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분열
“끼에에엑! 끼우우우!”
조사거점의 새벽은, 아침을 알리는 조류 대신 한 마리의 비룡으로 시작되었다.
한 차례 거대한 전투가 있고 난 뒤, 조사 거점은 충분히 빠른 속도로 원래 상태를 되찾았다.
신입 헌터는 징계를 받고 본 대륙으로 좌천되었고, 교역선과 대 교역선, 원조선 등의 도움을 받아 한 달여 동안의 수리 보수가 진행되었다.
“아니 그러니까 기왕 이렇게 된 거 고대수의 숲에 있을 필요가 없다니깐요? 비룡들도 나날이 머리가 좋아지고 자기들 끼리 프라이드를 만들어서 공격해오는데! 차라리 고룡들이 자기네들끼리 영역다툼을 하는 용결정의 땅이 낫다니까요?”
“그건 너무 과해 홀덤. 신입 헌터들은 어쩌자고?”
“왜 우리가 걔네를 신경써요? 헌터가 무슨 학교에요? 우리가 삼사십년 전 플레이어 있을 땐줄 아세요? 비룡이나 고룡이나 우리 인간들이나! 신대륙 영역을 갖고 조빠지게 싸워서 영토를 얻어낼 땐데! 다들 옛 추억에 젖어선 공격도 안해, 방어도 안해. 그러다가 이 꼴 난 거 아닙니까?”
리멘과 4대 약소클랜의 클랜장 자리를 위협하는 헌터인 홀덤은, 언제나 헌터협회와 헌터들의 안일한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만. 과하다 홀덤.”
“과해? 솔직히. 저 불쌍한 초짜가 뭔 잘못이에요? 잘못은 다 니들한테 있잖아요. 다들 쉬쉬하고있으니까 나도 분위기 봐서 말 안했는데, 본대륙 망한거 누가 몰라요? 우리한테 돌아갈 본 대륙이 있기나 해요?”
“홀덤!!!!”
“우리도 목숨 걸고 영토 확장 해야합니다! 개밋둑의 황야던! 고대수의 숲이던! 아니면 ㅆㅂ 고룡들이 나오는 용결정의 땅이던 뭐던 목숨걸고 싸워서 이겨내야죠! 바이러스에 실험실패에 환경오염에...본대륙 사람들은 거대 함선타고 섬과 섬 오가면서 신대륙 오기만을 기다리는데, 우리가 여기서 이따위로 행동해도 돼요?”
홀덤의 말에 아무도 반박을 하지 못했다.
그 말대로였다.
플레이어라는 전설의 헌터가 죽음을 맞이할 때 즈음, 본대륙에서는 거대한 역병의 바람이 불었다. 과학의 발전을 훨씬 웃도는 수준의 바이러스는 사람들을 순식간에 죽음으로 이르게 만들었고, 거대한 영토의 본대륙은 살아남은 생존자들을 범선에 태워 여러 섬과 지형으로 대피시켰다.
일각에서는 고룡들 만이 바이러스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설이 돌아 고룡 바이러스라는 이름이 붙여졌지만, 얼마 안가 다른 구 대륙의 고룡들도 연이어 사망하는 사례가 발견되어 가설은 종결되었다.
그 때 본국에서는 조사와 수렵을 위주로 하는 헌터들과 헌터협회를 전면으로 개편하고, ‘의문의 바이러스’로부터 안전한 대륙을 찾기 위한 임무를 수행시켰다.
효율적인 임무를 위해 팀단위로 배치되는 것이 당연시 되면서 한사람의 능력에 의존하는 것이 아닌 팀 전체의 밸런스를 높이는 방향으로 헌터들이 꾸려졌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밸런스가 맞는 한손검이 기본 무기로 채택되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여태까지 발견된 모든 대륙들은 섬과 대륙의 중간 정도로 매우 크기가 작거나 사람이 살기 힘들만큼 열악했다. 숙달된 헌터들은 살아남을 수 있지만, 아이와 일반인들에게는 지옥같은 지형들을 버리고 수십년을 항해하면서 알게 된 사실은 단 두 가지였다.
