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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롤은 꿈을 꾸지 않는다. 꿈이란 피와 살을 가진 동물의 환상. 인형은 겪을 수 없는 무의식의 영역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꾸게 되었을까?
“…….”
그렇게 리베롤은 깨어났다. 안개로 가득했던 설산 대신에는 삭막한 병실이, 뺨에서 느꼈던 포근한 살결엔 딱딱한 소총이 그 자리를 메꾼다.
그리고 옆에는 유일한 친구, 리엔필드가 앉아있다.
“일어났어?”
리엔필드가 인사하자 리베롤도 고개를 끄덕였다.
“응. 임무는 끝났어?”
“아, 아니.”
“그럼 뭐하고 있어. 빨리 준비해야지.”
말을 마치자마자 그녀는 침대에서 내려왔다. 어제 임무 중에 쓰러져서 둘이 함께 빠져 버렸다. 지금쯤 지휘관이 많이 곤란해 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서두르려는 그녀와 달리 리엔필드는 당황스러운 기색을 내보였다. 뿐만 아니라 임무에 나가는 것 치고는 짐도 굉장히 많았다.
“리엔필드. 그 짐은 다 뭐야? 무슨 일 있었어?”
리베롤은 의아해했지만 리엔필드는 대답하지 못했다. 이어서 병실 문을 열고 지휘관까지 들어오자 그녀는 무언가 잘못됨을 느꼈다.
“지휘관?”
“뭐야? 아직도 말하지 않은 거야?”
귀찮은 듯이 퉁명스럽게 말하는 지휘관. 그는 한숨을 쉬며 가방에서 서류뭉치를 꺼내 건네고는 도망치듯 방을 나갔다.
“전출이다. 오늘부터 나오지 않아도 돼.”
리베롤의 몸이 바위처럼 굳으며 경직했다. 불현듯 왼손에 낀 서약의 반지가 바닥에 떨어졌다.
* * *
인형은 인간을 사랑하게 되어있다. 그것은 그녀들이 태어난 이유이자 목표. 하지만 인간은 다르다. 그들은 자유롭고 잔혹하다.
“몸은 좀 괜찮아, 리베롤?”
리엔필드는 조심이 리베롤을 살폈다. 상실감이 컸는지 그녀는 갈수록 말수가 적어졌다.
어떻게든 함께 이동되기는 했지만 리엔필드 또한 가슴이 막막하다. 인간에게 버림받은 인형을 대체 누가 받아줄까?
도착하는 족족 거절당해 결국 먼 변경까지 오고 말았다. 여기서는 몇 일을 버틸 수 있을까?
불안감을 뒤로한 채 그녀는 지휘관실 문을 열었다.
“실례합니다.”
낡은 판자문에 어울리게 그곳은 소박하고 허름한 방이었다. 가운데 놓인 책상에는 지휘관이 묵묵히 앉아있고 그 옆에서 WA2000이 둘을 반겼다.
“아, 왔어? 지휘관. 어제 말한 보충병력이야.”
“리엔필드하고 리베롤입니다.”
“별로 긴장할 것 없어. 기껏해야 고장난 인형들 처리 밖에 할게 없는 곳이야. 지휘관이 게으른 게 가장 큰 문제지.”
은근히 독설을 섞으며 WA가 지휘관을 조롱한다. 하지만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잠자코 있었다. 그 모습에 당황했는지 WA가 그의 안색을 살폈다
“저기, 지휘관?”
하지만 재차 확인해도 대답이 없는 지휘관. WA는 아차 싶었는지 바로 그의 어깨를 힘껏 붙잡았다. 그러자 순식간에 지휘관의 형체가 사라졌다.
리엔필드는 어리둥절히 그것을 바라보았다.
“지휘관님?”
“제길, 당했어. 언제 또 이런 것을 만들어 가지고.”
WA는 손에 든 장치를 바라보며 입술을 곱씹었다. 시각교란장치. 사람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인형의 센서에는 거짓 이미지를 심어주는 장비다.
“오늘이야말로 본때를 보여주겠어. 뭐해! 빨리 찾아 나서지 않고!”
“아, 네.”
