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분이 초면에 벌써 서로를 눈에 새기시니 소개한 보람이 있군요. 전갈과 거미만큼 잘 어울리는 짝이 어디 있을까요. 두 분이 좋은 인연이 되시길 바라며 한 가지 좋은 소식을 알려드리겠습니다.”
“경이 또 새 신부를 얻는가 보군요”
라스테온의 말에 카스노아가 말린 자두를 입에 넣고 한껏 거드름을 피웠다.
“폭풍 군주가 죽었습니다.”
순간 라스테온의 가는 눈이 꿈틀거렸다. 거미는 미동도 없이 광장을 내려봤다. 크레이그가 눈썹을 추켜세우고 고개를 기울였다.
“다트무어에서 죽었다는 소문이 사실입니까? 경이 직접 놈의 시체를 보셨습니까?”
“아쉽게도 교단 놈들이 시체를 가져가서 보지는 못했지만 이 친구가 놈을 죽인 것은 분명합니다.”
카스노아가 엄지를 세워 어깨 뒤를 가리켰다. 모두의 시선이 향한 곳에서 한 남자가 목례를 했다. 뒤로 올려 묶은 짙은 남색 머리칼이 어깨까지 내려오고 허리에 찬 긴 대검이 시선을 끌었다. 크레이그는 남자가 오른손은 뒷짐을 지고 왼손은 편 채로 검집에 대고 있는 것을 보며 말했다.
“폭풍 군주를 쓰러뜨리다니 대단한 실력이로군요.”
“검에 있어서는 테세이아를 통틀어서 견줄 수 있는 자가 몇 안 될 겁니다.”
카스노아가 의자에 등을 붙이고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자는 죽지 않았어.”
거미가 여전히 광장을 향해 고개를 돌린 채 말했다.
“오, 여제님의 고견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내륙의 작은 도시나 노리던 자가 상대적으로 방비가 잘 돼있는 변방의 방어 도시를 공격할 리가 없어. 아마도 폭풍 군주를 사칭한 놈이겠지.”
“역시 날카로운 식견이십니다. 물론 말씀대로 가짜일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놈이 굳이 다트무어까지 찾아온 이유는 그곳에 있는 그리니어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니 폭풍 군주가 그리니어를 찾는다는 말을 듣긴 했습니다. 추종자들은 그리니어를 제물로 바치면 구원을 얻는다고 하더군요.”
“아마도 그자의 취향 때문 아닐까요? 그리니어라면 저라도 아내로 얻고 싶으니까요.”
“그럼 그 여자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퇴각하는 교단 놈들에게 끌려갔습니다. 지금까지 소식이 없는 것을 보면 놈의 안식을 위한 제물이 되었겠지요..”
“단장님, 준비가 끝났습니다.”
부관이 보고하자 크레이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커다란 어깨와 몸집에서 주변을 압도하는 기운이 흘러나왔다. 누대에서 내려보는 광장은 형형색색의 천조각들을 엮어 만든 직물 같았다. 그가 손짓하자 나팔 소리가 광장에 울려 퍼지면서 웅성이는 소리, 쇠사슬 소리 등을 한 번에 씻어냈다.
“난 라이너 용병단 단장 크레이그다. 나는 너희 같은 노예로 군대를 만들고자 한다. 남자든 여자든 상관없다. 자격 조건은 단 두 가지다. 살아남기 위해 적을 쓰러뜨릴 의지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훈련을 거쳐 군인이 된 자는 신분은 노예지만 대우는 일반 군인과 똑같이 받을 것이다. 자유에 제약이 있을지언정 노예라고 받는 차별은 없다. 좋은 음식, 높은 급여, 전공에 따른 포상을 보장한다. 전장에서 죽을 경우 너희가 소유했던 것들은 너희가 원하는 사람에게 보내줄 것이다. 이것은 너희들이 운명을 스스로 정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평생 주인 밑에서 온갖 잡일이나 하며 여기저기 팔려 다니다 버려질지, 한 사람의 군인으로 당당하게 전장에서 피를 뿌릴지 선택해라. 뜻이 있는 자는 지금 자리에서 한 걸음 옆으로 나오기 바란다.”
앞에서 두 번째 줄에 가운데 있는 남자가 제일 먼저 옆으로 나왔다. 그다음은 다섯 번째 줄에서, 그다음은 맨 앞 줄에 여자가. 5백여 명의 노예들 중에 하나둘씩 옆으로 나온 자가 3백 명 정도 되었다.
“좋다. 너희들의 의지를 높이 사겠다. 지원자들과 상인들은 오른쪽 붉은 벽돌 건물로 이동해서 군수관과 계약을 진행하라. 나머지는 해산.”
자리에 앉은 크레이그에게 카스노아가 시답잖은 표정으로 말했다.
“저 중에서 훈련을 통과하는 자가 절반이라고 보면 너무 적군요.”
