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똥자루 자식이!”
보글러가 해머를 빼내려고 팔뚝이 부들거리도록 힘을 쥐어짜는 순간 뒤렉이 도끼를 풀었다. 끊어진 고무줄처럼 뒤로 홱 넘어간 해머가 보글러 머리 위의 벽을 쾅 때렸다. 흙먼지와 돌조각이 보글러의 어깨에 닿기도 전에 뒤렉의 도끼가 그의 사타구니를 노리고 달려들었다.
깜짝 놀란 보글러가 다급하게 옆으로 몸을 굴려 골목 안쪽으로 피했다. 그의 가랑이가 위치했던 자리에 퍽 하고 도끼가 박혔다. 뒤렉은 어깨에 건 검을 골목 입구에 선 애런에게 던져줬다.
“고마워요, 뒤렉씨. 꼭 무사하셔야 해요!”
“이런 재미를 기대하고 함께 온 거니 염려 마시우. 참, 아까 나자리아 양이 광장 입구 쪽으로 가는 것을 보았소.”
애런이 고개를 끄덕이고 광장 입구를 향해 달려가자 뒤렉은 도끼를 쥔 양팔을 벌리고 골목 입구를 막아섰다. 그에게서 뻗어 나온 그림자가 보글러의 몸을 덮었다. 몸을 일으킨 보글러가 씩씩거리며 해머를 뒤렉에게 겨눴다.
“네놈 수염을 죄다 뽑아서 해머 닦는 걸레로 써주마!”
뒤렉은 껄껄 웃으며 수염을 흔들었다.
“허어, 왜들 그리 내 수염을 탐내는 거여. 전에도 그런 말을 했던 자가 있었는데 어떻게 됐는지 아시우? 이 피송곳니에 불알이 두 쪽이 났다우. 핫핫핫. 아까 보니 아주 기겁을 하던데 거기서 얌전히 움켜쥐고 있는 게 좋겠소. 하나 더 말해주면 우리 피송곳니의 별명이 고환파괴자라우.”
왠지 아랫도리 한켠이 서늘해지는 기분이 든 보글러는 버럭 소리를 지르며 뒤렉에게 해머를 휘둘렀다.
나자리아는 아자니를 데리고 북쪽 광장을 벗어나 동쪽 상업지구로 향했다. 넬이 그랬던 것처럼 사람들로 북적이는 곳이 추적자들을 따돌리기에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일단 사람들 사이에 스며든 다음 다른 지구에 있는 여관에 몸을 숨겨야지. 음. 아니야. 여관이 먼저 수색 대상이 될 거야. 될 수 있으면 사람이 없는 곳이 좋겠는데….’
상업지구에 들어서자 북적이는 사람들 너머로 가죽 갑옷에 투구를 쓴 군인들이 여럿 보였다. ‘저 복장은 페렐리움의 경비대가 아닌걸? 이상하네. 군인은 보통 이동할 때 줄지어 걷는 데 저들은 간격을 벌리고 흩어져 있어. 뭔가를 찾는 건가?’
가슴에 전갈 문양이 있는 군인들이 이쪽으로 오는 사이 주변을 돌아본 나자리아는 아자니를 데리고 근처에 있는 가구점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목공 앞치마를 차려입은 젊은 점원이 밝게 인사했다. 나자리아는 아자니를 점원에게 붙여 가게 안쪽으로 보내고 입구 옆에 놓인 자라엘 조각상을 보는 척하면서 밖의 군인들에게 귀를 기울였다.
“후드 쓴 여자를 우선으로 살펴라. 발견하면 즉시 생포해서 블랙독으로 데려가라.”
투구에 붉은 깃털을 꽂은 군인이 말했다.
‘여자를 찾는다고? 그럼 혹시? 전갈 문양은 발라스의 표식이라고 들었는데 바다 건너에서 온 군인들이 어째서 이 여자를 찾는 거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피해야 할 것이 노예상만이 아니게 됐어.’ 나자리아는 매장 안쪽 그늘에 있는 아자니를 보았다.