리엔필드는 어리둥절하며 WA를 따라 방문을 나섰다. 순식간에 홀로 방안에 남겨진 리베롤. 하지만 잠시 후 책상이 들썩거리며 그녀의 관심을 끌기 시작한다.
오리마냥 뒤뚱거리며 책상은 안절부절 못했고 곧 그 아래에서 지휘관이 모습을 드러냈다. 애초에 장치는 미끼. 진짜 함정은 그 아래 숨겨진 비밀 공간이었으니까.
“이래서 인형은 학습능력이 떨어진다니까.”
여유롭게 나와 모자를 고쳐쓰던 지휘관은 리베롤과 눈이 마주쳤다. 그는 잠시 당황했지만, 그녀가 신입인 것을 확인하자 다시 장난스럽게 표정을 바꿨다.
“오, 지원병력이군! 만나서 반가워! 내가 이곳 지휘관이야. 좀 전에 본 인형이 부관인 WA고. 할 일은 별 거 없어.
그냥 가끔씩 제멋대로 움직이는 기계들만 처리해주면 돼. 사람한테는 좀 위험해서 저번에 내 머리가 날아갈 뻔 했지, 뭐야!”
그는 능청스럽게 말하며 리베롤의 반응을 살폈으나 대답은 오지 않았다. 견디기 힘든 침묵이 방안을 감싸자 지휘관은 본능적으로 자리를 떠나기로 했다.
그는 양손을 깍지 끼고 운동하며 천천히 문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리베롤의 시선이 문뜩 그를 향해 움직였다.
장갑을 낀 그의 왼손에는 틀림없는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그래, 그것은 한 때 그녀에게도 소중했던 물건이다.
“지휘관은 꿈을 꾸나요?”
“꿈?”
리베롤은 자신의 반지가 있던 자리를 손으로 어루만지며 말했다.
“제 마인드맵은 만들어질 때부터 결함투성이였어요. 그래서 저는 쉽게 망가지고 잘 고쳐지질 않아요.
얼마 전에 코어마저 교체한 뒤로는 꿈 같은 것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하루하루 임무에 나가는 시간보다 침대에 누워있는 시간이 길어져 갔죠.
그리고 결국 이 모든 게 전(煎)지휘관의 마음에는 들지 않았나 봐요.”
끓어오른 감정이 마인드맵의 제어에서 빠져 나온다. 어떻게 됐다 해도 그녀는 인형. 지금도 여전히 지휘관이 그리웠다. 하지만 그것은 이제 되돌릴 수 없었다.
“차라리 그냥 도중에 폐기됐다면 지휘관은 절 버리지는 않았을까요?”
리베롤의 말에 지휘관은 입을 열지 못했다. 그 대신 장갑을 벗으며 자신의 손을 보여주었다.
인형의 가짜 단백질과 달리 부드러운 피부가 있을 거라 생각했던 손은 상처투성이로 흉측스러웠다.
“임무 중에 입은 상처로 총도 쥐기 힘들어하니까 바로 퇴역시키고 나몰라라 버리더라.
얼굴도 엉망진창 당해서 성형수술만 8번을 넘게 했어. 덕분에, 지금은 사람 대신 인형을 돌보는 일을 하고 있지.”
그는 혓바닥을 내밀어 웃고는 다시 장갑을 꼈다.
“나도 결함투성이니까 크게 신경 쓸 필요 없어. 애당초 인형과 인간은 사는 시간도 방법도 다르다고. 이정도야 뭐 보통이지.”
그 말에 리베롤은 눈을 깜빡였다. 처음 지휘관을 만났을 때처럼 그녀의 가슴은 다시금 두근거리고 있었다.
그래, 그 때도 똑같았다. 과거에는 분명 서로를 좀더 챙겨주고 배려했었는데 조금씩 소홀해져 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자신도 무언가 고쳐야 할 점이 있지 않았을까.
리베롤이 그의 손을 잡으며 생각에 빠지자 지휘관은 머쓱해하며 한껏 멋을 부려보았다.
하지만 그 기행도 조금 지나지 않아 종료되었다. 분노에 찬 손가락이 난데없이 그의 양 볼을 꼬집었다.
“아야야야!”
“오, 이건 진짠가 보네.”
