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아..."
긴 침묵 끝에 짧은 한숨이 영감의 입에서 새어 나왔다.
영감이 있는 곳은 지옥이었다.
짧은 한숨이 있기 아주 오래 전 영감은
지상에서의 삶을 끝마치고 이곳으로 오게 됐다.
죽음 이전의 삶에서 영감은 사후세계와 천국, 지옥 등에 대해
여럿 가정들을 들어왔고 본인도 나름의 모델을 제시했지만
그것은 그저 삶의 문제를 환기시키는 유머에 지나지 않았다.
그때의 시간은 그야말로 까마득히 오래전의 일로
이 형벌의 시간과 비교하면 실로 찰나의 순간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무한이라는 개념 앞에 무엇인들 찰나에 지나지 않으니.
지금 영감이 생생히 느끼는 것은 그저 존재의 고통 뿐이고,
영원히 끝나지 않을 이 형벌에 대한 무기력감 뿐이었다.
지옥의 공간 속에 박힌 그는 계속해서 사고하게 되었다.
이미 육신의 몸은 없었기에 공간에 박힌다는 표현이
올바르지는 않겠지만, 영감의 존재는 점유하고 있는 특정 공간
이상을 벗어날 수 없었다.
무한이라는 시간이 주어졌지만 그는 또한 한 없이
물리적인 한계에 갇힌 존재였다.
사실 천국의 존재들도 지옥의 존재들과 별 반 다를 바 없었다.
그들도 일정한 공간을 향유하며,
일체의 운동을 하지 않은 채 그렇게 존재해 나갔다.
차이점이 있다면 역시 신이었다.
천국에는 신이란 존재가 있었기에,
정확히 말해서는 신이 있는 그 장소가 바로 천국이었기에,
그들은 신이 주는 메마르지 않는 평안 속에 살아갈 수 있었다.
그들을 바라보며 영감은 찰나의 순간이라도 저기에 앉아
참된 위안을 받기를 원했지만,
이제는 그 부러움과 시기의 대상들 또한 없었다.
신과 천국이 열반에 든 지도 수 만 년이 지났다.
영감은 여전히 지옥에서 우주의 변화들을
그저 무기력하게 수용하고 있을 뿐이었다.
초신성의 폭발과 새로운 별과 행성이 탄생해 나갔고
우주는 조금 더 빠르게 팽창해 나갔다.
그동안 지켜보던 4가지 빛깔의 가스 성운이
완전히 일그러져 본연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을 때에도,
영감은 여전히 존재하며 우주를 관조하고 있었다.
영원이라는 형벌의 잔혹함을 깨달으며
영감은 다시금 깊은 한숨을 천천히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