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꿈은 헌터였으나, 선천적으로 약한 체질과 그로인해 운동을 싫어하는 성격때문에 사춘기에 접어들었을땐 헌터의 꿈을 포기 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내게도 헌터 못지않은 장점이 매우 많았다. 끈질긴 집념과 미지의 세계에 대한동경..그렇다, 헌터에게 승부욕이있다면 내게는 끝없는 학구열이 있었다. 일선에서 싸우는 헌터가 빛을 발하려면 후방에서 지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서른 둘에 이른 지금 나는 길드의 고룡연구소 소속 학자의 조수로 일하고있다.
아무런 문제만 없으면 나는 향후 십년안에 길드에서 인정받는 고룡학자가 될 몸이다.
하지만 직접 눈으로보고 몸으로 실천하지않는 학문은 죽은것이나 다름없다는 교수님의 가르침에 따라 고탑을 조사하기위해 조사대와 원정에 나섰고 그 도중 예상치 못한 돌풍을 만났다. 그 순간 머릿속에 죽음이란 단어가 스쳤지만 나는 눈을 떴다. 좀 당황스러운것은
내가 눈을 떴음에도 이곳엔 빛이라곤 한조각도 보이지않는.. 지금 내가 눈을 뜬건지
감은건지 구분조차 할 수 없을만큼 어둡다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다리에 확실한 통증이있다. 타들어가는 통증은 내가 살아있음을 확신하게 해주는 반증이었다. 고통이 이렇게 고마운 것일 줄이야!! 어쨌든 나는 이곳이 어딘지 파악해야만 했다. 어둠을 향해 손을뻗어 무언가 물체가 있지는 않은지 더듬거리기 시작했다.
내 손에 닿은 물체는 예상밖의 놀라운 것이었다.
"이제야 정신이 드셨소?"
그렇다 그것은 사람이었다. 중후한 목소리로 보아 중년의 남성일거란 짐작이 들었다.
사람이란 제 아무리 정신력이 강한 자 일지라도 빛이 없는 곳에서 아무와도 대화하지 않은채로 72시간을 넘길수없다.
극도의 긴장감과 죽음의 공포, 그리고 그것을 초월하는 고독감 때문에 72시간에 걸쳐 빠르게 미쳐가다가 이내 삶을 포기하고 스스로 생명유지활동을 중단시킨다고 한다. 72시간이란 수치는 몸이 자유롭게 움직일수있는 상황에서 약간의 운동을 이용하여 긴장감을 완화하고 주변의 탐색으로 인한 자신의 생명에 대한 안전 확보가 이루워졌다는 믿음을 가진 상황을 전제로 한것이고 나처럼 다리가 부러진 상태라면 24시간을 버티는것 조차 보장할 수 없었다. 솔직히 무섭지 않은것은 아니었지만 최소한 고독감은 떨칠수있다는 것 만으로도 난 다시한번 삶에 대한 의지를 불태울 수 있었다. 아차차, 이럴때가 아니다 우선 상대가 누군지 알아보는게 우선이다.
"예! 신의 가호와 가격은 듬직하지만 성능은 듬직 하지 못한 보호장비때문에 어찌어찌 목숨을 구한 소생은 볼품없는 몸뚱아리보다 더욱 볼품없는 명성을 가진 해리 맥도웰이라고 합니다. 아니 지금은 다리가 부러진 맥도웰이군요! 그런데 정성스레 기른 턱수염을 가지신 당신의 이름을 감히 궁금해 해도 되겠나이까?"
"턱수염도 없고 이름도 없소"
.....빌어먹을 자식 턱수염은 농담이었다. 모르긴해도 이놈은 분명 폿케쪽에서 온 눈사람일테지.. 이래서 촌놈들이란 재미없다니까
"그럼 무명씨라고 불러드릴까요? 이런이런! 저는 지금 아주 대단하신 분을 만나고있는 거군요! 유아용 교육서부터 고등교육서 까지 모든 교과서에 아름다운 시와 소설같은 문학작품을 남기신 유명하기 그지없는 바로 그 [무명]씨를 만나다니! 오오 맙소사! 내 맹세컨데 오늘일은 내 아들이 태어 나기도 전에 까먹을겁니다!"
"당신 원래 그렇게 말이 많소?"