시간을 너무 허비해버렸는지 어느 샌가 돌아온 WA가 환한 웃음을 지으며 지휘관을 맞이했다. 그것은 마치 어린애가 벌레를 잡은 것처럼 순진하고 무서운 표정이었다.
“부관. 여기에는 깊은 사정이…….”
“그럼 천천히 그걸 들어볼까?”
WA는 그의 얼굴을 잡은 채로 책상 쪽으로 이동했다. 뒤따라온 리엔필드가 그 모습에 헛웃음을 친다.
“일주일 정도는 그래도 지낼 수 있을 것 같네. 안 그래, 리베롤?”
“응.”
리베롤의 대답에 리엔필드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자기 귀를 의심했다. 그녀는 묵묵히 고개를 들고 새 지휘관을 보고 있었다.
* * *
그 날 뒤로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리베롤은 더 이상 꿈에 집착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을 즐거운 자랑으로 여겼다.
마인드맵도 전보다 더더욱 안정화되어 이제 침대에 있는 시간보다 임무에 투자하는 시간이 더 늘었다.
자연스레 리엔필드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실실 웃지 말고 집중 좀 하지?”
다만 WA의 독설에는 아직 적응하지 못했다. 리엔필드는 알았다며 총을 고쳐 잡았다.
이곳 변경은 폐기처분된 인형이나 기계들을 관리하는 것이 주된 일이다. 그러다 가끔씩 오작동으로 움직이는 것들을 처리하는 게 그녀들의 임무.
대개 별다른 피해는 주지 않지만 그래도 사람이 상대하기에는 역시 무리여서 그렇다.
“아, 리엔필드. 그 쪽으로 한 마리 도망쳤어.”
“Yes, Sir!”
담장을 너머 도망가는 디너게이트를 향해 조준하고 방아쇠를 당기자 손쉽게 임무가 끝난다.
반대쪽에서 WA도 남은 것들을 처리하고 무전으로 임무 종료를 알렸다.
“지휘관, 감사하라고. 오늘은 일찍 퇴근할 수 있을 꺼야.”
또 저런다. 알고 보면 그녀는 은근히 내숭을 떠는 것 같다. 여튼 일찍 돌아갈 수 있다면 나쁠 것은 없다.
리엔필드는 속으로 쿡쿡 웃으며 장비를 챙겼다. 매번 손쉽게 마치는 임무지만 여전히 끝낼 때면 궁금함이 남는다.
지휘관은 왜 이런 임무에만 헌신적일까?
고작 디너게이트에 몇 마리에도 그는 반드시 WA를 동행시키고 주변을 샅샅이 뒤지게 했다.
WA 또한 귀환보고를 하기 전까지는 늘 긴장한 모습이다. 이 곳 어디에 둘만의 추억이라도 묻어놓기라도 했나?
리엔필드는 퇴각준비를 하다가 잠시 생각에 빠졌다. 그래서인지 평소와 다른 분위기를 눈치채는 게 늦었다.
“응?”
디너게이트가 나왔던 쪽으로부터 무언가가 걸어왔다. 마치 고양이처럼 조용하면서 날렵한 움직임이었다.
녀석은 두 인형이 방심하기까지 여유 있게 기다렸고, 때가 되자 거침없이 움직였다.
“말 안 해도 나가줄 테니 감사하…….”
WA가 마지막으로 무전을 보내려는 찰나 그녀의 다리가 잘려 나갔다.
벽 너머에서 쏘아진 무차별적인 난사는 그녀를 무력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교신장비까지 한꺼번에 부숴버렸다.
리엔필드는 기겁하며 WA를 들고 건물 안으로 숨었다.
이 무식한 화력과 연사력은 틀림없는 MG. 정면으로 승부했다가는 그 시간 부로 고철행이다.
리엔필드가 그렇게 생각하며 도망치자, 적은 타겟을 바꿔 움직였다.
순식간에 둘이 타고 갈 보급헬기와 도주로는 물론, 둘을 숨겨준 건물 벽도 모조리 무너뜨려버렸다.
화력 면에서 압도적으로 불리하다. 무엇보다 부상당한 WA를 놔두고 움직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리엔필드는 간신히 안전한 곳으로 숨어 지휘관에게 연락할 수 있었지만, 그 때는 이미 적이 사라지고 난 뒤였다.