“대신 한 사람이 두세 사람 몫은 충분히 하게 될 겁니다. 그리고 백일 후까지 훈련을 마친 자들로 3백 명을 맞춰드리겠습니다. 그럼.”
크레이그가 손짓하자 옆에 선 부관이 목례를 했다.
“지금부터 경매를 시작하겠습니다. 시작가는 1백만 펜트입니다. 백일간 조련한 3백 명의 용병과 창과 검, 방패, 하급 가죽 갑옷과 투구, 개인장비 일체가 포함된 금액입니다. 응찰은 5십만 단위입니다. 어느 분께서 부대를 인수하시겠습니까?”
“흐음-, 아무리 장비가 포함이라지만 고기 방패 하나에 3천 펜트는 너무 과한걸. 백일 동안 훈련을 받았어도 실전 경험 없는 초짜들을 국경에 투입했다가는 일주일 내에 절반이 야만족 놈들에게 산 채로 뜯어먹히고 한 달이면 겨우 한두 놈만 남고 말겠군.”
카스노아가 미간을 찌푸렸다. 라스테온이 말없이 손을 펴 보였다.
“1백5십만 펜트.”
거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2백만 펜트.”
카스노아가 고개를 흔들고는 틱 하고 손가락을 튕겼다.
“2백5십만 펜트.”
세 사람의 경쟁으로 입찰가는 금방 5백만 펜트를 넘어갔다. 거미가 7백만 펜트를 부르자 카스노아가 고개를 저었다.
“1천만 펜트."
라스테온이 나지막이 말했다. 거미는 싸늘한 눈빛으로 대공을 응시하다 하얀 옷자락을 펄럭이며 누대를 떠났다. 카스노아가 거미의 등에 대고 소리 높여 말했다.
“소인이 맛 좋은 포도주를 가져왔는데 생각 있으시면 한 번 찾아주시지요.”
“1천만 펜트. 더 안 계십니까?”
카스노아가 손을 내저었다.
“축하드립니다, 노예 용병단의 주인은 발라스의 라스테온 대공님입니다.”
부관이 내민 양피지에 라스테온이 서명하자 크레이그와 카스노아가 가볍게 박수를 보냈다.
“기대하시는 바에 부응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크레이그가 가슴에 손을 얹고 목례를 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운용해 보고 성과가 좋으면 2대도 갖출 생각입니다.”
“대공님, 잠시.”
라스테온의 뒤에서 검은 로브에 후드를 깊게 쓴 남자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 대공의 귀에 손을 대고 무어라 속삭이며 손가락으로 광장 한 쪽 가외를 가리켰다.
“정말인가?”
대공이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게.”
남자가 자리를 떠나자 카스노아가 검은 피부 여자의 손등을 두드렸다. 여자는 조용히 남자의 뒤를 따라 나갔다.
검은 삼형제는 아자니를 데리고 경매 순서를 받기 위해 선 줄에서 앞쪽이 되었다.
“아니! 그리니어잖아. 이야, 이렇게 머리칼이 제대로 붙어 있는건 오랜만인걸.”
배가 불룩 나온 노예 상인이 아자니에게 다가왔다.
“생각 있으시오?”
테루의 말에 노예 상인이 양손을 비벼대며 씨익 웃었다.
“아무렴, 당연히 있고말고, 얼마면 되겠소?”
“한 번 불러 보시오.”
노예 상인이 아자니를 위아래로 요리조리 살피더니 머리칼에 손을 대려고 했다. 아자니가 놀라 고개를 움츠리자 게르두가 상인의 손을 막았다. 게르두의 매서운 눈을 보고 상인이 흠칫하며 손을 거뒀다.
“글쎄…, 어디 보자. 1천 펜트면 어떻소?”
보글러가 상인을 밀어냈다.
“2천 펜트, 아니 3천 펜트!”
“아니, 이 양반이 어디서 되팔이수를 써! 장 열리기 전에 재수 없게. 썩 꺼지쇼!”
테루가 침을 퉤 뱉었다. 보글러가 험한 인상을 지으며 저리 가라고 손짓했다. 상인은 자기한테 안 판걸 후회할 거라면서 다른 곳으로 갔다.
“형님 말대로 될 수도 있겠소, 벌써 3천 펜트가 나왔으니 시작가를 아예 5천 펜트로 잡아 봅시다. 대모님은 항상 원하시는 몫을 빼고 남은 돈은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번에 보너스를 아주 두둑이 챙겨봅시다.”
테루가 두 손을 맞잡고 싱글벙글하며 말했다. 게르두는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게 아자니의 머리에 후드를 씌웠다. 앞으로 세 명만 더 지나면 아자니를 등록할 차례였다.
“1만 펜트.”
테루와 보글러가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검은 로브에 후드를 뒤집어쓴 남자가 그들 옆에 서 있었다. 게르두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얼굴을 보이시오.”
[연재] 엘더사가 - 6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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