여태까지 발견된 대륙 중에서 바이러스에서 안전하고, 지형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곳은 신대륙 뿐이다.
신대륙(이하 아스테라로 명명함)은 바이러스에 안전하다. 이유는 알 수 없음.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몬스터들과 헌터들이 아스테라로 향하기 시작했고, 근 10년 전부터 셀 수 없이 많은 영역 싸움이 일어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을 자각하지 못한 채 헌터라는 이름에만 매달리고 있는 기성 헌터들에게 홀덤은 아주 큰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본 대륙으로의 좌천? 이게 좌천입니까? 걍 죄를 지었으니까 가서 병걸려 뒤지라는거지? 그게 헌터 협회의 대가리라는 것들이 할 말입니까?”
홀덤은 아주 야생적인 헌터였고, 몬스터들을 유독 증오했다. 유서깊은 헌터가문이었던 부모들이 모두 역전왕 네르기간테에게 사망하고, 연구원인 홀덤의 누이마저 오도가론에게 사지를 찢겨 죽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모두 눈앞에서 똑똑히 보았던 것이 홀덤이었다.
“다들 플레이어 인자 때문에 콧대가 너무 솟으신 것 같은데, 우리는 먹이사슬을 관장하는 종족이 아닙니다. 먹이사슬 속에서 살고자 아등바등 개 지랄을 떠는 종족이지. 잘난척 좀 하지 마쇼.”
그렇기에 더더욱 몬스터와의 공생, 아니 서로의 영역을 최대한 건드리지 않고 천천히 범위를 넓히려는 소극적인 태도가 더더욱 마음에 안들었으리라.
“비록 표현이 과하지만 홀덤 말이 맞다고 봅니다.”
워낙 성격이 괴팍하고 천방지축인지라 맞는 말도 설득력이 없게 느껴지는 홀덤의 뒤로 한 남성이 손을 들었다.
리멘이었다.
“플레이어 인자. 본 대륙. 언젠가서부터 아스테라 거점에서 이 얘기는 암묵적으로 금기됐죠. 홀덤이 얘길 잘 꺼냈습니다. 다들 솔직히 까놓고 말해봅시다. 헌터로 차출되는 사람들. 그러니까 플레이어 인자가 있는 사람들은 역병이나 열상. 화상이나 빙결 상태에 큰 내성을 가지죠. 그러니까 더더욱 강해지고, 크기만 작을 뿐 웬만한 몬스터들보다는 강한 육체를 갖고 있습니다. 맞죠?”
반박 할 자가 없었다. 리멘의 말이기에.
“그래서 더더욱 자만하는 것 아닙니까? 우리가 무슨 생태계 위에 군림이라도 하고 있는 것 마냥...잡았다가 연구하고 놔주고. 바이러스 연구는 언제 합니까? 지난 10년간 영역 얼마나 넓혔어요? 캠프가 겨우 세 개 늘었어요 세 개.”
리멘은 목소리를 더욱 높였다.
“지금 행성 전체에서 고룡들과 몬스터들은 살기 위해서 대피해옵니다. 근데 우리만. 우리의 동족들을 바다 한 가운데에 버려두고 뭐하는거에요? 우리는 인간과 몬스터의 공존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닙니다. 인간이 먼저 살아야죠.”
“흠...그 말도 일리가 있군.”
“일 리가 있기는 개뿔 하여간 능력도 없는 꼰대새끼들이 지들 잘못은 죽어도 인정 안하지.”
홀덤은 다소 많이 괴팍했다.
“뭐라? 대단장에게 예의를 갖추라!”
“꼬우면 다들 한판씩 뜨던가. 야 너희들이 고룡 몇 마리 잡으니까 뭐라도 된 거 같지? 허구헌날 고대수의 숲에 쳐박혀서 지들끼리 캠프파이어나 하고 쳐 놀다가. 때되면 불쌍한 안쟈나프나 토비카가치들이나 족치고. 니들 바젤기우스나 이블죠 나오면 잡는 시늉도 안하고 귀환하잖아? 그래놓고 상위 헌터야?”