* * *
시간이 다시 조금 흐른 후, 이 곳은 그리폰의 임시 수복실. 다행히 큰 손상은 아니라는 말을 듣고서야 지휘관은 WA를 만나러 들어갔다.
자존심은 강하지만 실력만큼은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는 그녀가 부상이라니 직접 듣기 위해 온 것이다.
“리엔필드는 어디 있어?”
“일단 폐시가지에서 시간을 끌고 있어. 이동경로가 아무래도 우리 지휘부 쪽인 거 같아.”
“아마 그렇겠지.”
예상했다는 듯 WA가 힘없이 눈을 깜빡였다. 지휘관은 먼저 질문하지 않았다. 그저 그녀가 대답해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차가운 밤하늘을 보고 있자니 마인드맵이 조금씩 감상적으로 변한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차갑다는 느낌만은 변함이 없다.
WA는 그녀의 시각회로를 통해 본 적의 인상을 프린트했다. 그리고 조심이 지휘관에게 그 사진을 넘겼다.
사진 속의 인물은 작고 날카로운 눈매를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긴 분홍 머리칼에 자신만만 표정을 보였지만 한 편으로는 그게 또 쓸쓸해 보였다.
“이건…….”
지휘관은 자신의 눈을 의심하며 재차 WA에게 물었다. WA는 이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창 밖을 보는 것으로 자신의 대답을 대신했다.
지휘관은 모자를 눌러쓰고 그대로 수복실을 나왔다. 발걸음이 전과 다르게 빠르고 무겁다. 옆에 지나가던 리베롤을 못보고 지나칠 정도로 말이다.
“지휘관!”
“아, 리베롤.”
리베롤이 걱정하며 그에게 다가왔다.
“준비 마치자마자 바로 왔어요. 말씀하신 장비도 모두 실어 왔고요. 지금 가시는 건가요?”
“음, 그렇기는 한데……, 그거 말인데, 나 혼자 가도록 할게.”
“네?”
뜬금없는 작전변경에 리베롤은 회로가 거품을 튀겼다. 하지만 지휘관은 막무가내로 밀어붙였다.
“다른 인형들한테도 전부 대기만 하고 있으라고 해. 나머지는 전부 내가 할 테니까.”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리베롤은 설명이라도 들으려고 했지만 그는 직접 무전으로 명령을 내리고는 장비를 차고 헬기에 홀로 올랐다.
“지휘관, 이건 무모해요! 설명이라도 해줘요!”
리베롤은 너무도 놀라 어쩔 수 없이 그의 손을 잡으며 막았다. 하지만 이에 그는 격하게 화를 내었다.
“인형 주제에 끼어들지마!”
깜짝 놀란 리베롤이 자기도 모르게 손에 힘을 푼다. 냉큼 지휘관은 헬기에 올라타 그대로 떠났다.
리베롤은 갑작스러운 그의 변화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갔구나…….”
수복실에서 절뚝거리며 WA가 나왔다. 그녀 또한 지휘관처럼 어딘가 이상해 보였다.
일이 이렇게 될 것을 알고라도 있었단 말인가. 리베롤의 머릿 속은 점점 어지러워져만 갔다.
“WA,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지휘관이 혼자서 해결한다며 전제대에 대기명령을 내렸어요.”
“그것보다 리베롤, 너 꿈을 꾼다고 했지?”
“네?”
WA는 지휘관에게 보였던 사진을 리베롤에게 넘기며 말했다.
“혹시 꿈에서 봤다는 여자가 이 애야?”
“아……, 네, 맞아요. 어떻게 된 거죠?”
“그렇구나…….”
나뭇가지에서 떨어지는 낙엽처럼 체념이 스며든다. 믿기 싫어서 덮어둔 감정이다. 그리고 이제 감정은 나비처럼 고치 밖으로 날아오른다.
“가끔씩 코어에 마인드맵의 잔류메모리가 깃든다고 해. 사라져야 할 기억이 어딘가에 붙은 거지. 기생충마냥 죽는 것을 거부하는 거야.”
WA는 짐을 하나 건네며 리베롤을 떠밀었다.
“가봐. 갈 수 있을 때 안 가면 후회할거야.”