말을 건네는 점원에게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이쪽을 보는 그녀와 시선이 맞닿았다. 아자니의 녹색 눈동자에는 자신에 대한 의심과 기대가 함께 담겨 있었다.
‘군인들에게 저 여자를 넘길까? 저들이 발라스로 데려가면 애런은 절대로 찾을 수 없을 거야. 그러면 길어야 1~2년이면 포기할 것이고 그때 마음의 빈자리를 내가 채우면 돼. 하지만 모든 것을 끝내기 위해서는 저 여자가 있어야 하는데…. 일단은 확인부터 하고 생각하자. 어쩌면 이번 나자레스의 선택은 결혼 말고도 더 큰 운명을 포함한 것일지 몰라.’
군인 하나가 가구점 안을 들여다보려고 하자 나자리아가 자라엘 조각상을 들어 시야를 가리며 그에게 살짝 미소를 지었다. 군인도 투구 챙에 손을 대고 가볍게 고개 숙여 화답하고 지나갔다. 나자리아는 모든 군인들이 근처를 지나간 것을 확인하고는 매장 안쪽으로 들어왔다.
“보아하니 가구들의 나무가 하나같이 질이 좋군요. 이 친구에게 원탁을 하나 선물하고 싶은데 혹시 블루파인으로 만든 것은 없을까요? 이만한 크기에 상판이 많이 두꺼웠으면 해요.”
손을 벌려 형태를 가늠해 보이는 나자리아에게 점원이 반색을 하며 말했다.
“오! 가구와 나무의 상성에 대해서 잘 아시는군요, 손님. 아시다시피 블루파인은 세바고스에서는 나지 않는 나무라 전부 수입을 합니다. 저희는 직접 배를 운용하기 때문에 페렐리움에서 저희만큼 질 좋은 블루파인을 보유한 곳이 없습니다. 원하시는 원탁은 보름 정도만 기다려주시면 완성해드릴 수 있습니다.”
“제대로 찾아와서 다행이네요. 그럼 원목을 좀 볼 수 있을까요?”
“창고에 가시면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모시고 싶지만 지금 혼자 인터라 매장을 비울 수가 없습니다. 다른 직원이 올 때까지 시간이 좀 걸리는데 마냥 기다리시게 할 수도 없고….”
“그럼 어디인지 알려주시면 제가 가서 볼게요.”
“그러시겠어요? 양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상업지구 끝에 선착장에 가시면 두 번째 줄에 있는 파란 지붕 건물이 저희 창고입니다. 입구 위에 저희 간판이 걸려있으니까 찾기 쉬우실 겁니다. 창고지기에게 제임스 소개로 왔다고 하시면 문을 열어줄 테니 편하게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틀림없이 마음에 쏙 드실 겁니다.”
“고마워요. 말씀만 들어도 벌써 기대가 되는군요.”
나자리아는 아자니와 함께 매장 앞에서 ‘오케아’라고 적힌 간판을 확인하고 주위를 살핀 뒤 부두로 향했다. 아자니는 후드를 눌러 쓴 채 앞에 오는 사람들의 발만 보일 정도로 고개를 숙이고 나자리아가 이끄는 대로 바삐 발을 놀렸다.
선착장으로 가는 언덕 초입에서 긴 머리를 뒤로 올려 묶은 남자가 앞에서 걸어왔다. 남자는 특이하게도 웬만한 사람 키보다도 긴 검을 차고 있었다. 그것보다 더 나자리아의 시선을 끌은 건 검집을 쥐고 있는 왼손이었다. ‘위협이 될 만한 것이 없는 곳인데도 언제든 검을 뽑을 준비를 하고 있어.’
나자리아는 남자가 애런이 일러준 노예상은 아니었지만 그에게서 왠지 모를 경계심이 들었다.
“어깨 펴요.”
