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되어서야 셋은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달궈진 마도아머에선 눅눅한 쇳내와 김이 올라오고 있다.
작은 불빛도 찾아보기 힘들만큼, 마을은 어둠속에 폐쇄되어있다.
웨지는 나르쉐 마을을 바라보고 기뻐해야 할지 난감해 해야 할지 알수가 없었다.
창문과 대문은 사람의 의지로 열고 닫을 수 있다.
사람의 의지로 열 수 없는 문이 하나 있다면 마음의 문일 것이다.
문을 여닫는 문제와 의지의 상관관계를 심도있는 고찰로 시도한 웨지는 결국 눈 앞에 보이는 마을의 풍경을 한마디로 비평했다.
"관뚜껑이 따로없군.."
눈보라를 뚫고, 달려온 3대의 마도아머가 바라볼 수 있는 열린 문은 없었다.
하지만 마음의 문마저 얼어붙게 만드는 혹한 탓일거라 채근할 수도 없었다.
그들은 이방인인데다 침입자의 신분이다.
마음의 문의 영역을 떠나서, 생존의 위협이란 차원에서 그들에게 창을 활짝 열고, "우리 나르쉐에 온 걸을 환영합니다!"라고 외칠자는 하나도 없을만 했다.
잠입의 요건에는 타당하지 않은 요란하고 육중한 기계에 몸을 실은 세명은
뻔뻔하다면 뻔뻔하다 말 할 수 있을 만큼 성큼성큼 마도아머를 마을 안으로 이동시켰다.
쌓인 눈이 얼어붙는다면 그건 따뜻한 날씨다.
녹았다 다시 얼었을 테니깐.
나르쉐는 눈이 쌓이지 않는다.
날카로운 바람은 눈에게 녹아 내리는 사치를 허용하지 않는다.
방앗간에 날리는 밀가루처럼 눈은 바람에 의해 날아다닌다.
녹거나 쌓이거나 하는 따뜻한 풍경은 나르쉐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다.
찢어지는 듯한 바람의 비명과
허연 귀신처럼 날아다니는 눈싸래기만이 이방인을 반기는 마을에
그들은 그렇게 진입했다.
마을을 가로질러야 나르쉐 탄광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탄광마을답게 거리도 벽도 거무스름한 색이다.
검은색 건물과 하얀색 눈이 삶을 부정하고 싶다는 마냥 무채색의 공간을 드러낸다.
다만,
하늘에서 내리는 하얀색과는 달리
하늘로 올라가는 하얀색..
집집 굴뚝들에서 나오는 아궁이 연기만이
사람이 살고 있다는 걸 증명하는 듯 했다.
마을 중간만치 마도아머를 진행하고 있을 때였다.
웨지는 자신을 가로막는 저 사람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고민했다.
적어도 마을의 가디언은 곡괭이와 호미로 무장하지 않는다.
적어도 마을의 가디언은 찡그린 이마를 두려움의 수단으로 이용하지 않는다.
적어도 마을의 가디언은 전투용 헬멧 대신 광산인부들이 사용하는 헐거운 모자를 착용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아무런 전투력이 없어보인다.
하지만 감자나 캐던 도구를 전설의 검 알테마웨폰인것 마냥 단단히 움켜줘고 있다.
웨지는 그들에게 '당신들과 관계없이 다만 마을을 가로질러 탄광으로 향하는 것 뿐이오' 따위의 말을 건네려 했다.
그리고 그때?.. ........ .....
웨지와 빅스의 뒤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사람이 녹았다.
전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낭자하는 선혈도 비명도 없었다.
마을 주민들은 달궈진 후라이팬에 녹는 버터처럼 형체도 없이 녹아내렸다.
웨지가 사람들을 상대할 때,
한쪽에서 춥다고 불평하던 빅스는
그 시각적 폭력에 당황하여 급격히 목을 돌려 빛의 발원지를 바라봤다.
그곳엔 소녀의 마도아머가 있었고 소녀는 중얼거리고 있었다.
'방해자는...제거..한다...'
"이런 제길!!"
웨지는 빠드득 이를 갈며 빅스와 그 소녀에게 달리라고 명령했다.
비록 작은 탄광촌이지만
주민을 살해한 마도아머를 모른 채 하진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종류의 적대적인 간섭은
자신들이 아닌 마을 주민의 살상을 가속화 할 것이다.
최소한의 피해로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저들의 어머니 아버지도 우리 어머니 아버지처럼 웃고 울 수 있는 사람이란 말이다!
웨지는 이를 더욱 사려물었다.
셋은 마을 끝에 위치한 탄광으로 향하는 길로 들어갔다.
바람소리가 차다.
이족보행하는 마도아머의 기계소음은 시끄럽다.