끝까지 내 농담을 받아주지 않는 놈에게 발끈하려다가 나는 입을 다물어 버릴 수 밖에 없었다. 맞다. 나는 원래부터가 학자체질.. 과묵하고 필요한 말 외엔 하지않는 편이었다. 하지만 지금 난 말을 하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았다. 두려움을 떨쳐버리기 위한 행위였다곤 하지만 사실 난 이미 머리끝까지 두려움에 먹혀버린 상태였다. 어쩌면 난 서서히 미쳐가고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 머릿속이 복잡해져서 여러가지 생각에 휩쌓였고 우리 둘은 아무말 없이 상당히 긴 시간이 흘렀다. 실제로는 얼마나 흘렀는지 모르겠지만 최소한 내가 느끼기에 우리는 반나절동안은 말이없었다. 혹시 옆에있는 사람이 죽은게 아닌지 확인하려했을때 그가 먼저 말했다.
" 우리는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이 어딘지도 모르고 이 공간에 산소가 얼마나 있는지도 모르며, 식량을 구할 수 있는 방법도 모른데다가, 뭣보다 구조대가 파견될지 안될지도 모르는 상황이오..즉 우린 언제 죽을지 모르다는 말이오 말동무가 필요하다면 응수해드리겠지만 필요이상 너무 많은 말을 하면 그것조차 낭비라는걸 염두해 두시오, 뭣보다 당신 다쳤잖소?"
"...?, 아무것도 안보이는데 내가 다쳤다는걸 어찌아셨습니까?"
"나는 앉아있었소, 보통 이런 상황에서 함부로 일어나는건 최악의 행동이지만 보통사람이라면 공포심때문이라도 우선일어나고 보지 특히 남자라면 더욱 더, 그런 상황이라면 당신은 나를 무릎으로 찾았어야 했소, 내 얼굴이 당신 무릎에 부 딫혔겠지 하지만 당신은 내 얼굴을 손으로 만지더군.. 기어왔다는 뜻이겠지 그렇다면 다리가 다쳤을거라고 예상했을 뿐이오
당신이 내 목소리만 듣고 턱수염이 있을거라고 예상한것 처럼"
"이런..헌터십니까?"
"헌터 였었지, 뭐 사정없는 사람 어디있겠소"
난 솔직히 최악이다라고 생각했다.헌터는 어떠한 극한상황이라도 돌파해내기 위해 최선책을 모색하지만 제 아무리 훌륭한 헌터라도 이런 상황에선 손을 쓸 수 가 없다. 헌터중에 이름이 없는 사람들을 자주 만나게 되는데, 그들은 어차피 언제 죽을지 모르는 자신들에게 이름따윈 필요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그만큼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일것이다. 이 자는 여유롭게 죽을 생각을 하겠지만 나는 아니다, 나는 두렵다.
"떨쳐내지 못할거면 받아 들이시오"
나는 가슴을 찔린것 처럼 움찔할 수 밖에 없었다. 아니, 어쩌면 그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이런 최악의 상황에서 희망은 오히려 나를 더욱 괴롭힐지도 모른다. 그의 말은 일리가 있다고 생각되지만 납득은 할 수 없다. 나는 살고싶다. 다친 다리가 더욱 아파온다. 통증은 다리를 지나 국부, 그리고 상반신까지 덮쳐온다. 내 몸은 아직도 살고싶다고 내게 말하고있다.
"살고 싶어요"
"나도 그랬소"
희망을 과거형으로 내뱉는 그의 말에 나는 분노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봐요! 당신의 사고는 그렇게 냉정하게 돌아가는 걸로 보아 당신은 경미한 부상조차 입지 않았겠죠?부상을 입지 않았으니 나보다는 공포심이 덜하겠죠! 아니 그렇다고 치더라도 당신은 어떻게 그렇게 태연할 수 가있죠? 어쩌면 당신은 지금 이 상황에 대해 나보다도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최소한 나보단 당신이 살아날 확률이 더 높을텐데 당신은 왜그렇게 쉽게 삶을 포기하는 태도로 있는거죠? 당신은 신이라도 되는겁니까? 아니면 내가 죽어가는 모습을 즐기고 있는겁니까?!
그래요 사람이 천천히 죽어가는 모습은 보기 드문광경이니 끝까지 지켜보고 내가 죽거든 혼자 탈출할 생각인겁니까?! 그런가요?!"