말 그대로 현재 상위 헌터들의 기강은 ‘해이’ 그 자체였다. 전투를 등한시하고, 고국에서의 지원과 환대만을 바라며, 헌터 포인트. 그러니까 랭킹에만 집중하여 위험이 따르는 전투는 외면해왔다.
“오냐 그래. 한번 떠 보자 이거지?”
그때, 전건협의 한 헌터가 건랜스를 꺼내들었다.
홀덤은 기다렸다는 듯이 한손검을 같이 꺼냈다.
“다들 그만하시게!”
헌터가 일순간 허벅지의 힘을 폭발적으로 가중시켜 앞으로 돌진했다. 어차피 홀덤 정도면 피할 수 있기에 진짜 찌를 요량으로 달려들었다.
“뭐하냐? 그렇게 느려서?”
달려들기 위해 일시적으로 온 힘을 하체에 주는 동안, 찰나의 순간 다운된 시야를 틈타 홀덤은 이미 헌터의 뒤에 와 있었다.
"참을만큼 참았는데, 너희들의 움직임을 보니까 더이상 네깟 것들에게 내 미래를 맡길 수는 없을 것 같다."
홀덤이 하늘에 음폭탄을 쏘아 거점의 전 인원 이목을 집중시켰다.
“여기 있는 전 헌터들에게 공지한다.”
방어구를 챙겨입지 않은 헌터의 머리채를 잡은 홀덤은 다리를 걸어 바닥에 넘어뜨린 후, 오른손의 방패로 헌터의 팔을 내려 찍었다.
쾅!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헌터의 비명이 거점 전체를 울렸다.
“끄아아아아아악!!!!!!”
“너희들 그거 알아? 비룡들도, 수각룡들도 자기 종족끼리도 영역싸움하고 죽고 죽인다는 거. 인간은 그러면 안된다는 보장 없어.”
“너...너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거냐! 홀덤!”
“오늘부로 나는 너희 아스테라인들과 다른 부족의 인간임을 공표한다. 나는 나의 트라이브를 만들고, 내 부족들의 안전과 평화를 위해 온 몸을 바쳐 싸우겠다. 몬스터를 증오하는 헌터들! 헌터 협회의 기이한 구조에 불만이던 헌터들! 그리고!!!!”
홀덤은 왼팔을 들어 바닥을 내려 찍었다. 그의 칼은 사선으로 땅에 찍혀 건랜스 헌터의 목에 닿아 아슬아슬하게 경상을 입혔다.
“본국에서 온 원조선, 해방선, 교역선의 일반인들!!!! 나를 따라와라! 너희들에게 신대륙의 땅을 안겨주겠다!!!”
콰드득.
홀덤은 칼을 뽑아 들었다. 아슬아슬하게 목에 닿아 있던 한손검의 칼 끝은 홀덤이 뽑아 드는 곡선 모양을 따라 살갖을 깊게 파고 들었다.
소름끼치는 찔꺽 소리를 내며 피를 뿜는 헌터의 목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니라 죽어가는 하나의 동물의 모습이었다.
“홀덤... 너 이..”
대단장이 태도를 뽑아 홀덤에게 달려들 때였다.
“그만. 한 발자국이라도 더 움직이면, 여기있는 사람들 중 최소 200명은 죽는다.”
대단장을 막아선 것은, 가장 차기 리더로 추앙받고 있던 헌터와 민간인들의 영웅.
리멘이었다.
“우린 오늘 이 시점 이후로 아스테라인의 신분을 버리고, 트라이브의 일원이 된다. 따를 자들은 모두 버려진 고대수 캠프로 와라.”
당황한 대단장을 뒤로하고 리멘은 귀환옥을 터뜨려 연막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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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막이 모두 걷힌 뒤 끔찍한 정적이 유지되는 거점은.
건랜스 헌터의 시체처럼, 아스테라인의 생명의 불길이 꺼져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