웨지는 언제나 이 소음이 싫었다.
하지만 지금은 뒷편 너머로 들리는 주민들의 통곡소리를 차단할 만큼 더 시끄러웠으면 하는 바램이었다.
그 작고 힘없는 마을에서는
중장기병을 단죄할 어떠한 수단도 없었다.
설령 있다고 해도
목숨값으로 죄책감을 가중시키는 수단일 것이다.
그래서 셋은 달렸다.
주민들은 울음소리로 셋을 벌하고 있었다.
옆을 돌아보니 빅스는 달리면서 아예 술병을 입에 물고 있다.
저 소녀가 사람을 죽일 때 마다 빅스는 술이 늘었다.
마음이 여린 친구다.
어느 덧 탄광 안으로 달려들어간 그들은
입구와는 달리 마도아머도 자유로이 이동할 수 있는 탄광내부의 넓이에 감탄했다.
사람과 세월이 결합하면 이런 것을 만들어낸다.
정확히 말하면 그 인상깊은 모습에 감탄한건 빅스 하나 뿐이었다.
웨지는 혹시나 마을 주민이 쫓아오지 않을까 뒤를 신경쓰고 있었고,
소녀는 아무것도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촛점없는 눈으로 뭘 바라볼 수 있을 것인가.
하긴, 자신의 내면을 바라본다고 말 할 수도 있겠지만
소녀의 이마에 둘러진 조종의 띠는 그것마저 가능치 못하게 한다.
"빅스, 여기서 잠시 쉬자. 소녀에게 육포와 감자를 건네라. 난 장작을 모아볼께."
"히꾹~ 음냐...그려. 그나저나 동굴한번 넓직허네..끅~ 근데 저 년 사람을 밥 먹듯이 죽이고 밥이 넘어갈까? 히히히"
웨지는 말없이 주위를 둘러보곤 장작거리를 모았다.
한쪽에 세워둔 마도아머에선 김이 올라오고 있지만 따뜻한 모습은 아니었다.
기계는 달궈져도 차갑다.
풀은 이슬이 맺혀도 따뜻하다.
사람은 그렇게 세상의 온도를 파악한다.
그 따뜻함을 찾기 위해 웨지는 달궈진 마도아머에서 내려 장작을 모으고 있었다.
빅스는 자신의 아머 뒷 트렁크의 문을 열고 음식을 꺼냈다.
소녀에게 음식을 건네고나서 빅스도 웨지를 도와 장작꺼리를 모으기 시작했다.
....밤이라 어둡고,
동굴이라 어둡고,
탄광이라 더 어두운
동굴벽을 마도아머의 불빛만이 비추고 있었다.
소녀는 아머에서 내려오지도 않고 식은 감자를 우적우적 먹고 있었다.
규칙성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동물적인 식사장면을 연출한 소녀는
배를 채우고 나서 그대로 등받이에 몸을 뉘이고 잠이 들었다.
웨지와 빅스는 모닥불을 피우고 육포를 뜯으며 소녀가 새근거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기계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할 만한 쉼이었다.
둘은 가벼운 수다를 남기고,
모닥불을 바라보는 눈이 서서히 감길만큼 시간이 보냈다.
앉아서 자는 버릇은 모든 아머 조종사에게 통용되는 조건이다.
웨지는 그렇게 앉아서 졸다가 갑작스레 들려오는 충격음에 벌떡 일어났다.
충격음이라기보단 땅을 울리는 강한 진동이었다.
그리고 그 진동은 다가오고 있었다.
웨지는 소녀를 돌아봤다.
아직 소녀는 자고 있었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마도아머로 달려가려 했다.
빅스를 깨우고 나서..
빅스를 깨우고 나서?
"빅스!!!!"
빅스는 없었다.
아니다,
빅스의 자리에는 빅스몸통 크기만한 숯덩이 한개가 있었다.
검게 탄 빅스에게 다가가서 이유를 추리할 시간이 없었다.
졸고 있어서 진동으로만 느꼈던 소리가 다시 들렸다.
이번엔 보이기까지 했다.
마도아머의 불빛과
꺼져가는 모닥불의 불빛으론
알 수 없는 탄광굴 안쪽의 공간에서
두개의 초록색 빛이 번뜩였다.
동물의 눈빛 같았다.
그리고 그건 다가왔다.
서둘러 마도아머에 올라탄 웨지는 그걸 바라봤다.
뭔가 이상하다.
동물은 걸어갈때
상하로 움직인다.
그런데 저 눈빛은 그런 상하운동없이 미끄러지듯 다가온다.
소녀도 진동탓에 잠이 깼다.
아머에 시동을 걸고
라이트를 그쪽에 비추는 순간
웨지는 경악했다..
그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