갑자기 흥분해서 소리를 질러댔기 때문에 다친부위가 더욱 격하게 아파왔다. 하지만 이젠 이 고통이 사라지는게 더욱 무섭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우린 같이갈거요"
그의 말에 실낱같은 희망이 느껴졌다. 역시 헌터에겐 뭔가 비장의 카드가 있는 법이겠지!!라는 생각도 들었다. 작은 희망이 눈앞에 보였고, 그는 말을 이어나갔다.
"당신이 말한대로 나는 경미한 부상조차 입지않았소, 내가 왜이렇게 태연하냐면 당신이 말한대로 난 지금 이곳의 상황을 거의 대부분 알고있소 하지만 한가지 이해 안가는 부분이 있긴하군, 그것은 당신이 신경쓸일이 아니오 당신도 어차피 모를테니, 그리고 살아날 확률은 당신이나 나나 똑같소 걱정마시오 나는 당신을 데리고 간다고했으니 그말을 믿으시오 마지막으로 사람이 천천히 죽어가는 모습은 내게 전혀 흥미로운게 아니오 나는 헌터였으니까"
...미안한 감정이 몰아쳐왔다. 그는 분명 나보다 수없이 무수한 죽음을 보아왔을것이다. 처음엔 가슴이 터져나갈듯이 슬펐을 것이고 두번째죽음앞엔 눈물만이 흘렀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세번째 죽음을 보았을 때부터 지금같은 모습이 되었을것이다. 헌터는 죽음을 슬퍼하기위해 눈물을 닦기보다 살기위해 길을 닦는 사람들이니까... 나는 헌터를 동경할 자격조차 없는 머저리였다.
"지금의 우리 상황은 어떤가요..."
"모르는게 나을텐데..꼭 알고싶소?"
무섭다 미치도록 무섭다 하지만 나의 알고싶다는 지적욕구는 생존본능보다도 강하다. 나는 내 본능에 충실하기로했다. 난 어둠속을 더듬거려 그의 손을 잡으려고했다..하지만 그의 손은 잡히지 않았다. 그의 말이 이었졌다.
"이곳은 야마츠카미, 그러니까 당신네 학자들 말로 부악룡이라는 고룡의 뱃속이오 우리가 이곳에 온지는 약 네시간 남짓 되었지. 나는 원래 본타라는 이름을 가진 헌터였는데 한 이십년전쯤 이놈을 토벌하기위한 토벌대에 지원했다가 이놈의 뱃속에서 죽었소, 당신이나 나나 살아날 확률은 똑같다고 말한건 이 때문이오 무슨말인지 아시겠소?"
너무 어이가 없어서 그가 무슨말을 하는지 조차 이해할 수 가 없었다.
이미 미쳐버린건가? 혼란스러운 나와는 상관없이 그의 말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나는 당신을 저승으로 대려가기 위해 이곳에서 당신을 지켜보았소,당신과 같이 간다는 의미는 그것이었소, 그런데 나는 한가지 이해가 안되는 점이있더군."
나는 그가 무슨말을 하는지 끝까지 들어보기로 했다.
[당신은 이미 머리 아랫부분의 모든 몸통이 이놈의 체액으로 인해 녹아버렸소, 근데 어떻게 쉼없이 떠들어댈 수 있는거지?]
ps:원래는 이거.. 좀 길게 써서 1일차 2일차 이런식으로 각 한편씩 만들어서 총 7편으로 일주일 정도의 분량으로 만들고싶었는데.. 사람심리를 묘사하기엔 제 글 솜씨가 너무 비참하고 비루해서 역량부족이란한계에 막히고 말아버렸습니다 ㅠㅠ... 결국 중간내용은 다 삭제해 버리고 첫부분과 마지막부분만 편집해서 올렸네요 ㅠ.. 끝까지 읽어주신분들 감사합니다(__)
Ps2:다들 눈치채셨을지도 모르겠지만.. 주인공의 모티브는 매일 헌터집으로 각종 맵에 대한보고서를 보내주는 그 바보 조수-_-;;
워 시밤 막판에 소름 쫙
퐈님// 주인공의 모티브가 보고서를 보내주는 그 조수란게 그렇게 소름..돋을 일이었나요;?
오랜만에 복귀한 곽달호입니다만... 노리신건가요!?