬수다.
그 녀석에 대해서 간단하게 표현하겠다. 겉모습은 천사. 속은 악마. 그 녀석 때문에 수난을 당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리고 지금 이 사태도 녀석 때문에 일어난 것이었다.
“나한테 자위해본 적 있냐고 물었거든.”
와. 미치셨네. 좋아. 학교에 가면 조지자. 아무리 T가 여자라도 육체적인 훈육이 필요하다. 전 도덕적인 이유로 체벌하는 것은 격하게 찬성하는 입장입니다!
“내가 이론으로만 알고 실제론 해본 적이 없다고 하니까. T가 하면 기분이 좋아지는 거라고 했거든?”
T도 T지만 이런 말을 하는 이 녀석도 이 녀석이다. 맙소사. 내 주위에는 정상적인 사람이 없는 거냐.
“그래서 내가 어떻게 하면 되냐고 물어보니까, 너한테 물어보면 아주 잘 가르쳐준다고 했어.”
응. T를 조지는 건 그만두자. 아주 죽여 버리자.
소꿉친구는 나를 똑바로 보며 요구했다.
“그러니 자위해봐.”
“하긴 뭘 해, 이 멍청아!”
누가 이 똑똑한 멍청이한테 성교육 좀 해주세요! 그런데 앞에서 말했다시피 이런 건 주로 내 담당이었다. 어떻게 됐을 것 같냐? 그래. 나는 오늘 하루 남은 시간을 이 똑똑한 멍청이에게 성윤리 교육을 하는 것으로 보냈다.
수치플레이도 이런 수치플레이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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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아무런 생각이 없다. 왜냐하면 아무런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