차가운 밤바람이 인형의 가짜 피부를 쓸어간다. 그것은 누구에게 하는 말이었을까.
* * *
폐시가지 구석에서 총격전이 열린다. 사실 총격전이라 부르기도 힘들만큼 일방적이지만 말이다.
전술인형 네게브. 한 때 소대를 이끌만큼의 기량을 가진 최고의 인형 중 하나.
지금 그녀 한 명을 두고서 지휘부의 모든 인형들은 전혀 접근조차 못하고 있었다.
각 인형의 총기며 특징이며 전부를 알고 있듯 진형을 붕괴해놓았다. 저격부대는 제대로 된 장소로 이동을 할 수가 없었고 돌격부대는 아예 견제가 불가능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홀로 안전하게 엄폐물 속에서 유유히 움직였다. 이대로면 아무런 문제없이 곧 지휘부에 도착할 것이다. 한가지 사항만 제외하고 말이다.
“…….”
네게브는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생각에 잠기었다.
무언가가 있다. AR인지 HG인지는 모르겠지만 움직임이 자유분방한 게 예측하기가 힘들다.
다만 상대는 스스로 고립된 곳을 향하고 있었다. 그것이 왜인지 도발 같아서 그녀의 회로가 짜증을 느꼈다.
반사적으로 총구를 녀석에게 향해 방아쇠를 당긴다. 자기도 모르게 네게브는 그 승부에 응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지휘관이 노리는 바였다.
“욱…….”
안전하게 피하는 것까지는 무리였는지 옆구리에 파편이 몇 개 박히고 말았다. 앞으로 조금만 더 유인하면 되는데!
지휘관은 숨을 거칠게 쉬며 조금씩 걸어서 이동했다. 총탄은 정확하게 자신을 궁지로 몰면서도 흔들림이 없었다.
그는 아무래도 틀렸는지 눈을 감았다. 그 순간, 적의 총구가 그에게서 벗어났다. 총알은 난데없이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든 훼방꾼, 리베롤에게 그 머리를 향하고 있었다.
“지휘관! 괜찮나요?”
“리베롤?”
지휘관은 스스로도 그 이름을 말하면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인형이 인간의 명령을 거부했어?
그리고 혼자서 작전구역에 뛰어들었다고? 아니다. 지금은 아무래도 좋다. 이대로는 그녀마저 당하고 만다.
“리베롤. 지금 당장 돌아가. 네가 상대하는 인형은 상대의 총기에 맞춰서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만큼 우수한 인형이야. 너 혼자서는 무리야.”
“알고 있어요. 하지만 지휘관은 단 둘이 저 인형을 만나야 하는 거죠?”
“…….”
지휘관은 그 질문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리베롤은 알았다. 그녀의 마인드맵은 서서히 모든 것을 이해하고 있었다.
지휘관, WA, 그리고 꿈 속의 소녀 네게브. 하지만 리베롤은 가만히 있지만은 않을 것이다. 이미 상처는 한 번으로도 충분했으니까.
“그럼 맡겨주세요. 제게 생각이 있으니 지휘관은 하던 대로 움직이시면 되요. 인형에게는 인형대로 싸우는 방법이 있어요.”
말을 마치고 일방적으로 끊자 그는 당황함에 할 말을 잃었다. 하지만 무전에서 말했던 것과 달리 총소리가 점차 희미해져 간다.
리베롤이 전장을 이탈했다는 증거다. 포기했거나 당했거나 아니면 이게 그녀가 말한 인형의 작전인가? 어느 쪽이든 그에게도 이미 선택은 없다.
지휘관은 처음 계획했던 대로 시가지 구석 절벽으로 이동했다. 이곳이라면 누구에게도 방해 받지 않고 단 둘이 있을 수 있다.
물론, 살아남았을 때의 이야기지만. 네게브는 주변 인형과 지휘관의 위치를 계산하며 서서히 그에게 접근했다. 현 위치상 누구도 그녀를 노릴 수는 없다.
RF의 위치에서는 저격이 불가능하고 나머지 인형들은 아예 접근조차 못한다. 좀 전의 AR은 애매한 거리지만 공격은 무리다.