나자리아는 팔꿈치로 아자니를 살짝 누르며 작은 소리로 말하고는 두어 걸음을 앞섰다. 아자니는 어색해 보이지 않게 허리를 세우고 턱을 당겼다. 마침 맞바람이 불어오자 나자리아는 머리칼을 천천히 쓸어 올렸다. 그녀의 은회색 머리칼과 손목에서 이어진 붉은 띠가 바람에 나부끼며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남자의 시선도 나자리아에게 향했고 그의 시야에서 아자니는 나자리아에게 가려졌다. 그의 매서운 시선이 나자리아를 야수가 사냥감을 노리듯이 훑었다. 그녀는 남자와 눈을 마주치지 않고 가벼운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거리 양쪽을 둘러보았다.
남자가 무심하게 스쳐 지나가자 바짝 조였던 가슴속이 풀리며 작은 한숨이 나왔다. 왠지 등 뒤에서 남자가 지켜보고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지만 뒤돌아보지 않고 속도를 유지하며 걸었다.
“이제 다 왔어요.”
부두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끝자락에 선 나자리아가 말했다. 아자니는 그녀의 말투에서 묘한 어색함을 느끼며 고개를 들었다가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커다란 범선들이 작은 집처럼 느껴질 정도로 탁 트인 배경은 각기 다른 색들로 채워져 있었다. 바삐 움직이는 개미들처럼 분주하게 짐을 옮기는 일꾼들 너머로 영롱한 쪽빛 물결이 출렁이고 그 뒤로 하늘을 담은 것 같은 푸른색이 가득했고 더 멀리 하늘과 맞닿은 검푸른색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바다는 물만 많이 있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나 아름다운 것이었다니. 애런은 바다를 건널 생각인가 보구나. 하긴 저 너머에 있는 곳이라면 아무도 우릴 찾지 못할 거야.’
[연재] 엘더사가 - 70화
사랑을담아서 C.VA
추천 3
조회 1833
날짜 2023.10.07
|
에단 헌트
추천 1
조회 1815
날짜 2023.09.11
|
에단 헌트
추천 1
조회 1182
날짜 2023.09.10
|
에단 헌트
추천 1
조회 1219
날짜 2023.09.08
|
에단 헌트
추천 1
조회 1101
날짜 2023.09.07
|
에단 헌트
추천 1
조회 1323
날짜 2023.09.06
|
에단 헌트
추천 1
조회 1622
날짜 2023.09.05
|
에단 헌트
추천 1
조회 1476
날짜 2023.08.23
|
에단 헌트
추천 1
조회 1900
날짜 2023.07.10
|
에단 헌트
추천 1
조회 3412
날짜 2023.07.09
|
에단 헌트
추천 1
조회 3446
날짜 2023.07.04
|
에단 헌트
추천 1
조회 3548
날짜 2023.06.30
|
에단 헌트
추천 1
조회 2402
날짜 2023.06.21
|
에단 헌트
추천 1
조회 3663
날짜 2023.06.20
|
에단 헌트
추천 1
조회 1735
날짜 2023.06.14
|
에단 헌트
추천 1
조회 2384
날짜 2023.06.12
|
에단 헌트
추천 1
조회 1626
날짜 2023.06.09
|
에단 헌트
추천 1
조회 2204
날짜 2023.06.07
|
에단 헌트
추천 1
조회 1762
날짜 2023.06.04
|
에단 헌트
추천 1
조회 2637
날짜 2023.06.02
|
에단 헌트
추천 1
조회 1874
날짜 2023.05.29
|
에단 헌트
추천 1
조회 1634
날짜 2023.05.28
|
에단 헌트
추천 1
조회 1782
날짜 2023.05.26
|
에단 헌트
추천 1
조회 1272
날짜 2023.05.24
|
에단 헌트
추천 1
조회 1447
날짜 2023.05.23
|
에단 헌트
추천 1
조회 1283
날짜 2023.05.21
|
에단 헌트
추천 1
조회 1055
날짜 2023.05.20
|
에단 헌트
추천 1
조회 1699
날짜 2023.05.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