천천히 그녀는 지휘관을 향해 다가가 방아쇠에 손가락을 올렸다. 그 때였다.
쏠 수 없는 곳에서 쏘아진 총알 하나가 그녀의 오른팔에 명중했다. 위치는 아까 그 AR이다. 하지만 어떻게 된 거지?
그 전술인형의 무기로는 불가능할 터인데. 네게브는 충격으로 쓰러지면서 리베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저 멀리서 리베롤은 분명히 저격에 성공하였다. 다만 총기는 네게브의 계산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명중했어. WA.”
리베롤이 무전을 향해 짤막하게 말하자 곧바로 응답이 들어왔다.
“당연하지. 내 각인시스템은 본부 내 1등이니까.”
저격 소총 WA2000. 리베롤은 WA에게서 그녀의 무기를 받아 무전의 지시대로 쏘았다.
AR에게는 힘들지만 RF에게는 가까운 위치. 바람이 막힌 폐시가지와 네게브의 방심이 만든 조그만 우연이었다.
“으으.”
비틀거리며 무기를 집으려는 네게브를 향해 지휘관이 달려갔다. 비록 한 팔은 잃었지만 인형은 인형. 거칠게 저항하는 그녀를 잡으며 그는 헬멧을 벗었다.
“네게브, 나야.”
목소리를 듣자 그녀의 마인드맵이 상대를 인식하고 알아본다. 네게브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그의 뺨을 만져보았다.
“지휘관?"
“응.”
그러자 그도 애써 장난스럽게 웃어보았다. 네게브는 찬찬히 그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눈 내리는 날 보았던 그 앳된 얼굴은, 삭았고 군데군데 주름과 흉터도 가지고 있었다.
“너무 많이 변했잖아.”
“인형과 인간은 사는 시간도 방법도 다르니까.”
“하지만 그 정도야 보통이지.”
친숙히 대답하며 네게브도 웃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며 리베롤은 가슴을 졸였다.
지금 그녀가 느끼는 감정은 정말 자신의 감정일까 아니면 한 때 다른 사람의 것이었던 코어에 남겨진 추억일까.
어찌됐든 작전은 성공했다. 문제의 인형은 회수된 후 얼마 안 있어 그 기능이 정지했다.
알고 보면 이미 오래 전에 망가졌을 터인데 움직인 것이 오히려 신기하다고 들었다.
그리고 그 날 이후, 지휘관도 지휘부에서 모습을 감췄다.
* * *
인형은 인간을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녀들이 만들어 질 때부터 결정된 최우선 상황.
인형은 인간에게 호감을 느끼고 사랑에 빠진다. 그 또한 그녀들의 목표이자 인생 그 자체.
하지만 리베롤은 그것을 조금 미뤄 두었다.
그리고 전역하여 이제는 작은 빵집에서 일하는 게 그녀의 낙이다. 대부분의 다른 인형은 지휘부에서 새 지휘관과 어울리기를 원하였고
리엔필드만이 여전히 리베롤의 곁에 머물고 있다. 비록 허전하기는 하지만 행복한 인형의 인생이다.
“어서오세요.”
문고리에 걸어둔 작은 종이 울리자 리베롤은 웃으며 손님을 맞이했다.
카운터로 나가며 미소를 짓던 그녀는 문득 그 자리에서 멈춰서 손님을 바라보았다.
손님은 두 명의 남녀로 남자는 휠체어에 앉아서 여성의 부축을 받고 있었다.
아리따운 여성은 휠체어를 밀며 리베롤에게 다가왔다. 변함없이 WA는 그 때 그 모습 그대로였다.
“조금 시간은 걸렸지만 찾아서 데려왔어.”
WA의 말에 리베롤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남자를 향해 다가갔다.
이제는 머리도 새하얗고 얼굴도 늙었지만 틀림없는 그 사람이었다. 설령 누군지 못 알아본다 해도 말이다.
“오랜만이네요, 지휘관.”
리베롤은 한 때 그가 그랬던 것처럼 손을 살포시 잡고 마주보며 앉았다.
인형과 인간은 사는 시간도 방법도 다르다. 하지만 그것이 뭐가 문제일까?
리베롤은 스스로에게 물으며 미소를 지었다.
좋은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